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75화 (175/210)

< -- 175 회: 2부 카자흐 부대 -- >

2

대충 상황을 파악한 곽재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소리쳤다.

“적들을 섬멸하라!”

“섬멸하라!”

곽재우의 명이 아니더라도 벌써 교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대원들이 달려가고 있었고, 일부는 곽재우의 명을 복창하며 또한 그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곽재우 또한 신속히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1마장 전방을 향해 달려갔다 말이 있었지만 마음이 급하다보니 무작정 뛰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총격이 딱 멎었다. 그래도 곽재우는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쉬지 않고 달려갔다. 마침내 현장에 도착한 곽재우가 헐떡이며 간신히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갑자기 적이 도망갔습니다.”

“무엇이?”

적의 의외의 행동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물었지만 이제는 확신이 섰다. 자신들을 유인하고 있다고. 자신들의 적의 종적을 놓쳐 헤매고 있으니, 길 안내를 자처하듯 아니면 아군의 화를 돋우듯 나타나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적은 또 달아난 것이다.

이는 아군 희생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데서도 그들의 행동이 명확히 설명이 되었다. 저들이 제대로 아군을 노렸다면 아무리 경계를 철저히 했다 해도 희생자가 났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오늘밤 습격을 한 자들의 규모가 대략 500명 정도 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이는 더할 나위 없는 명확한 증거였다. 그래서 곽재우는 서둘러 추격하자는 아군 대대장들의 건의를 물리치고 이튿날 날이 밝으면 추적하기로 했다.

저들은 분명 곳곳에 흔적을 남겨 아군이 저들의 행방을 찾을 수 있게끔 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곽재우의 확신은 정확히 맞아들었다. 이튿날의 추적에서 그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게끔 저들의 지난 길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났다.

이제는 지금까지 없던 불을 땐 자리며 지금까지 남기지 않았던 짐승들의 배설물까지 치우지 않고 그대도 방치했기 때문이었다. 곽재우는 느긋하게 저들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자꾸 불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들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적들의 강한 자신감을 표시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는 적들의 근거지 내지는 유인하려는 최종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곽재우는 끝임 없이 적들이 일부러 흘려놓은 듯한 흔적을 따라 적들을 추격해 갔다. 그렇게 이들을 얼마나 추격해갔을까. 길도 아닌 길을 헤치길 그 몇날 며칠이던가.

마침내 흰 눈이 쌓인 봉우리들은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수림지대도 끝나 있었다. 이제는 고산지대로 이어지며 키 작은 관목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혹 유목을 하는 부족민들도 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저들의 흔적을 쫓길 그로부터 또 어언 보름. 이제 저들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저들을 잡으려 빠르게 추격도 해보았으나, 그러면 저들은 또 더욱 빠르게 달아나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듯싶었다.

그로부터 또 사흘.

이들의 앞에 큰 강이 하나 나타났다.

수량도 상당히 많은 대강이었다. 곽재우는 몰랐지만 러시아에서 보면 우랄산맥 너머 서시베리아의 대 강인 이르티슈 강이었다.

알타이 산맥 남서부 기슭의 빙하에서 발원하는 강으로, 서쪽으로 흘러 자이산 호를 통해 중국 국경을 넘어간 후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카자흐스탄을 가로질러 흐르다가 시베리아 한티만시이이스크 부근에서 오브 강과 합류하는 대 강이었다.

길이가 4,248㎞인 이 강은 오브 강의 가장 긴 지류이며 대부분의 구간에서 배로 통행이 가능했다. 주요지류로는 오른편으로 들어오는 나림, 부흐타르마, 옴, 타라 강과 왼편으로 들어오는 오샤, 이심, 바가이, 토발, 콘다 강 등이 있었다.

아무튼 이제 적은 이 강줄기를 따라 북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강 연안 곳곳에 질 좋은 목초지가 있어 수시로 상당한 세를 이룬 유목집단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들과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곽재우가 거느리는 추격 군을 이들은 침략자로 보고 활과 창으로 대항해 온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오기가 나서라도 기필코 끝을 보기로 한 곽재우는 이를 앙 다물었다.

그렇게 사흘 밤을 더 추격하다 다시 밤이 되어 숙영을 하는 중이었다. 경계병도 대규모로 세웠지만 그래도 불안해진 곽재우가 겔을 벗어나는데 전방에서 작은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든 곽재우는 전군에 비상을 걸었다.

“비상!”

“적이 출현했다!”

아니래도 좋았다. 정말 적의 야습이라면 당하는 것보다 잠을 설 때리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부산스러운 소음과 아군들이 신속히 달려나와 하나 둘 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디냐? 어디?”

“전방이다!”

곽재우는 무조건 고함을 지르며 자신도 겔 옆에 묶여져 있던 자신의 애마에 올랐다.

이때였다. 전방에 횃불이 일제히 오르며 ‘와........!’하는 함성이 크게 일었다. 몰래 기습을 하려다 들통이 나자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듯 했다.

탕탕탕........!타다당 탕탕........!

요란한 총성과 함께 적의 함성과 시위소리, 전마의 울부짖음, 금방 곳곳에 비명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곽재우 또한 전방으로 달려가니 제법 웃자란 목초지 사이로 수천 명의 말을 탄 이족 전사들이 보였다. 이를 맞아 아군 기병 또한 일제히 적들에게 총을 난사하며 돌진하고 있었다. 얼결이라 미처 대오를 짓지는 못했지만 용맹한 아군 기병들의 돌진에 적들도 화살을 날리며 대응해왔고, 맞부딪친 곳에서는 창과 칼로 대항을 해왔다.

이를 보고 곽재우가 소리를 질렀다.

“일정한 거리를 둬라!”

“대오를 갖춰라!”

“평소의 전투대로 회전하며 사살하라!”

목이 터져라 정신없이 명을 내리며 전장으로 달려가는 곽재우의 귀밑으로 흐르는 화살(流矢)도 있었다. 깜짝 놀란 곽재우가 급히 고개를 숙이는데 어느새 바짝 다가든 대대장 망케가 말했다.

“장군님! 전투는 우리에게 맡기시고 좀 물러나십시오!”

“장군이 어찌 비겁하게........”

“보중하십시오. 일개 여단장이십니까?”

그의 말이 맞았다.

자신 휘하에 근 삼십 만에 이르는 대병이 있었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다시 전방에 눈길을 주니, 이제는 아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적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적을 쫓으며 추살하는 아군들이었다.

한결 마음이 놓인 곽재우는 말고삐를 채 달리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군의 뒤를 쫓았다. 그러길 2각 정도 지나자 아군들이 회군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곽재우가 소리쳤다.

“아군의 인원부터 파악해라!”

“네, 장군님!”

곧 대대별로 대오를 정비한 추격 군이 인원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곽재우로써는 적 100명을 사살하는 것보다도 아군 한 명의 목숨이 더 소중했기 때문에 적을 얼마나 살상했는지는 아예 묻지도 파악조자 않으려 하고 있었다. 곧 대대별로 인원 파악이 실시되어 보고되었다.

집계를 내어 보니 그간 희생된 자 포함하며 15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중 전투 불능의 중상자만 해도 50명이 넘었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 약 100여 명이 생을 달리했다는 말이었다.

적과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울분이 치솟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깊은 늪에 빠진 느낌에 곽재우의 이마가 저절로 찌푸려졌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니다! 30만을 호령하는 대원수가 어찌 한갓 기천도 안 되는 적에게 희롱을 당하고 이대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앞길이 막막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상념을 떨치기라도 하듯 힘차게 머리를 저은 곽재우가 명을 내렸다.

“아군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해 화장을 하라! 그리고 부상자들은 잘 치료하여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하고!”

“네, 장군님!”

반 시진 후.

모든 전장이 정리되자 곽재우는 다시 겔 안에 누웠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깜박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어느덧 날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급히 밖으로 나온 곽재우가 보니 군졸들은 보르쓰를 먹기 위해 물을 끓이고 있었다. 이제 각자 하나씩 지닌 보르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적들을 잡아도 이제는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이래저래 나오느니 한숨뿐이었다.

그렇지만 장군이 되어 부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시종을 드는 병사가 떠온 물에 곽재우는 대충 세면을 하고 갑옷투구를 졸라매었다.

* * *

일면 적을 추격하며, 일면 새로 나타는 유목민들과 싸우며 어언 오일을 또 전진했다. 그런데 갑자기 적의 흔적이 뚝 끊기는가 싶더니 곽재우는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풍경을 보게 되었다. 두 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구릉 너머 분지 안에, 도시 하나가 홀연히 출현한 것이다.

둥근 원형지붕, 뾰족탑, 붉은 벽돌집, 때로는 통나무 집, 잘 정비된 도로,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조차 양이 즉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다. 자신이 지금 헛것을 보고 있나 해서 눈을 비비고 보아도 마찬가지 풍경이었다.

이런 동토에 큰 도시가 나타나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명백한 사실이었기에 곽재우로서는 눈이 휘둥그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곽재우는 잘 몰랐지만 이 도시는 러시아가 우랄산맥 이동에 개척한 도시로 토볼스크라 했다.

우랄 산맥의 동쪽 토볼 강과 이르티시 강의 합류점에 위치하고 있는 이 도시는 튜멘에서 북동으로 247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였다. 1586년에 예르마크에 의해서 요새로 건설된 이 도시는, 동부로 가는 주요 수로를 끼고 있어, 초기 시베리아 개척시대에 요충지 구실을 하고 있는 도시였다.

1820년대에 서시베리아의 총독부가 토볼스크에서 옴스크로 옮겨질 때까지 군사, 행정, 정치, 종교 면에서 시베리아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한 도시였다. 아무튼 곽재우는 정체 모를 적에 의해 이 도시까지 유인되어 온 것이다.

나지막하게 한숨을 불어낸 곽재우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잠겨 있는데, 외적의 침입 사실을 알았는지, 말 탄 기병부터 2만이 넘어 보이는 보병들까지 무수히 성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교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갈등하던 곽재우는 자칫 잘못하면 큰 피해를 볼 것 같아 철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만 날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군을 이끌고 와 반드시 아군을 골탕 먹인 적을 포함하여, 대대적인 복수를 다짐하며 눈물의 철수 결정을 내렸다.

결심이 서자 곽재우는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확고부동한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돌아간다!”

“장군님........!”

“이의 제기는 받지 않겠다.”

“네, 장군님!”

곽재우의 단호한 말에 모두 전마 위에 타 질서정연하게 퇴각을 준비하는 아군 기병들이었다.

“출발!”

“출발!”

복창과 함께 곽재우를 옹위한 기마병들이 일사분란하게 퇴각을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은 훨씬 수월했다. 일직선으로 남동(南東)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전투식량으로 가져온 보르쓰마저 이제 다 떨어져간다는 것이었다. 곽재우가 대충 날짜를 계산해 보아도 할라 강을 떠난 지도 어언 두 달이 훌쩍 지나 있었던 까닭이었다.

할 수 없이 곽재우는 중간 중간 유목민들을 만나면 전마를 양과 바꾸어 식량으로 사용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강제로 탈취할 수도 있었지만 대제국의 군사로써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기에 이런 편법을 택한 것이다.

유목민도 만날 수 없을 때는 할 수 없이 전마를 잡아 식량으로 삼아야 했다. 이렇게 곽재우의 군이 아무 소득도 없이 철 수 하길 어언 칠 일. 이들이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지날 때였다.

뒤로부터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일단의 기마병들이 출현해 전 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백 명 전후로 보이는 기마부대였다. 이를 본 곽재우가 황급히 명을 내렸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곽재우의 명에 전 기마병이 일사분란하게 대오를 지어 곧 출격 준비를 하는데, 적의 선두 에서 홀연히 백색 깃발 하나가 솟구쳤다. 항복을 의미하거나 어느 곳의 사자라는 표시였다. 그러나 적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으므로 곽재우는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적들의 동정을 계속해서 살폈다.

적이 점점 가까워져 백기를 내건 선두 기마병은 이제 1마장 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에 곽재우는 적의 접근을 차단할 목적으로 공중에 대고 몇 발의 사격을 하게끔 했다.

그러자 적이 일제히 멈춰 섰다. 그리고 선두의 다섯 명 만이 아군 진영을 향해 쏜살 같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측근에 서있던 대대장 망케가 말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장군님!”

“흐흠........! 잠시 후면 그 결과를 알겠지.”

낮게 침음하며 곽재우는 계속해서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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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다시 찾아주심에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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