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2)
*
조상은 좋은 사람이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느냐고?
저 사람 머리 위에 새로운 표식이 생겼거든.
◎ 약식으로 사제(師弟) 관계가 성립됐습니다.
◎ 조상의 기본 정보가 공유됩니다.
그 결과 조상의 머리 위에는 등급 외에도 새로운 정보가 나열됐다.
이름 : 조상
등급 : 31
지위 : 북풍대주
관계 : 조건부 사제
호감 : 친밀
등급이 무려 31이다.
절정의 무위를 포함하더라도 예상보다 높았다.
한데 그런 조상조차 곡부 내에서 무명(無名)에 가까웠다. 강호에 고수라고 알려진 자들의 등급은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결론이 나왔다.
‘나는 그냥 약한 게 아니야.’
엄청 약했다.
지나가는 고수가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존재였다.
레벨 업을 했다고 신나하던 기억만 들어낼 수 없을지 재이에게 물어봐야겠다.
이럴 때에는 화제 전환이 최고다.
‘흐음, 조건부 사제는 당연하고.’
어차피 섬영검을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일 뿐이다.
오히려 호감도가 시선을 끌었다.
친밀(親密)이라니.
말뜻만 봐도 엄청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재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나쁜 쪽으로는 적의(敵意)와 살심(殺心), 그리고 필멸(必滅)이었다. 그리고 좋은 감정의 단계가 호의(好意). 친밀, 신뢰(信賴)라고 하더라.
신뢰는 가족과 의형제, 그리고 진짜 사제관계에서나 이뤄지는 관계였다. 그러니 친밀은 타인과 평범하게 교류해서 얻어낼 수 있는 최고의 인맥이었다.
‘나랑 뭘 했다고 친밀이야?’
남천휘는 정용단을 내밀며 송겸에게 질문했다.
“송 대원, 혹시 이거······.”
송겸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대주께 받았습니다. 대주께서 북풍대원 모두에게 만들어주셨지요.”
역시 예상대로다.
저 사람은 자신의 비전(秘傳)을 남에게 베푸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잠깐! 북풍대의 대원은 오십 명이잖아.
잠시 오십 명 분의 정용단을 만들기 위한 약재를 떠올렸다.
아찔했다.
‘어차피 비운고에서 얻어왔겠지. 내 것도 아닌데 아까워하지 말자.’
더불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곡부남가처럼 부유한 가문에서 한 개의 타격대만 운용하는 이유를 말이다.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었으리라.
돈 먹는 괴물들이 눈앞에 있었네.
“자! 이제 준비하세요.”
남천휘는 망상에 빠져 있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느새 자신이 가부좌를 한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에 조상이 자리했다.
불현 듯 자신의 허리를 감싼 채 상체를 비틀던 송겸이 떠올랐다.
‘설마 또 몸풀기?’
다행히 조상은 허리를 감싸는 대신 양 손을 남천휘의 정수리와 등에 댔다.
“운기를 돕겠습니다. 송겸! 호법을 부탁하네.”
송겸은 두 사람을 등지고 섰다.
연무장의 유일한 출입구를 살피는 게다.
“정용단을 복용하십시오.”
남천휘는 조상의 진중한 한 마디에 손가락 두 마디만한 단약을 입안에 넣었다.
쓰디쓴 약재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조상의 두 손에서 흘러나온 후끈한 기운이 정수리와 등을 통해 전해졌다.
“섬영검법의 장점은 달리 심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삼황내문의 방식으로 운기를 하셔도 됩니다. 제가 구결을 외우고 있으니 내력을 일으키시면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남천휘는 눈을 감았다.
후끈하지만 부드러운 기운이 몸속을 휘돈다.
조상의 마음이 전해질 만큼 조심스러운 운기였다.
‘이러면 조 대주가 많이 힘들 텐데?’
운기조식(運氣調息)이 느릴수록 체력과 내공의 소모가 극심한 것은 당연했다.
“집중하십시오!”
남천휘는 조상의 일갈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내 완전히 몸을 맡겼다.
이내 조상의 기운은 남천휘의 혈맥을 주무르며 내공을 인도했다.
추궁과혈까지 덤으로 얻었다.
즉, 좋은 말(馬)을 얻은 것뿐 아니라 잘 닦인 길을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좋다.’
정용단으로 얻을 수 있는 내공은 이 년이다.
하나 남천휘는 오 년의 내공을 얻었다.
절정고수인 조상이 직접 운기조식을 돕고, 추궁과혈까지 해준 덕분이다.
그 결과 내공 수치는 절반이나 증가했다.
기연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늦은 밤 처소로 돌아온 남천휘의 얼굴은 풀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창백했다.
“아! 진짜 죽을 것 같아.”
물체가 두 개로 겹쳐서 보였고,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조상은 단순한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치가 떨릴 만큼 좋은 사람이다.
과유불급이라는 성어가 영혼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운기조식을 도와줄 때만 해도 남천홍 대신 조상을 형이라고 부를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천휘는 조상과 수련을 시작한 후 일각 만에 도주를 꿈꿨다.
‘저거 정상이 아니야.’
조상의 교육은 검법과 도법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파지법과 자세는 물론이고, 도검의 유불리를 논하는 모습은 마치 금군의 교두를 연상케 했다. 발끝의 방향을 맞추는 자세 연습만 백 회를 넘겼을 정도였다. 운기조식을 하던 순간이 꿈이라고 여겨질 만큼 혹독한 수련이었다.
조상은 전생에 진지함이라는 벌레였던 것처럼 진지했다. 하나 매순간 진지한 그를 앞에 두고 설렁설렁 수련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운기조식에 추궁과혈까지 해준 은인이 아닌가.
결국 전력을 다하고 퍼졌다.
남천휘는 저녁도 거른 채 넋두리를 늘어놨다.
“내 생애 가장 힘든 하루였어.”
얼마 전 토끼를 잡겠다고 눈 내리는 산 속을 헤맸을 때가 오히려 그리웠다.
남천휘는 조상이 수련을 끝내며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 아침 일찍 오실 거지요?
- 저는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소름 돋아.’
다시 보자는 말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자유분방하던 그의 발에 족쇄라도 채워진 기분이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야반도주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보따리 하나만 들고 떠나는 거지.
그리고 산 좋고, 물 좋고, 수련 없는 곳에 자리를 잡자. 찾아보면 주인 없는 집 한 채 정도는 있지 않겠어.
‘그곳에서 착하고, 어여쁜 여인과 혼인을 한 후에 떡두꺼비 같은 자식도 낳고······.’
망상이 이어질수록 눈이 감겼다.
한데 눈이 완전히 감기기 전 시야 상단에서 반짝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조상의 가르침을 받을 때마다 재이가 한참동안 중얼거렸던 것이 떠올랐다.
‘으으, 상태창.’
남천휘는 반쯤 잠이 든 상태로 상태창을 펼쳤다.
등급 변화는 없었지만, 조화의 수치가 조정됐다.
68에서 62가 되었다.
부쩍 늘어난 내공의 영향일 터였다.
‘균형적이면 좋지.’
근력(筋力) : 27. 민첩(敏捷) : 30.
체력(體力) : 29. 지혜(智慧) : 20.
내공(內功) : 30.
며칠 사이에 많이도 올랐구나.
엄밀히 따지자면 오늘 하루 올라간 상승폭이 가장 컸다.
조상은 진중한 성격답게 수련 과정도 꼼꼼했다.
그 덕에 힘든 만큼 쉽게 익숙해졌다.
아무래도 북풍대주라는 자리를 무공으로만 따낸 것은 아닌 듯했다.
남천휘는 길게 숨을 흘렸다.
능력 수치가 상승한 것을 보고 나니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깔끔하게 사라진다.
“자야겠다.”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
한 달이 지났다.
완연한 겨울이 되었으니 새해도 코앞이다.
시시때때로 내린 폭설 덕분에 온 세상이 하얗다.
하나 남천휘에게만은 온 세상이 잿빛으로 물든 듯했다.
조상은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은 사람처럼 남천휘를 가르쳤다.
덕분에 능력치는 빠르게 상승했다.
심법인 삼황내문의 성취가 7성을 찍었고, 섬영검법의 성취는 삼 성에 이르렀다.
그리고 중양칠도와 마찬가지로 섬영검법에 대한 퀘스트가 발동했다.
임무 명은 ‘무인이 되어라.(2)’였다.
왠지 돌려쓰는 듯한 퀘스트 명이었지만, 보상이 두둑할 것을 생각하니 절로 힘이 솟았다.
게다가 퀘스트는 날이 갈수록 늘었다.
재이의 설명에 의하면 반드시 행해야 하는 주요 임무와 달리 선택적으로 수행이 가능한 보조 임무란다.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남천휘도 경험치와 보상을 위해 작은 임무조차 등한시 하지 않았다.
다행히 보조 퀘스트를 완료하는 건 손쉬웠다.
짐을 날라 주거나, 연애 서찰을 전하는 간단한 일부터.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기도 했고, 다툰 사람들을 화해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퀘스트의 노예, 아니 경험치의 노예로 살던 어느 날이었다.
“천휘야! 날도 좋은데 놀러 가자. 추성현에 엄청 좋은 다루가 생겼단다. 한량인 우리가 개시를 해줘야지!”
남천휘는 문 밖에서 들려온 친우의 목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이른 아침부터 조상과 지옥 수련을 하고 온 그로서는 귀찮기 그지없는 호출이었다.
없는 척 할까?
그래도 한 달만에 찾아온 친구인데.
남천휘가 고민하는 사이 소혜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헤! 조금 전에 일어나셨어요. 옷을 갈아입으실 동안 차라도 드시겠어요?”
저 눈치 없는 것.
아버지를 좋아할 때부터 알아봤다.
‘시비를 바꾸던가 해야지.’
남천휘는 한숨을 내쉬며 이불속에서 기어 나왔다.
지난 밤 늦게까지 수련을 한 탓에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렇기에 단호하게 거절을 할 요량이었다.
“야!”
한데 그 순간 재이의 알림이 들렸다.
평소와 달리 다소 어투가 기계적이다.
◎ 지도를 업데이트 합니다.
◎ 곡부 외에 추성현이 지도에 추가됩니다.
그 순간 시야의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맵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지도가 확대되더니 추성현의 지형으로 보이는 곳이 추가됐다.
“어?”
남천휘는 탄성을 흘렸다.
까맣게 칠해진 지도 위에는 수십 개의 물음표가 번쩍이고 있었다.
“이게 다 뭐야?”
◎ 추성현에 생성된 퀘스트의 위치입니다.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수십 개의 퀘스트를 완료했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노다지 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