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70화 (70/305)

43, 이 편지는 곡부에서 처음 시작하여. (2)

*

레벨에 대한 의문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등급이라는 건 고하(高下)와 우열(優劣)을 가리는 기준일 터였다.

‘일단 나는 예외.’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백 일 정도 수련해서 이 정도 성장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구파에서도 선택받은 몇 명만 가능하지 않을까?

◎ 정파의 무공은 탑(塔)에 비유됩니다.

주춧돌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지요. 그렇게 완성된 무공은 사마외도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합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하는 얘기가 아니던가.

초년에는 비등하고, 중년에는 사마외도가 득세하나, 말년에는 백도가 무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련과 내공으로 신체의 노화를 늦추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사마외도의 고수들은 중년을 넘기는 순간 기량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반면 정공을 쌓은 무인은 적공(積功)에 따라 나이를 불문하고 무위를 떨쳤다.

절대지경의 고수라 불리는 자들은 모두 노년의 쇠락함을 이겨내고 반노환동에 버금가는 탈태환골을 거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잠깐! 그럼 나는 사파나 마도 쪽이야?’

◎ 특급 강호인 승급 체계는 양측의 장점만 취합하여 발동합니다. 속도의 마도와 안정의 정도를 모두 이뤘기에 안심하시고 수련에 정진하시면 됩니다.

현재 대상자의 수련 기간 대비 성장률은······.

아! 거기까지.

지금보다 더 빨리 성장했다가는 마도나 사파의 무공을 익혔다고 의심받을 수도 있을 걸.

내가 게으름을 피우겠는 건 아니고.

‘어쨌든 레벨만 확인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

◎ 레벨은 성장도에 따라 규정됩니다.

하나 간혹 규정 외라 할 수 있는 무인이 존재합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같은 시간을 수련했음에도 성취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에 1의 성장을 이룬다.

그러나 같은 하루를 살면서도 2나 3, 또는 심지어 10의 성장을 달성하는 괴물이 존재한다는 게다.

즉 레벨을 믿되, 방심하지 말아야 할 터였다.

강호에는 왕대만과 같은 자들이 즐비하지만, 간혹 보이는 레벨을 뛰어넘는 수치의 천재가 존재하지 않겠는가.

‘조 대주는 그럼 천재인 건가?’

◎ 기준점을 잡자면 기재에 해당합니다.

남천휘는 혀를 찼다.

차라리 천재였으면 했다.

저 정도의 수준도 놀랍거늘 더 한 놈들이 있다니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허, 내가 지금 자만할 때가 아니었구나.’

◎ 현재 대상자의 수련 기간 대비······.

남천휘는 허공을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는 저것이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설마 저런 게 시스템 상에 내장되어 있다는 수많은 농담 중에 하나는 아니겠지.

일단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기재(奇才)가 곡부남가를 지켜주고 있지 않은가. 조만간 날을 잡아 조상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레벨업 시스템으로 수신(修身)을 이루고, 조상에게 제가(齊家)를 맡긴다면 치국과 평천하 또한 가능할 터였다.

‘그나저나 볼수록 신기하네. 총합이 이천을 넘기다니······.’

조상은 헛기침을 했다.

경계 근무를 끝내고 개인 수련을 하려던 참이다.

‘수련하러 가야 하는데.’

남천휘는 소가주에게 눈짓을 한 후 기다란 목곽을 꺼냈다.

“조 대주.”

“예, 삼 공자.”

“선물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길게 설명해봤자, 큰 의미가 없을 터였다. 조상과 같은 무인이라면 검을 확인하는 순간 남천휘의 마음을 알아차리리라.

조상은 당황해하면서 목곽을 열었다.

그리고 이내 남천휘의 예상처럼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그는 검을 꺼낸 후 남천홍과 남천휘를 바라봤다. 뽑아도 되겠냐는 물음이다.

“조 대주의 검과 비슷한 것을 골랐습니다. 살펴보세요. 손에 맞았으면 좋겠군요.”

조상은 검을 꺼내 쥐었다.

그러더니 휘두르는 대신 이곳저곳을 만져보며 살피는 것이 아닌가. 그 후에야 몇 번 휘둘러본 후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좋은 검입니다.”

하하! 저 아저씨, 손 떨리는 거 보소.

“천휘가 무진철원에서 가져온 겁니다. 조 대주에게 선물하기 위함이니 마다하지 마세요.”

조상의 눈동자가 남천휘를 향했다.

수련이나 비무할 때가 아니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눈동자가 격랑을 일으켰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남천휘의 말에 조상은 나직이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이내 검을 거꾸로 쥔 채 포권을 했다.

“감사합니다.”

사천 냥짜리 선물을 받은 사람치고는 너무나 무미건조한 감사였다.

하나 짧은 한 마디로 많은 감정이 전해진다.

그래, 사내란 이래야지.

뭔가 이야기책에서나 볼법한 그런 관계가 만들어진 듯했다.

“수련하셔야지요?”

남천휘의 농에 조상은 그제야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부쩍 더 수련에 매진하고 싶군요.”

“잠시 후에 한 판 어때요?”

비무 신청에 조상은 이를 드러냈다.

“기꺼이요.”

“먼저 몸을 풀고 계세요. 금방 갑니다.”

조상이 떠났다.

남천홍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조 대주가 정말 좋아하는구나. 저런 표정은 처음 본다.”

“그게 보여?”

남천휘의 말에 남천홍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연하지. 우리 가족이잖아.”

형제는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아! 무진철원의 유 단주가 올 것 같아.”

“그래? 무진철원주에게 금지옥엽이 있다더니, 그 분인 듯하구나.”

“형이 신경 좀 써줘.”

“당연한 소리.”

여전사를 방불케 하는 유설옥을 떠넘겼으니 더 이상 볼일은 없다.

“그럼 가 볼게.”

“점심 같이 먹을래?”

“아무래도 조 대주와 하지 않을까 싶은데.”

남천홍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덩치가 산만하니 그것만으로도 온 몸의 살이 춤을 췄다. 하필 눈은 또 저리 커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나 싶다.

“휴우, 저녁 먹어. 그럼 됐지?”

남천휘는 곧장 조상과 마주했다.

몇 번이나 비무한 상대지만, 느낌이 남달랐다.

그의 능력 수치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특기와 아이템을 제외하면 자신보다 나았다.

‘어쩐지 이길 것 같은데 영 거북하더라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더라.

“음, 조 대주. 어쩐지 조금 들뜬 것 같은데요?”

조상은 새 검을 만지작거리다가 표정을 굳혔다.

“아닙니다.”

거, 짓, 말.

이제 곡부남가 내에서 남천휘가 겨뤄볼 만한 상대는 조상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건 조상도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전심전력으로 검을 시용할 기회.

그래서 평소와 달리 눈동자가 이글이글거렸다.

남천휘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오늘은 제대로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삼 공자.”

조상의 우려 섞인 부름에 남천휘는 쌍도를 뽑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제 배려를 받을 만큼 약하지 않아요.”

당신의 수십 년을 백 일만에 뛰어넘은 실력을 보여드리지요.

‘아! 이거 내가 악당 역할인가?’

조상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 아무래도 그게 맞는 듯했다.

촤라락!

남천휘는 검지에 직도를 걸고 휘돌렸다.

“자, 악당이 먼저 갑니다!”

*

조상은 강했다.

오늘의 그는 범이 날개를 단 것처럼 남천휘를 몰아붙였다. 섬영검법이라는 이름처럼 쾌(快)와 환(幻)을 마음껏 뽐냈다.

명검을 얻어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진짜 실력을 보인 것일까?

어느 쪽이든 오늘의 조상은 절정이 신위를 제대로 선보였다.

검속을 조절함으로서 생기는 이득.

검영을 흩뿌려 시선을 빼앗는 방법.

진초와 허초를 마구 섞는 심계.

적재적소에서만 활용되는 내력.

특히 검기를 무작정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점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상의 내공은 내 아래가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의 검기는 옅고, 작았다.

대신 한 번 펼쳐지면 여지없이 남천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나는 빨리 걸은 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했구나. 그게 정말 아쉽네.’

그래도 조상을 보며 작은 깨달음을 얻지 않았던가.

지혜 수치가 9나 올랐다.

그 뿐 아니라 조상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다보니 덩달아 민첩과 체력도 상승했다.

여러 모로 뜻깊은 비무였다.

한데 조상 또한 남천휘와 같은 걸 느꼈나 보다.

그는 오랜만에 속이 시원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후훗, 나도 속이 뻥 뚫린 것 같았어.”

남천휘가 빙긋 웃으며 읊조렸다.

한데 그 순간 등 뒤에서 소혜의 근심 가득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공자는 속이 뚫린 게 아니라 가죽이 뚫렸거든요.”

소혜는 어느새 들판처럼 넓어진 남천휘의 등을 매만지며 한 숨을 내쉬었다.

“휴, 비무를 이렇게 하다가는 몸이 성치 않겠어요.”

남천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현재 상의를 탈의한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소혜는 남천휘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에 금창약을 펴바르는 중이다.

“우와! 여기 상처는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갈 만큼 파였어요. 조 대주한테 실수한 거라도 있으세요?”

소혜는 손가락이 몸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이 신기했는지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금창약이 깊이 파인 상처를 메웠다.

남천휘는 인상을 쓰며 신음을 흘렸다.

“야! 따가워.”

소혜가 주눅 든 목소리로 물었다.

“아파요?”

자식, 이제야 주인에 대한 애틋함이 생겼나 보구나.

이제야 취향이 바뀐 걸까?

하지만 미연시가 발동 안 되는 외모를 가진 소혜야.

‘미안하지만, 너는 안 돼.’

한데 남천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소혜는 칭얼거리듯 말을 건넸다.

“저도 아파요. 금창약을 뭐로 만들었기에 이렇게 따가운 거지? 손가락 피부가 벗겨질 것 같아요.”

못된 것. 잔인한 것. 저만 아는 개구리 같은 것.

“오늘 일과 끝! 고생하셨어요.”

“아니, 안 끝났어. 술하고 안주, 그리고 향초를 가져와! 지금! 당장! 어서!”

남천휘는 볼을 부풀리는 소혜를 보며 승리감을 맛봤다. 그리고 창밖에 뜬 달을 보며 때가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기분 좋게 무기 강화를 해 볼까?’

의자는 푹신했다.

토끼털을 잔뜩 넣은 보료가 상체를 휘감았다.

손이 닿는 곳에 술병과 안주가 위치했다.

술은 따뜻한 즉묵노주였고, 안주는 천품육포와 견과였다. 꽃잎을 섞어 만든 초에서 은은한 향이 퍼져나갔다.

분위기가 좋았다.

남천휘는 손가락을 튕겨 직도를 소환했다.

낭인의 은신처에서 싸울 때 두 자루가 깨졌으니 남은 건 모두 열 자루다. 그 중에서 내구도가 최상인 8번과 9번 직도를 꺼냈다.

‘주문서가 몇 장이더라?’

시야 한쪽에 인벤토리를 띄웠다.

현재 사용가능한 무기 강화주문서는 모두 스무 장이다. 산술적으로 따진다면 두 자루의 직도를 10강까지 강화할 수 있는 분량이다.

‘설마 그렇게 되겠어?’

한쪽에 +7 정도면 성공적이지 않을까 싶다.

◎ 이론상으로는 가능합니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후훗,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봐봐. 나는 불운과 거리가 먼 사람이야. 오히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이지!”

◎ 자만과 오판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입니다.

남천휘는 입술을 삐죽였다.

“걱정 마. 알아서 한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잖아. 차근차근 할 거야.”

잠시 후 재이의 알림이 귓가에 연이어 들려왔다.

◎ +3직도가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 직도의 현재 강화도는 +4입니다.

남천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재이에게 호언장담한 것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강화는 성공적이다.

벌써 두 자루의 직도를 4강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좋았어!”

성공의 기쁨을 담아 술 한 잔.

남천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기강화주문서를 바르는 순간 검은 빛이 직도의 도신을 휘감았다. 아마도 비천무상도로 인한 내력의 바탕을 표현하는 듯했다. 그렇게 번쩍이던 검은 빛이 도신에 스며드는 것으로 강화가 마무리된다. 그 때 맑은 소리가 들리면 성공, 파열음이 들리면 실패였다.

“아! 이거 은근히 긴장되네.”

남천휘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사이 천품육포를 많이도 먹었나보다.

짭짤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자! 가자!”

술 한 잔 더 마시고, 주문서를 바르고.

잠시 후 남천휘의 환호성이 야심한 밤의 고즈넉함을 산산조각 났다.

“오다! 오가 됐어!”

어차피 7강까지는 실패해도 파괴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남천휘는 저돌적으로 주문서를 바르기 시작했다.

하나 오래지 않아 머리를 감싸쥔 채 신음을 흘렸다.

“아! 아! 내가 미쳤지.”

*

소혜는 이른 아침 남천휘를 찾았다.

‘도대체 어젯밤에 뭘 하신 거람?’

그녀의 눈 밑이 까맣다.

남천휘가 밤새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기 때문이다.

환호성을 지르고, 욕을 하고,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까지 들리더라.

덕분에 새벽까지 잠을 설친 상태였다.

“하암, 엇! 공자. 아직도 깨어 있으신 거예요?”

남천휘는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채 힘없이 웃었다.

마치 삶의 마지막 불꽃을 방금 다 태워먹은 사람처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후훗, 하얗게 불태웠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남천휘는 히죽 웃었다.

“망했지만, 성공했다는 소리다.”

소혜는 남천휘가 직도를 눈짓으로 가리키자 눈을 끔뻑였다.

‘저게 뭐 어쨌다고?’

한데 이상하게도 직도에서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햇빛이 직도의 도신을 스쳐갈 때마다 기이하게 번쩍거리는 듯하지 않은가.

‘예쁘다.’

그 때 남천휘의 시큰둥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아침 댓바람부터 왜 온 거야? 설마 빈 손으로 온 건 아니지?”

소혜는 눈웃음을 쳤다.

“헤헤, 꿀물을 가져왔어요.”

남천휘는 눈이 사라진 소혜에게서 대접을 받아들었다. 소혜는 남천휘가 꿀물을 모두 마시고, 애기(噯氣)를 세 번이나 한 후에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서찰이 왔어요.”

“서찰?”

“신공부에서 보낸 거예요.”

남천휘는 신공부라는 말에 자세를 바로 했다.

서찰의 겉면에는 용사비등한 필체로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용봉쟁투?”

내용 또한 범상치 않았다.

“산동강호를 책임질 후기지수를 당신의 손으로 뽑으라고? 이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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