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85화 (85/305)

47, 오늘밤 주인공은. (6)

유백천의 비명이 공터에 쩌렁쩌렁 울렸다.

살짝 긁혔음에도 팔이 떨어져나간 사람처럼 유난을 떨었다.

남천휘는 유백천을 지나쳤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개미굴이 뭔지 보여주마.’

한 번 갇히면 헤어 나올 수 없으리라.

‘잠깐, 거미줄이 더 나으려나?’

어쨌든 후기지수들의 반응은 만족스러웠다.

그들은 독 오른 뱀처럼 적의를 드러낸 채 남천휘를 노려봤다.

‘어디 보자.’

다행히 기형 병기는 보이지 않았다.

도검이나 맨손이 전부였다.

레벨은 모두 고만고만하니 때려잡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남천휘는 빤히 빈틈이 보였음에도 달려들지 않았다.

‘오감증폭제, 청각.’

감각의 범위를 넓혔다.

이제 목격자가 되어줄 천수련과 왕대만이 도착한다면 그가 의도한 상황이 완성된다.

“몇 대 맞는 게 나았을 것을!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는구나.”

후기지수 중 한 명이 으름장을 놓았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때릴 거였다면 예기가 번뜩이는 도검 대신 몽둥이를 들고 왔으리라.

놈들은 남천휘가 겁을 먹었다고 여긴 듯 서서히 포위망을 좁혔다.

그 순간 남천휘의 귓가에 희미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저 왔어요. 그런데 이거 지금 뭐예요?]

천수련이다.

남천휘는 그녀의 전음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전음까지 사용할 수 있을 줄이야.

‘레벨이 높든, 특정 심법을 익혔든.’

그녀에 대한 평가를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어쩌면 공태령이나 황보장천보다 험난한 장애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새끼! 겁먹었네. 하지만 늦었어. 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라고!”

닥치고 어서 덤비기나 해.

당하는 역할을 맡은 이상 먼저 공격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나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모인적의 농간에 휘둘리는 놈들에게 인내심이 있을 리 만무했다.

“죽어!”

제딴에는 흉악한 표정을 지은 채 달려든다.

하지만 살기에 찌든 낭인들과 비교할 가치도 없을 만큼 우스웠다.

검을 쓰는 놈이니 검으로 조지자.

쉭쉭쉭쉭!

검속이 제법 빠르다. 설마 퀘스트 조건이 쾌검까지 염두에 둘 만큼 까다롭지는 않겠지.

남천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외쳤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왜 시비를 걸어!”

“닥쳐! 이 새끼야. 눈치 없이 백인검무를 개판으로 만들어? 이게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좋았어.

이 정도면 왕대만과 천수련도 상황파악을 했겠지.

남천휘는 상체를 비틀다가 주먹을 내질렀다.

녀석의 얼굴 앞까지 뻗어나간 주먹을 쫙 폈다.

한순간 시야가 가려진 놈이 얼굴을 돌리려 했다.

남천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손목을 후려쳤다.

빡!

부러지지는 않았네.

하나 놈이 비명을 지르며 검을 놓쳤다.

이런 공격에 검을 놓칠 정도라니.

퀘스트가 아니었다면 일합도 아까운 놈들이다.

남천휘는 검을 받아든 후 손잡이 끝으로 놈의 손목을 찍었다.

콰직!

이번에는 최소한 금이 갔으리라.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 특기 ‘금나’가 생성되었습니다.

- 금나수(擒拿手)와 점혈을 실행할 시 파괴력과 정확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얼쑤! 오늘은 되는 날이로구나.

아니나 다를까 다음 놈은 알아서 검법을 펼쳤다.

그렇다면 무기를 빼앗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지.

따당-

남천휘는 거침없이 밀고 들어갔다.

이제 레벨과 능력 수치의 상관관계를 파악한 후였다. 저들의 레벨은 남천휘보다 조금 낮을 뿐이다. 하나 남천휘는 서브 퀘스트와 히든 퀘스트를 모조리 해결했다. 그로 인해 추가된 능력 수치의 총합은 레벨로 얻는 수치와 비슷할 정도였다.

재이가 그러더라.

남천휘는 숲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장소를 헤집고 다닌 게다. 그로 인해 숲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저들은 중앙에 자리한 길을 따라 숲을 지났을 뿐이다. 그러니 빨리 갈 지언정 숲에 관해 아는 바가 전무했다.

결국 레벨이 비슷해도 남천휘와 후기지수들의 능력 수치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촤악!

검을 쥔 놈이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남천휘가 아니라 검에 베인 옆구리를 보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만약 실전이었다면 놈은 당장 머리가 잘렸으리라.

‘쯧쯧.’

남천휘는 혀를 차며 다음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헉!”

놈은 동료들을 살피더니 주춤거렸다.

누군가 도와주기를 원하는 것이리라.

하나 놈이 어수룩한 것처럼 남은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쿠!”

어! 그렇게 두 바퀴나 나뒹굴 정도로 아프게 때리지는 않았잖아. 꼴사납게 눈치를 보는 녀석을 보며 절로 한 숨이 흘러나왔다.

‘진짜 시간이 아깝네.’

애초에 놈들은 합공의 개념조차 없었다. 어쩌면 실전이 처음일 수도 있으리라. 지금껏 멀뚱히 서 있는 가문의 소속무인과 실전을 흉내 낸 비무로 희희낙락했을 터였다.

하나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극과 극인 법이다.

남천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들이 자신을 해하려고 했지만, 살수를 쓰지 않았다. 부상이라면 정당한 방어였다는 점이 인정될 터였다. 하나 한 명이라도 죽는다면 자신은 살인마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힘 조절을 하며 출수를 했다.

한데 놈들을 상대할수록 울화통이 치밀었다.

‘이러려고 무공을 익힌 거냐?’

최소한 자신을 해하기 위해 제대로 된 공격이라도 펼쳤다면 이처럼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으리라.

한데 놈들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그 말인즉슨 누군가를 때리고, 베는 행위를 우습게 여겼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더욱 화가 났다.

자신에게 이랬던 놈들이 평소에는 어땠을까.

남천휘는 평소와 달리 얼굴을 붉힌 채 후기지수들을 향해 외쳤다.

“용봉쟁투에서 이기고 싶어? 못 이기겠어? 그래서 강한 놈한테 빌붙은 거냐? 한데 그렇게 용봉쟁투에 참가해서 뭘 얻을 수 있는데?”

후기지수들은 원독한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기껏 누군가와의 인맥을 얻고 돌아가겠다고? 아니야. 너희들이 해야할 일은 노력이었어. 잘난 놈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수련을 했어야 했어. 그랬다면 최악의 경우 탈락을 했어도 얻는 게 있었을 거다. 하지만 누군가의 하수인이 되어서 칼질이나 해대는 놈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해. 용봉쟁투뿐 아니라 평생 동안 그럴 거다. 그냥 술이나 쳐 마시고, 기녀나 품다가 뒈져버리겠지.”

아! 속 시원하다.

남천휘는 후기지수들이 자신의 일갈을 통해 개심할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저 머리끝까지 치솟은 열기를 발산하고 싶었을 뿐이다.

“너희들은 끝났어.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거야.”

지금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하지만 며칠 안에 알게 될 거다.

그 때 끝끝내 빈틈을 노리던 적순태가 남천휘의 뒤를 노렸다.

레벨이 64나 되는 놈답게 권풍이 제법 매섭다.

게다가 권법과 보법의 투로가 능숙했다.

실전을 거쳤으리라.

‘그런 놈이 이처럼 쉽게 출수를 해?’

놈의 공세는 죽어도 좋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남천휘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애초에 다른 녀석들은 기준 이하였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아랫사람을 괴롭히며 살 것이다.

하나 이 놈은 달랐다.

놈의 번들거리는 눈빛은 흑도의 낭인들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 얼굴을 향해 꽂혀드는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불그스름한 기운이 맺힌 일권.

그것을 향해 우권을 정면으로 후려쳤다.

쾅!

내력과 내력의 충돌로 인한 파공음.

남천휘는 주먹을 끝까지 내뻗었고, 적순태는 손목이 꺾인 채 밀려났다.

주먹과 손목이 통째로 으스러졌으리라.

“으아아아악!”

남천휘는 비틀거리는 적순태의 안면을 무릎으로 찍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놈을 향해 강맹한 도풍을 선사했다.

띠링-

《적의 주공으로 적을 격파했습니다.(9/10)》

이로서 공터에 나타난 아홉 명을 쓰러트렸다.

하나 퀘스트는 완료되지 않았다.

아직 한 놈이 남은 게다.

‘퀘스트가 나를 돕는구나!’

예전부터 느꼈지만, 퀘스트의 내용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단서를 얻을 때가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퀘스트에 열 명을 거론하지 않았다면 누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으리라.

어쨌든 숨어 있는 놈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감증폭제, 청각.’

오감증폭제를 중첩했음에도 연하연을 만났을 때처럼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청각의 극도로 민감해지며 온갖 잡소리를 전했다.

스륵-

‘그 쪽이냐?’

남천휘는 공터의 입구가 아니라 배후의 구릉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내공을 아낌없이 소모했다.

타탓!

일장 가까운 높이를 두 걸음 만에 올랐다.

그 상태로 몸을 띄우니 관목 덤불 사이에 숨은 놈의 얼굴이 환히 보였다.

낯선 얼굴이다.

하나 놈의 머리 위에 뜬 세 글자로 놈의 이름이 모인적임을 알 수 있었다.

“헙!”

모인적의 레벨은 81이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축복받은 확인서를 사용했다. 4레벨 신안으로 인해 놈의 상세정보가 펼쳐졌다.

능력 수치의 총합은 1744였고, 민첩과 지혜를 위주로 성장했단다.

‘지혜?’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민첩과 지혜는 딱히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흥!”

모인적은 뒷짐을 지는 듯하더니 이내 양 손을 내뻗었다. 그 순간 수십 개의 우모침이 그물 형태로 쇄도했다. 하나 바늘이나 다름없는 우모침이 제대로 꽂혀들리 만무했다. 그저 흙을 뿌린 것처럼 잠시 시간을 끌 뿐이다. 우모침이 모공을 통해 스며들어 몸속을 휘돈다는 건 사천당가의 절초로나 가능할 터였다.

남천휘는 소매를 내저었다.

내력이 담았더니 우모침은 한 번에 쓸려나갔다.

한데 그 사이 모인적은 손바닥만한 비수를 양 손에 나눠 쥔 채 달려들었다.

쉭쉭쉭쉭쉭쉭!

지근거리에 요혈을 노리는 모양새가 한두 번 살초를 펼친 실력이 아니다. 놈은 마치 백정이 고기를 해체하듯 망설임 없이 사혈을 노렸다.

따당!

남천휘는 직도로 비수를 튕겨낸 후 인상을 썼다.

생각보다 반발력이 크지 않았다.

민첩과 지혜 위주로 성장했다더니 체력과 근력은 한참 모자른 듯했다.

‘머리 좋은 놈은······.’

남천휘는 직도를 휘돌렸다.

평범한 도였다면 지근거리를 허락한 이상 불리했으리라. 하나 직도는 고리를 통해 근접에서도 충분한 위력을 보였다. 심지어 도신 중앙에 걸린 고리를 검지에 걸면 자모원앙월처럼 사용이 가능했다.

‘머리를 때려야지!’

스르륵!

직도의 중앙을 쥔 채 밀어붙였다.

모인적이 날을 피해 상체를 숙였고, 남천휘는 그대로 무릎을 올려쳤다. 하나 놈은 가볍게 옆으로 구르며 재차 비수를 꽂아 넣었다.

‘민첩은 몰라도 근력과 체력은 내가 우위다!’

남천휘는 일도양단의 기세로 직도를 내리쳤다.

땅!

놈은 비수를 놨다.

놓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놓은 게다.

그러더니 품에서 손가락 두 마디만한 주머니를 꺼냈다. 동시에 세 개의 주머니가 전방으로 쇄도하더니 퍽 하며 터졌다.

푸스스스스-

녹빛의 가루가 안개처럼 흩어진다.

남천휘는 호흡을 멈췄다.

하나 독무가 코와 모공을 향해 스며든 상태였다.

모든 능력치가 빠르게 하락한다.

‘훗, 독공은 지혜 수치로 올라가는군. 새로운 걸 알게 해줘서 고맙다. 이 새끼야.’

중독이 됐지만, 우려할 필요는 없다.

그에게는 녹선단이 있지 않은가.

‘녹선단!’

한데 반응이 없다.

예상보다 훨씬 독성이 강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설마 용봉쟁투에 참가하면서 절독을 지녔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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