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따따따따 배배배배.
5, 따따따따 배배배배.
첫 임무를 완료한 기쁨은 잠시였다.
남천휘는 임무 완료의 단초를 제공한 소혜에게 감사를 표하려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소혜는 자신을 마주하더니 딸꾹질을 하며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남천휘는 그제야 자신의 몰골을 확인했다.
그 사이 주변에 있던 가솔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평범한 삼공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모습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첫 눈이 왔잖아! 다 같이 뜨끈한 토끼탕을 먹으면 겨울을 무탈하게 보낼 수 있을 거야. 잔치다! 잔치를 벌여보자!”
남천휘는 첫 눈을 기념하겠다는 핑계로 위기를 벗어났다. 대신 자신이 벌인 일을 스스로 마무리해야 했다. 결국 남천휘는 수십 마리의 토끼를 손질한 후에야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아! 지친다.”
가솔들은 뜻밖의 고깃국에 즐거웠을 게다.
하나 남천휘는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침상에 던졌다.
“손에 감각이 없어.”
눈을 감는 순간 그대로 곯아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나 이대로 잠들 수는 없다.
힘겨운 하루를 보냈으니 대가를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태창을 열자 많은 변화가 보였다.
가장 먼저 호칭이 눈에 띈다.
《토끼 학살자.》
- 낮은 레벨을 대할 때 위압감 10% 증가.
등록하겠냐는 질문이 왜 이렇게 밉상 같을까.
‘이거 아무리 봐도 놀리는 것 같은데?’
낮은 등급을 대했을 때 위압감이 증가한다니.
보통은 강자를 상대로 버틸 수 있는 뭔가를 줘야 맞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꼼수를 사용해서 이상한 것을 준 것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없는 것보다 낫지.’
남천휘는 피식 웃으며 호칭을 등록했다.
어차피 호칭보다 궁금한 건 첫 호칭을 얻음으로서 지급된 보상이었다.
처음은 누구나 설레는 법이다.
첫 월봉, 첫 사랑, 그 중에서 최고는 이처럼 예기치 못한 첫 선물이리라.
인벤토리를 열었다.
일단 첫 임무에 대한 보상은 능력치였다.
미 배분 능력치는 20개에서 5개가 늘어나 25개 되었다.
‘뭘 올려야 할까?’
하나 정작 고민해야 할 건 그게 아니더라.
인벤을 확인하는 순간 미배분 능력치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졌다.
‘와! 있어 보이는 주머니가 두 개나!’
두 개의 주머니에는 각기 특별 보상이라 적혀 있었다. 아마도 첫 퀘스트와 첫 호칭에 대한 보급품이리라.
‘까보면 알겠지.’
남천휘가 읊조리는 순간 주머니가 저절로 풀려나더니 빛과 함께 사라졌다.지급된 알약은 선단이라 적혀 있었다.
그 자리를 삼색(三色)의 알약이 차지했다.
종류 별로 3개씩
‘맙소사! 이거 설마?’
남천휘는 선단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선단(仙丹)은 도교의 연단술로 만들어낸 단약을 뜻했다. 즉 체력을 보전하고, 내력을 늘려주는 영약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대치가 하늘을 찔렀다.
‘확인.’
《중급 적선단》
체력의 이 할이 즉시 회복된다.(가치:60)
《중급 벽선단》
내공의 이 할이 즉시 회복된다.(가치:60)
《중급 녹선단》
중급 이하의 독을 즉시 무효화한다.(가치:100)
결론적으로 영약은 아니다.
그저 체력과 내공을 회복시킬 뿐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남천휘의 두 눈은 점차 환희로 물들었다.
체력은 휴식으로, 내공은 운기조식으로 회복하는 것이 상식이다. 한데 적선단과 벽선단은 ‘즉시’ 발동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없애버렸다.
‘필요할 때 아무렇게나 먹을 수 있다면······.’
위기 시에 선단을 먹는 것만으로도 돌파구가 생기는 셈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적선단(赤仙丹)을 먹고 힘이 솟거나, 벽선단(碧仙丹)을 먹고 기력이 솟구친다고 생각해 보라.
게다가 녹선단(綠仙丹)의 존재는 목숨을 하나 더 챙겨놓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독공은 익히기 어려운 만큼 최고의 효과를 내지 않던가. 무엇보다 첫 호칭 기념으로 지급받은 녹선단의 가치가 100이다.
60도 놀랍지만, 100은 생전 처음 보는 수치였다.
‘좋아, 좋아!’
남천휘는 비교를 위해 ‘무공’을 활성화했다.
▼ 능력(有) ▼ 장비(有) ▼ 무공(有)
▼ 특기(無) ▼ 비책(無) ▼ 인맥(有)
그 순간 그가 익힌 무공과 심법이 간략한 설명과 함께 나타났다.
《삼황내문》
- 내공 증진을 위한 호흡법.
- 숙련도(34/100). (가치 :20)
《중양칠도》
- 곡부남가의 가전무공으로 직도를 사용하는 패도(覇刀)적인 도법.
- 숙련도(39/100). (가치 :20)
심법(心法)인 삼황내문과 도법(刀法)인 중양칠도는 모두 곡부남가의 시조인 남추(南秋)가 창안했다.
시조인 남추는 일평생 백 자루의 무기를 부쉈다고 해서 백파도(百破刀)이라 불렸다.
또한 한 때 산동십대고수라 불릴 만큼 고수이기도 했다. 낭설로는 산적 출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조상의 일이니 믿지 않도록 하자.
어쨌든 삼황내문과 중양칠도는 그런 고수가 후대에 전한 무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법과 도법의 가치는 고작 20에 불과했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것 참.’
중급 선단의 고평가와 가전무공의 저평가 사이에서 마음이 복잡했다.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호주머니를 뒤적였다.
선단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기 위함이다.
하나 주머니 속에는 선단이 없었다.
‘재이, 선단이 없잖아!’
◎ 기타 아이템은 시스템 상에서만 존재합니다.
남천휘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림의 떡이라는 말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 사용해?’
◎ 명칭을 거론하고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 자동적으로 활성화됩니다.
남천휘는 저평가 된 가전무공에 대한 아쉬움을 천리 밖으로 훌훌 날려버렸다. 그만큼 기타 아이템의 활용법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하하, 상대방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뛰겠군.’
그는 적벽단 사용을 읊조리려다 황급히 입을 막았다. 분명 첫 임무와 첫 호칭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급된 아이템이 아니던가.
언제 또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토끼 잡느라 지친 몸에 사용하기에는 과분했다. 게다가 호화로운 보상 덕분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이제 능력치를 배분할 차례였다.
남천휘는 자신의 상태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산에서 하락했던 능력치가 원상 복귀된 상태였다.
근력(筋力) : 10. 민첩(敏捷) : 5.
체력(體力) : 11. 지혜(智慧) : 6.
내공(內功) : 5.
- 미 배분 능력치(+25)
일견하기에도 근력과 체력 쪽에 편중됐다.
하나 그가 수련한 중양칠도(重陽七刀) 자체가 힘을 중시하는 도법이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남천휘는 별 생각 없이 근력과 체력 쪽에 스탯을 배분하려다 멈칫했다.
‘재이, 스탯은 계속 1씩 주는 거야?’
◎ 등급과 성취에 비례하여 지급됩니다.
예상대로다.
지금이야 스무 개가 많아 보이지만, 나중에 가면 하루 만에 얻어낼 수도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고른 성장이 우선시되어야 했다.
당장 중양칠도를 대성한다고 해서 고수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심신의 균형이 무너지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 수도 있다.
‘기본기가 중요한 건 상식이니까.’
게다가 상태창에 나타난 다섯 가지 능력 중 버릴 것이 없었다. 심지어 지혜조차 비급을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필수가 아닌가.
그러니 더 이상의 치우침은 자제하는 편이 옳았다.
남천휘는 스탯을 고르게 배분했다.
근력(筋力) : 12. 민첩(敏捷) : 12.
체력(體力) : 12. 지혜(智慧) : 12.
내공(內功) : 14.
- 미 배분 능력치(+0)
놀라운 경험이 연이었다.
근력을 올리자, 주먹을 쥐었을 때의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그 주먹을 내뻗었을 때 민첩 상승의 위력을 실감했다.
허공을 가르는 속도가 달랐다.
입에서 가쁜 숨을 내뱉을 때와 달리 공간을 가를 때마다 파공음이 들렸다.
그렇게 수십 회나 주먹을 휘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았다.
체력 상승의 의미를 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지혜를 올렸을 때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오늘 한 일과 내일 할 일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고작 해야 12가 되었을 뿐이지만 천재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크큭!”
무엇보다 내공의 증가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내공 수치를 올릴 때마다 단전이 꿈틀거렸다.
“후우.”
바람이 호흡을 따라 스며들었다.
그러면 재이가 바람에 섞인 기운 중 정순한 것만 골라서 단전에 쌓아주는 듯했다.
하여 12로 맞추려던 내공을 14까지 올렸다.
그리고 배분이 끝났을 때 자신의 내공이 두 배 이상 늘어났음을 깨달았다.
좁쌀 한 알만한 내공이 두 개로 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천휘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뿌듯한 미소를 보였다.
“하아, 이거 미치겠네.”
한 번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내공이란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변화를 체감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비약적으로 내공이 늘어나려면 영약을 먹거나, 깨달음을 얻어야 했다.
한데 그 모든 과정이 한순간에 이뤄졌다.
마치 내공 수치를 올릴 때마다 영약을 먹는 기분이었다.
“기분 최고야!”
남천휘는 침상에 누운 채로 발버둥을 쳤다.
앞으로 스탯을 올릴 때마다 체감될 위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빴다.
“안 되겠어.”
자리를 박차고 마당으로 향했다.
자신의 의지로 시도하는 첫 수련이었다.
*
몸이 좋아진 건 확실했다.
하나 무공을 펼치는 건 별개의 문제다.
강한 힘을 지녔어도, 좋은 머리를 지녔어도 평생 절정의 경지를 밟지 못하는 무인이 대다수였다.
남천휘는 도갑에 꽂혀 있던 도를 뽑은 후 앞마당으로 나섰다.
“후우.”
곡부남가의 가솔들이 사용하는 병장기는 곧게 뻗은 직도(直刀)였다. 하나 평소 쉬이 접할 수 있는 직도와 달리 투박했다.
도신(刀身)은 일반적인 도보다 짧고, 손잡이인 도병(刀炳)은 조금 더 길었다. 여차하면 두 손으로 내리찍을 수 있게 만들어진 도였다.
게다가 날이 있는 반대편에는 고리가 걸려 있었고, 도병의 끝에도 손가락 두 개를 넣을 만한 고리가 존재했다.
환수도(環首刀)의 일종이지만 조금 실용적인 모양새였다.
속된 말로 품위가 느껴지는 병장기는 아니었다.
‘정말 산적이었을 수도······.’
남천휘는 직도를 쥔 채 장비창을 확인했다.
▼ 능력(有) ▼ 장비(有) ▼ 무공(有)
▼ 특기(無) ▼ 비책(無) ▼ 인맥(有)
두 번째 목록을 중심으로 번쩍이더니 사람의 형상을 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무복 상의와 하의, 그리고 신발 외에도 직도가 등록되어 있었다.
《수련용 직도》
- 수련을 위해 날을 없앤 직도.(가치:3)
- 추가 능력치 없음.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추가 능력치가 없다는 말은 좋은 병장기에는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닌가.
‘호오!’
아버지가 재작년 구입했다던 보도(寶刀)가 떠올랐다.
기회가 되면 보도를 쥐고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병장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직도를 고쳐 잡았다.
오른 손에 쥔 직도를 눈높이까지 올렸다.
그리고 왼 손을 오른 손목 위에 얹었다.
“후우.”
천천히 직도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팔목과 상박은 직각.
이대로 도를 빠르게 내리치면 중양칠도의 첫 초식인 일도격(一刀擊)이 시작된다.
한데 정신을 집중해 일직선으로 도를 내리그으려는 순간 예기치 못하게 알림이 들려왔다.
《무인이 되어라. (1)》
- 중양칠도를 7성까지 익히세요.
- 제한시간 : 15일.
남천휘는 입을 벌린 채 눈을 끔뻑였다.
퀘스트가 하루에 두 개씩 뜨는 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난이도가 너무 높지 않은가.
‘보름 만에 7성이라고?’
실상 남천휘의 자질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머리는 상재가 있는 큰형이 나았고, 몸을 쓰는 건 날쌘 둘째가 월등했다.
시녀들의 말처럼 가주를 닮은 수려한 외모와 북풍대주 조상이 욕심내는 호리호리한 체구를 제외하면 딱히 자랑할 것이 없는 평범한 몸뚱이였다.
게다가 본인 스스로도 무공에 욕심내지 않았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인해 안 될 일에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삼 년 가까이 수련한 중양칠도의 성취는 삼 성에 머물렀다.
한데 그걸 보름 만에 칠성까지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야!”
남천휘는 허공을 보며 인상을 썼다.
“지금 내가 꼼수 썼다고 이러는 거냐?”
대답 대신 재이의 알림이 들려왔다.
◎ 수련을 돕기 위한 가상 표식이 제공됩니다.
표식은 5종류로 구성되며 타점(打點)과 투로(套路)가 정확할수록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영문 모를 표정을 짓기 무섭게 직도의 끝에 점이 찍혔다. 손톱만한 점의 테두리를 흰색 원이 감싸니 마치 과녁 같았다.
‘저게 표식? 저걸 맞추면 무슨 효과가 있어?’
◎ 표식은 리듬게임에서 차용된 기능으로 단순반복의 수련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리듬게임을 완수한다면 더불어 심신의 활력을 상승시킴으로써 집중력을 향상시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