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20화 (120/305)

58, 일인군단(一人軍團). (2)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사그라졌다. 둔기에 얻어맞은 것처럼 튕겨나간 여섯 구의 시신을 보고 있자니 현실감각이 둔해진 듯했다.

솨아아아아-

철시가 회전하며 만들어낸 안개의 와류가 서서히 메워졌다.

마치 외인의 접근을 불허하는 경고 같았다.

잔결회주가 혈인검을 돌아보며 읊조렸다.

“대금을 두 배로 올린다.”

“좋아.”

혈인검은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잔결회주의 눈동자는 살기가 살아숨쉬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돈을 주지 않아도 이미 살심이 동한 게다. 두 배의 대금을 요구한 건 수하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함이다.

“가자. 돈도 벌고, 복수도 하고, 회포도 풀고!”

“죽여라!”

잔결회의 무인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리낌없이 돌진했다.

하나 혈인검은 조금 전처럼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혈랑회의 부회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한 명이 아닌 건가?”

혈인검은 조금 더 깊은 의문에 빠져들었다.

궁술의 고수라면 화살의 속도를 조절하여 동시에 꽂혀드는 것쯤은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안개가 깔려 있는데 어떻게 눈으로 보고 쏘는 것처럼 정확할 수가 있는 거지?’

그 순간 눈앞에서 안개가 흩어졌다.

솨아아아아-

안개가 휘말리는 순간 중심부에서 철시가 공간을 비집고 꽂혀들었다.

“큭!”

혈인검은 전력을 다해 검을 올려쳤다.

다행히 철시는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친 후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하나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목을 억지로 부여잡은 채 침을 꿀꺽 삼켰다.

‘본다. 놈은 우리를 보고 있어.’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뜨끈한 핏물이 입안을 적시는 순간 비릿함과 함께 조금이나마 평정심을 되찾았다. 하나 궁귀와 귀협의 상관관계만은 일 푼어치도 짐작할 수 없었다.

“회주.”

꽈드득-

혈인검은 부회주의 걱정스런 보름에 결심했다.

어차피 곤륜산인에게 바쳤던 삶이 아니던가.

설사 무림맹을 공격한다고 해도 개의치 않을 터였다.

“어차피 접근하면 활은 무소용이야.”

결국 그들도 안개를 헤쳐 나갔다.

풍혈이 발목을 잡아끌고, 무해가 오감을 방해하는 것도 모른 채 사지(死地)를 향해 돌진했다.

*

◎ 침입자를 제거하여 100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 침입자를 제거하여 300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 침입자를 제거하여 100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대화동에서 적을 섬멸했을 때에는 두 다 500 성소 포인트를 주지 않았던가.

재이야, 포인트가 짜다.

◎ 레벨 격차로 인해 획득 포인트가 조정됩니다.

남천휘는 금세 수긍했다.

아무리 대가리 위에 피칠갑을 한 망종(亡種)이라고 신념을 잃지 않았다.

곡부남가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

‘적도를 섬멸하여 의협의 기치를 바로 세우는…….’

남천휘는 불현 듯 악적을 두고 경험치를 따지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크흠. 포인트는 알아서 하고.”

레벨이 새빨간 망종들을 처단하기 때문일까.

경험치가 상당히 빨리 올랐다.

게다가 자신의 성향 또한 조건부 선에서 일반 선으로 바뀌는 듯했다.

‘아! 요즘 들어 자꾸만 베풀고 싶어지네.’

그래서 천수련이나 소혜를 놀리는 횟수가 줄어든 것이 아닌가 싶다.

옛 선현께서 중도를 지키라 하셨다.

‘그러니 너도 한 방!’

남천휘는 일렁이는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비친 적의 그림자를 찾아 화살을 쐈다. 잠시 후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 하나가 사라졌다.

몇 명이나 쓰러트렸더라?

서른 명까지는 헤아렸지만, 이후에는 보이는 족족 쏴버렸기에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남천휘는 인벤토리에 남은 철시의 개수를 확인했다.

‘어머니, 아직 제게는 열두 발의 철시가 남아 있나이다.’

하나 저격 모드를 풀었다.

제아무리 안개를 깔아놓았다고 해도 곡부남가의 규모는 중소방파 수준이다. 그렇기에 수백 명이 달려들었을 때 방어선이 뚫리는 건 당연했다.

성소 포인트 11000이나 주고 구입한 해무가 아니던가. 이각이 지나가기 전에 최대한 본전을 뽑아내야 했다.

‘이대로 빠져나오게 둘 수는 없지.’

남천휘가 질풍뇌격궁을 해제하는 순간 ‘저격’ 모드가 자동으로 풀렸다.

그리고 곧장 지붕 아래로 뛰었다.

천수련이 따라붙었다.

하나 남천휘는 단호하게 말했다.

“따라오지 마.”

“함께 하자면서요.”

천수련은 멈추지 않았다.

[내원으로 들어가는 월동문만 지키면 돼.]

[하지만 안개가 자욱해요. 자칫 눈 먼 칼에라도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귓가를 파고드는 전음은 또렷했다.

남천휘는 그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내공이 자신보다 넓고 깊은 것을 말이다.

지고 싶지 않다는 호승심 때문이었을까.

남천휘는 히죽 웃으며 양 손을 교차하여 어깨에 댔다. 그 순간 거울처럼 매끈한 동판이 어깨에 달라붙었다.

천수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구 치고는 너무 작은데.’

그러나 남천휘가 안개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동판이 빛을 발했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번쩍거린 것이다.

남천휘가 움직일 때마다 동판의 번쩍임으로 인해 동선(動線)이 훤히 읽혔다. 아니나다를까 안개 속을 헤매던 적도가 한데 뭉쳐들기 시작했다.

‘일부러 유인을 하려고?’

천수련은 자그마한 손을 꼭 쥔 채 가슴에 얹었다.

마치 남천휘가 자신을 걱정하여 적들을 유인하는 듯하지 않은가.

‘치잇, 왜 저래?’

그 순간 길 잃은 제검방의 방도 한 명이 안개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다짜고짜 천수련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년!”

천수련의 고운 아미가 일그러졌다.

그녀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긴 검격이 방도의 요혈을 긁고 지나갔다.

“끄어.”

제검방도가 원통한 눈빛으로 천수련을 노려봤다.

하나 그녀는 이미 제검방도를 잊은 채 애절한 눈빛으로 안개를 응시할 따름이다.

‘걱정 마요. 한 놈도 그냥 보내지 않을 거야!’

*

남천휘 안개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오감증폭제를 중첩하여 사용했다.

시각과 청각, 촉각이 한층 더 민감해졌다.

몇 번이나 중첩해서 사용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예전보다 오감증폭제의 중첩으로 인한 고통이 크지 않았다.

‘하아, 느껴진다. 느껴져!’

적들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인해 안개가 일렁였다.

남천휘는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타탓!

그는 가장 가까운 적을 향해 이동했다.

이미 질풍뇌격궁 대신 천하도와 제일도를 양손에 나눠진 상태였다. 도풍이 이는 순간 안개가 저절로 밀려나며 길을 열었다.

“엇!”

“엇!”

적에게 있어서 남천휘의 등장은 공간을 비집고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남천휘는 생각지도 못한 적의 외모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외팔이 도수(刀手)의 얼굴에는 거미줄처럼 상흔이 가득했고, 이빨 대신 쇳조각을 박아 넣은 상태였다.

남천휘는 물었다.

“너 뭐야?”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이처럼 흉악한 무리와는 악연을 맺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네 놈의 목을 가져가실 분이다!”

도수는 키득거리며 도를 휘둘렀다.

남천휘가 가볍게 도를 튕겨내는 순간 도수는 반대편 팔을 휘돌렸다. 팔이 없으니 옷자락만 펄럭였을 뿐이다. 한데 퀴퀴한 가루가 흩뿌려지는 것이 아닌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흡입.

‘녹선단!’

그리고 천하도를 휘두르는 순간 안개와 함께 독분(毒粉)도 밀려났다. 반대편에 쥔 제일도가 외팔의 도수의 하나뿐인 팔목을 잘라버렸다.

촤악!

한데 도수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이빨을 대신해 쇳조각이라도 몸에 박아 넣으려는 듯했다.

모골이 송연할 만큼 처참한 공세였다.

남천휘는 천하도를 보급창으로 돌려보낸 후 도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너희들은 누구지?”

도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네 어미에게 물어…….”

콰직.

남천휘는 목이 꺾인 도수를 집어던지며 읊조렸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아야지.”

그 때 그를 향해 접근하는 기척들이 감지됐다.

동판이 번쩍일 때마다 접근하는 기척은 늘었다.

남천휘는 양 손을 어깨에 얹은 채 입꼬리를 올렸다.

‘자! 이제 놀아볼까?’

그가 손을 떼자 동판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자 그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접근하던 기척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파팟-

남천휘는 소리 없이 안개 속을 파고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은밀했다.

촤악!

멀뚱히 서 있던 덩치가 쓰러졌다.

남천휘가 관심도 가지지 않은 사내는 장천회의 한 명으로 황보세가의 권법을 훔쳐 배웠다. 철판을 우그러트리는 권법도 암습에는 무용지물이었다.

푹-

기형 병기를 들고 있던 장님도 목을 베인 채 짚단처럼 허물어졌다.

“뭉쳐라! 놈이 사라졌다!”

십여 명 넘게 쓰러진 후에야 누군가 동료를 규합하기 시작했다.

남천휘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쌍도 대신 동판을 꺼내 어깨에 달았다.

잠시 후 안개 속을 종횡무진하는 번쩍임에 적도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저쪽이다! 죽여! 복수하자!”

“모여! 함정이다! 이쪽이야!”

남천휘는 이미 여러 세력이 뭉쳐 있음을 눈치 챈 후였다. 무복이나 병장기의 통일성이 전무하니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웠다.

‘무해가 없어지기 전 최대한 많이 줄인다.’

푹! 푹! 푹! 푹! 푹!

남천휘는 손에 닿는 족족 요혈을 후려치고, 목을 꺾어버렸다. 도에 걸리는 놈은 사지를 막론하게 자르고, 찔렀다. 어느 놈 하나 대가리 위가 빨갛지 않은 자가 없더라.

‘하아, 진짜 욕지기가 난다.’

산동성만 해도 이처럼 천인공노할 악적들이 끊이지 않았다. 강호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이보다 더 한 악인들도 즐비할 터였다.

텅!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막아?’

은밀함을 위해 강렬함을 줄였다지만, 벌써부터 막는 자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쪽이로구나!”

독안의 괴인이 안개를 헤치며 달려들었다.

레벨 84의 잔결회주였다.

그는 마침내 목표를 마주하자 흉성을 드러냈다.

“크아아아! 죽여 버리겠다!”

도기(刀氣)가 맺힌 거치도가 일도양단의 기세로 내리꽂혔다.

남천휘는 여유롭게 잔결회주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조잡한 내공으로 만들어낸 도기 따위에 휘둘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력이 잔뜩 담긴 천하도가 잔결회주의 거치도를 통째로 튕겨냈다.

쩡-

주변 일장의 안개가 밀려날 정도의 파장이다.

남천휘는 강제로 만세를 부르게 된 잔결회주의 목을 쳤다.

촤악!

누군지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악인은 지옥으로, 강한 악인은 더 빨리 지옥으로 보내고자 할 뿐이다.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 유지 시간 초과로 인해 무해가 해제됩니다.

어디선가 광풍이 몰아치며 곡부남가를 뒤덮고 있던 안개를 쓸어갔다.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땅에 쓰러진 자는 기백이다.

두 발로 서 있는 자는 오십여 명에 불과했다.

“하, 머리 좀 썼네.”

문제는 오십여 명의 복장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혈인검은 찢어발길 듯한 눈빛으로 남천휘를 노려봤다. 제검방과 잔결회를 미끼로 던져줬기에 장천회와 혈랑회는 온전한 세력을 유지했다.

“크흑! 네 놈은 큰 실수를 한 거야. 오늘 죽은 동료의 몫까지 복수해주마.”

남천휘는 코웃음을 쳤다.

혈인검의 레벨은 70 남짓이다.

얼마나 고된 수련을 거쳐왔든 자신에게 미치지 못할 터였다. 혈랑회나 장천회는 또 어떠한가. 50레벨 전후의 무인들로 옷이나 더럽힐 수 있을까 싶다.

남천휘가 혈인검을 도발하려는 순간이었다.

“물러나라.”

“눈으로 보고도 모르니 뒈지는 게 당연하지.”

마치 동경을 중간에 놓은 듯 꼭 닮은 두 사람이 검을 흔들며 나타났다. 술 취한 노인이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노망이 난 노인이 춤을 추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저 걷기만 해도 묘한 느낌을 주는 자들이다.

“당신들 뭐야?”

“황도쌍노라 부르면 된단다.”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모르겠는데.”

노회한 자들이라 그런 걸까.

도발이 통하기는커녕 비웃음만 당했다.

“클클, 귀여운 녀석이네.”

“뒈지면 더 귀엽겠지.”

남천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두 사람 모두 세 자리 레벨이었고,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짓눌리는 듯했다.

‘쉽지 않겠는 걸?’

그 때 포근한 기운이 등을 감쌌다.

천수련이 어느새 검을 빼들고 다가선 게다.

“아! 진짜 묻고 싶은게 산더미 같은데…….”

“지금 질의응답 할 기분 아니야.”

남천휘가 긴장을 푼 듯하자, 천수련은 빙긋 웃었다.

휘리리릭-

그녀가 멋들어지게 검을 휘돌리며 말했다.

“함께 할 때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잖아요.”

남천휘는 그녀의 나긋한 한 마디에 피식 웃어버렸다.

“그건 셋이 있을 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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