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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132화 (132/305)

64, 그날이 오늘이야! (1)

64, 그날이 오늘이야!

남천휘는 재이의 저렴한 표정에 미간을 좁혔다.

‘허어, 2호가 개똥이면 1호는 연 소저냐?’

◎ 미연시의 원활한 진행과 대상자의 원만한 연애를 위한 편의를 제공합니다.

한 마디로 헷갈릴 수 있으니 번호를 붙였다는 거냐.

제아무리 실용적이라고 해도 사람에게 번호를 붙이는 건 도가 지나쳤다.

‘내가 비록 소혜를 적립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는 했지만, 안 했잖아? 나는 농담이었다고!’

◎ 명칭 변경이 가능합니다.

됐다. 그냥 둬.

남천휘는 새로운 명칭을 고민하기보다 지도의 붉은 점을 유심히 살폈다.

붉게 빛나던 점은 어느새 노란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고 했지만, 위협이라는 표현에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붉은 점은 노랗게 변하기 전 반짝임을 멈췄다.

“생명의 위협이라면 어느 정도의 수준인 거냐?”

◎ 지금 당장 생사가 결정되지는 않지만, 어떤 계기로도 위기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결정되는 순간이면?”

◎ 적색이 황색으로 변하면 생사의 간극으로 간주됩니다. 황색이 하얗게 변하면 생사가 결정된 상황임으로 잠시 후 표식이 사라집니다.

남천휘는 한 숨을 내쉬었다.

천수련의 위기는 곧 노국장의 위기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이고, 외조부까지 연관된 중차대한 상황이었다.

‘천수련은 강해.’

남천휘는 철투를 통해 천수련의 성취를 가늠할 수 있었다. 철투를 통해 수많은 대전을 치렀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천수련이 존재했다.

연모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지금껏 남천휘가 철투에서 상대한 적수 중 최강자는 백운검조(百雲劍祖)였다.

레벨 180의 고수인 백운검조는 철검을 사용했다.

웅혼한 내력과 태산 같은 중검으로 초식을 펼칠 때마다 몇 번이나 목이 잘릴 뻔하지 않았던가.

결국 삼회전까지 간 끝에 시간제한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하아, 쉽지 않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수련에 대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천수련의 검법은 신묘했고, 내공은 정순했다.

그녀를 생각할수록 명문의 저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한데 그런 천수련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단다.

그렇다면 신공부에서 무언가 일을 벌였음이 확실했다.

남천휘는 신공부의 세력도를 머릿속에 그렸다.

신공부는 공문십철이라 불리는 열 개의 방파로 구성됐다. 공문십철은 천위검호의 천위장이나, 외조부의 노국장처럼 공부를 중심으로 방사형(放射形)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신공부주의 뿌리인 승천문도 마찬가지였다.

‘공후탁은 승천문을 공문십철보다 윗자리에 놓으려 해. 신공부의 주인을 자처하고, 공문십철을 장로원으로 삼으려 한단 말이지.’

공후탁은 단순히 욕심만 많은 자가 아니었다.

산동 강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유명한 명사였다. 그리고 삼정의 수장답게 일신의 무위 또한 초절정에 근접했다고 하더라. 무엇보다 가장 대단한 건 양민들이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음이다.

상제신룡(上帝新龍).

이것은 단순히 멋들어진 단어의 나열이 아니었다.

유가의 정신을 오롯이 담았다.

유생들에게는 극찬의 표현이었고, 양민들에게는 경외의 표현일 터였다.

유가(儒家)의 바탕은 경천사상이다.

시경과 서경만 봐도 상제(上帝)와 하늘(天)로 대변되는 숭경(崇敬)의 구절이 가득했다.

‘상제신룡와 천위검호라…….’

유가의 유생들은 공부의 주인인 공후탁을 가리켜 상제신룡라 했고, 검중제일이라 불리는 유백하(劉柏廈)에게 천위검호라는 별호를 붙였다.

‘붙여줬을지, 붙이라고 했을지는 모를 일이지.’

남천휘의 별호인 호도와 귀협은 각기 곡부남가와 신공부에서 퍼트린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상제신룡라는 멋들어진 별호를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찌됐든 신공부주와 천위검호는 순망치한의 관계였다. 그러니 신공부주에게 대적하려면 천위검호를 먼저 넘어서야 했다.

200레벨이 넘는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 게다.

하나 신공부주가 믿고 의지하는 수하는 천위검호 뿐이 아니었다. 신공부에는 일명 삼유기(三儒器)라 불리는 고수들이 존재했다.

광목재사(廣目才士)와 천라쌍익(天羅雙翼).

전자는 신공부의 사무를 총괄하는 제일총관이다.

용봉쟁투의 책임자였던 신풍수사의 직속상관이기도 했다. 한때 제갈세가에서 수학했다가 출신에 밀려 낙향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재지가 남다른 자였다.

후자 또한 천위검호나 광목재사에 뒤지지 않았다.

천라쌍익 공후탄은 신공부주인 공후탁의 동생이자, 당대 승천문의 문주였다. 암암리에 천위검호와 호각을 이룬다는 소문이 돌 만큼 고강한 무예를 자랑했다.

‘세 명을 조져야 공후탁이 나올 텐데.’

한데 막상 나와도 문제였다.

유생과 양민의 신망을 한 몸에 얻은 공후탁을 지탄할 명분이 없지 않은가.

천릉곡에서 시작된 이어진 일련의 사건에서 신공부주를 의심한 사람은 남천휘가 유일했다.

‘어쩌면 삼정이라 불리는 것과 달리 신공부주가 청도문을 쥐락펴락 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 증거로 청도문은 소문주가 피살됐음에도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쯧. 더럽게 복잡하네.”

남천휘는 이마를 긁적였다.

결론은 처음부터 나와 있었다.

‘내가 강해져서 다 때려 부수면 되지.’

강호는 강자존의 세상이고, 남천휘는 영웅의 흉내를 내며 휘둘릴 생각이 전무했다.

남천휘는 잠시 환마소혼검법을 떠올렸다.

하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황도쌍노가 십 년 넘게 익힌 환마소혼검법, 즉 환혼검은 강력했다. 하나 결국 비천무상도에 깨지지 않았던가.

지금은 섣불리 무공을 더하는 것보다 비천무상도를 갈고 닦을 때였다.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한 판이라도 더 돌려야겠다.

남천휘는 금주(禁酒)와 금포(禁脯)를 결심하며 철투를 실행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전에 몰두했다.

띠링-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을 때였다.

재이가 예전의 알림을 재차 띄웠다.

◎ 미연시 2호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붉은 점이 노랗게 변했다.

남천휘는 땀에 젖은 주먹밥을 우걱우걱 씹다가 눈을 부릅떴다.

“어! 이거 진짜냐?”

그는 주먹밥을 내던진 채 몸을 돌렸다.

“이호야! 기다려라. 아니지. 개똥아, 버텨라!”

하나 이내 고개를 내젓고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어머니, 제가 갑니다!”

남천휘가 양 손을 펼치자, 안개가 길을 열었다.

잠시 후 안개에 휘감긴 남천휘가 외쳤다.

“벽선단! 벽선단!”

*

원단(元旦)을 앞둔 곡부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신공부가 버티고 있는 이상 곡부만큼 안전한 곳도 드물었다. 온갖 장사치들이 가득했고, 양민들은 늦은 시간에도 저자를 거닐며 함박웃음을 보였다.

하나 곡부 안쪽이 불야성을 이룬 것과 달리 외곽은 조용했다. 신공부의 전각군을 중심으로 공문십철은 성벽처럼 외곽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영역을 인정했기에 외인의 출입은 드물었다.

특히 원단을 앞뒀기에 사람들은 곡부 중심가로 모여든 상태였다.

그렇기에 노국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일련의 무리가 모였음에도 이상하게 여기는 자가 없었다.

“신공부의 초석을 닦은 자를 아십니까?”

백발의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읊조렸다.

누구도 쉬이 노인의 물음에 대꾸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은 신공부의 제일총관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한 눈에 담는다고 하여 광목재사라 불렸다.

광목재사는 흐릿한 눈동자가 건장한 체구의 장년인에게 닿았다. 신공부에 속한 자라면 대뜸 부복하여 머릿속의 생각을 털어놨을 터였다.

하나 장년인은 여전히 검을 품에 안은 채 노국장을 내려다볼 뿐이다.

광목재사는 장년인을 탓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년인은 자신 앞에서 뻣뻣할 자격을 갖췄다.

장년인은 신공부의 제일검이라 불리는 천위검호였다. 일신의 무예는 천라쌍익과 호각을 이루는 고수가 아닌가.

제아무리 광목재사가 신공부를 쥐락펴락한다고 해도 쉬이 대할 수 없는 상대였다.

“공막이라는 유자였지요.

“…….”

광목재사는 천위검호의 대답을 포기한 듯 자문자답을 이어갔다.

“그는 신공부가 무가로 다시 태어났어도, 유가의 가풍을 잃지 않기를 원한 것 같습니다.”

한데 말이 이어질수록 어조가 격렬해졌다.

“그 놈 때문에 신공부가 얼마나 많은 손해를 봤던가. 빌어먹을 유가의 가풍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법규 때문에 신공부는 비약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놓쳤지요.”

광목재사는 노국장을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저 빌어먹을 늙은이가 거지같은 법규를 내세워 신공부의 앞길을 또 막고 있습니다.”

천위검호는 말없이 미간을 찌푸릴 뿐이다.

그는 사내라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겼다. 남천휘가 부러진 도를 골랐을 때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장부라면 차라리 강호의 방파답게 무공을 겨루거나, 유가의 후손답게 논쟁을 벌여 노국장을 치워버렸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광목재사의 배후에 누가 있을지 뻔했다.

그 역시 녹을 받는 입장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훼방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주께서 해가 바뀌기 전에 해결책을 내어놓으라고 하셨다지요?”

천위검호는 화제를 돌리려 했다.

광목재사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더니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러자 숨소리를 죽이며 대기하던 무인들이 오와 열을 맞춰 이동했다. 저들은 광목재사가 노국장을 없애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한 수였다.

한데 저들의 복장이 특이했다.

복면을 쓰거나, 야행의를 입는 대신 멀리서도 훤히 보일 만큼 화려한 붉은 금의를 걸쳤다.

선두에 선 잘 생긴 사내의 복색은 더욱 기괴했다.

머리에 붉은 두건을 둘렀고, 종이를 만든 꽃을 달았다. 게다가 적의에 금빛 띠와 금빛 매듭을 몇 겹이나 두른 것이 아닌가. 게다가 손에 든 것은 병장기가 아니라 금은보화가 든 목곽이었다.

“에헤야!”

선두에 선 사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무인들이 따라 불렀고, 이내 오와 열을 맞춰 춤을 췄다. 몇몇 무인들은 장대에 깃발을 묶은 채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신명나게 흔들었다.

천위검호는 무인으로서 하기 힘든 기괴한 행위에 미간을 좁혔다.

광목재사는 그런 천위검호를 보며 혀를 찼다.

“혐오스럽고, 웃겨 보이시오?”

“…….”

“사람은 말입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헷갈릴 때에는 익숙한 것을 떠올리고, 익숙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지요.”

그 때 노국장의 정문에 도착한 사내가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용봉쟁투의 화려한 꽃이여, 화협의 미모에 반한 하찮은 사내가 또 찾아왔으니 부디 얼굴을 비춰주시오! 그대와 혼인을 하고자 천 리를 떠나왔고, 만금의 재물을 준비했소.”

사내는 여인을 다루는 것이 능숙한 듯 낯 뜨거운 고백을 이어갔다. 사내가 천수련의 외모를 칭찬할 때마다 무인들이 연호했다. 일견하기에도 사내가 반한 여인에게 구애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광목재사는 사내와 무인들의 언행이 우스운 듯 너털웃음을 흘렸다.

“재밌지 않소이까? 돈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거나, 험상궂은 자들이 매일 같이 모여들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여길 게요. 한데 천수련의 미색이 유명하니 저런 짓을 해도 이상하게 여기는 자가 없더이다.”

“…….”

천위검호가 말을 아낄수록 광목재사는 신이 난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 고강한 무예를 자랑하는 무인이 자신 앞에서 침묵하는 광경을 즐기는 듯했다.

“그러니 연모하던 여인에게 버림받은 사내가 난장을 피우고, 사람을 죽여도 자연스럽지 않겠소이까? 흉수의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게요.”

“재사의 뜻대로 됐으면 좋겠구려.”

광목재사는 입꼬리를 올렸다.

“나도 사람이니 실패하는 날이 있을 게요. 하나 그 날이 오늘은 결단코 아니외다!”

그가 지팡이를 흔드는 순간 노국장 앞에 대치하던 자들이 담을 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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