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05화 (105/305)

52, 함께 할 때 우리는. (2)

*

상식을 깨는 것을 파격이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산노옹의 행보는 파격이라 칭하기에 충분했다. 하나 괴인의 등장은 파격을 넘어 사고가 마비될 만큼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흑검은 경악조차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한순간 넋이 나간 듯 곤륜산인의 등장을 멍하니 지켜봤다.

‘미친. 미쳤어. 제정신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고작 이따위 도발로 뛰쳐나올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심지어 이번 일의 주재자였던 서산노옹조차 눈을 부릅떴을 정도였다.

하나 그 누구보다 놀란 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곤륜산인이다.

그는 창고 밖에 내려선 후에야 수십 명의 무인들을 인지했다. 복색만 봐도 삼정의 중진이었고, 그 외에는 용봉쟁투에 합류한 명숙들일 터였다.

‘내가 왜?’

곤륜산인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했다.

분노와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은 기괴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청도문주에게 충성하고, 청도문을 자신처럼 여겼다. 그렇기에 대업이 실패했을 때 기꺼이 초류혁을 죽일 수 있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자중해야 했다.

자신의 흔적을 숨기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빠져나갔어야 했다. 자식을 인질로 삼아 협박을 했어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버텨야 했다.

한데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결국 의문은 ‘내가 왜?’로 돌아올 뿐이다.

곤륜산인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말라붙은 핏물의 주인은 조카로 대해왔던 초류혁의 것일 터였다.

초류혁의 죽음?

지금도 후회는 없다.

청도문을 거론한 건 자신이지만, 죽음으로 이 일을 덮을 수 있는 건 초류혁이 유일했다.

비정하다고 욕하지 마라.

청도문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웃으며 벨 것이다.

한데 자신은 왜 청도문을 개돼지로 비유하는 순간 폭발한 것일까.

그 순간 곤륜산인은 진법이 펼쳐져 있던 숲을 떠올렸다. 그리고 숲을 떠올리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옥, 지옥이었는데.’

강제로 오감이 극대화되며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 보였고, 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들렸다. 시체 썩은 냄새가 가득했고, 매순간 누군가 몸을 스쳐가는 듯하지 않던가. 바짝 마른 입술 사이로 끊임없이 혈향이 감돌았다.

그 때부터 뭔가 잘못된 듯했다.

사실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본능에 따라 내달렸다.

‘그분’을 찾아갔고, 초류혁을 죽였으며, 흑검의 처소로 숨어들었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이 꿈처럼 몽롱했다.

‘그 정도의 진법이었던가?’

진법의 무서움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실제 경험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천하제일지가라 불리는 제갈세가도 저런 진법은 만들 수 없으리라.

‘내가 미쳤구나.’

제정신이었다면 다른 방책을 강구했으리라.

십 년을 참았는데 또 다시 십 년을 참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정말 청도문주는 가문을 위해 아들을 버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자신을 용납할 수 있을까? 청도문을 위해 죽을 수 있지만, 청도문에게 버림받는 걸 감내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하나 한 가지만 뼈저리게 알겠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후회했다.

자신에게 꽂혀드는 수많은 시선을 보라.

적대, 당혹, 살의, 경멸, 호기심.

그 모든 감정의 바닥에는 청도문이 자리할 터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가 죽어야 해.’

곤륜산인은 매서운 눈초리로 명숙들을 흘겨보는 척하며 흑검을 살폈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결국 청도문을 의심할 것이다. 하나 더 이상의 증거는 없다. 그저 어린 목격자가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건 청도문이 아닌가.

‘나만 죽으면 돼!’

흑검 정도의 위인이라면 신공부와 밀약을 맺어서라도 이번 일을 수면 아래로 묻어버릴 수 있으리라. 그 와중에 자신이 배덕자로 몰리겠지만, 청도문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해야 했다.

계획이 섰다.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퀴퀴한 창고 안에서 나왔더니 맑은 바람이 폐부를 휘돌았다.

그만큼 정신도 맑아졌다.

아무 것도 밝히지 않은 채 죽어버리면 된다.

지금껏 삼정은 수십 년 간 평화를 유지했다.

그들 역시 평화가 이처럼 허망하게 깨지는 건 원하지 않으리라. 그들이라면 이런 사소한 일을 덮을 정도의 힘은 있을 터였다.

“크아아! 다 죽여 버리겠다!”

곤륜산인은 광인처럼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부서진 기와조각을 암기처럼 내던졌다.

“헙!”

명숙들은 재빨리 병장기를 뽑고 파편을 쳐냈다.

그 사이 곤륜산인이 내달렸다.

목표는 서산노옹이다.

남천휘나 천수련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삼정은 물론이고, 명숙들마저 꿈쩍도 하지 않으리라.

강호는 언제나 강자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던가.

하나 그의 만도는 남천휘를 노렸다.

놈은 적수공권이다.

협곡에서 낭인들을 처리할 때 지법을 썼을지 몰라도 숲을 등지고 싸웠을 때에는 도를 섰다. 그리고 그가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남천휘의 주공은 도법이다.

약자(弱者)를 노린다.

그렇다면 서산노옹은 지체 없이 약자를 살리기 위해 달려들 터였다.

그 때 놈을 죽일 요량이다.

쇄애애애액!

창고에서 몇 시진 동안 휴식을 취한 게 도움이 됐다. 진법의 여파는 벗어난 듯했고, 사지백해에 힘이 가득하다.

약자는 죽는다. 강자는 모든 것을 쟁취한다.

그가 알고 있는 강호처럼 이번 일도 해결될 것이다.

“죽어라!”

곤륜산인의 만도가 공간을 찢어발길 듯한 기세로 꽂혀들었다.

남천휘는 그 때까지만 해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을 뿐이다. 한데 만도가 지척에 이르는 순간 자세를 살짝 낮추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양 팔을 뻗었다.

소매 속에서 손이 드러나는 순간 기함을 토할 일이 벌어졌다. 두 자루의 직도가 손에 잡힌 채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남천휘는 검지를 직도의 고리에 끼웠다.

그가 팔을 떨치는 순간 직도가 손바닥 아래에서 빠르게 회전했다.

촤라라라라락!

수십 개의 도영(刀影)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흥!”

곤륜산인은 눈에 보이는 족족 쳐냈다.

하나 그 사이 남천휘는 그와 거리를 벌린 후였다.

애초부터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게다.

‘쥐새끼 같은 놈이!’

곤륜산인이 재차 따라붙으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처소 주변에서 수많은 발소리와 함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용봉쟁투에 참가한 후기지수들은 물론이고, 각 참가자를 응원하던 양민들이 등장했다.

“초 소협을 죽인 흉수가 여기 있다고?”

“소문주를 죽인 게 청도문주라며?”

“우리 초 소협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저, 저기 저 자야. 저 자가 초 소협을 죽였나 봐.”

흑검은 양민들의 웅성거림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또 뭐야?’

초류혁의 죽음 이후 용봉평은 외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한데 후기지수도 아니고 양민들이 어찌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그 때 양민들이 길을 열었다.

그 사이로 신공부의 소부주인 공태령이 등장했다.

흑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소부주인 공태령이라면 출입을 풀어버릴 힘이 있다.

용봉평 내에서 신풍수사를 제외하면 가장 고귀한 신분이 아니던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그 순간 공태령이 일갈을 내질렀다.

“용과 봉이 어우러져 산동성의 미래를 밝게 비추려 했거늘! 어찌 어른의 추잡한 욕념을 동원하여 애꿎은 후기지수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단 말인가! 산동의 삼정은 강호를 떠받드는 기둥이다. 한데 청도문주는 어찌 자식을 죽여서까지 욕망을 이루려 하는가! 어른들이 나서지 않겠다면 내가 나서겠다!”

그는 불의를 마주한 협객처럼 비분강개했다.

“그 누구도 미래를 담보로 현실을 더럽히지 마라!”

“옳소!”

“공 소협의 말이 맞아!”

양민들은 공태령의 절절한 외침에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용봉평에 대기하는 무인의 숫자만 기백이다. 그러니 흉수 한 명에게 양민들이라고 해서 겁먹을 이유가 없을 터였다.

“에라이! 때려죽일 놈아.”

“저 얼굴 좀 보게. 흉악하기 짝이 없군.”

흑검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초류혁의 죽음으로 인한 파장은 여기서 끝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용봉평은 물론이고, 곡부 전체에 소문이 돌 수도 있는 노릇이다.

“공 소협. 오해가 있으신 듯하군요. 저 자는······.”

하나 공태령은 흑검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가 내뱉은 한 마디에 흑검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섬예검귀! 갈! 벽!”

곤륜산인은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고, 흑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끝났다. 씨발, 어떻게 저 놈이 갈벽의 존재를.’

신풍수사를 비롯해 몇몇 연륜이 깊은 노고수들은 미간을 좁혔다. 섬예검귀(閃銳劍鬼)라면 십 년 전 사라진 청도문의 봉공이 아니던가. 청도문주의 의제(義弟)면서 청도문을 위해 수십 건의 흉사를 자행했던 자였다.

“죽음을 위장하여 강호를 등지더니 고작 이따위 짓거리에 영혼을 팔았던가.”

신풍수사는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흘려냈다.

“체형이 너무 달라졌는걸.”

그 때 누군가 종이를 내밀었다.

남천휘가 눈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서산노옹께서 하오문을 통해 조사하셨습니다. 십 년 전 청도문을 떠난 고수이면서 쾌검을 사용하고, 찌르기를 즐겨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요. 비록 예전 모습과 다르다지만, 얼굴은 스스로 상해했을 겁니다. 그리고 살을 찌웠다면 저처럼 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겠지요.”

신풍수사는 말없이 종이의 내용을 읽었다.

남천휘의 말 대로였다.

“노옹께서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하셨다고?”

“어르신의 정력과 혜안, 결단력은 후기지수로서 응당 따르고 싶을 만큼 대단하셨습니다.”

신풍수사는 남천휘의 입 바른 소리를 귓등으로 흘렸다. 어찌됐든 하오문의 정보가 확실한 이상 사건을 덮는 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섬예검귀라면 초류혁의 시신에 남은 검흔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은가.

‘끝났군.’

그는 흑검과 시선을 마주했다.

흑검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공태령이 양민을 몰고 등장한 이상 이번 일은 삼정끼리 야합으로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 되어버렸다.

남천휘는 그 모습에 나직이 한 숨을 내쉬었다.

‘신공부라면 이럴 줄 알았다.’

공자의 후손들이 모여 만든 신공부.

무문(武門)으로서 알려졌으나, 뿌리는 유가(儒家)였다. 그러니 명분과 체면, 예의와 법도는 죽음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이념이지 않겠는가.

양민들에게까지 알려졌으니 더 이상 천수련을 붙잡고 늘어지지 못할 터였다.

남천휘는 철면호협(鐵面豪俠)이 된 공태령을 보며 눈인사를 했다. 그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훌륭하게 일을 처리해줬다. 그러니 곤륜산인을 척살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영광 정도는 기꺼이 양보할 생각이다.

'유명해져서 잘 먹고 잘 살아라. 피곤할 사이도 없이!'

한데 공태령은 곤륜산인을 마주한 채 천수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천 소저. 억울하지도 않소? 용봉쟁투의 다음 관문이 열리지 않은 이상 우리는 아직까지 한조요. 함께 악인을 징치합시다.”

천수련은 잠시 머뭇거렸다.

하나 서산노옹이 검을 내어주는 순간 힘없이 굽혀졌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아! 나한테는 그러지 마.’

남천휘는 닭살이 돋을 만큼 간질거리는 상황에 슬그머니 발을 빼려 했다.

하나 공태령의 시선이 여지없이 꽂혀든다.

“뭐합니까?”

“왜?”

“기껏 사람을 부려놓고 혼자 편하고자 하는 건 협객의 자세가 아니지요.”

야! 협객은 관심 없다고.

천수련을 구했으니 이제 맡겨놓은 통찰만 획득하면 끝이란 말이다. 한데 녀석이 철면을 살짝 누그러트린 채 한 마디를 흘렸다.

“피곤하니까 빨리 처리합시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기분이 이런 걸까.

저 놈과 말을 섞을 때마다 피로가 전염되는 듯했다.

스릉-

하나 남천휘는 천하도와 제일도를 뽑았다.

“그래, 하자.”

한조니까 함께 마무리 하자.

솨아아아아아-

세 사람이 품자 형태로 곤륜산인을 둘러싸는 순간 강렬한 투기가 공간에 퍼졌다.

곤륜산인은 정체가 들통 난 후부터 모든 걸 내려놓은 듯했다. 하나 축 늘어진 어깨와 달리 두 눈에는 지독한 살기가 맴돌았다.

“크흑! 한 놈이라도 데리고 가 주마.”

그 말을 신호로 세 사람이 동시에 내달렸다.

두 자루의 직도가 십(十)자 형태로 공간을 자르는 순간 두 자루의 패도가 팔(八) 자 형태로 솟구친다. 그 사이를 비집고 한 줄기 빛이 번뜩이니 천수련의 검이다.

터터터터터텅!

하나 곤륜산인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모든 공세를 파훼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채 진원진기까지 끌어올리지 않았던가. 그렇게 만도에 섞인 내공이 넘실거릴 때마다 공간에 파장이 일었다.

한데 공방이 이어질수록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신풍수사는 세 사람의 합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세 사람이 원래 아는 사이였던가?”

합격술이라도 익힌 것처럼 세 사람의 공격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 공격이 요철(凹凸)처럼 맞물리더니 빈 곳을 채우고, 넘치는 곳은 덜어내며 전방위로 압박을 가했다.

“셋이 모여 다섯 이상의 효과를 내는구나.”

그의 읊조림처럼 곤륜산인은 십여 합을 넘기기도 전에 수세에 몰렸다.

‘이 녀석들 봐라.’

남천휘는 난생 처음 합공을 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공태령과 천수련의 무공을 지켜본 것처럼 저들도 자신을 지켜본 것이 분명했다.

천수련이야 인맥에 등록될 만큼 고수였다.

한데 공태령 또한 천수련에 뒤지지 않는 듯했다.

‘진짜 고수가 될 녀석들이로구나. 그렇다면 예비 특급 강호인이 질 수 없지!’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린 채 더욱 거세가 직도를 휘둘렀다. 비천무상도와 오행군림보가 맞물리며 곤륜산인의 사각을 장악했다. 그리고 마침내 철옹성 같은 곤륜산인의 방어막이 뚫렸다.

촤악-

남천휘의 직도가 곤륜산인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부가 긁힌 정도의 작은 상처였다. 하나 진원진기까지 뽑아 올린 곤륜산인에게 상처란 역린과도 같았다. 마치 물이 가득 찬 항아리의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촤악! 촤악! 푹! 푹! 쇄애애애액!

남천휘의 직도가 오른 팔을 날렸고, 공태령의 패도가 왼쪽 손목을 잘랐다. 그리고 끝내 천수련의 검영이 번뜩이는 순간 곤륜산인의 아랫배에 붉은 점이 찍혔다.

“끄어어어!”

공태령은 허물어지는 곤륜산인의 뒷목을 찍었다.

세 사람은 그제야 서로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끝났군요.”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큰 빚을 졌네요.”

“피곤하다면서 왜 웃어? 표정 관리해라. 아직도 죽일 사람이 남았냐?”

남천휘의 말에 공태령은 표정을 수습했다.

다시 철면호협으로 돌아간 녀석은 피곤하다며 물러섰다. 천수련은 남천휘에게 감사를 표하려다 고개를 숙였다.

서산노옹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노옹께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구명의 빚을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괜찮다. 애꿎은 네가 고초를 겪었구나.”

그는 천수련을 다독인 후 남천휘에게 손짓했다.

“자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네.”

남천휘는 이미 표정을 굳힌 후였다.

서산노옹이 비켜선 자리를 신풍수사가 채웠다.

그는 속내를 알 수 없을 만큼 묘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건넸다.

“자네가 이 모든 일을 꾸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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