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내가 돌아왔다!
55, 내가 돌아왔다!
솨아아아아아아아!
남천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양 팔을 뻗었다.
그렇게 겨울비를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자신의 귀환을 축하하듯 하늘이, 또는 소혜가 비를 내리고 있었다.
‘그만 맞을까?’
냉기 저항 수치가 150까지 오른 상태였다.
그렇기에 겨울비라고 해도 오한이 일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보고 있는 서산노옹과 백주검, 그리고 천수련이 문제였다.
‘괜히 온 것 같아.’
‘허허, 의외의 면이 있군.’
‘뭐가 됐든 상관없네. 밥만 잘 주면 되지.’
세 사람의 표정이 속내를 말해준다.
남천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곡부남가를 가리켰다.
“가실까요?”
며칠 만에 돌아온 곡부남가는 여전히 활력으로 가득했다. 좋은 주인과 능력 있는 총관, 충성스런 무인들이 있으니 얼굴 찡그릴 일이 있기나 할까 싶다.
“소혜야!”
남천휘는 때마침 돌아온 소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하나 소혜는 가뜩이나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낯설어 하는 건가?
한데 왠지 그녀의 시선은 자신이 아니라 어깨 너머를 향하는 듯하지 않은가.
남천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천수련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지? 동족혐오인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동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못나 보이고,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러지 않아도 개똥이를 개구리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던 천휘였다.
떼어놔야 한다.
전속 시비와 임시 사부가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때 소혜가 더듬거리듯 말을 이었다.
아차! 늦은 건가.
“어쩜 저리 아름다우신 분이······.
뭐라는 거야?
“귀, 귀여워!”
넌 또 뭐고?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소혜와 천수련이 서서히 거리를 좁혔기 때문이다.
“안녕.”
천수련의 한 마디에 소혜는 볼을 붉혔다.
그러더니 쭈뼛거리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닌가.
“소혜라고 합니다. 선녀께서 어떻게 우리 공자님과 함께······.”
“누구나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수는 없잖니.”
자존심이 살짝 상하려고 한다.
제아무리 천수련이 미연시 대상자라고 해도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똥개도 제집에서는 삼 할을 먹고 들어간다는데 이건 숫제 집이 주인을 거부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소혜라고? 이름도 귀엽네. 나는 천수련이고 한단다. 눈이 맑은 것을 보니 심성도 곱겠네.”
“헤헤, 선녀님 눈동자가 더 맑으세요.”
쌍으로 놀고 있네.
어르신들! 이대로 그냥 계실 겁니까?
나이 드신 분들이 오랫동안 비 맞으면 고뿔에 걸린다고요.
“저 아이의 표정만 봐도 곡부남가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어. 잘 온 듯하이.”
“허허, 밥도 맛있겠네.”
피곤충이 떠나니 식충이가 온 건가.
남천휘는 집에 발을 들이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두 소녀의 한담을 지켜봤다.
‘우리 집인데.’
그 때 화복을 걸친 남천홍이 잰걸음으로 달려오더니 양 팔을 벌렸다.
“천휘야!”
평소였다면 과한 환대가 부담스러웠으리라.
하나 지금은 기꺼이 큰형의 품에 몸을 던질 수 있었다.
“형!”
“녀석, 용봉쟁투의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고생이 많았어. 큰일을 했구나!”
“하하! 형은 그 사이 살이 많이 빠졌는걸. 이러다가 미남이라도 되겠어!”
남천휘는 천수련과 소혜의 한담에 뒤지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구공(口功)을 펼쳤다.
남천홍은 동생의 등을 두드린 후 떼어냈다.
곡부남가의 소가주로서 언제까지 귀빈을 길에 세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곡부남가의 천홍이라 합니다. 두 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서산노옹 역시 목례를 했다.
천위의 형이 아니라 곡부남가의 소가주로 대우하는 게다.
“서산노옹이라 하네. 이쪽은 백주검이고. 허락도 없이 찾아왔으나 불청객이라 내쫓지만 말아주시게.”
남천홍은 탄성을 내뱉었다.
서산노옹은 소문처럼 공명정대하고, 예의를 갖춘 노강호였다. 지난 날 초빙했던 일양도 왕대만과는 격이 달랐다.
‘후원으로 준비하기를 잘했군.’
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후원으로 모시겠습니다.”
후원은 본래 객당이나 빈청이 아닌 친족을 위한 처소였다. 서산노옹과 백주검은 소가주가 자신들을 귀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며 제대로 찾아왔음을 짐작했다.
“그럼 신세 좀 지겠네.”
시비가 서산노옹과 백주검을 이끌고 후원으로 사라졌다.
남천홍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용봉삼협 중 화협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더이다. 실제로 만나니 소문이 오히려 부족했구려.”
천수련은 빙긋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꽃이 만개하듯 화사함이 가득했다.
“곡부남가의 신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화협이라니 칭찬이 과하세요.”
남천휘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건 그래. 화협은 무슨.”
남천홍은 동생을 다독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천 소저가 화협이 되어야 너도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 강호는 앞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묻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묻어가기는커녕 내가 다 했거늘.’
하나 틀린 말은 아니다.
남천휘가 용봉평을 떠날 때부터 귓가에 묘한 소문이 돌았다.
청도문에 원한을 품은 파문 제자가 삼정의 후계자를 죽이려 했단다. 삼정은 대립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혈란을 일으키려 십 수 년 동안 암약했다는 게다.
한데 그것을 세 명의 후기지수가 막았다.
강호의 안녕을 위해 악적을 처단한 자들.
용봉쟁투의 산물이라 하여 용봉삼협(龍鳳三俠)이라 하더라.
백협(白俠), 화협(華俠), 귀협(鬼俠).
별호만 봐도 누가 누구인지 확연하게 구분이 됐다.
‘그래, 내가 귀협이지.’
암중에서 백협과 화협을 보조한 후기지수 남천휘의 새로운 별호였다.
하나 남천휘로서는 성에 찰 리 만무했다.
이것이야 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공 서방이 챙겨가는 격이다.
“소혜야, 천 소저에게 후원 좀 안내해 드리거라.”
소혜는 길 가다가 금덩이라도 주운 것처럼 활기차게 대꾸했다.
“네!”
제 이차 배신감이 밀물처럼 들이친다.
“가자.”
남천홍은 남천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살을 뺐다고는 하지만, 비대한 체구는 여전했다.
결국 형제애는 불편함을 이기지 못했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었다.
“괜찮으냐?”
“뭐가?”
“삼정의 입김이 닿은 소문만 해도 저 정도였다. 실제로는 훨씬 더 위험했겠지. 다친 곳은 없고?”
남천휘는 침음을 흘렸다.
큰형은 비대한 체구로 인해 둔해 보일 뿐 머리 회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괜찮아. 운도 좋았고. 보시다시피 얻은 건 더 많고. 두 분을 모시는 건 내가 했으니, 뽑아내는 건 형이 알아서 하셔.”
남천홍은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 이제 일신의 영달뿐 아니라 가문까지 걱정할 만큼 장성했구나. 벌써부터 곡부남가는 너를 품기에 너무 좁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야.”
“집안은 형이 이어야지. 나는 적당히 다루나 받아서 독립할 거야.”
“녀석, 가기는 어디를 가려고. 이 형 옆에 꼭 붙어서 살아라. 못난 형 뒷바라지도 좀 해주고.”
지난 몇 년 간 표현하지 못했던 우애가 노도와 같이 밀려온다.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이제야 집에 온 것 같네.’
그 때 막 총관이 내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백주대낮에 백주(白酒)를 들이키는 모습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허허, 탕아 왔는가?”
“제가 왜 탕아입니까?”
“클클, 집 나갔다가 돌아오면 원래 탕아라고 하는 게야. 신수가 훤해졌구나.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어.”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총관은 여전하십니다.”
“늙어서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란다. 듣자하니 백주검이 술을 그렇게 잘 한다며? 그래봤자 싸구려 화주나 마셨겠지. 오늘부터 내가 즉묵노주로 새롭게 주도를 가르쳐야겠어.”
막 총관은 산학이나 상업보다 술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컸다. 백주검의 취향은 언제 또 알아놓으셨단 말인가.
“두 분 다 좋은 분들이십니다.”
막 총관은 웃음기를 지웠다.
그리고 게슴츠레한 눈빛을 일렁이며 말했다.
“용봉쟁투에 합류했던 명숙들 중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그런 명숙과 연을 맺은 것도 네 능력이다. 잘했다. 잘했어. 그리고 잘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한 잔 할 텐가?”
남천홍이 막아섰다.
“저녁에 연회를 열 겁니다. 그러니 총관께서도 그 때까지 자중하세요. 첫 만남에 주정을 부리시기라도 하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그는 막 총관의 앞을 막아선 채 남천휘를 밀어냈다.
“네 방은 치워놨다. 저녁까지 쉬거라.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토끼 고기로 판을 깔았으니 포식할 준비도 하고!”
토끼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하지만 곡부남가에서 남천휘는 곧 토끼탕일 만큼 강한 인식이 박혀 있었다.
“저녁에 뵐 게요.”
남천휘는 꽁무니를 뺐다.
백주대낮부터 술을 마시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막 총관은 남천휘가 사라지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취기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총명한 눈빛은 남천휘의 등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용봉삼협 중에서 최고는 귀협이야. 자네도 짐작하겠지?”
남천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대로였다면 천 소저는 공 소협과 갔겠지요. 그녀가 이쪽에 왔다는 건 백협과 화협이 정인이라는 소문은 거짓일 겁니다. 무엇보다 서산노옹과 백주검이라면 어지간한 중소방파의 봉공을 자처해도 부족함이 없는 분들입니다. 모두 천휘와 함께 왔어요. 저간의 사정을 돌이켜봤을 때 오히려 천휘의 별호를 격하시킨 것이 분명합니다.”
“삼정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 하지.”
“삼정이 수작을 부릴 만큼 천휘가 컸다는 증거겠지요.”
“품을 수 없으면 놓아주는 것이 상리임을 모르지는 않을 터, 어찌할 텐가?”
남천홍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 동생입니다. 제 것을 나눠주고, 그 후에 녀석의 뜻대로 하게 둘 셈입니다. 이 집안에 묶이는 건 저로 충분하니까요.”
막 총관은 탄식하듯 한 숨을 내쉬었다.
“크흠, 곡부남가만 보면 그렇지. 하나 가주가 노국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면 그리 쉽지 않을 게야. 천휘가 유명해진 덕에 곡부남가도 신공부의 자리싸움에 발을 들인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하나 남천홍은 단호했다.
“가주께서 늘 말씀하셨지요. 가문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라고요. 언제라도 때가 된다면 곡부남가의 현판을 내릴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
남천휘는 침상에 몸을 던졌다.
아마 오늘 아침에도 소혜가 청소를 했으리라.
소혜를 생각하는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기분이었다.
“어! 잠깐.”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번 경우에는 혹이 떨어져서 다른 혹과 붙어버린 셈이다.
남천휘는 방긋 웃었다.
“잘 됐네.”
이제 귀찮은 일 없이 수련에 매진 할 수 있게 됐다.
남천휘는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보급품을 살폈다.
혼자가 된 이상 확인해야 할 것이 있지 않은가.
손바닥을 펴고 읊조리는 순간 부러진 칠야와 창월이 나타났다.
‘확인.’
《부러진 칠야도》
- 강기로 인해 파괴되었다. (가치:???)
- 추가 능력치가 봉인되었습니다.
- 추가 옵션과 부가 옵션이 봉인되었습니다.
- 퀘스트가 봉인되었습니다.
부러진 칼.
본래 칼이란 부러지는 순간 쓸모없게 된다.
다시 붙일 수 있을지언정 예전의 예기와 강도를 되찾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나 남천휘가 부러진 칠야도와 창월도를 애지중지한 까닭이 마지막 문구에 적혀 있었다.
※ 특수 조건 달성 시 재활성화가 가능합니다.
단순히 고친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재활성화라면 예전과 동일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어찌 이걸 장식품으로 대할 수 있으랴.
200레벨이 넘는 천위검호는 물론이고, 삼정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오직 남천휘에게만 허락된 기회가 분명했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북향을 보고 섰다.
창을 열고 저 멀리 어딘가 있을 북망산을 떠올렸다.
그리고 제를 올리듯 부러진 칠야도와 창월도를 떠받들었다.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울렸다.
띠링-
◎ 곡부남가의 시조, 남추의 유품이 돌아왔습니다.
◎ 곡부남가의 신물이 등록됐습니다.
◎ 곡부남가에 대한 영향력이 증가합니다.
◎ 곡부남가의 관리자 모드가 대기 중입니다.
◎ 첫 번째 조건을 통과했습니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