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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157화 (157/210)

< -- 157 회: 정귀비와 복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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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이 다시 막 회의에 임하려고 돌아서려는 순간 급히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보였다. 정식으로 정보부장에 임명된 광해였다. 이제 정식으로 중앙조직의 하나가 된 정보부였기 때문에 이 자리에 황족을 앉힌다는 데 대해 대신들 간에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이진은 이런 대신들의 쟁논 속에서도 임무의 연속성을 위한다는 구실로 그의 임명을 강행해 그가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정 귀비 소생 복왕(福王) 주상순(朱常洵)과 그의 모후가 낙양의 영은사에 숨어 있다가 함께 압송되어 왔습니다.”

“그래?”

“태감 유용이라는 자 또한 함께 잡혔는데, 그는 신종의 막내 공주까지 데리고 있었습니다.”

“태감 유용이라면 전에 조선에 칙사로도 와 거들먹거리던 자가 아니더냐?”

“맞사옵니다. 황상!”

“어떻게 조처하였느냐?”

“황상의 지시에 따르고자 일단 비밀 안가(安家)에 안치해 놓았습니다.”

“흐흠........!”

잠시 침음하며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말했다.

“곧 회의를 파하겠다. 그들 모두를 조양궁(朝陽宮)으로 데려다 놓아라.”

“알겠사옵니다. 황상!”

광해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자 이진은 곧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太和殿)으로 들어가 회의를 파하고 황제의 침소가 있는 조양궁으로 향했다. 청대에는 이를 건청궁(建淸宮)이라 했다.

이진이 조양궁 편전으로 가보니 아직 광해가 보이지 않았다. 하긴 거리가 있으니 자신보다 빠를 수는 없을 터였다. 이에 커피를 시켜놓고 잠시 기다리니 광해가 포승에 엮인 몇 사람을 비밀 공작원들을 시켜 이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자색이 고운 40대 중반의 여인 하나와 스물 서넛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 그리고 전에 본적이 있는 태감 유용과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아였다. 이들은 편전에 들어오자마자 곧 강제로 이진 앞에 무릎 꿇려졌다. 네 살 난 여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이마를 찡그리고 보던 이진이 명했다.

“포승을 풀어주어라.”

“네, 황상!”

네 사람 모두 포승이 풀리자 비로소 안색을 편 이진이 자세히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태감 유용을 보고 물었다.

“우리는 전에 한 번 본적이 있지?”

“그 당시에는 소인이 죄를 많이 지었사옵니다. 황상!”

비로소 창백한 안색으로 사과를 하는 유용이었다.

“하하하........!”

이에 이진이 대소를 터트리더니 그 문제는 더 거론하고 싶지 않으니 화제를 전환했다.

“그 옆의 소아는 만력제가 생산한 공주인가?”

“그렇사옵니다. 황상!”

이진이 계속해서 태감 유용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불안한 눈으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던 주상락이 말했다.

“본 왕에게는 많은 재산이 있사옵니다. 이를 받으시고 어마마마와 소인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황상!”

“하하하.......! 그대는 지금 짐과 거래를 하자는 것인가?”

“그, 그게 아니옵고, 황상께서 명의 왕조를 계승한다시기에 한 번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황상!”

재물을 바친다는 것이 황제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간파한 주상순이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그런 것을 알았으면 진즉 자수할 일이지 왜 영은사에 숨어 있었느냐?”

“그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주상순이었다. 이때 정 귀비가 기품 있고 단아한 얼굴을 들어 노한 눈으로 황제 이진에게 항의했다.

“아무리 우리가 숨어 있다 잡힌 죄인이라지만 이것은 황족에 대한 예우가 아니잖아요? 명을 계승한다는 사람들의 취할 도리가 아니라고 봐요.”

서슴없이 남을 부리던 오만한 시선으로 꾸짖듯 말하는 정 귀비였다.

이에 비위가 상한 이진이 갑자기 광오한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그러던 그가 돌연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지금 네가 나를 훈계하는 것이냐?”

“절, 절대 그것이 아니옵고, 어마마마는 다만.........”

“네게 묻지 않았다.”

복왕이 나서서 간절히 비는 것을 일언지하에 물리치는 이진이었다.

“흥.........! 감히 소국의 군주 주제에 상국인 명국을 삼켰다고 이제 보이는 것이 없는 것이냐? 역시 오랑캐라 예의범절을 모르는 구나! 일국의 비와 왕자를 이렇게 무릎 꿇리고 죄인 취조하듯 하다니, 그러고도 명을 계승한다고? 흥........!”

싸늘히 콧방귀를 뀌고 외면하는 정 귀비였다. 비로소 이진은 정 귀비를 더욱 세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40대 중반의 나이지만 여전히 그 미모가 녹슬지 않았고, 피부와 몸매도 철저히 관리를 했는지 은은한 광택이 나고 있었다.

잡힌 이래 상당한 고초를 당했을 텐데도 이 정도면 평소 같았으면 범인은 분명 범접하기도 어려운 미태와 품위가 있었으리라. 그런 그녀를 보니 야릇한 충동과 함께 회가 동한 이진이 묘한 눈길로 그녀를 훑고는 말했다.

“너희들 모두가 살 길이 있다.”

“그, 그게 무엇이옵니까? 황상!”

급히 묻는 주상순을 한 번 노려본 이진이 돌연 광해에게 호통 치듯 말했다.

“끌고 나가라.”

“네, 황상!”

“역시 오랑캐라 기본예절도 없구나!”

다시 한 번 이진을 조롱한 정 귀비가 당당한 얼굴로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다시 포승을 묶어 끌고나가는 광해를 지켜보던 이진이 그를 불렀다.

“혼은 잠시 나를 보고 나가라.”

“네, 황상!”

“짐의 의중을 알겠느냐?”

“혹시 정 귀비를.......?”

광해도 이진의 태도에서 무언가 눈치를 챘는지 정확히 이진의 의중을 읽어냈다.

“그렇다!”

“알겠사옵니다. 황상 잘 구슬려서 그러나 저러나 이것이 명의 유신들에 대한 저항의 빌미를 주는 것은 아닌지.......?”

“하하하.........! 저희들이 어떻게 할 것인데?”

“황상! 오늘은 평소와 전혀 다르시옵니다.”

“하하하........! 짐에게 다 생각이 있다. 짐이 그렇게 무도한 사람은 아니니, 한 번 네 재주껏 해보아라.”

“네, 황상!”

곧 광해가 물러나자 이진은 턱수염을 쓸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의 눈에는 욕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평상시와 같이 맑고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그로부터 5일이 지났다.

정무도 끝나고 수라상도 물린 유시 말이었다.

저녁 7시가 되자 짧은 겨울 해는 이미 떨어진지 오래 전이었고, 황제의 침궁에는 촛불만 대낮같이 환한 밤이었다.

이진이 이 시간에도 자신의 침전에 앉아 상소에 대한 주서(奏書)를 달고 있는데, 헛기침 소리와 함께 광해가 한 여인을 앞세워 찾아들었다. 정 귀비였다. 그렇게 고고하고 오만하던 지난번 정 귀비가 아닌 고개를 푹 숙인 한 아낙이 거기 서있었다.

“어쩐 일이냐?”

“정 귀비께서 자진해서 수청을 든다하시기에..........”

“하하하.........!”

대소를 터트린 이진이 읽던 상소를 한 옆에 휙 집어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며 엄한 목소리로 명했다.

“고개를 들라!”

그러나 정 귀비의 고개는 거꾸로 더욱 깊숙이 숙여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비릿한 웃음으로 바라보던 이진이 뚜벅뚜벅 그녀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녀의 턱을 쥐고 강제로 얼굴을 들어올렸다. 이에 모멸감으로 파르르 떨며 부용 같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는 정 귀비였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짐을 모시겠다고, 아직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질 않느냐?”

“소신이 다시........”

“됐다.”

광해의 말을 한 소리로 자른 이진이 음흉한 웃음으로 정 귀비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벗으라면 벗을 수 있겠느냐?”

이진의 말에 입술을 꼭 깨물고 한참을 망설이던 정 귀비가 이진과 광해의 얼굴을 흘끔 보고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동왕께서 비켜주신다면..........”

“좋다! 잠시 너는 물러가 있거라!”

“네, 황상!”

광해가 물러가고 둘만 남은 자리.

“이제는 벗을 수 있겠느냐?”

“.........”

이진의 말에 숙인 고개를 더욱 깊숙이 묻은 채 말이 없는 그녀였다.

그것도 잠시. 어느새 그녀가 선 앞자리에는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를 보고 돌연 소리를 지르는 이진이었다.

“개똥이 게 있느냐?”“네, 황상!”

“은장도를 가져오너라!”

“네, 황상!”

잠시 후, 그녀가 은장도 하나를 가져와 이진에게 공손히 바치고 물러났다.

이를 받아든 이진이 돌연 은장도를 쓱 빼들고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그리고 돌연 은장도를 불쑥 정 귀비에게 내밀며 말했다.

“자결하라!”

“네?”

너무나 뜻밖의 말인지 당황한 음성으로 은장도를 받지도 못하는 그녀였다.

“짐의 말이 안 들리느냐?”

“그것이 아니오라..........”

우물쭈물 답변을 못하는 그녀였다.

“분명 동왕이 그랬을 것이다. 아들과 이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짐에게 그대가 수청을 드는 길만이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아니더냐?”

“그, 그렇사옵니다.”

“허나 네 마음은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을 터. 차라리 자진하여 너의 정조도 지키고 아들도 살리는 것이 어떠냐?”

“정말 그래도 우리 아들을 살려주시는 것입니까?”

“그래. 그러니 자결해서 욕됨에서 벗어나라.”

“고맙사옵니다.”

비로소 은장도를 받아드는 정 귀비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은장도를 거꾸로 잡은 그녀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짐이 찔러 주랴?”

“아, 아니옵니다. 황상!”

비로소 처음으로 ‘황상!’ 소리가 나오는 그녀였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이진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생각보다 의외로 젊으시군요. 정말 패기도 넘치시고 남자답사옵니다. 이러니 우리 부군께서........”

가볍게 한숨을 내 쉰 그녀가 돌연 비수를 앞으로 크게 치켜들며 찌르려는 동작을 취했다.

“멈추어라!”

이진의 대갈일성에 깜짝 놀라 은장도를 바닥에 떨어트리는 정 귀비였다.

“왜.........?”

멍한 얼굴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였다.

“복왕이 사정사정 했겠지?”

“..........”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떨어트리는 정 귀비였다.

“모정은 위대하다. 그대의 승리다. 모두 살려 줄 테니,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

“정말 이시옵니까? 황상?”

“그렇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진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가 돌연 요염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정말 진심으로 하룻밤 모시고 싶사옵니다. 황상!”

“하하하.........! 아니 될 말. 아무리 오랑캐라도 일국의 귀비를 노리개로 삼는 예는 없다.”

“그, 그것이 아니오라, 진실로........”

“됐다. 그대의 말 또한 짐을 떠보기 위한 농담임을 잘 안다. 부처님께 귀의해 비구니가 되는 것은 어떻소?”

비로소 반공대로 그녀의 의사를 묻는 이진이었다.

무안한 얼굴에서 재빨리 냉정한 표정으로 수습한 그녀가 답했다.

“황상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 헌데 우리 아들은.........?”

“복왕의 지위 그대로 옛 터전인 낙양에, 그 재물 그대로 살게 해주겠다.”

“정말 그렇게 해주시겠사옵니까? 황상!”

“그렇소!”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진을 보고 갑자기 길게 한 숨을 불어내는 정 귀비였다.

“에효.........! 제 어미를 팔아 목숨을 구걸하는 용렬한 자식이니, 살려주셔도 아무런 후환이 없다고 판단하셨을 터. 또한 명의 유신들에게도 보란 듯이 자랑할 일이 생겼으니, 조선 조정으로서는 하나도 손해될 일이 없겠네요. 게다가 저 또한 황상에게 반했으니......... 참으로 용의주도하시고 모지시네요.”

“하하하.........! 그대의 지혜가 너무 빼어나오. 하니 처음에는 복왕과 함께 기거하게 하려 했으나, 이제는 안 되겠소. 궁내에 절 하나를 지어줄 테니........ 그곳에서 불법에 귀의하는 것으로 합시다.”

“황상의 표정을 보아하니 소비가 애원해도 물러설 기세가 아닌 것 같사옵니다. 소비 명에 따르는 것으로 하겠사옵니다. 황상!”

“역시 일국의 황제를 사로잡는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이진의 중얼거림에 피식 웃고 마는 정 귀비였다. 사후 만력제로 추증된 주익균이 이 정 귀비를 얼마나 총애했으면, 장자를 제치고 그의 아들 복왕 주상순을 황태자로 세우려고 신하들과 그렇게 오랜 기간 다투며 태정을 행했겠는가?

그녀를 보며 상념에 빠져드는 이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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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시고 행운이 가득한 날들 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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