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3화 (13/305)

9, 미연시(美緣始). (2)

*

재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특급강호인승급체계는 기본 모드라 했다.

한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숨겨진 설정이 발동된 것이다.

‘부가 기능 같은 건가?’

◎ 미녀를 대상으로만 발동되는 모드입니다.

◎ 주기적인 만남과 사건을 통해 호감도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 천생연분을 만나 행복을 만끽하세요.

재이의 짤막한 설명.

아무래도 나중에 다시 물어봐야 할 듯싶다.

그나저나 미연시(美緣始)라니.

뜻 그대로 아름다운 인연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모드인 듯했다. ‘특급강호인승급체계’나 ‘레벨업 시스템’보다 훨씬 서정적인 명칭이 아닌가.

자박자박-

여인의 발소리가 벼락처럼 꽂혀들었다.

남천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름다운 인연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광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여인의 눈동자는 흐릿했고, 안색은 붉었다.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 것도 모자라 걸을 때마다 비틀거렸다.

‘저 여자가 봉황곡에게 쫓기는 백봉이라면······.’

수십 명이 중독될 만큼의 미혼약을 흡입한 상태일 것이다.

미혼약(迷魂藥)은 대상자의 이지를 잃게 하고, 색욕을 끌어내는 약물이 아닌가. 그렇기에 색마나 색녀가 주로 사용하는 금지용품이었다.

봉황곡에 대한 소문은 진실인 듯했다.

돈 주고도 못 구한다는 저런 걸 뿌리고 다니는 여자들을 떠올리는 순간 절로 소름이 돋았다.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

연인을 대하듯 양 팔을 벌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공자.”

백봉(白蜂)은 연인을 대하듯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 순간 시야 테두리에 붉은 선이 그려졌다.

그리고 시야 하단에 횡으로 선으로 생성됐다.

위쪽은 평소와 다름없는 시계였다.

하나 아래쪽은 하얗게 물들더니 백지처럼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뭐야?”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명필가 쓴 것처럼 수려한 필체의 글귀가 백지 위에 새겨졌다.

「이거 뭐야?」

“내가 한 말인데······.”

「내가 한 말인데······.」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 그대로 적히는 것이 아닌가.

신기했다.

백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자,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나요?”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말 뿐 아니라 백봉의 말까지 시야 하단에 새겨지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화자를 구분하기 위해서 필체마저 달랐다.

하나 언제까지 재이의 가능성에 감탄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백봉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녀의 달뜬 숨소리에 남천휘 또한 덩달아 호흡이 가빠졌다. 몸에 뭘 뿌렸는지 거리가 좁혀질수록 이성이 마비되는 듯했다.

‘미치겠네.’

그 순간 백봉의 몸 곳곳에 새겨졌던 문양이 바뀌었다. 여러 크기로 반짝이던 원이 손바닥의 형태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한데 손바닥의 위치가 애매했다.

어깨와 손, 허리를 가리키는 건 그렇다고 치자.

한데 입술과 가슴이나 둔부 근처에서 반짝이는 손 모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남천휘는 미간을 찡그린 채 백봉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몸을 만지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 떠 있는 손바닥 문양을 건드렸을 뿐이다.

그 순간 문양은 손을 오므리더니 무언가를 쥐는 것처럼 움직였다. 덩달아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기음(氣音)이 울렸다.

찡- 찡-

그걸로 끝났으면 단순히 이상한 표식에 불과했으리라. 한데 백봉은 남천휘가 어깨를 만진 것처럼 몸을 웅크리며 신음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으흥.”

그녀는 볼을 붉히면서 시선을 돌렸다.

맙소사! 이게 뭐야?

하나 남천휘는 생각과 달리 자신도 모르게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재차 손을 뻗었다.

찡찡- 찡찡- 찡- 찡-

백봉은 아예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콧소리를 냈다.

그 때 시스템이 저절로 발동하더니 시야 하단에 한 줄의 문구를 추가했다.

《백봉 연하연이 안기기를 희망합니다.》

-> 힘껏 안아준다.

-> 뒷걸음질 친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란 말인가?

남천휘는 백봉의 뜨거운 눈빛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껏 본 적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향해 구애의 눈빛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사내라면 혹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나 남천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물러섰다.

‘이건 아니야.’

미혼약을 해독하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음양의 교합을 통해 독기를 배출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하나 백봉이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칼로 찔러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무엇보다 그녀의 머리 위에 떠있는 물음표는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위력을 지녔다.

이름 : 연하연(???)

호감 : 100

지위 : 봉황곡 소곡주

미모 : 갑(甲)

몸매 : 갑(甲)

이 여자도 레벨이 세 자리다.

불현 듯 천향다루에서 만났던 백타선자와 봉황곡의 제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려한 외모에 숨겨졌던 독심(毒心).

그리고 백봉은 그런 여인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단순히 미색에 홀려서 허우적거리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 게다가 미모와 몸매가 갑급(甲級)이라고 해도 세 자리 레벨의 여인은 경계해야 마땅했다.

‘자칫 잘못 엮였다가는 제대로 비명횡사야.’

한순간 곡부남가가 통째로 폭발하는 광경이 뇌리를 스쳐갔다.

남천휘는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자칫 백봉이 경공이라도 펼친다면 강제로 나쁜 일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렇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한데 그 순간 백봉이 가슴을 부여 쥔 채 주저앉았다.

“아악!”

남천휘는 멈칫했다.

미혼약이 온 몸으로 퍼진 채 교합을 이루지 못하면 피를 토하며 죽는다지 않는가.

백봉의 앓는 소리가 연이을수록 마음이 약해졌다.

‘이걸 어쩐다?’

남천휘는 잠시 망설이다가 불현 듯 녹선단을 떠올렸다.

‘재이, 아이템은 나만 쓸 수 있는 거야?’

◎ 대상자의 의지 하에 양도가 가능합니다.

녹선단(綠仙丹)은 첫 호칭이 생겼을 때 얻은 보상품이다. 분명 중급 이하의 독을 즉시 무효화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공을 흩어버리는 산공약(散功藥)이나 이지를 흐릿하게 만드는 미혼약 또한 독의 범주 안에 존재했다. 그러니 녹선단이라면 백봉의 몸에서 미혼약을 몰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돌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주요 임무와 보조 임무에 이어 돌발 임무라는 것까지 생성됐다.

도대체 설정의 방대함은 어느 정도인 거냐?

《당신은 불굴의 인내와 금강과도 같은 평정을 지녔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약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의기마저 드러냈습니다.》

목숨을 바칠 정도는 아닌데.

《암수(暗手)에 당하여 사경을 헤매는 그녀를 구원하세요. 하늘은 당신이 상상하지 못할 보상을 하사하여 그 의기에 보답할 것입니다.》

띠링-

청명한 방울 소리와 함께 퀘스트 명이 나타났다.

《인연의 시작》

- 연하연을 해독해주세요.

- 그녀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세요.

- 제한 시간 : 한 시진.

아! 도망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게다가 퀘스트 내용도 너무 쉽잖아.

남천휘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미련을 깔끔하게 벗어던졌다. 인벤을 열고, 녹선단을 활성화시키는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재이가 녹선단의 사용을 알렸다.

그 말이 마치 보물창고의 문을 여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아!”

백봉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고, 붉었던 안색이 제빛을 찾기 시작했다.

‘된 건가?’

쉬이이이이익-

백봉을 중심으로 퀴퀴한 냄새가 휘돌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람에 실려 사라졌을 때 백봉은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녀는 남천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당신 누구?”

뭐라고 대답을 해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이에 알림이 이어졌다.

《호감도가 하락합니다.》

《백봉이 경계합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선택지가 나타났다.

《연하연은 현재 상황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 살려준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합니다.

-> 상황을 설명하고 그녀를 진정시킵니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지.

‘보상은 재이한테 받을 거니까.’

남천휘는 양 손을 펴고, 무기가 없음을 피력했다.

“연 소저는 미혼약에 중독됐었습니다. 해독을 하기는 했는데 괜찮으신가요?”

목소리는 나쁘지 않았어.

태나지 않게 구해줬다는 것도 알려줬고.

이쯤 되면 호감도가 다시 오르지 않을까 싶다.

한데 백봉은 미간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그제야 기억이 떠올랐나 보다.

“아! 황홀분. 감히 내게 황홀분을 쓰다니.”

그녀는 백타선자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자! 이제 은근슬쩍 자신의 정체와 함께 현재 상황을 알려줄 때였다.

“크흠.”

남천휘는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는······.”

한데 그녀는 남천휘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옆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너 뭐냐?

내가 누군지는 알고 쓰러져야지.

‘쟤 왜 저래? 해독 안 됐어?’

그 와중에도 백봉의 몸 곳곳에서 손바닥 모양이 반짝이고 있었다. 묘하게 자극 되는 상황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 체력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 긴급히 구조하지 않으면 사망에······.

남천휘는 재이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손을 휘휘 내저었다.

‘백봉에게 당한 분풀이 때문이 아니야.’

그 순간 시야 하단에 남천휘의 생각이 적혔다.

한데 대사 이후에 지문을 설명하듯 한 줄이 추가되는 것이 아닌가.

「백봉에게 당한 분풀이를 하는 게 아니야.」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내가 언제?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가 보기라도 했다가는 미혼약을 의심할 정도로 얼굴이 붉게 물들었으리라.

남천휘는 쓰러진 백봉을 향해 다가갔다.

하나 머뭇거릴 뿐 쉬이 손을 뻗지 못했다.

백봉의 경장은 눈이 녹으면서 흠뻑 젖은 상태였다. 그 덕에 그녀의 굴곡 있는 몸매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재이의 평가처럼 몸매는 갑이었다.

‘이건 너무 갑인데?’

남천휘는 헛기침을 하며 혼잣말을 했다.

“어쨌든 퀘스트는 완료해야 하잖아?”

예기치 못한 대꾸가 돌아왔다.

◎ 네.

필요할 때는 대답도 없더니.

하나 머뭇거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다.

결국 남천휘는 쓰러진 백봉을 품에 안았다.

가볍네.

세 자리 레벨이라고 해도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

향기도 좋았고.

남천휘는 괜스레 허공을 응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안전한 곳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우리 집은 아니다.

“이쯤 일 텐데.”

그가 향한 곳은 곡부남가의 가솔들이 가끔 사용하는 안가였다. 야산 중턱에 있는 곳으로 엽사나 약초꾼들이 머물렀다. 곡부남가의 사람이 아니라면 존재의 유무조차 알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이라면 백봉도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으리라.

끼익-

어제부터 폭설이 내렸기에 안가는 깨끗했다.

하나 폭설이 끝날 때까지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터였다.

곡부남가의 소가주인 남천홍은 안전을 제일로 중시했다. 그렇기에 폭설이나 폭우가 내리는 날 산에 오르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남천휘는 마른 짚단을 앞에 두고 잠시 머뭇거렸다.

자신의 품에서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백봉을 내려놓기 아쉬웠다. 마치 힘겹게 아기를 재웠는데 이불에 눕히다가 깨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핑계야.’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

그녀의 얼굴은 코앞에 있었고, 그녀의 향기는 미약처럼 그를 사로잡았다. 평범한 상황에서 만났다면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연서(戀書)라도 전해줬을 텐데.

“후우.”

남천휘는 장탄식과 함께 미련을 버렸다.

여전히 백봉의 머리 위에는 세 개의 물음표가 떠있지 않은가.

지금은 퀘스트 완료와 보상만 생각하자.

그는 백봉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 알림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하나 퀘스트 완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가 안전하지 않은 거야?’

◎ 이대로 두면 잠시 후 사망합니다.

남천휘는 뒤늦게 퀘스트 제한 시간을 살폈다.

아무래도 제한 시간은 곧 백봉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했다.

그 순간 미연시의 선택지가 열렸다.

《연하연의 체온이 위험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 추궁과혈을 통해 체온을 끌어올린다.

-> 옷을 벗기고,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

“크흠.”

선택지를 보는 순간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심정적으로 끌리는 건 두 번째다.

하나 적이 언제 쫓아올지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그리고 기껏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다가 칼 맞기는 싫었다.

“연 소저. 사심은 없습니다.”

남천휘는 혼절한 백봉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한 후 그녀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처음에는 팔목을 건드렸다.

시선도 맞추지 못했다.

하나 시간이 줄어들수록 부끄러움은 사라졌다.

어찌됐든 백봉은 살아야 했고, 자신은 보상을 얻어야 했다.

일거양득(一擧兩得).

남천휘는 백봉의 팔을 주물렀다.

코딱지만한 내공이나마 주입하니 금세 옷이 말랐고, 하얀 피부에 혈색이 돌았다.

“으음.”

백봉이 비음을 흘렸다.

열심히 주무르다보니 하필 손 모양을 건드린 게다.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오늘따라 변명의 횟수가 많다.

다행히 백봉의 얼굴은 조금씩 화색이 돌았고, 표정도 점차 편안해졌다.

남천휘는 추궁과혈(推宮過穴)을 이어갔다.

팔다리를 주무르고, 어깨를 다독였다.

하나 그녀의 가슴과 아랫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어차피 최소한의 체력만 보전해주면 그녀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팔다리만 만져도 이런데······.’

중요 부위라도 건드렸다가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으음.”

남천휘의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이었다.

백봉은 숙면을 취하듯 편안한 표정으로 몸을 뒤척였다.

동시에 기다렸던 알림이 울렸다.

《퀘스트 ‘인연의 시작’이 완료됐습니다.》

《미연시 첫 퀘스트 기념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새로운 호칭이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 100회 완료 기념 VIP상자가 지급됩니다.》

남천휘는 척추를 타고 흐르는 짜릿한 쾌감에 전율했다. 한순간에 피로가 사라졌고, 마치 숙면을 취한 것처럼 활력이 넘쳤다.

“내가 벌써 100개 했던가?”

◎ 퀘스트 횟수는 주요, 보조, 돌발을 포함합니다.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구나.'

특별 보상에 생각지도 못한 호칭까지 생겼다.

한 시진 정도 고생한 것에 비하면 보상이 후했다.

마치 선물 상자를 여는 것처럼 기대감에 부풀었다.

‘일단 퀘스트 보상부터.’

남천휘는 인벤을 여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퀘스트 보상이라기에 추가 능력치를 기대했다.

한데 인벤에는 세안(洗顔), 교골(矯骨), 청혈(淸穴)이라는 아이템이 존재했다.

‘이건 뭐야?’

◎ 세안은 피부를 밝게 하고, 잡티를 지웁니다.

◎ 교골은 어긋난 뼈를 바로잡아 균형을 이룹니다.

◎ 청혈은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합니다.

한 마디로 잘 생기고, 늘씬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남천휘는 다른 의미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거 벌모세수잖아?’

벌모세수(伐毛洗髓)는 더럽혀진 심신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대법을 뜻한다. 벌모세수를 받은 자는 더 빨리 익히고, 더 강한 위력을 보였다.

남천휘는 생각할 것도 없이 세 가지 아이템을 모조리 사용했다. 세안과 교골, 그리고 청혈의 효능은 10%증가였다. 그렇기에 영약을 먹은 것처럼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나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든든했다.

남자로서 잘 생겨지는 것이 싫을 리 있겠는가.

호칭은 미연시로 인해 얻었기에 남녀 관계에 도움이 되는 종류였다.

《신사의 품격.》

- 여인을 대할 때 신뢰감 10% 증가.

토끼 학살자보다는 훨씬 나은 걸?

‘등록.’

새 호칭을 등록하는 순간 잠들어 있는 백봉을 내려다보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러다 깨자마자 반하면 곤란한데.

남천휘는 히죽 웃으며 별 생각 없이 퀘스트 100회 완료 기념으로 얻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그런데 VIP가 무슨 뜻이냐? 좋은 거야?’

한데 재이의 알림이 이어지기도 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이런 날씨에 찾아올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남천휘는 황급히 창가에 붙어 섰다.

눈발을 헤치며 십여 명의 무인이 초옥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의 복색은 평범했지만, 머리에 봉황이라 새겨진 두건을 쓰고 있었다.

‘빌어먹을!’

어쩐지 보상이 너무 좋다 했다.

무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걸음을 멈췄다.

“이런 곳에 초옥이 있던가?”

“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장은 신중했다.

“백봉이 잡혔다는 소식은 아직이야. 그러니 경계를 늦추면 안 돼.”

“백봉은 야운산 쪽으로 도망쳤다던데요.”

무인 중 누군가 사내를 비웃었다.

“크큭, 저 놈은 아까부터 춥다고 칭얼거리더니 군불이라도 쬐고 싶은가봅니 다.”

사내는 속내를 들켰음에도 아랫도리를 움켜쥔 채 허세를 부렸다.

“허어! 형님, 백봉이 있으면 어떻소? 미혼약에 쩔었다니 우리가 풀어주면 되지 않겠소?”

대장은 수하의 농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충 살펴봐. 그리고 겸사겸사 잠시 쉬었다 가자.”

남천휘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엿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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