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3 회: 명의 멸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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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익균이 피신한 곳이 만수산(萬壽山) 수황정(壽皇亭)이다.
수황정(壽皇亭)이 무엇 하는 곳인가? 황제의 장수를 기원하는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주익균은 이곳을 죽음으로 택한 것이다.
절망의 끝에 이르러 답답한 마음에 북경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을 최후의 장소로 선택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태감 유용이 이곳에 올라와 보니 주익균은 벌써 죽음을 결심했는지 차림이 달라져 있었다.
흰 소복 차림에 익선관은 어디로 팽개쳤는지 없고 상투마저 풀어 머리카락이 온 얼굴을 덮을 정도였다. 또 발치를 보니 왼발은 맨발인데 반해 오른 발은 붉은 신을 신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다.”
주익균의 말에 유용은 자신이 음독하기 위해 들고 간 호로병을 내놓았다.
“잔은 없사옵니다. 황상!”
“하하하........! 이 시점에 잔이라니, 사치다, 사치야!”
곧 죽을 사람답지 않게 유쾌하게 웃은 그가 말했다.
“끝에는 황비도 자식도 아닌 그대만이 내 곁에 남았군. 그 많던 군사와 대신들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쓸쓸한 얼굴로 소회를 밝힌 그가 좀 더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짐이 죽으면 내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전부 가려주게.”
“왜입니까? 황상!”
“부끄러워 죽어서도 지하의 열성조들을 대할 수 없음이니라.”
“하........!”
나직이 탄식하는 유용을 잠시 바라보던 주익균이 받아든 호로병을 입에 쑤셔 넣고 꿀꺽꿀꺽 몇 모금을 마셨다.
곧 입을 뗀 그가 말했다.
“유조는 짐의 옷깃에 매달아 놓았으니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라. 공개해도 좋고 할 수 없으면 내버려두어라. 짐이 죽은 뒤로 후의 일은 알게 뭐냐. 그동안 나를 시중드느라 애썼다.”
“황상..........!”
모든 것을 내려놓았는지 짐도 아닌 ‘나’라 칭하며 위로를 하는데, 갑자기 목이메인 유용이 꺽꺽 울음을 토하는 순간, ‘윽!’ 소리가 나 번쩍 눈을 치뜨니, 어느새 주익균의 가슴에는 그가 평소 패용하던 검이 깊숙이 꽂혀 있었다.
“황상.........!”
다시 한 번 대성통곡을 하던 태감 유용이 곧 정신을 수습하고 그의 유언대로 그의 옷깃을 들추니 그곳에 척소(尺素)가 나왔다. 무심결에 펼쳐 읽어보니 다음과 같았다.
“짐이 재위에 오른지 어언 37개 성상. 결코 짧다할 수 없는 세월이었지만, 짐은 초기만 제외하고 혼몽(昏懜) 속에 살았다. 어느 날 문득 어리석은 꿈에서 깨어나니, 이미 짐이 죽을 때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다. 살아생전 위로는 하늘에 죄를 짓고, 아래로는 적에게 이 땅을 침탈당하길 몇 번 이던가. 못난 군주 때문에 백성들은 질고(疾苦)에 들고 하늘은 그런 짐을 버렸다. 다 부질없는 짓이나 짐이 죽기 전에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지하에 든들 열성조들을 어찌 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머리털로 얼굴을 가리고 죽는다. 황성을 침노한 도적들은 짐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도 좋으나, 선조들의 능침만은 결코 허물지 말라. 또 이 땅의 짐의 백성들을 한 사람도 해하지 마라. 이 모든 것의 잘못의 끝에는 오직 짐이 있을 뿐이니 짐에게 모든 것을 돌려라.”
결코 어리석은 황제는 아니었던 주익균이기에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생을 마감했다. 반대로 원 역사에서 명나라 끝을 장식했던 숭정제(崇禎帝)는 모든 것을 신하들의 탓으로 돌리고 죽음을 맞았으니 대조적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유조(遺詔)를 맡게 된 태감 유용은 이제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게 되었음을 자각하고 주익균의 유언대로 그의 머리칼을 내려 온 얼굴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만수산을 내려갔다.
* * *
10월 초 하루.
수황정에서 명의 마지막 황제 신종 주익균의 체온이 채 식기도 전에 수십만의 반란군이 ‘틈왕기(闖王旗)’를 높이 들고 보무도 당당히 북경성 선무문으로 입성하였다.
점심때가 되면서 덕승문 일대는 각양각색의 경축의 제등(提燈)이 내걸리고 북과 꽹과리를 두들기며 수만의 인파가 모여들었다. 신종의 학정을 끝냈다고 반기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면향(免餉)을 반기는 측면이 강했고, 한발 더 나아가면 자신들의 재산은 약탈하지 말아달라는 강자에 대한 아부의 몸짓이기도 했다.
이윽고 이여송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털모자에 푸른 옷을 입고 말을 탄 채, 제 장령들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곧 이곳에서 북경을 탈환하고 명 왕조를 멸했으니, 그를 이어받은 새 왕조의 개창식을 열려는 것이다.
식장 양 옆으로는 ‘영창원년(永昌元年)’ ‘대순황제(大順皇帝) 만세(萬歲)’라고 쓰인 휘장과 황색 깃발들이 수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이여송은 이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끝이 어디 일지 몰라도 이 순간만은 진정으로 기뻤기 때문이었다.
곧 군중들의 환호 속에 간단한 황제 취임식을 마친 이여송은 장안문을 통과하여 승천문 안으로 들어갔다. 자금성 안으로 들어선 이여송은 말에 채찍질을 더하여 황극전(皇極殿)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자금성 하늘에는 틈황기가 펄럭이기 시작했고, 이는 약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의 깃발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틈왕 이여송의 군대는 돌변해 마치 미친 야수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위의 장수는 물론 말단 병졸에 이르기까지 이제 탐욕에 가득 찬 그들은 궁성내의 보물은 물론 민가의 가진 자들의 재물을 거침없이 약탈하기 시작했다.
마치 무엇에 쫓기는 짐승처럼 설쳐대는데 처음에는 고관들의 저택이나 부호들의 저택을 위주로 털었으나, 끝내는 민가까지 급습해 재산이 될 만한 것은 모두 털기 시작했다. 고삐 풀린 미친 망아지 같이 이미 제어할 단계를 넘어선 그들이었다. 이런 일이 이제 북경성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점령지 하에서는 모두 공공연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고관대작이나, 태감, 부호, 향신 대상, 할 것 없이 그들의 원망 뼈에 사무치니 그들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완전 이성을 잃은 질주요 광란의 축제였다. 그런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으니, 칼을 빗맞은 주익균의 막내 천태공주와 유용이었다.
만수산에서 내려와 참혹한 현장을 내려보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설맞아 괴로움을 토하는 네 살 난 막내딸 천태공주 주헌미(天台公主 朱軒媺)였다. 옷깃을 열어 조사해보니 옆구리에 피륙만 찢어진 상태였다.
급히 천으로 감싸 지열을 시킨 그는 그녀와 자신 또한 평민의 옷으로 갈아입고 작은 암도에 숨었다. 그리고 적이 수색하며 사람들이 빈번히 왕래할 때, 태연히 그곳을 벗어나 탈출하니 천운이라 할만 했다.
이런 속에서 이여송은 혹시 몰라 스스로 황궁을 털어 노획한 보물들을 수 없이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생각하는 섬서성 서안(西安)으로 날랐다. 그런 속에서 세월은 흐르고 조선군의 점령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어느덧 하남, 안휘, 강소성을 점령하는가 싶더니 작금은 산동과 턱밑인 하북성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초조함을 느낀 이여송 군대의 착취는 더욱 악랄해졌고, 이여송 또한 결단해야 했다.
적과 싸우되 어디서 싸울 것인가 장소를 선정해야 했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그들의 싸울 장소를 선정해주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만리장성이 조선군에 의해 뚫린 대 사건이 발생 한 것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 했다.
산해관 수장 양기(楊麒) 및 부장 조솔교(趙率敎)에게는 아직도 10만의 병력이 있었다. 조선군을 방어하기 위한 명의 마지막 군대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명의 패망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북경을 점령한 대순황제에게 귀순해야 하는가? 아니면 비록 오랑캐지만 작금 대륙을 석권하고 있는 조선황제에게 귀의해야 하는가?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그들에게 한 발 빨리 대순 황제의 칙사가 먼저 도착해 설득을 해왔다.
지금보다 직위를 세 단계 더 높여주고 기존의 병사들을 모두 거느리게 해주겠다는 후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 조건만 가지고 함부로 결단할 수는 없었다.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되느냐? 그것이 최대의 관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괜히 패망하는 쪽에 붙어 같이 죽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기다려달라는 말미를 얻어놓고 갈등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대 조선제국의 황제로부터 칙사가 당도했다. 일 계급 특진에 기존의 병사를 거느리게 한다는 조건은 같았다.
양기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부장 조솔교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조선의 최종 승리를 모두 의심치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순하겠다는 확실한 의사표시로 산해관 수장 양기는 대순 황제의 칙사를 목 베어 바치고 충성을 다짐하는 서약을 했다.
그런 그에게 곧 북경성으로의 진군 명령이 조선제국 황제로부터 떨어졌다. 그 뒤로는 자신들이 열어준 산해관을 통해 입성한 조선군 12만이 함께 하고 있었다. 더욱 양기가 보기에 기가 찰 일은 조선군 12만 중 한족 병사가 8만 이라는 사실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좀 더 빨리 조선의 군사가 되었다는 것이고, 자신들은 이제부터 조선군의 선봉이 되었다는 것일 뿐이었다. 아무튼 조선군 22만의 북으로부터의 내습에 틈황 이여송이 채 놀라기도 전에 이번에는 하북의 군사 28만이 올라오고 있다는 보고였다.
호북을 점령했던 군사 18만에 누루하치 등 3명의 거느린 줄어든 기병 도합 10만이었다. 이것은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자 이여송은 재빨리 북경성을 벗어날 궁리를 했다.
이런 낌새는 백성들이 더 먼저 알아차렸다. 철수를 하기 위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던 군사들을 불러모으는데 웬일인지 골목 곳곳에는 집안의 탁자 등 온갖 장애물이 쌓여 있어 이들의 행로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 이 장애물에 빼앗은 말을 탄 군사가 낙마라도 할라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백성들이 달려들어 이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었다. 이 현상이 황급히 도주하는 이여송 군대 전반에 북경성을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되니, 이를 일러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한다.
‘대순(大順)’ 좋다!
애초의 의도는 세금과 가난에서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민심에 순응(順應)하겠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월이 감에 따라 이들은 변했고 변질되었다. 탐욕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 전투도 싫고 하루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그간 탈취한 돈으로 한 평생을 떵떵거리고 살고픈 욕심 밖에 없는 것이 위아래 할 것 없이 만연한 풍조였다.
그런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모퉁이에 숨었다가 발을 걸어 넘어지면 함께 달려들어 때려죽이는 북경성민들의 선물이었다. 이렇게 이들이 조선군이 몰려오기 전에 머리를 감싸 쥐고 탈주하느라 호들갑을 떠는데 반해,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 백성들은 또 다시 승자를 향해 환호를 해야 했다.
이것이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휘고, 물결치면 치는 대로 흐르는 민초(民草)들의 삶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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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오늘도 베풀어주신 후의에 감사드리고요!^^
늘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