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16화 (116/305)

57, 내 땅은 내가 지킨다. (2)

진조문에 대한 정보는 짧았다.

그리고 굵직했다.

공문십철은 신공부의 모든 권력을 나눠가졌다.

하나 공자(孔子)의 유지를 이었다고 해서 공명정대하게 권력을 나눠가진 것은 아니었다.

어느 곳은 많고, 어느 곳은 턱없이 부족했다.

남천휘의 외조부가 장주로 있는 노국장은 후자였다.

공문십철에 속했을 뿐 신공부의 권세와 이권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

진조문은 전자여야 했다.

문주는 신공부주의 최측근이다.

그러니 천위장 정도의 위세를 떨쳐야 했다.

하나 그렇지 않았다.

문주는 병세가 깊어 두문불출한 것이 몇 달째란다. 하나뿐인 아들은 오래 전에 산적을 만나 비명횡사했고, 남은 건 손주가 전부였다.

하오문의 정보는 짧은 만큼 한 줄로 진조문을 평가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

신공부주가 바람만 불어도 꺼질 만큼 가세가 기울었으니 더 이상 동향을 살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런데 곡부남가를 노린다고?’

이상하지 않은가.

제 앞가림도 못할 방파가 수백 리 밖의 중소방파 격인 곡부남가를 노릴 리 만무했다.

다른 놈의 입김이 닿은 게다.

‘열왕대전검이 차라리 가짜라면…….’

왕망이 등신 같이 사기를 당한 것에 불과하리라.

하나 만약 왕풍이 익힌 열왕대전검이 진짜 진조문의 것이라면 상황은 심각했다.

진조문의 비전인 열왕대전검을 알고, 진조문주의 허락 없이 비급을 반출할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될까.

남천휘는 한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그런 사람은 곡부남가의 존재 자체도 모를 걸?”

몰랐으면 좋겠다.

하나 남천휘는 곡부남가에서 최고의 두뇌로 손꼽히지 않던가.

재이가 그러더라.

어쨌든 지력이 99의 두뇌는 의도하지 않아도 제멋대로 단편적인 정보를 분류하고, 정리했다.

‘이러다가는 진짜 멸문이지?’

그러니까 정말 몰랐으면 좋겠다.

하나 남천휘의 걸음을 더욱 빨라졌다.

돌아가는 길에 연하연을 만났던 초옥에 들리려던 계획은 포기해야 했다.

아직은 연애보다 효도가 먼저였다.

타탓!

남천휘의 신형이 빛처럼 빠르지는 않아도 적당히 다급함을 드러내듯 자취를 감췄다.

*

남천휘는 곡부남가의 담을 넘었다.

‘내 집을 도둑놈처럼 넘어가야 하다니.’

하나 음모가 예상보다 거대한 것을 발견한 이상 사소한 일도 주의해야 마땅했다. 그는 담을 넘자마자 인벤토리에 넣어뒀던 곡부남가의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암행의와 복면은 다시 보급창에 넣어버렸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입을 수 있느니 참으로 편했다.

‘몇 벌 더 넣어놔야겠어.’

그는 처소로 향하지 않고 연회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왕망의 흉계가 이틀 밖에 남지 않았으니 당장이라도 소가주를 만나 의논할 요량이었다.

다행히 연회는 아직도 한창이다.

그리고 천수련의 주량 자랑도 여전했다.

‘허, 쟤는 왜 저래?’

천수련은 일견하기에도 즉묵노주를 열 병 이상 비웠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살짝 달아올랐을 뿐 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 벌써부터 긴장감이 떨어진다.

남천휘는 한심한 눈빛으로 물었다.

“괜찮아?”

천수련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네, 취기는 모두 빼내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천수련은 간간히 한쪽 팔을 창밖으로 내밀지 않았던가. 슬쩍 창밖을 살피니 주향이 가득했다. 영웅담을 보면 고수들은 세 말의 술을 마신 후 손가락 끝을 통해 주독을 발산하여 멀쩡한 정신을 유지한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진정한 두주불사(斗酒不辭)는 그렇게 발출한 주정(酒精)을 모아 마신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도 존재했다.

‘진짜 내공의 정순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구나.’

천수련의 내공은 검후의 것이다.

그리고 검후의 무공은 보타암에서 비롯됐을 터였다.

새삼 명문이라 칭송받는 정파의 저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나 그것과 별개로 한심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럴 거면 왜 마시냐?”

천수련은 배시시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맛있잖아요.”

한심함은 배가됐다.

한데 그건 남천휘만의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상석 쪽에서 일갈이 터져 나왔다.

“어허! 이런 한심한 작자를 봤나. 술은 그렇게 마시면 안 되지. 입안에 굴려가면서 음미를 해야 해!”

백주검은 막 총관의 삿대질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술이 술이지. 무슨 음미까지 해?”

“즉묵노주는 그렇게 마시는 게 아니라니까!”

“어! 나는 지금 소흥주를 마시고 있는데?”

“소흥주라고? 쯧쯧, 자네 술을 모르는군.”

“허허, 촌에 살아서 그런가? 어디 즉묵노주를 소흥주에 가져다 대. 술은 소흥주지!”

서로 삿대질을 하는 모양새가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의형제를 맺자며 술을 물처럼 들이키지 않으셨던가요.

“즉묵노주만큼 아름다운 황주가 있던가?”

“아니지. 소흥주는 아름답고, 거기에 더해 향까지 좋아. 어디 시골의 즉묵노주와 비교를 하는 건가?”

“흥! 산동성 사람이라면 응당 즉묵노주지!”

“흥! 절강성 사람이라면 응당 소흥주지!”

“뭐라고? 너 절강 태생이었냐?”

백주검은 가슴을 활짝 펴고 말했다.

“상유천당! 하유소항의 항주 출신이다. 부럽냐?”

“흥! 속세의 천박함이 집결된 항주 따위…….”

각자 마시고 싶은 걸 마시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막 총관과 백주검은 아예 등을 돌린 채 병째 마시기 시작했다.

남천휘는 한 숨을 흘렸다.

암중의 적이 코앞까지 다가왔거늘 이곳은 왜 이렇게도 평화롭단 말인가.

‘아씨, 긴장감 안 살게.’

한데 천수련이 남천휘를 따라 한 숨을 흘렸다.

“휴, 동감이에요. 주도의 멋짐을 모르는 두 분이 불쌍하네요.”

남천휘는 한심한 눈빛으로 천수련을 바라봤다.

동감 같은 소리하고 있네.

제일 모르는 게 너야!

“야! 너 가라.”

혹시 진짜 돌아갈까 싶어 말을 덧붙였다.

“후원으로 가. 여자가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그러는 거 아니야.”

“저 아직 안 취했는데요.”

그렇게 마시면 백날이 지나도 안 취해.

“이미 너는 호의를 넘어섰어. 호의가 지나치면 권리인 줄 아는 녀석에게 줄 술은 없다. 그러니까 더 마시려면 돈을 내.”

천수련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뭐야? 토라진 거냐?’

돈 얘기는 너무 심했나 싶다.

한데 천수련은 슬쩍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닌가.

토라졌다기보다 부끄러운 것 같은데.

“뭐요? 왜요? 중이 돈 가지고 다니는 것 봤어요?”

아니, 못 봤어. 그런데 너 중 아니잖아.

하지만 남천휘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어수룩한 녀석이 아니었다.

천수련은 눈을 흘긴 후 대전을 떠났다.

“못 됐어.”

동시에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호감도가 떨어졌단다.

‘이것이야 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남천휘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공짜로 지혜 수치를 올리려다보니 성어 쓰는 게 버릇이 됐다. 이러다 유자(儒者) 특기가 등장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남천휘는 눈치를 보다가 상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전 밖 비처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남천홍과 막대통, 그리고 조상이다.

남천휘는 둘러앉은 세 사람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실시간으로 충성도를 확인할 수 있으니 이처럼 편한 것이 없다. 둘째 형은 배신해도 저들은 결코 곡부남가를 배신하지 않으리라.

‘그러고 보니 둘째 형은 인명록에 안 뜨네?’

탐색이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며칠 전에 잘 지낸다는 서찰이 왔으니 살아있기는 할 터였다.

그러면 됐지.

남천휘는 목소리를 깔았다.

“왕망이 곡부남가를 노리고 있습니다.”

믿을 수 있기에 돌아갈 필요도 없다.

남천휘는 대놓고 음모를 거론하며 세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하나 세 사람은 딱히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북대죽이 본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이더냐? 하나 개의치 마라. 왕망의 능력은 욕심을 따라가지 못해. 기껏해야 돈을 빼돌리는 것이 전부야.”

막대통의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했다.

한데 남천홍의 표정은 달랐다.

“설마 외세와 손을 잡았다는 게냐?”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꽤 오래 전부터 교류가 있었던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아주 본가를 멸문시킬 작정인 듯해.”

“아버지가 부재중이실 때 이런 일을 벌이다니.”

남천홍은 왕망의 음모를 전해 들었음에도 표정의 변화가 크지 않다.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챘든, 속내를 감추는 것에 익숙한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큰형 역시 범인(凡人)은 아니었다.

하나 남천휘가 거사의 날짜를 이틀 후라고 알려주자, 남천홍 역시 대경실색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맙소사!”

막대통은 술병을 내려놨다.

거래를 할 때가 아니면 술을 입에서 떼지 않던 총관이 아니던가. 그의 눈동자는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이글거렸다.

“왕망! 이 개잡놈을 어찌 해야 할꼬! 당장 몽둥이로 머리통을 후려쳐도 화가 풀리지 않겠어.”

남천홍은 막 총관을 제지하며 말했다.

“일단 대피 계획부터 세우지요. 이대로라면 가솔들의 피해가 클 겁니다.”

그래, 형의 말이 옳다.

곡부남가는 무가와 상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지 않던가. 그러니 왕망이 외세와 손을 잡은 이상 대피하는 것이 마땅했다. 곡부남가의 힘은 건물이나 돈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솔들의 끈끈한 정(情)이 바로 곡부남가였다. 그러니 삼십육계 주위상책이라고 병법서에 떡 하니 적혀 있는 마당에 도망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곡부남가는 장사꾼 집안이니까.

하나 남천휘는 고개를 내저었다.

“도망간다고 될 일이 아니야. 왕망은 욕심이 많지만, 속내를 숨길 줄 알아.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망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어. 형도 그랬지?”

남천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단순히 우리를 몰아내려는 게 아닐 거야. 곡부남가의 모든 걸 차지하고 싶을 걸. 놈은 결코 외적과 함께 나타나지 않을 거야. 혈사를 일으킨 후 눈물 좀 흘리면서 곡부남가의 모든 걸 차지하겠지. 아마 모두 죽일 만큼 많은 적이 몰려올 거야.”

이미 신공부와 관련된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도망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하나 지금 신공부의 존재를 알려봤자 달라질 것이 없지 않은가. 딱히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 엄청난 정보는 불신을 불러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대충 둘러댄 것 치고는 그럴싸하기를 바랄 뿐이다.

남천홍은 굳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게 방책이 있느냐?”

통했다.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 전에 해소해야 할 의문이 있지 않은가.

“나를 얼마나 믿어?”

남천홍은 이런 상황에서도 웃었다.

“너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느냐.”

막대통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상행이 아니라면 강호에 관해서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다. 네게 방책이 있다면 듣고 싶구나.”

조상은 눈을 빛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아! 믿을만한 사람들이란 참으로 대단하구나.

남천휘는 새삼 이런 사람들을 모아놓은 아버지를 향해 경외심을 느꼈다.

“거사는 모레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여러분이 해주셔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잠시 후 막대통이 탄성을 내뱉었다.

“허허, 이래서 장성한 자식은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하는 건가. 용봉쟁투를 치루고 나니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제 동생입니다.”

용봉쟁투와는 딱히 상관이 없는데.

남천휘는 멋쩍은 웃음으로 버름함을 대신했다.

‘아! 또 안심했다.’

긴장의 끈을 다시 팽팽하게 당긴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

그 날 밤 남천휘는 처소에 들어서자마자 질풍뇌격궁을 꺼냈다.

철컥!

《질풍뇌격궁(疾風雷擊弓)》

- 신궁천무자의 독문 병기.(가치:600)

- 무기 등급 : 영웅(英雄)

- 착용 시 특기 ‘원사’와 ‘뇌기’가 활성화.

- 착용 시 민첩 수치 +200.

- 착용 시 내공전달력 +15% 증가.

- 특수 화살 사용 시 공격력 30% 증가.

- 내구도 (142/150)

특기 원사와 뇌기가 활성화됐다는 알림이 연이었다.

‘문파 관리는 성소의 상위 단계라고 했으니.’

이내 다섯 개의 특기가 번쩍였다.

(유지), (원사), (탐지), (불굴), (신안).

그리고 이제는 익숙한 기음이 들려왔다.

《삐이이이이이이.》

《다섯 종류의 특기에 관한 연계성이 확인됐습니다.》

《보조 설정에 대한 접속 권한을 부여합니다.》

《한시적으로 히든 모드 ‘저격’이 해금됩니다.》

됐다.

남천휘는 저격(狙擊)이 활성화되는 순간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저격이 활성화됐습니다.》

- 민첩 수치가 200% 상승합니다.

- 체력과 근력의 소모가 조금 빨라집니다.

- 내공의 소모가 빨라집니다.

- 저격 모드 시 이동속도가 90% 저하됩니다.

- 저격 모드 시 피해량이 50% 증가합니다.

- 현재 발사 가능 횟수는 57 회입니다.

대화동에서 쐈을 때에는 다섯 발이 한계였다.

하나 지금은 열 배 이상 발사 횟수가 증가했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진정 바라는 건 횟수가 아니었다.

‘상태창.’

- 민첩(敏捷) : 1950

450이었던 민첩 수치가 질풍뇌격궁의 공능에 저격의 공능까지 더하여 이천에 육박했다. 이 정도면 천위검호가 와도 뚫어버리는 게 가능할 듯싶었다.

“크큭!”

똥개도 제 집에서 삼 할은 먹고 들어간다지?

‘나는 이십 할을 먹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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