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88화 (88/305)

48, 비밀의 숲.

48, 비밀의 숲.

팔십팔 명 중 일 위.

남천휘가 백인검무를 통해 받아든 성적표였다.

용봉평 곳곳에 붙어 있는 순위표를 볼 때마다 절로 입꼬리가 치솟았다.

‘좋아.’

용봉쟁투의 특성상 초반에 순위를 굳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니 당분간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상위권에 위치하리라.

“자네는 허락받지 않은 병장기를 들고 백인대에 올랐어. 그로 인해 백인검무의 우승 선물이었던 은자 오백 냥 상당의 화병은 지급되지 않을 것이야.”

마지막 자세에서 활용된 장검은 아무도 모르게 가져간 것이다. 재이가 심심할 때마다 휘두르는 진실의 몽둥이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높은 곳에서 혼자 돋보이고 싶었을 뿐이다.

“네.”

남천휘는 호쾌하게 상품을 포기했다.

돈은 많을수록 좋다.

심지어 오백 냥 상당의 화병이라면 VIP포인트로 적립해도 상당한 점수가 나왔으리라.

하나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남천휘는 여전히 시야 구석에서 반짝이는 알림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 퀘스트 《별이 되다》를 완료했습니다.

- 백인검무를 통해 7할 이상의 관중을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본 보상품 외에 추가 보상품을 정산 중입니다.

- 기본 보상품

자수정x500, 청각증폭제x10, 각성단x1

회회회판의 등장으로 인해 보상품은 자수정으로 일괄 지급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 퀘스트 내용에 따라 관련 물품이 따로 지급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환호성을 더 잘 들으라는 의미로 청각증폭제가 지급됐으리라. 하나 각성단이라는 생소한 이름에 축복받은 확인서까지 활용해서 확인했다.

《각성단》

- 혈류를 강제로 증가시킵니다.

- 짧은 시간 내공을 제외한 모든 수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 밤을 지새워 공부를 할 때나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수련 시 도움을 주는 보상품입니다.

남천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잠깐, 이거 폭혈단 같은 거 아니야?’

거 왜 있지 않은가.

강제로 힘을 끌어낸 후 칠공에 피를 토하며 죽어버리는 사마외도의 애용품이 떠올랐다. 하나 부작용이 없다는 재이의 말에 다시 방긋 웃을 수 있었다.

남천휘는 흥분을 감추며 처소로 향했다.

그 즈음 ‘별이 되다’의 추가 보상에 관한 정산이 끝났다.

◎ 퀘스트 ‘별이 되다’의 인원을 제외한 추가 인원에 대한 정산이 끝났습니다.

- 환호한 인원은 총 3960 명입니다.

- 퀘스트 제한 인원을 제외한 추가 인원은 총 1160 명입니다. 추가 보상품으로 자수정 1160개가 지급됩니다.

하늘에서.

남천휘는 팔을 뻗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수정이 쏟아진다!’

비록 오늘 치 무료 돌림판에서 쓰레기가 나왔음에도 웃을 수 있는 이유였다.

남천휘는 자수정의 개수를 확인했다.

《자수정x4721》

애매한 숫자를 보는 순간 미간을 좁혔다.

무료 돌림판을 통해 나온 보상품은 자수정 한 개가 아니던가. 한 개가 나왔다는 사실보다 방실방실 웃으며 축하를 전하는 인형에 더 울화가 치밀었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인형을 돌림판에 묶어놓고 활을 쏴버릴 테다.

‘일단 열다섯 번을 돌릴 수 있지만······.’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친 악귀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았다. 이번만은 최소한 구천 개를 보아서 30번 정도는 돌려야 성에 찰 듯했다. 그러면 최소한 영웅 보상품을 몇 개 정도 건질 수 있지 않겠는가.

‘안 돌릴 거야. 안 돌려!’

그러던 중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내공 십 년의 흡수가 끝났단다.

◎무균 상태가 해제됩니다.

상태창을 확인하니 820이었던 내공 수치가 1275로 치솟은 후였다.

강호의 수치로 논하자면 오십이 년 정도의 내공이다. 일 갑자의 내공을 지닌 자는 내외의 수발이 자유롭다고 했다. 그리고 대주천을 통해 내공의 회복 또한 수월할 터였다.

남천휘는 희희낙락하다가 이내 인상을 썼다.

‘그런데 이대로 넘어가도 되는 걸까?’

보통의 무인이었다면 일 갑자의 내공은 초절정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 할 수 있으리라.

하나 남천휘의 상황은 달랐다.

그는 깨달음 없이 내공만 쌓아놓은 상태가 아닌가.

지금껏 제대로 도기를 발산했던 건 무쌍 모드였을 때가 유일했다. 그 외에는 그저 내력을 외부로 방출하여 비슷한 효과를 냈을 뿐이다. 그 덕에 남보다 내공의 소모가 심했고, 도기의 위력은 크게 돋보이지 못했다.

제대로 된 도기를 펼치고 싶었다.

내공으로 상대를 억누르는 방식이 언제까지 통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내가 정작 혜소와 다를 바가 없군.’

혜소 역시 설삼(雪蔘)을 먹고 내공만 우격다짐으로 쌓은 상태가 아닌가. 그렇기에 초식의 형이나, 의를 논할 수준조차 되지 못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잘 벼려진 칼을 쥔 형국이다.

남천휘는 혜소보다 더 좋은 무공을 익혔을 뿐 내공에 관한 깨달음만 따지자면 별 차이가 없을 터였다.

‘그러고 보면 다른 수치와 내공의 불균형도 마음에 걸려. 이렇게 마냥 성장해도 되는 걸까?’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던가.

하나 남천휘에게는 백짓장을 맞드는 것뿐 아니라 홀로 들고 다닐만한 상대가 존재했다.

‘재이야, 어떻게 해야 반쪽짜리 절정이 아니라 진짜 절정이 될 수 있을까?’

◎ 내공과 지혜 수치를 더 늘리세요.

원론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재이의 말처럼 내공 수치가 십만이라면 절정의 깨달음 정도는 무의미할 터였다.

결국 답은 지혜 수치에서 찾아야 할 듯했다.

‘그러고 보면 제일 하찮게 여겼던 지혜 수치가 안 끼는 곳이 없네.’

깨달음과 습득력, 거기에 더해 독공 까지 지혜 수치로 올라가지 않던가. 어쩌면 남천휘가 알지 못하는 효과가 더 존재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지혜뿐 아니라 모든 능력 수치에 해당할 수도 있으리라.

“후.”

남천휘는 겨울바람을 힘껏 들이마신 후 있는 힘껏 토해냈다.

레벨 업 시스템과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

나아가 재이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잠시나마 뇌리를 스쳤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부릅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은 달과 희미한 별이 밤하늘에 가득했다.

저 곳 어딘가에 천상이 있지 않겠는가.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속 시원히 알 수 있는 걸까?’

툭-

남천휘는 누군가와 부딪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깊은 고민에 빠진 사이 사람과 부딪치는 것도 모를 만큼 넋을 놓았던 게다.

“죄송합니다.”

“괜찮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부딪칠 수도 있지.”

남천휘는 중년 사내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숙소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미 소개연 때부터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했다지만, 발 디딜 틈도 없는 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을 것도 없이 금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황보장천이 나타났다.

그 순간 우레에 같은 함성이 울렸다.

“황보 소협이다!”

“과연 장부답게 체격이 어마어마하군!”

“이쪽 좀 봐주세요.”

수십 명의 남녀가 손을 뻗으며 제 할 말만 시끄럽게 외쳤다. 황보장천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하하, 예기치 못한 환대로군요. 감사합니다.”

남녀의 비율을 따지자면 사내가 훨씬 많았다.

“용봉쟁투에서 우승하실 겁니다!”

“우리의 희망이외다! 남자를 대표해서 이겨주시오!”

그들은 한이라도 맺힌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뭐야? 용봉쟁투에 참가한 후기지수는 대부분이 남자잖아. 그런데 왜 황보장천이 대표인 건데? 게다가 저 자식 꾸민 거봐. 백인검무 때보다 더 잘 차려 입었네. 일부러 나온 거야. 곰 주제에 영악하기는.’

누군가 울먹거리며 일갈을 내질렀다.

“꽃순이가 공 소협한테 홀려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더이다. 황보 소협! 나는 황보 소협만 믿소!”

아, 그런 거였냐.

남천휘는 부러운 시선을 거뒀다.

어차피 냄새 나는 사내들의 환호성이나 울먹거림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은 3960명의 환호성을 끌어낸 주인공이 아닌가.

‘나머지 사십 명은 뭐하는 것들이지?’

감정이 없는 강시라도 앉아 있었나 보다.

남천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황보장천이 이 정도라면 주인공인 자신은 더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꽃 같은 여인네들에게 파묻힌 채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을 터였다.

‘아, 그러면 곤란한데.’

남천휘는 고개를 숙인 채 히죽거리며 걸음을 내딛었다. 한데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멀뚱히 선 채 주변을 살펴봤다.

‘아무리 그래도 이쯤 되면 알아봐야 하는 거잖아?’

심지어 자신은 갑급 무복까지 걸친 상태가 아닌가.

다행히 그 순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럼 그렇지.’

화려한 복색의 여인이 시비와 함께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남천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분면 부끄러움에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것이리라.

‘사용.’

백인검무의 보상품으로 지급된 청각증폭제를 사용했다. 꽃 같은 후원자들이 얼마나 어여쁜 대화를 나누는지 엿듣고 싶었다.

“아가씨, 남 소협은 방에만 계시나 봐요. 어! 저 사람도 갑급이네요.”

“그렇네. 한데 얼굴이 낯설구나. 심심해 보이니 가서 물어보렴. 남 소협은 언제 나오는지 말이야.”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설마 두 여인 모두 눈이 멀기라도 한 것일까.

‘이 상황은 뭐냐?’

한데 시비가 배시시 웃으며 내뱉은 한 마디로 인해 정신이 혼미했다.

“소협, 죄송한 말씀인 줄 압니다. 한데 남 소협께서 처소에 계신가요?”

‘나야 나! 내가 남천휘라고!’

그러나 시비는 남천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혹시 안면이 있으시면 저희 아가씨께서 잠시 만났으면 한다는 말을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례는 섭섭지 않게······.”

그 순간 자신의 처소 방향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남천휘의 방문이 열렸다는 외침과 함께 백여 명에 가까운 여인들이 우르로 몰려갔다. 시비는 남천휘에 대한 관심을 접더니 여인을 이끌고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이거 장난이지?

누가 나를 놀리려고 꾸민 짓이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하나 재이는 침묵했다.

남천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내공의 흡수가 끝난 후 무균실이 해제되었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걸까.

‘재이야. 그 외모 서열이라는 거······.’

재이가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를 건넸다.

◎ 대상자의 외모 서열은 상위 12%에 해당합니다.

- 장점은 평균보다 장신입니다.

- 단점은 비율, 피부 상태, 혈색, 하체의······.

퍽! 퍽! 퍽! 퍽! 퍽! 퍽!

진실의 몽둥이로 뒤통수를 열세 번 정도 얻어맞은 후에야 알림이 끝났다. 남천휘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허허. 허허.’

그 때 흉악한 인상의 사내가 남천휘 앞에 섰다.

뒷골목에서 칼 좀 썼을 법한 기도의 사내가 말했다.

“남 소협이시지요?”

“아, 네.”

냄새 나는 사내 어쩌고 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최대한 밝은 미소를 선보였다.

그러자 사내가 헤죽 웃으며 말했다.

빚을 독촉하기에 최적화된 웃음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의 한 마디를 건넸다.

“백인검무에서 일 위하신 걸 축하합니다. 정말 멋지더군요. 공태령이나 경운수, 왕위천처럼 허여말건 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더이다.”

그가 거론한 세 명은 누가 봐도 훤칠하고, 풍채가 좋았다.

“사내라면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 충실해야지요. 사내답게 끝까지 나가세요. 우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 남 소협, 남 소협!”

사내는 남천휘가 처소를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대에서는 활발하던데 생각보다 수줍은 성격인가?’

그 날 밤 남천휘는 회회회판을 실행했다.

“크흑! 용서하지 않겠어.”

세상을 향한 분노가 회회회판을 통해 분출되었다.

띠링-

“이런 영웅 등급은 필요 없어! 민첩 따위를 올려서 뭐 할 건데? 외모에 대한 아이템은 없는 거냐?”

결국 자수정 부족으로 회회회판이 해제될 때까지 돌림판은 멈추지 않았다.

*

날이 밝은 후 다음 관문을 위한 일정이 발표됐다.

총 십일 간의 정비 기간 후에 다음 관문인 ‘후기지수 보신경 대회’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각기 세 명의 후기지수를 한 조로 묶어 공동 평가한다는 설명이 뒤이었다.

남천휘는 벽보를 보며 자신의 조를 확인했다.

‘허, 조합이 참 뜬금없네.’

용봉쟁투 서열 일 위, 남천휘.

용봉쟁투 서열 이 위, 공태령.

용봉쟁투 서열 육 위, 천수련.

이미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하나 남천휘는 여전히 미심쩍은 마음을 풀지 않았다.

‘흐음, 누가 일부러 짜지 않은 이상 이렇게 몰릴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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