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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209화 (209/210)

< -- 209 회: 만방의 제왕 황제 이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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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와 제 비빈 그리고 황자들이 모두 모이자 황제 이진은 이미 준비된 연(輦)에 올랐다. 이에 따라 앞뒤로 금군 소속의 경호요원들이 열을 짓고 그 사이로 수많은 휘장과 깃발이 나부끼는 속에서, 일산을 받쳐 든 황제 이진의 가마가 모후가 거처하는 통명전으로 향했다.

뒤로는 황후를 비롯한 제 비빈들이 가마를 타고 따르고, 황자들 또한 말을 타고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거창한 행렬이 통명전 앞뜰에 도착하자 전각문이 활짝 열리며, 황태후 박 씨를 모시는 상궁나인들이 열을 지어 기단 위에 섰다.

그리고 정면에는 이제 머리숱이 없어 남의 머리까지 빌려 가채머리를 한 황태후 박 씨가 합죽 웃음을 머금고 백발이 성성한 아들을 마중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황상!”

“하하하........! 해가 지니 날이 차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어마마마!”

“그래요. 황상!”

황제 이진과 황후 및 제 비빈들이 전각 안으로 들자 빠르게 전각문이 닫혔다.

“옷은 단단히 입으셨는지요? 어마마마!”

웃음을 머금고 묻는 황제 이진의 물음에 치아가 다 빠져 볼품없이 된 황태후 박 씨가 답했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 해도 아래 것들이 얼마나 성화인지, 안 입을 수가 없어서 솜 누비옷을 안에 받쳐 입었다오. 황상!”

“고뿔이 걸리면 큰일이옵니다. 어마마마! 이제 연치가 계시니 잘 낫지를 않아요. 아래 것들이 충정으로 올리는 말씀이오니, 가급적 따르는 것이 어마마의 신상이나, 아래 것들을 위해서라도 좋사옵니다. 어마마마!”

“알아요. 아니까 따르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나 저러나 시간이 다 되어가는 모양이니 더 늦기 전에 어서 가십시다.”

“그러실까요? 어마마마!”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황제 이진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소자의 손을 잡으시지요.”

“호호호........! 아직은 정정한데.......”

“그래도요.”

“그럼, 그럽시다.”

마지못한 듯 그러나 기꺼운 웃음으로 황에 이진의 손을 잡고 어느새 활짝 열려 있는 전각문을 나서는 모자였다.

뜰에 당도한 황제 이진은 사양하는 황태후 박 씨를 황제 전용의 연에 함께 태웠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이 거창한 행렬은 오늘 경축연이 열리는 경회루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소요소에 대낮 같이 횃불이 환하게 밝혀진 길을 걸어, 이들이 경회루에 당도하자 은은한 주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가볍게 모후를 품에 안고 내린 황제 이진이 그녀를 땅에 내려놓자마자 엎드리며 말했다.

“소자의 등에 업히시옵소서!”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 황상은 체통을 지키도록 하세요.”

“단을 오르다 삐끗하기라도 하시는 날이면 큰일이옵니다. 어마마마! 하니 무슨 체통을 운운하겠사옵니까? 어마마마! 어서 업히시옵소서!”

황제의 종용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등 뒤에 섰지만, 그 연세에도 황태후는 쑥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이에 황제 이진이 모후를 덥석 엎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기 시작했다.

새로 증축을 한 경회루는 세 배로 넓어짐은 물론 2층에는 5층의 단도 설치되어 있어 평면구조가 아니었다. 해서 지금 황제 이진은 2층으로 난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황제 이진이 모후를 업고 계단을 오르는 가운데, 2층 내에는 벌써 조선의 황족 및 문무대신은 물론 외국에서 온 경축사절로 인해, 누각 전체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속에 황제 이진이 모후를 엎고 등장하자, 은은히 울려퍼지던 주악이 일제히 멎고 자리에 임했던 모든 이들이 부복해 외치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만 만세!”

“제 경들은 그만 일어나거라!”

“황제 폐하! 만 만세!”

“만 만세!”

다시 한 번 황제의 만세를 기원하는 외침이 장내에 울려퍼지며 제 신(臣)들이 허리를 폈다.

여전히 황태후를 업은 황제 이진이 다시 한 번 5층으로 된 단을 오르려 하자, 미리와 대기하고 있던 황태자 이 흔이 황제를 부축하며 말했다.

“어서 오르시지요. 아바마마!”

이에 싱긋 웃은 이진이 물었다.

“이 아비의 뜻을 따르는 것이지?”

“.........”

묵묵히 말이 없는 아들을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던 이진이 돌연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여전히 모후를 업고 최상층 5단 중앙에 마련된 용상까지 걸어갔다. 이내 모후를 내려놓은 이진이 말했다.

“앉으시죠. 어마마마!”

“그래요.”

황태후 박 씨가 옆의 보다 작은 태사의에 앉자, 황제 또한 용상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황제 옆으로는 황후 허 씨가 자리를 잡고, 그 옆으로는 비빈들이, 우측으로는 광해를 비롯한 황자들이 열 지어 앉았다. 황태자 또한 태자비와 함께 아랫단에 마련된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 각 품계에 따라 미리 지정된 좌석에 제 황족과 문무 대신들이 자리를 잡자, 황제 이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소와 함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하하........! 기분 좋다! 자고로 열성조 가운데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정사에 임한 이가 몇이나 되던고? 짐 어언 45년을 쉴 새 없이 달려와 오늘에 이르렀거늘. 이제 세상은 대 조선제국의 기치 아래 포성이 멎은 지 어언 십여 성상. 칼과 총은 녹아 논과 밭을 일구는 도구가 되었고, 세계 각국은 한 이웃이 되어 평화 속에서 풍요로움을 다투게 되었다. 짐이 회갑을 맞은 것을 떠나, 이 모든 일을 경하하는 의미에서라도 축배를 들도록 하자! 자, 각 자의 잔에 술을 치고, 전악은 어서 풍악을 무엇 하고 있는 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수백의 나라를 대표해서 온 각국의 사절들이 일제히 고개 조아려 화답하는 가운데 황제 이진 또한 모후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이 기쁜 날 어찌 술 한 잔이 빠질 수가 있사옵니까? 어마마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한 잔 올리겠사오니, 어마마마께서는 단지 입술이나 축이시옵소서!”

“어찌, 오늘 같이 기쁜 날, 입술만 축일 것이더냐! 본 후 또한 대취하여 아들의 품에 안겨가겠노라!”

“하하하.......!”

“호호호.......!”

황태후의 말에 모두 즐거운 웃음을 짓는 가운데 황제 이진은 모후는 물론 옆의 허 황후에게도 술 한 잔을 안기며 말했다.

“당신도 고생이 많았소. 어서 한 잔 쭉 들구려.”

“신첩이야 고생한 것이 무엇 있겠사옵니까? 오직 황상을 받들어 모시고 사는 동안 오히려 즐거움이 더 많았사오니, 오로지 황상의 은덕이 아닌가 하옵니다. 황상!”

“하하하........! 좋소! 제 비빈들도 어서 각자의 잔에 술을 쳐, 오늘의 기쁨을 함께 즐기도록 하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이렇게 일 순배가 끝나자 황제 이진은 스스로 술 한 잔을 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모두 주목하라! 짐이 오늘 중대 발표를 하겠노라!”

황제 이진의 위엄 가득한 말에 장내의 소음이 일제히 멎고 숙연한 가운데 황제 이진이 여전히 위엄 충만한 모습과 목소리로 말했다.

“짐은 오늘을 기해 모든 정무에서 손을 떼고, 앞으로 모든 정사는 황태자 흔이 주관할 것이니라! 따라서 짐은 상황으로 물러나 중대 문제만 관여할 것이니, 제 신과 경들은 그런지 알라! 하여 이 술은 그런 의미에서의 잔이니 황태자 이 흔은 어서 나와 이를 받거라!”

“아니 되옵니다! 황상 폐하!”

“거두어 주시옵소서! 황제 폐하!”

외치다 못해 여기저기 흐느끼는 것은 물론 심지어 머리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찧는 신하들까지 돌연 장내가 울음바다가 된 가운데, 어쩔 줄 몰라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황태자 이 흔에게 황제 이진은 스스로 다가가 그 잔을 안겼다. 그리고 말했다.

“종전에 짐이 말했듯이 백발이 성성하도록 정무를 돌본 이 그 몇이던가! 짐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이는 경축할 일이지 울 일이 아니니라. 하여 제 신과 경들도 이를 웃음으로 반길 것이며, 황태자는 어서 잔을 기울여 부황의 뜻에 따르거라!”

여전히 장내는 울음바다가 된 가운데 황제 이진의 부릅뜬 눈에 어쩔 수 없이 부들부들 덜리는 손들어, 고개 들려 잔을 비우는 황태자 이 흔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가득했다.

* * *

그날 밤.

황후의 침실.

황제 이진 아니 이제 상황(上皇)이 된 이진은 황후 허 씨와 나란히 베개를 베고 누워 속삭이고 있었다.

“짐의 머리 백발이 될 줄, 어이 알았으리? 황후는 알고 있었는가?”

“가는 세월을 어찌 금도끼 은도끼인들 막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이제 누렸던 것, 하나 둘 내려놓으며 살아야지요.”

“하하하........! 말 한 번 잘 하시었소. 아니래도 황후를 품고 싶은 생각 간절하나, 이놈의 몸뚱이 주인의 몸을 배반하니, 뜻만 같지 황후를 안을 수도 없구려.”

“신첩의 몸 또한 예전 같지 않사와 황상의 뜻 마음으로 받자오니, 피장파장이 아닌가 하옵니다. 황상!”

“하하하........! 하긴 황후도 물이 마른지 오래지.”

이 말에 허 황후가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다.

“그래서 어린 것들을 끼고 주무시옵니까?”

“하하하.......! 그것도 한 달에 한 번 어쩌다 뿐이니, 황후는 너무 질투 마오.”

“호호호........! 그렇게라도 황상께서 건강하시고 즐거울 수 있다면 신첩으로서는 오히려 기쁠 뿐 이옵니다. 이 나이에 질투가 가당키나 한 일이며, 이렇게 황상의 은의를 입는 것만으로 아주 만족하고 황송할 지경이옵나이다. 황상!”

“역시 황후는 범인과 뭐가 달라도 달라요. 아직도 비빈 중에는 자신의 침궁을 찾지 않는다고 시샘하는 것들이 많거늘.........”

“그들도 당분간일 뿐이올 것이옵니다. 다 세월에 장사 없거늘, 무슨 수로 말리겠사옵니까?”

“하하하........! 그렇겠지요. 흔이 잘 하겠지요?”

“다른 건 몰라도 효성 지극하고 성실은 하니 큰 흠은 없을 것으로 신첩은 판단하고 있사옵니다. 황상!”

“바로 그것이오. 모든 것의 으뜸이 효(孝)와 성(誠)일지니, 큰 하자 없이 대국을 주관해 나갈 것이오.”

“그러나 저러나 밤공기가 날로 차지니, 신첩은 또 올 겨울 날 일이 걱정이옵니다. 황상!”

“그런 일로 걱정할 일이 뭐요. 이제 정무도 일임했겠다. 저 천지(밝달 호)의 바이칼 호도 구경하고, 또 더 추워지면 대만은 물론 호주라도 이제 못 갈 것이 무엇이겠소? 다만 근심인 것은 이제 어마마마께서도 연치가 계시니 함께 하실 수 없는 것이지요.”

“어마마마께옵서도 황상의 정성만은 아실 것이오니, 너무 걱정 마시옵소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자나 깨나 자식 걱정에 눈물 마를 날이 없는 어버이 마음을 자식이 어찌 다 알리오. 다만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해 모실 뿐이지.”

“역시 황상은 효자십니다.”

“효자? 하하하.........! 그런 말 마오. 짐이 효자라면 이 땅에 효자는 다 죽었겠수다. 이 땅에는 쓸 약이 없으면, 과감히 자신의 허벅지라도 베어 바칠 진정한 효자들이 많고도 많다오.”

“황상, 이제 졸리네요.”

“그래요? 그럼, 이제 그만 잡시다.”

상황 이진은 갑자기 모로 누워 허 황후가 덮은 금침 위를 토닥이며 그녀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가 새근새근 잠이 들자, 그녀의 하얗게 센 귀밑머리를 쓸어주며 이진이 말했다.

“사랑하오! 여편네!”

여기서 여편네는 남편(男便)의 상대어인 여편(女便)으로 쓰였지, 낮추어 부르는 말이 아니었다. 이것이 후대가 되면서 변질되어 낮추어 부르는 말이 되었지만.

아무튼 이에 잠든 줄 알았던 허 황후가 움찔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곧 이어 상황 이진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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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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