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0 회: 직할 통치 -- >
5
황궁 안에 조성된 현무호(玄武湖)에는 다섯 개의 섬이 떠 있었는데, 이곳은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또한 다섯 섬에는 모두 누각이 지어져 있어, 그 운치를 더 했다. 그 중에서도 중앙의 가장 큰 섬의 대 누각 위에는 지금 한창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진의 지시로 조선 한인 모든 대신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 훈련을 가르치느라 수고한 곽재우 이하 조선과 한인 장령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곳곳에 횃불과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황제 이진의 우렁찬 대소가 현무호의 푸른 물결 위에 끊임없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하하하.........!”
황제 이진의 대소에 이어 제 장령들에 대한 격려가 이어졌다.
“그 동안 애 많이 썼소. 오늘 이 한 잔 술로 그 간의 모든 시름을 잊고, 모두 흔쾌히 즐겨봅시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곧 부복해 감사를 표하는 제 대신들 및 장령들에게 술잔을 높이 들어 보인 이진이 말했다.
“모두 잔을 들어 비우되, 다 들고 나서는 든 잔을 머리 위에 쏟아 보이는 것이오. 하면 안 든 자들은 금방 표시가 나겠지. 하하하........!”
현세에서 배운 주법을 그대로 이들에게 적용하니 술이 약한 자라도 안 먹고는 못 배기게 생겼다. 아무튼 이어 이진이 크게 외쳤다.
“건배!”
“대 조선 제국과 황제 폐하를 위하여!”
간신 이이첨이 또 한 번 그 끼를 발휘하니, 제 대신과 장령들 모두 힘차게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위하여!”
“하하하.........!”
그들의 힘찬 건배사를 들으며 다시 한 번 대소를 터트린 이진이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는 자신부터가 체통을 잊고 익선관 위에 잔을 거꾸로 들어 쏟았다. 다 들었으니 한 방울이라도 나올 턱이 없었다.
제 대신 모두 이를 따라 하는데 술이 약한 좌광두가 이마를 찡그리며 마지못해 머리 위에 술잔을 쏟는데 그래도 몇 방울이 남았는지 그의 관모를 적셨다. 이 모양에 이진이 다시 한 번 대소를 터트리고 제 대신과 장령들도 빙그레 따라 웃으니 좌광두만 못난 꼴을 보이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데 돌연 정색을 한 이진이 폭탄 발언을 했다.
“이왕 군대를 소집한 것, 때가 때이니 만큼 추수를 좀 하러 가 볼까?”
“어인 말씀이온지요? 황상!”
태평재상이자 대학사의 수보인 신시행의 물음에 이진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호북(湖北)의 곡식도 무르익어 갈 테니, 그곳을 점령하잔 말이오.”
“하옵시면, 양광(兩廣:광동 광서를 이르는 말)과 함께 명의 이대 곡창이라 할 수 있는 호광(湖廣:호남, 호북))을 점령해 저들의 식량 창고를 마르게 할 작정이시옵니까? 황상!”
금방 그 저의를 깨닫고 묻는 이 있으니, 25세의 백면이라고 깔보았던 원숭환이었다. 그만치 지모가 있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무튼 원숭환의 물음에 여전히 웃음 띤 용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황제 이진이었다.
“그렇소.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못하면 그만큼 자중지란을 빨리 일으킬 수 있으니, 시행해 볼만한 계책이 아닌가 하오.”
“역시 대 조선제국의 황제 폐하시옵니다. 이는 아무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이판의 혀가 영활한 것은 짐도 잘 알고 있으니, 그 쯤 해두시오.”
“송구하옵니다. 황상 폐하!”
말은 그렇게 하나 득의양양한 웃음이 번져가는 이이첨이었다.
“얼마의 군세를 동원할 예정이시옵니까? 황상!”
‘붉은 전포’, ‘홍의장군’ 하면 떠오르는 곽재우이기에 정말로 홍의전포 일습을 하사한 이진이 곧 곽재우의 물음에 답했다.
“집결한 한인 병사 20만에 조선 군사 10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역시 황상은 이기는 싸움만 하십니다. 제 조건을 이기게끔 하고 싸우시니 연전연승이시죠.”
아첨꾼 이이첨의 말에 더는 대꾸를 않으니 원숭환이 나섰다.
“그 정도면 적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는 것이 아닐까요? 황상!”
“짐의 생각이 그것이니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쟁취하는 승리야 말로 얼마나 값진가!”
“옳사옵니다. 황상!”
이이첨의 말에 그저 웃는 낯으로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진은 내각대학사 중의 한사람인 좌광두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물었다.
“술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짐의 제의가 곤혹스러웠을 것이오. 어찌 되었든 덕분에 모처럼 술 한 잔 마신 것으로 치고, 좌 대학사가 보는 이번 전쟁의 승패는 어찌 되겠소?”
“군사적 식견이 없는 소신이 보기에도 틈왕과 싸우느라 호북에 있는 적의 군사 크게 많지는 않을 것이니,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옵니다. 황상!”
“하하하.........! 그렇지요?”
“네, 황상!”
그래도 술 못한다고 업신여기지 않고 자신을 콕 찍어 물어 준 황제의 행사가 고마워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연로한 대신 좌광두였다.
“자, 그 문제는 이쯤 해두고 오늘은 즐겁게 술이나 마시다가 파합시다. 주량이 약한 사람은 그만 마셔도 좋소. 억지로 강권은 않을 테니, 주량 것 어디 즐겨봅시다. 자, 이제 풍악도 좀 울리고 분위기를 띄워라!”
“네, 황상!”
예판 남이공이 대답을 하는 것으로 곧 주악이 울려 퍼지며 너울너울 명에서 선발된 무희들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5일 후.
금릉 성 밖 장강 변에는 26만 대 군세가 집결해 이순신 함대에 오르고 있었다. 조선 해군 소속의 천 여척이 동원되어 이들을 장강 이북으로 수송하기 위하여 이들을 차례대로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제일 첫 번째 승선하는 제1군은 곧바로 강하(江夏:지금의 무창)에 상륙할 군사 8만이었다. 각각 조선군 2만에 한인 병사 6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 2군은 강릉(江陵)에 상륙할 병사로 이들 역시 8만에 각각 2만과 6만씩으로 구성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제 3군은 양양(襄陽)에 상륙할 군사로 수로인 한수(漢水)를 따라 거슬러 오르다가 양양 못 미처 상륙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조선군 2만에 한족 병사 8만 등 총 10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부대였다.
말은 총 30만을 동원한다고 호언했고, 그렇게 적에게도 선전했지만 실제로 동원된 군사는 조선군 6만에 한족 병사 20만으로 총 26만 명이었다. 조선군 4만은 혹시 모를 변고에 대비해 금릉에 주둔시킨 채였다.
아무튼 호북성(湖北省) 옛 삼국시대의 형주 땅을 향해 총26만의 대군이 몰려드니 적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대 군세였다. 명의 북경 조정에서도 유정(劉綎)이 거느린 주력 군 10만을 양양 성으로 급파하기에 이르렀다.
정말 호북성까지 잃으면 사천에 이어 모든 곡창을 잃는 것으로 북경 치하의 백성들이 당장 아사하게 생긴 까닭이었다. 물론 여타지역에서도 쌀이 생산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양 창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므로, 치하의 4천만 인구가 먹고 살기에는 태부족일 것은 자명한 노릇이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호북을 잃을 수 없다고 판단한 장학명 주도하에 양양성으로 총사령관 유정의 군대를 옮기니, 틈왕의 대결에서는 열세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아무튼 8월이 되어 호북의 대 곡창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데 이를 두고 명과 조선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명 치하 백성들의 민심이었다. 즉 호북 민심은 절대로 명의 편은 아니었다.
아니래도 세금을 안 걷는 것은 물론 빼앗은 땅마저 골고루 나누어준다는 틈왕 이여송의 군대가 머리 위에 있고, 남쪽에서는 그만은 못해도 많은 세금을 경감하고, 산업을 장려하는 조선군이 있는 마당에,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삼향에 광세사 마저 파견해 착취에 혈안이 된 명 조정은, 백 번을 양보해도 얼른 이 땅에서 사라져야할 정권이었다.
아무튼 이런 백성들의 생각 속에 제1진으로 파견된 조한 양군 8만은 무창 성을 에워싸고 연일 포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호북의 도지휘사사 왕흡(王洽)은 이에 맞서 결사적으로 싸우나 낙성이 머지않았음을 내심 잘 알고 있었다.
백성들을 총 동원하였으나 벌써 민심이 이반되어, 당장 눈앞의 창칼이 무서워 소극적 협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이 정도는 나은 것이고, 어제 밤에는 병사들이 자청하여 적에게 성문을 열어주려다 걸려 참수된 사건도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드는 왕흡이었다.
아무튼 그가 수심에 잠겨 또 하루의 아침을 맞고 있는데 웬일인지 적은 오늘 포격도 하지 않고 조용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각 성문을 순시하려는데, 병사 하나가 화살에 매단 쪽지 하나를 가져왔다. 빼서 읽어보니 한마디로 항복을 권유하는 내용과 내응하라는 글귀였다.
성문을 여는 자는 천금을 하사한다는 내용과 함께 성내의 병사들에게는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화가 난 그가 그 종이를 발기발기 찢어버리긴 했지만, 시시각각 적이 목을 조여오고 있다는 위기감을 더욱 느끼게 되는 왕흡이었다.
이때 순무가 회의를 하자고 청하는 말단 관리를 하나 보내왔으나, 매일 회의를 연다고 해서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이를 거절하고 성문이나 순시하려고 걸음을 떼는 왕흡이었다.
왕흡이 동남쪽으로 동호(東湖)를 끼고 있는 동문을 순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지를 떨어 울리는 함성이 남문 쪽에서 진동을 했다.
와아........!
와아........!
그 함성에 깜짝 놀라 급히 말을 타고 남문 성에 도착한 왕흡은 자신의 눈을 씻고 다시 볼 정도의 의심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순무 이하 제 관리들이 스스로 결박 지어 남문을 열고 적을 맞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껏 회의를 한다더니 항복할 궁리였던 모양이었다. 그들의 궁량에 혀를 쳐보지만 벌써 때는 늦어있었다. 자신도 얼마 안가서 성이 떨어지리라 예상했지만 순무 이하 모든 관리들이 앞장서서 먼저 항복할 줄은 몰랐던 왕흡이었다.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한 왕흡은 적이 다가오기 전에 속히 그 자리를 떠났다. 동문 근처까지 말을 몰아온 왕흡은 다시 한 번 푸르른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본 후에는, 스스로 장검을 빼들고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살아 적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죽자한 것이다. 곧 그의 목에서 끝없이 피가 솟구치는 것으로 훗날 병부상서에까지 오를 재목이 두 눈을 감고 말았다.
* * *
강릉 성 이 당시의 지명으로는 형주성(荊州城)에도 적의 8만 군사가 새까맣게 성을 에워싸고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형주성의 수비대장 마세용(馬世龍)은 연일 부하들을 독려하며 맞서 싸우고 있으나 그 역시 비세를 절감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부장 좌보(左輔)를 데리고 성을 순시하고 있으나 표정이 밝지 못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적은 수군 함대까지 동원하여 함포 사격을 할 것 같으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적의 화기가 충분치 못해 간신히 지금까지는 막아냈으나, 적의 함포사격까지 가세한다면 도저히.........”
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말은 입속에 담은 채 다만 고개를 젓는 마세용이었다.
“조선군은 화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지금까지의 전투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지 않았습니까?”
“적의 사정을 나라고 알 수 있나. 무슨 사정이 있겠지.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천만다행한 일이었지만 말이야.”
사실 이들이 모르고 있었지만 일 개 여단에 1사(司) 정도는 화기 병이 필히 따라붙는 것이 조선의 편제였다. 2개 사의 화력이 있으면서도 이들이 포격전을 심하게 전개하지 않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니래도 금방 떨어질 것 같은 성에 괜한 주먹질이고 화약의 낭비라고 생각한 여단장들의 생각이 반영된 탓이지, 결코 화기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아무튼 이번에는 이순신 함대의 함포까지 시위에 가담하게 된 것은, 저들을 하루라도 빨리 투항시키기 위한 시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저들이 투항하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맹공을 퍼부을 생각을 이들은 갖고 있었다. 곧 우르릉, 우르릉 마른하늘에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문 성이 적의 함포 사정 권 안에 들어 연신 포탄을 맞고 있었다.
급히 마세용과 좌보가 그쪽으로 달려가는데 이번에는 북문에서도 적의 포격 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이에 마세용은 부장 좌보를 북문으로 급파하고 자신은 계속해서 남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때였다. 엉뚱하게도 동문 쪽에서 큰 함성이 일고 있었다.
와아.........!
와아.........!
아무래도 무슨 변고가 생겼다고 직감한 마세용은 급히 말머리를 동쪽으로 돌렸다. 동문에 도착한 마세용이 목격한 일은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는 일이었다. 아군 병사들 스스로가 성문을 열어 적을 맞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 버티긴 했다!’
스스로 위안 하며 동문을 떠나는 마세용의 눈에는 비감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저들 오랑캐에게 이 곡창마저도 빼앗겨야 하는가?’하는 자괴감과, 너무 초라한 조국 명에 대한 분루(憤淚)였다.
---------------------------------
============================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오늘 하루도 즐겁고 유쾌한 날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