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7 회: 전운(戰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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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한양에 있던 황태자와 황태자비가 황태후 박 씨의 생신을 맞아 북경에 온 참이라 이진이 부른 것이다. 황태후 박 씨는 음력 4월 15일 생으로 손자와 손녀가 보고 싶다고 매일 채근하니, 모후의 생일을 핑계로 이진이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아무튼 잠시 세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황태자 흔과 비(妃)가 함께 들어왔다. 세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본 흔과 비가 흠칫했다. 모두 웃어른들이니 잠시 몸이 굳은 것이다.
그러나 재빨리 표정을 수습한 이흔이 먼저 부황에게 급히 부복하여 아뢰었다.
“부르셨사옵니까? 아바마마!”
“그래, 먼저 웃어른들께 인사드리고 편히 앉거라.”
“네, 아바마마!”
그 동안 황태자 비 또한 시아버지에게 절을 한 후 단정히 앉아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동왕 전하께 문후 여쭈옵니다.”
“그래. 나날이 키가 자라는 듯하구나. 아직도 성장이 멈추지 않았음이야.”
“..........”
광해의 말에 겸연쩍은 웃음만 흘릴 뿐 대답을 않던 황태자 이흔이 이번에는 이순신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순신 또한 맞절로 화답을 했다.
“기력이 많이 쇠하여지신 것 같사옵니다.”
그런 이흔을 향해 꾸짖는 이진이었다.
“태자는 빈말이라도 무슨 인사법이 그러냐?”
아니래도 이제 기력이 부친다고 장군직에서 물러난다는 사람에게 기력이 약해진 것 같다는 말에 괜히 신경이 쓰여 아들에게 한마디 하는 이진이었다.
“송구하옵니다!”
이때 재빨리 태자비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수습했다.
“할아버지! 뵙고 싶었어요. 그간 옥체 강녕하셨지요?”
“네, 태자비께서도 건강해 보이십니다.”
“비가 전만 못합니다. 회임을 해서........”
“뭐?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게냐?”
뜻밖의 소식에 막말을 하는 이진이었다.
“방금 태의께서 다녀가셨는데, 회임했다고.......... 아니래도 아바마마께 알려드리려고 달려오려던 참이었습니다. 아바마마!”
황태자 이흔이 고하는데 태자비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하하.........!”
돌연 대소를 터트리며 소리치는 이진이었다.
“경사로구나! 경사.........! 대전내관 게 있느냐?”
“네, 황상!”
“가서 황태후 마마와 황후를 들라 이르도록 하라!”
“네이, 황상!”
그가 물러가는 기척을 들으며 새삼 며느리를 자세히 살피는 이진이었다. 이런 기색을 느낀 태자비의 얼굴이 더욱 붉어지며 고개가 점점 밑으로 향했다.
“하하하........!”
그 모습 또한 귀엽고 사랑스러운지라 다시 한 번 대소를 터트리는 이진이었다. 시체 말로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가야!”
“네, 아바마마!”
“항상 몸을 단정히 하고 조금이라도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명심하겠사옵니다. 황상!”
“하고 운동은 규칙적으로 해야 나중에 힘이 덜 들 것이니, 그리 행하고.”
“네, 아바마마!”
“음식도 조심하고, 약도 함부로 아무 것이나 먹어서는 안 됨이야.”
“명심하겠사옵니다. 아바마마!”
이진 또한 여느 시아버지와 다름없이 기쁜 마음을 잔소리로 대신하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시종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 있으니 이순신이었다. 두 사람의 하는 양이 너무 보기 좋아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맺히는데, 손녀딸이 황제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아 일면 안도의 웃음이기도 했다.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 시아버지 이진의 잔소리가 좀 더 길게 이어지는데 대전 문이 벌컥 열리며 황태후가 뛰어들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 손자며느리가 회임을 했다고?”
“하하하.........! 그렇사옵니다. 어마마마!”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있나! 황상! 잔치라도 한 번 열어야 하지 않겠소? 어디 보자. 우리 아기!”
너무 기쁜 나머지 횡설수설 무슨 행동을 먼저 취해야할지 모르고 허둥거리는 황태후 박 씨였다.
이를 보고 웃음을 머금은 이진이 느긋하게 한마디 했다.
“어마마마 좀 진정 좀 하세요.”
“황상은 지금 진정하게 생겼소? 이 할미 마음이 얼마나 기쁜데!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기분이라오.”
이때 또 다시 전각문이 열리며 황후 허 씨가 들이닥쳤다.
“비가 회임을 했다고요.”
“그렇사옵니다. 어마마마!”
그제야 발언권을 얻어 한마디 하는 황태자 이흔이었다.
“호호호........! 이런 경사가 있나!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네요!”
“내 말이 그 말이오. 황후!”
“어마마마 죄송합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예도 못 갖추었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오. 사돈 양반을 보고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으니........”
두 사람의 대화에 이순신이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얼른 고개를 숙여 예를 드렸다.
“송구하옵니다. 소신이 미처 예를 드리지 못했사옵니다.”
“호호호.........! 우리가 너무 기뻐하니 그럴 여가나 있으셨나요?”
황태후의 말에 여전히 기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순신이었다.
“황상! 어때요? 크게 잔치를 한 번 열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 보다도 소자는 이런 줄 알았으면 비를 괜히 불렀다는 후회가 들어요.”
“누가 그런 줄 알았나요. 여기 와서 오늘 안 것 이니 어쩌겠어요?”
누가 부부 아니랄까봐 이진의 편을 들어 말하는 황후 허 씨였다.
“어찌 됐든 이제는 태자 혼자 돌아가야겠다. 더 원행을 시킬 수는 없음이야.”
“네, 아바마마!”
“지당하십시다. 황상!”
황태자가 공손히 대답하고, 비로소 한 마디 끼어드는 숙부 광해였다.
“황상, 어찌 하시겠어요?”
자신의 말에 답변이 없자 채근하는 황태후였다.
“소자의 생각으로는 잔치를 벌이게 되면 며늘아기도 피곤할 뿐만 아니라 곧 전쟁이 발발할 것이니..........”
“무슨 또 전쟁 이예요?”
황태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진이 말했다.
“차제에 왜국도 점령하여 석년의 원한을 갚으려 함입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어요.”
“그런 일이야 사내들이 할 일이고, 첫 손자이고 하니.........”
“아직 손자인지 손녀인지 태어나지도 않았사옵니다. 어마마마!”
“호호호........! 그러네요. 이 할미는 꼭 태자비가 손자를 낳을 줄 믿어요.”
부담백배에 더욱 고개만 밑으로 파고드는 황태자비였다. 이순신 또한 지금까지의 웃음기 번지던 얼굴이 수심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야, 삼신할미가 점지해주시는 일. 짐은 그저 우리 며늘아기가 무탈하게 뭐가 됐든 생산만 한다면 더 한 바람이 없습니다. 어마마마!”
“역시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네요. 며느리가 부담가질 까봐, 벌써부터 감싸고도는 것 좀 봐.”
“하하하.........!”
황태후의 말에 이진이 대소를 터트리고 좌중의 모든 사람이 소리 내어 웃지는 못하지만 웃음을 머금고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이렇게 다 모였으니 말씀드리는데 좀 전에 동왕과 비의 자식들에 대한 가례 문제가 나왔어요. 짐으로서는 더 있다가 혼례를 올려주고 싶지만, 동왕이나 대 제독이나 빨리 그들도 혼사를 치러야 한다고 성화이니.........”
“이 어미는 지금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당장이라도 손자들 가례를 올려주고 싶어요. 아무튼 황상이 비록 만시지탄이지만 오늘이라도 그렇게 결정하셨다니,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소첩도 찬성이옵니다. 황상!”
황태후에 이어 황후까지 찬성을 하니 확고하게 이들의 혼례를 결정한 이진이었다.
“알겠소. 간택은 진행하되, 가례는 왜국 정벌 후에 올리기로 합시다.”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니 예요?”
황태후의 걱정에 느긋한 웃음을 베어 문 이진이 말했다.
“왜국 정벌이라야 소자가 생각하기에는 간택이 진행되는 3개월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 보다도 잔치 문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잖아요? 황상!”
“조용히 넘어가는 게 좋겠사옵니다. 분위기도 분위기이고 그 또한 며느리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어요. 잔치를 치르느라 고생에 험험........ 소자가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아도 그 이후 문제는 알아들으실 줄 믿사옵니다. 어마마마!”
이 당시는 영아의 조기 사망률이 얼마나 높은가? 따라서 만약 유산이라도 되는 날이면 며느리의 부담은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이진은 잔치에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황상이 그렇게 말하니 이 어미로서도 더 조를 수가 없군요.”
서운한 듯한 황태후의 말에 이진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온 식구가 모였으니, 바로 수라나 함께 하시죠?”
“그게 좋겠어요. 황상!”
이진의 말을 받아 얼른 찬의를 표하는 황후 허 씨였다.
“소신은 그럼, 이만.........”
이 순신이 작별을 고하려고 엉덩이를 들썩이자 이진이 마치 노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게요? 대 제독! 우리가 남입니까? 모처럼 손녀만나 저녁이라도 함께 하시고, 짐과 약주라도 한 잔 나누고 가셔야지 덜 서운하지 않겠어요?”
“알겠사옵니다. 황상! 소신의 생각이 짧았사옵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네이, 황상!”
“오늘은 조금 이르지만 석찬을 빠른 시간 내에 들이도록 하고, 그 안에 주안상 먼저 올리도록 해라!”
“네이, 황상!”
“황상 소신은.........”
이제는 광해가 엉덩이를 들썩인다. 또한 노한 눈으로 이진이 말했다.
“잠시 쉰다고 어디 국정이 마비 된다더냐? 오늘은 모처럼 이 형과 함께 즐기도록 하자.”
“네, 황상!”
황제가 그렇게 말하니 이에 따를 수밖에 없는 광해였다.
잠시 후.
주안상이 먼저 들어왔다.
“자, 한 잔씩 합시다. 어마마마부터 한 잔 받으세요.”
“호호호........! 오늘 같이 기쁜 날 아니 먹고 어쩌리오.”
모처럼 선선히 잔을 내미는 황태후 박 씨였다.
황태후에게 술을 따른 이진이 이번에는 옥병을 들어 이순신에게 한 잔을 권했다.
“대 도독께서도 한 잔 받으시지요?”
“황후마마부터.........”
사양하는 이순신에게 이진이 말했다.
“예법에는 그것이 맞겠으나, 오늘은 일개 아낙으로 취급하여 제일 먼저 드리렵니다.”
이진의 말에 샐쭉하는 황후 허 씨였다. 이를 보고 황태자 이흔이 얼른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했다.
“어마마마께는 소자가 한 잔 올리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라!”
비로소 환한 표정이 되어 잔을 내미는 황후 허 씨의 눈이 어느새 축축해지고 있었다.
“오늘 이렇게 장성한 태자의 잔을 받을 수 있을 줄이야, 석년에는 이 어미 미처 몰랐느니......... 태자의 잔뿐만 아니라 태자비의 잔도 함께 받아야겠다.
“그러다 당신 오늘밤 짐에게 주정하는 것 아니오?”
“그래요. 모처럼 주정 좀 해볼 테니, 기대하세요.”
“호호호........! 이제 태후께서도 많이 늘었수다.”
황태후의 말에 살포시 웃은 허 씨가 말했다.
“소첩도 이미 마흔 고개입니다. 어마마마!”
“하긴.........! 어린 나이에 시집 와서, 그간 고생도 많았지요.”
분위기가 점점 요상해지자 이진이 한 마디 했다.
“오늘은 즐거운 자리입니다. 괜히들 옛 생각에 젖어 눈물 보이지들 마시고, 험, 험........! 짐의 잔은 우리 며늘아기가 한 잔 따라보도록 해라!”
“네, 아바마마!”
얼른 무릎걸음으로 달려와(?) 태자비가 술을 치는 동안에 이흔은 재치있게 광해 숙부에게도 한 잔을 따라 올렸다.
“자, 대 조선의 무궁한 발전과 우리 며늘아기의 순산을 위하여 건배 한 번 합시다. 건배!”
“황상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모두 황제 이진에게 경의를 표하며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정겨운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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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