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이 편지는 곡부에서 처음 시작하여.
43, 이 편지는 곡부에서 처음 시작하여.
유설옥이 안내한 장소는 경계가 삼엄했다.
레벨 50을 넘긴 무인이 세 명이나 있을 정도였다.
강호는 참으로 넓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지금껏 자신이 상대했던 흑도의 낭인들이 하찮게 여겨질 정도였다.
‘철방의 지부를 지키는 무인이 이 정도라면······.’
진짜 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은 어떠할까 싶다.
강호의 정점에 선 절대고수들의 레벨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짜증난 김에 확인! 확인!’
남천휘는 특상품을 모아놓은 보고의 물품을 감정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만지기만 해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설옥이 지켜봤기에 이곳저곳을 살피는 척하며 감상도 겸했다.
병장기를 확인할 때마다 무진철원에 대한 신뢰도가 깊어졌다. 특상품답게 높은 가치를 지녔고, 몇 개의 병장기는 부가기능까지 달려 있었다.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건 450짜리 장검이다.
절강성의 유명한 협객이 사용했던 병기란다.
가격은 무려 은자 십칠만 냥.
남천휘는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그 장검은 구매가 예약됐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질풍뇌격궁의 판매 금액을 예상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영웅 등급의 무기는 달랐다.
하나 모든 물품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염화철방의 병장기 두 개를 찾았고, 보관에 문제가 생긴 병장기도 골라냈다. 그 밖의 물품은 가격과 가치가 나름 비례했기에 눈요기만 실컷 한 셈이다.
“제가 봤을 때에는 이게 전부입니다. 유 단주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유설옥도 동의했다.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한데 단주라는 표현은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네요. 감정을 함께 한 동료잖아요.”
누님, 그게 아니라 미안해서요.
시작도 안했는데 차 버려서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병장기에 대한 확인도 열심히 했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우해드리려고 합니다.
‘라고 했다가는 미친놈 소리를 듣겠지.’
유설옥은 한 번 더 내부를 살펴보다가 말을 건넸다.
“오늘 남 소협께 큰 신세를 졌네요. 본래 삼일 동안 산동 지부를 감사하려 했는데 남 소협 덕분에 쉽게 끝낼 수 있었어요.”
그 순간 재이가 퀘스트 완료를 알렸다.
‘좋았어!’
하나 보상이랍시고 인벤토리에 들어온 건 무기강화주문서가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주문서를 사용하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남천휘가 심통을 부리려는 찰나에 유설옥이 고대하던 한 마디를 내뱉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선물을 하고 싶네요.”
됐다! 됐어.
하지만 사내 체면에 희희낙락할 수는 없다.
“무진철원의 병장기는 고가의 물품이잖아요. 정말 괜찮은 겁니까?”
“특상 쪽은 제 권한으로도 무리지만, 중상 쪽은 괜찮아요. 마음에 드시는 게 있다면 골라 보시겠어요?”
태나지 않게 시무룩.
‘여기 물건을 되팔거나, VIP포인트로 전환하기만 해도 대박일 텐데······.’
하나 안 된다는 걸 조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중상급 병장기라고 해도 은자 삼천 냥에서 만 냥 사이의 고가품이 아니던가.
두 사람은 별채로 향했다.
병장기는 조금 전에 봤던 그대로였다.
남천휘는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쓸 게 없어.’
선물로 받은 걸 되팔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면 가장 비싼 걸 골라서 포인트로 적립하는 것이 순리일 터였다.
하여 남천휘는 만 냥짜리 창을 잡았다.
“죄송하지만, 그 물건은 구매자가 있군요.”
아무리 곡부가 먹고 살기 좋다고 해도 부호가 참 많은 듯했다.
‘이거 우리 집은 부자도 아닌 것 아니야?’
남천휘는 구천 냥짜리 철곤을 잡았다.
묵철(墨鐵)이 조금 섞였기에 가치가 제법 나가는 병장기였다.
“이런! 그것도 예약이······.”
유설옥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건······.”
“그것도······.”
야!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해!
여장부처럼 호탕한 줄 알았더니 완전 돈만 밝히는 좀팽이가 아닌가.
마치 거래를 하듯 가격대가 점점 내려갔다.
유설옥이 미소를 지은 건 사천 냥짜리 검을 쥐었을 때였다.
그래, 땅을 파봐라. 은자 한 냥이라도 나오나.
사천 냥이면 엄청난 거금이 아닌가.
“이걸로 하겠습니다.”
“도를 쓰신다고 들었는데요.”
그 사이 뒷조사라도 했나 보다.
남천휘는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선물하고 싶어요. 안 될까요?”
“좋은 곳에 쓰신다면 안 될 것도 없지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남천휘가 선물할 대상은 북풍대주 조상이다.
그가 지금껏 곡부남가를 향해 보여준 신뢰와 충성을 감안하면 이것도 분에 넘치는 물건이 아니리라.
검은 제법 훌륭했다.
장식은 손잡이에 박힌 작은 홍옥이 전부였다.
하나 가격에 비해 120의 가치를 지녔으니 명검이라 불릴 만했다.
“나가실까요.”
유설옥은 비무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하나 남천휘 역시 득의의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무진철원을 찾은 목적을 이뤘기 때문이다.
‘가치 180의 병장기는 보통 이만 냥에서 삼만 냥 사이에 거래되더라.’
대두동에서 얻은 남추의 수련용 직도라면 충분히 좋은 무기였다.
재이 역시 동의했다.
◎ 곡부남가의 직도는 특수 병기에 속하지만, 사용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신공부를 비롯해 곡부 인근의 방파 중 비슷한 형태의 직도를 사용하는 무인이 다수 확인됐습니다.
살다보니 재이가 이처럼 설명해주는 날도 오는구나.
이것 또한 무적자로 전직한 후 생긴 작은 변화일 터였다.
‘언젠가 너랑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 시스템에는 62291가지의 농담이 준비되어······.
됐어요. 사양 할게.
‘어쨌든 직도에 주문서를 발라봐야겠어.’
남천휘는 자신뿐 아니라 세상에서 처음 있을 기행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칼에 종이를 발라서 강해진다니.
고금을 통틀어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유설옥이 걸음을 멈췄다.
“오늘 일은 정말 감사드려요.”
“별 말씀을요.”
그녀는 은근한 시선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소협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나서 시간이 비는군요. 조만간 곡부남가를 찾아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네요.”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야. 하지만 헤어질 때를 모르는 여인의 뒷모습이 참으로 강해보였다.
“귀한 손님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곡부남가에는 접객에 최적화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밥은 형에게, 술은 막 총관에게 맡기면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이만.”
유설옥은 내원으로 향했다.
등이 화난 것으로 보아 지부장을 심문하러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나랑 상관없지.’
악인은 지옥으로, 사기꾼은 감옥으로.
그리고 특급 강호인 후보자는 집으로 향했다.
“남 소협! 남 소협!”
한데 무진철원을 나서기 무섭게 따라붙는 사람이 있었다. 접객당주로 있다가 임시 지부장으로 승진한 사람이 아니던가.
대운위(戴韻偉)는 손을 모은 채 쉼 없이 흔들며 감사를 표했다.
“남 소협 덕분에 승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 무진철원을 찾으실 때마다 제가 직접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겨우 그거 말하려고 여기까지 뛰어오셨나.
남천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려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 대운위가 대상자에게 깊은 호감을 표시합니다.
- 사회지도층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 대운위가 인맥 창에 등록됐습니다.
※ 친할수록 물품 할인이 가능합니다.
오랜만에 인맥 창이 활성화됐다.
▼ 능력 ▼ 장비 ▼ 무공
▼ 특기 ▼ 비책 ▼ 인맥
여섯 개의 하위 목록 중 인맥은 레벨과 명성이 있는 자들에게만 발동했다. 하여 현재 등록된 사람은 직계 가족과 막 총관, 그리고 조상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연하연도 인맥 창에 등록이 된 상태였다. 하여간 하나부터 열까지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는 연하연이다.
아쉽게도 소혜는 탈락했다.
‘비를 내리는 특기를 살려서 유명해지면 가능할지도.’
어찌됐든 앞으로 곡부남가의 병장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대운위가 인맥 창에 존재하는 한 질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으리라.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그렇게 남천휘는 두 명과 교분을 나눈 후 곡부남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
*
남천휘는 돌아오자마자 남천홍을 찾아갔다.
예전에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사이였다. 한데 이제는 매일 보지 못해 아쉬울 지경이다. 오히려 지난 세월이 야속할 만큼 우애가 도타웠다.
하여 남천휘는 무진철원에서 가져온 장검을 남천홍에게 맡겼다.
곡부남가의 소가주는 누가 뭐라 해도 남천홍이다.
그리고 북풍대주 조상은 명백하게 곡부남가에 몸을 의탁한 상태가 아니던가. 그러니 일을 시키거나, 상을 주는 행위는 남천홍을 통해야 했다.
남천휘는 혹여 뒷말이 나올 것을 우려해 장검을 맡기려 한 것이다.
한데 남천홍은 거절했다.
“조 대주와 네 관계가 각별함을 알고 있어. 내가 하사하는 것보다 네가 직접 건네주는 걸 더 좋아할 게다.”
남천휘는 한 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좋아도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싶다.
“내가 아무리 동생이라도 그렇지.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남천홍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너는 내가 더 좋은 형이 되고 싶게 만들어. 그것이면 족하지 않느냐?”
족했다. 아주 대만족이다.
그리고 남천휘는 대수롭지 않게 학관의 폐관을 전했다. 한데 남천홍은 과할 만큼 폐관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닌가.
“학관주가 그리 속물일 줄은 몰랐구나."
그도 그럴 것이 사내란 모름지기 문무를 겸비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로 글공부도 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책을 보니 지혜 수치가 올라.
이처럼 확실한 동기 부여가 어디 있겠는가.
남천홍은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동생에 대한 신뢰는 이미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천익이도 학문을 논할 때마다 너처럼 얘기했단다. 따로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둘이 형제 아니랄까봐 핑계도 똑같구나.”
남천휘는 발끈 하여 말했다.
“아니! 갑자기 왜 둘째 형하고 비교를 해.”
남천홍은 남천휘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을 시켰다. 그러면서 앞 접시에 육편을 슬쩍 올려주는 것이 아닌가.
“이거 먹어봐. 맛있다. 그리고 너무 그러지 마라. 녀석은 너를 많이 생각한단다.”
남천휘는 남천익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말도 안 돼.”
“후훗, 집에서 뒹굴 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무공을 배우겠다고. 그것도 제일 강한 무공을 배우겠다고 나선 이유가 뭐겠어?”
남천홍의 말에 남천휘는 왜소하고 하얗던 둘째를 떠올렸다. 자신보다 키도 작으면서 성질은 더럽고, 주먹은 매웠던 형이다.
한데 놀고먹던 형이 자신 때문에 검을 잡았단다.
“그래서 그 때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를 따라간 거야?”
“녀석이 보내는 서찰을 보면 온통 스승에 대한 악담뿐이야. 매번 도망치겠다고 난리도 아니지. 그런데 아직까지 버티는 걸 보면 뭐가 됐든 제대로 배우고 있나봐.”
남천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형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매번 두들겨 맞고, 괴롭힘을 당했는데 변태도 아니고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격이나 좋아졌으면 다행이지.’
하나 없는 사람 뒷담화를 해서 무엇 하랴.
“쯧, 나중에 오면 술이나 한 잔 해야겠네.”
남천홍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 삼형제가 처음으로 함께 하는 술자리가 되겠구나. 내가 아주 제대로 잔칫상을 준비해서······.”
형님, 침이나 닦으시오.
저래가지고 살을 뺄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헉? 그러고 보니 턱 선이 조금 보이는 것도 같은데.’
남천휘가 형의 얼굴을 살피는 사이 밖에서 담담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조상입니다.”
언제나 진중한 조상은 소가주와 남천휘에게 연이어 포권을 했다.
“부르셨다고요?”
“동생이 대주에게 할 말이 있다는 군요.”
남천휘는 분위기를 잡았다.
하나 조상의 머리 위를 보는 순간 사례 들린 사람처럼 헛기침을 연발했다.
‘뭐야? 언제 40을 찍은 거야.’
조상의 레벨은 40이 됐다.
아예 하루에 한 번씩 레벨 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장이 빨랐다.
하긴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수련을 하는 자가 아니던가.
‘대단하다. 대단해.’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감탄이 경악으로 변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름 : 조상 (Lv:40)
직위 : 북풍대주.
총합 2151(민첩, 내공 위주 성장.)
‘하아! 저 괴물은 뭐냐?’
레벨이 61이었던 왕대만의 총합은 고작 1440이었다.
게다가 성장도 한 부분에 그쳤다.
한데 조상의 총합은 왕대만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능력 수치의 집중 또한 왕대만과 달리 두 개였다.
무엇보다.
‘나보다 높아!’
◎ 흔히 기재 또는 천재라 불리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