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1화 (11/305)

8, 백봉(白蜂)을 찾는 사람들.

8, 백봉(白蜂)을 찾는 사람들.

<천향다루>

확실히 새로 생긴 곳답게 차향은 좋았다.

게다가 추성현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 잡은 덕분인지 선남선녀로 북적거렸다.

하나 남천휘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짜증난다.’

어제도 밤늦게까지 수련을 하고 돌아왔던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우와 함께 곡부를 떠나 추성현까지 온 이유는 하나였다.

추성현에 배정된 수십 개의 퀘스트.

그리고 그것을 완수했을 때의 보상이 목적이다.

하나 그는 추성현에 온 후로 한 개의 퀘스트도 부여받지 못했다.

‘야! 물음표만 뜨면 뭐해? 왜 퀘스트를 안주는 건데? 내가 다 해결해준다잖아!’

◎ 대상 레벨에 해당되는 퀘스트가 아닙니다.

◎ 의뢰자와 친밀도가 부족합니다.

◎ 지속적인 만남과 대화를 통해 친밀도를 올리세요. 친밀도가 상승하면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을 겁니다.

남천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지금껏 곡부남가에 속한 가솔들의 고민을 수십 건이나 해결했다.

재이에게 이쯤 되면 해결사라는 직업이라도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하나 그는 우물 안 개구리였을 뿐이다.

‘내가 허접스러운 레벨인 것을 잊고 있었어.’

애초에 곡부남가의 가솔들은 그와 주종으로 묶인 관계였다. 그들은 윗사람이 친절하게 대해주니 알아서 고민을 털어놨던 게다. 그리고 윗사람이라는 지위를 이용하면 고민거리를 해결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하나 추성현(鄒城縣)은 달랐다.

이곳 사람들이 처음 보는 남천휘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친한 척을 해봤다.

하나 돌아오는 건 냉대였고, 운이 좋으면 물건을 내밀더라.

돈 내고 사라고.

‘젠장!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내가 여기까지 왜 왔는데!’

◎ 웅도의 제의를 수락했기에 차를 마시러······.

아! 레벨이 올라서 그런가.

은근슬쩍 놀리는 듯한 말투였다.

‘야! 레벨이 부족해서 못하고, 상대가 무인이어서 못하면 나 같은 저 레벨은 어디 가서 레벨 업을 하냐? 땅을 파봐! 경험치라도 나오나!’

◎ 반복 작업을 통해 소량의 경험치를 얻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 되는구나.

그건 몰랐네. 미안하다.

남천휘는 차를 한 입에 털어 넣은 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한데 그 순간 등짐을 짊어진 사내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얼굴에 아주 큰 고민이 있다고 써놓은 듯한 사내였다. 하나 남천휘와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기껏 퀘스트를 받으러 왔는데, 왜 의뢰를 안 하니?’

남천휘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친우가 근심어린 표정을 보였다.

“천휘야. 입에 안 맞아?”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친우인 웅도(熊圖)는 태생적으로 기골이 장대했다.

녀석이 뜨거운 차를 후후 불 때마다 소림의 외공을 익힌 사람이나 지닐 법한 울퉁불퉁한 근육이 꿈틀거렸다. 하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겁은 더럽게 많았다. 심약한 성격 덕분에 저 체구를 하고도 얻어맞기 일쑤였다.

남천휘는 씩 웃었다.

“향 좋네. 이런 곳은 어떻게 찾았냐?”

“흐흐, 내가 원래 차를 좋아하잖아.”

“야! 생긴 대로 놀아야지. 너한테 어울리는 건 고기야!”

웅도는 울퉁불퉁한 제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 돼. 고기 먹으면 근육 생겨. 요즘은 물만 마셔도 근육이 붙는 것 같아서 고민이야.”

저게 고민이냐? 자랑이냐?

남천휘는 유서 깊은 학자 집안의 장손인 친우를 보며 한숨을 흘렸다.

‘대과는 포기하고, 차라리 무공을 익혀.’

웅도의 외모에 등급을 매긴다면 레벨 20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싶다.

“근육 많아서 좋겠다.”

“안 좋아. 책 볼 때 불편해. 차 더 마실래?”

남천휘는 비어 있는 다구를 내밀었다.

“그래, 마시자!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온 몸에 냄새 정도는 달고 가야지.”

천향다루는 퀘스트의 유무를 배제하면 충분히 좋은 장소였다. 창밖의 풍경도 좋았고, 손님의 구성 비율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예쁜 여자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다가 차향 또한 비싼 값에 어울릴 만큼 괜찮았다.

“다녀올게!”

남천휘는 웅도가 일층으로 내려간 사이 창틀에 팔을 기댄 채 사색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너를 만나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구나. 진짜 바쁘게 살았네.’

◎ 대상자의 신체 능력을 고려하면 더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수련 단계를 올리시려면 1 번을······.

닥쳐! 이럴 때 훈훈함이라도 좀 느껴보자.

남천휘는 신경질적으로 상태창을 펼쳤다.

《남천휘(南天輝)》

- 소속 : 곡부남가(曲阜南家)

- 호칭 : 토끼 학살자

- 별호 : 없음

- 등급 : 7

- 성향 : 조건부 선(善)

- 조화 : 균형적(60)

근력(筋力) : 45. 민첩(敏捷) : 50.

체력(體力) : 45. 지혜(知慧) : 25.

내공(內功) : 40.

- 미 배분 능력치(+0)

한 달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등급을 올리고, 심신의 조화를 60까지 낮췄다.

게다가 능력 수치는 한 달 전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가 상승했다.

‘내가 이 정도라고!’

검법과 도법, 그리고 심법의 성취까지 논한다면 재이는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하리라.

다만 여전히 지혜 수치가 낮았다.

그래도 책만 보면 졸음이 쏟아지는 걸 어쩌겠는가.

제 팔자려니 해야지.

남천휘는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인벤을 열었다.

인벤의 상태는 예전과 비슷했다.

일명 아이템이라 불리는 보상품은 아무 때나 나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등급을 7개나 올렸음에도 보상은 5렙 때 받은 것이 전부였다.

남천휘는 자질구레한 것을 치워버리고 5레벨 때 받은 보상품을 확인했다.

≪오감 증폭제.≫

- 일시적으로 원하는 감각을 증폭합니다.(x4)

사실 딱히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한 번 써봤으니까.’

조상과 대련을 하던 중 너무 많이 두들겨 맞아서 화딱지가 났을 때였다.

오감 증폭제를 사용하여 촉각을 극대화했다.

조상의 공격을 멋지게 피한 후 반격하기 위함이었다. 하나 오감 증폭제를 사용했음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얻어터졌다.

아이템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격차가 아니었다.

‘역시 절정 고수는 대단해!’

조상이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그에게 얻어맞은 사람도 하찮지 않게 된다는 논리였다.

“어우! 추워. 아래층은 아주 냉골이야.”

남천휘가 망상에 빠져 있는 사이 웅도가 돌아왔다.

녀석은 일층에 잠시 내려갔다 온 것만으로도 추위에 벌벌 떨었다. 물만 마셔도 만들어지는 근육이라더니 아주 물 근육이다.

‘쯧쯧, 보온도 안 되는 근육을 어디에 쓰려나.’

크흠! 이 몸은 냉기 저항 수치가 무려 30이란다!

웅도는 차를 후후 불며 할짝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아직 소식 없지?”

남천휘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자소서와 원서를 낸 학관에 관한 이야기였다.

“해가 바뀔 때 연락 준다던 걸. 잠깐! 너 혹시 연락 왔냐?”

웅도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응, 어제 전서가 왔어. 우리 집이 학관에서 가까우니까 먼저 왔나 봐. 너도 곧 소식이 올 거야.”

남천휘는 축하 인사를 건넨 후 말했다.

“오늘은 네가 사라.”

“당연하지! 학관도 함께 다녔으면 좋겠다.”

“그래.”

“글공부도 같이 하고! 대과도 같이 보러 가고!”

그건 아니야.

이 몸은 ‘특급강호인승급체계’를 통해 지존이 되실 분이란다.

‘중얼거리는 것도 힘드네.’

그냥 레벨 업 시스템이라 불러야겠다.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마셔라!”

좋은 녀석과 함께 보내는 시간인지라 충분히 즐거웠다. 퀘스트 따위야 내일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그 때 다루의 일층이 소란스러웠다.

마치 대단한 사람이 행차한 것처럼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층까지 전해졌다.

“봉황곡이다. 봉황곡이야. 백타선자도 오셨어. 큰일이라도 난 걸까?”

“눈 마주치지 마. 잡혀간다.”

잠시 후 백의를 걸친 세 명의 여인이 이층에 올랐다. 흰 두건과 흰 무복, 몸매를 가린 피풍의와 검집마저 흰색이다.

“천휘야, 진짜 봉황곡이야.”

가슴에 봉황이라고 새겨놨으니 봉황곡이겠지.

하나 웅도가 겁먹는 것도 일견 이해는 갔다.

봉황곡(鳳凰谷)은 강호 칠대금문(七大禁門)에 속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엮이지 말아야 할 일곱 개의 세력 중 하나라는 뜻이다.

하나 사내들은 봉황곡을 그냥 두지 않았다.

곡주를 비롯한 소속원들은 모두 여자였고, 저마다 뛰어난 미색을 자랑했다. 그러니 아랫도리를 간수하지 못한 사내놈들이 시시때때로 봉황곡에 숨어들었다. 하나 지난 십 년 간 단 한 명도 돌아온 사람이 없다더라.

그러던 중 괴이한 소문이 돌았다.

봉황곡의 여인들은 후사를 잇기 위해 마음에 드는 사내를 강제로 끌고 간다는 허황된 정보였다.

‘그런 애도 믿지 않을 소문이라니. 하여간 다른 건 몰라도 예쁘긴 진짜 예쁘네.’

남천휘는 여인을 힐끔거리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눈을 마주친 귀여운 소녀가 헤죽 웃더니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크흠.”

남천휘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외간 여자와 경박하게 이러면 안 되지.’

결코 겁이 나서 회피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 봉황곡의 여인들은 탁자를 돌며 자리를 비워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눈웃음에 넘어간 걸까, 아니면 두려웠기 때문일까.

뭐가 됐든 웅대는 자신에게 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봉황곡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남천휘에게 눈인사를 하던 소녀가 일층으로 향하더니 중년 미부(美婦)와 함께 나타났다.

저 여자가 백타선자인 듯했다.

“아.”

웅대는 남천휘가 탄성을 흘리자 소매를 잡아끌며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처음 봐.”

세 자리 수 레벨은 처음 본다.

남천휘는 신선이라도 본 사람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이름 : 백타선자(???)

백타선자라는 별호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하 100레벨의 고수라는 말이 아닌가.

‘강호는 넓고, 기인이사는 많다더니.’

남천휘는 새삼 자신의 허접스러움을 깨닫고, 시무룩함을 금치 못했다.

잠시 후 일층에 있던 봉황곡의 여인들이 전부 이층에 올랐다. 십여 명 남짓한 여인들의 머리 위에는 죄다 두 개의 물음표가 둥실둥실 떠 있었다.

‘곡부남가에 두 자리 레벨은 열 명이 전부인데.’

곡주도 아닌 사람이 세 자리라니.

저 정도 레벨이면 장로쯤 되겠다.

“장로께서 쉬시는 동안 주위를 경계하라.”

역시 장로네.

통통한 체구의 여인이 내뱉은 말에 인의 장막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백타선자와 마주앉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흐음.’

남천휘는 인의 장막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두 여인의 표정을 보고 침음을 흘렸다.

대화를 주고받는 모양새가 더없이 진지했다.

마치 강호의 중대사를 논의하는 듯하지 않은가.

‘멋있다.’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하나 이 장은 넘게 떨어진 거리로 인해 두 여인의 대화가 들릴 리 만무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소리 없이 읊조렸다.

‘오감 증폭제. 사용. 아! 청각으로.’

그 순간 잡다한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려왔다.

촉각을 증폭시켰을 때에는 바람에 피부가 뜯겨나가는 듯하지 않았던가.

청각을 증폭시킨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귓속에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듯했다.

그래도 잠시나마 강호의 중대사를 엿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들려라. 들려라.’

두 여인이 있는 방향으로 신경을 집중하는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백봉의 위치는?”

“현재 미혹대주를 필두로 대원들이 야산을 훑고 있습니다.”

백타선자가 잠시 이를 갈았다.

“크흑! 반드시 산 채로 잡아야 하네.”

“그 계집의 내공이 제아무리 심후하다고 해도 미혼약에 중독됐습니다. 수십 명을 중독시킬 분량이니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통통한 여인은 호언장담을 했다.

목소리의 어투만 들어도 백봉이라는 여인에게 원한이 깊은 듯보였다.

“자네만 믿네. 잠깐!”

그 순간 백타선자가 탁자를 후려치더니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쾅!

그녀는 탁자 위에 선 채로 다루의 내부를 살폈다.

“선자, 무슨 일이십니까?”

통통한 여인은 검배에 손을 올렸고, 봉황곡의 여인들은 아예 검을 절반이나 뽑은 채로 대기했다.

백타선자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읊조렸다.

“누군가 엿듣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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