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46화 (146/210)

< -- 146 회: 직할 통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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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공주의 병문안을 하는 자리에서 이진은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황태자 외에 다른 자식들은 삼 년 후에나 장가를 들이겠다는 것이다. 청연 또한 이에 포함되니 그녀도 최소 18세는 되어야 시집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이진의 해명인즉 손자 대해 태어나는 아이들이 나이 차를 두기 위함이란 말을 했다. 이는 보위를 이을 손자 들 간에 나이 차가 나는 것이 황통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청연공주는 당연히 떠나보내기 싫은 이진의 억지 주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에 적극 반대해 이를 말릴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속에서 빠른 속도로 황태자 이흔의 간택이 진행되니, 곧 이순신의 손녀 즉 이순신의 장남 회(薈)의 딸이 황태자비로 간택되어, 책봉례가 행해지는 날 함께 가례까지 올려버렸다.

자색도 고운데다 품성도 온후해 합격을 받은 데다, 정치적 배려도 단단히 한 몫 했던 까닭이었다. 이렇게 진행되기 까지 걸린 시간이 채 두 달이 되지 않았으니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이에는 이진의 꼼수가 있었으니 자신이 직접 명에 가, 나라의 사정을 살피고 다시 격화되는 명의 북경 조정과 틈왕 이여송의 싸움을 현지에서 직접 지휘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일을 대비해 이진은 사전에 몇 가지 준비를 하니 다음과 같았다.

우선 신립의 6개 여단을 한양으로 철수시켰다. 자신이 한양을 비우더라도 불순 세력이 딴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진의 두 번째 조치로는 삼정승 즉 유성룡, 이항복, 이덕형을 삼사(三師) 즉 세 명의 스승으로 삼아 황태자 흔을 가르치고 보좌케 한 것이다.

세 번째 조치로는 금군 이만을 둘로 나눈 것이다. 사저부터의 충복 김체건에게 금군 1만을 맡겨 아직 연치 어린 황태자 흔을 보호토록 한 것이다. 사전에 이 모든 조치를 끝내자 이진은 정무가 끝난 5월 초, 유시 무렵 이들 5인을 특별히 침궁인 강녕전으로 불러들였다.

여간해서는 사생활 공간인 강녕전으로 신하를 불러들인 바 없는 이진인바, 이들이 황제 이진에게 얼마나 신임을 받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일이었다. 이를 그들 자신도 모두 알고 있었던지라 새삼 황상의 은혜에 감격하여 분위기 숙연한 가운데 이진이 차려진 주안상에서 술을 들며 말했다.

“허허........! 좌중이 너무 숙연하니 분위기가 영 말이 아니군. 자 한 잔씩 들고 허심탄회하게 할 말들이 있으면 해보오. 자, 자, 얼굴들 펴고 어서 한 잔씩 쭉 듭시다.”

이진의 말에 따라 모두 잔을 들고 고개 돌려 급히 잔을 배우는 다섯 사람이었다.

주안상 또한 평소 이진이 선호하는 대로 각자 독상이 아닌 교자상 두 개를 포갠 것이라 분위기는 한결 정담을 주고받듯 훈훈했다.

“명국 아니 조선의 강남땅에 가옵시면 얼마를 체제하실 계획이오신지요?”

거두들 중에서도 수뇌인 유성룡의 물음에 이진이 잠시 수염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가 답했다.

“가면 아무래도 쌓인 현안이 산적할 텐데, 쉽게 오기는 힘들듯 하오. 한 일 년 정도 예상하고 있으나 더 빠를 수도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오.”

이진의 말에 모두 심각한 안색이 되어 말이 없는 다섯 사람이었다.

“군주가 오랫동안 도성을 비운다는 것이 과히 좋은 일은 아닌지라 가급적 일찍 환궁하시기를 바라나이다. 황상!”

좌의정 이항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진이 답했다.

“짐도 가급적 그러려고 노력은 하리다.”

“소신이 한양에 머물면 과연 권율장군만으로 방어가 될지 그것이 신은 가정 걱정되옵니다. 황상!”

사적으로는 장인이기도한 신립이지만 언감생심 그런 것을 내색할 자리는 아닌지라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근심을 토하는 그였다.

“그 또한 짐의 염두에 있는 일. 지금 주익균이 이여송의 일로 그럴 여력은 없다고 보나, 만사 불여튼튼 이라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겠지요. 권율 장군이 비록 조선군 4만에 명군 포로 6만을 순치시켜 데리고 있다고는 하나, 절체절명의 위기가 오면, 저들 포로들을 완전 믿을 수는 없는 노릇. 해서 짐은 차제에 6만의 정예들을 더 양성시키면 어떨까 생각 중이오.”

여기서 말을 끊고 잠시 좌중을 둘러본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인적 자원이야 한족이 많지만, 그래도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조선 백성인바 조선인 청년들 위주로 3만을 선발하고, 나머지 3만은 여진족 병사들을 선발했으면 하오. 지난번의 모집으로 많이 해소되긴 했으나 조선인 백성들 중에는 아직도 궁핍한 백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예를 들면 소작농 가정이나, 국제 무역과 수공업화가 진전됨에 따라 도시로 몰려든 일용직 직공들이오. 이들을 방치하면 종국에는 사회문제가 될 것이므로 차제에 구제하는 것으로 합시다.”

“다 좋으나 이제 중앙군의 녹봉이 쌀 2말로 오른바 재원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우의정 이덕형의 우려에 이진이 답했다.

“아직은 국제수지의 흑자로 초래된 은과 늘어난 재정 수입으로 충분하나 장차는 이에 대한 대비도 해야겠지요. 아마도 옛 명 쪽의 백성들이 안정이 된다면 보다 많은 징세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소.”

이진의 말에 딱히 이의를 재기할 수 없는지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다. 이를 넉넉한 웃음으로 바라보던 이진이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는 김체건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아니 술 한 잔을 그에게 따르며 말했다.

“지금까지 나를 호위하느라 고생이 많았소. 이를 이제 황태자에게까지 명하니 면목이 안서는 일 이오만, 다음 대 보위를 이을 아주 중요한 사람이니 어쩌겠소? 김 공이 지켜주어야지.”

“어인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소직의 소임이 그것이거늘......... 맡겨만 주십시오. 전하의 신변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통 같이 호위하겠나이다.”

“역시 믿음직스럽소.”

김체건에게 다시 한 번 신뢰를 보낸 이진이 이번에는 다른 네 사람에게도 술 한 잔씩을 따라주며 권했다.

“자, 또 한 잔씩 쭉 듭시다.”

모두 잔을 들자 안주를 집은 이진이 이를 삼키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짐이 삼정승 외에 제 대신과 승지들을 모두 데리고 갈 테니, 세 분은 그동안 조선을 이끌고 갈 간략한 내각을 별도로 꾸리시구료.”

“알겠사옵니다. 황상!”

삼정승 모두 복명하는 가운데 이진은 또 다시 화제를 전환했다.

“짐이 가장 심려하는 것은 황태후마마의 건강이오. 하니 짐이 없더라도 알아서들 잘 챙겨주기 바라오.”

“염려 마시옵소서. 황상! 수시로 어의들을 파견하여 태후마마의 건강을 돌보겠나이다.”

“암, 그래야지요.”

영상 유성룡의 말에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진이었다.

황태후 박 씨 금년 춘추 54세로 이 당시의 나이로는 노년에 들었으니 이진으로서도 그녀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정담과 세세한 이야기로 도성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순라꾼들의 딱딱이 소리 한양 도성 곳곳에 울려 퍼질 것이건만 이들의 이야기는 한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일 후.

마포나루에 조선해군의 전함들이 끝없이 들이닥친 가운데 삼엄한 경호 속에 황제의 어가가 출현했다. 따르는 이 수없이 많은 가운데 차례로 승선을 하니, 옛 명의 수도 금릉(金陵:남경)을 향해, 전함이 차례로 나루를 떠났다.

* * *

금릉은 명을 건국한 주원장이 수도로 삼았던 성으로 지금도 그 궁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영락이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북경에 축조한 궁궐이 이 금릉의 궁궐을 모방한 것이니, 그 규모는 지금의 자금성에 비하면 작을 지라도, 그 근본 건축 설계는 비슷했다.

지금은 비록 북경으로 천도한지 꽤 오랜 세월이 흘러 일부의 건물이 퇴락하고 위엄을 잃었지만 새로운 황제 이진이 입성을 하자 금릉은 면모를 일신해 새로운 권위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이런 가운데 새롭게 조양궁(朝陽宮)이라 명명한 정전에는 황제 이진을 비롯한 제 문무 관료들이 부복해 있었다. 삼정승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신들이 그대로 옮겨온 내각이었다. 이런 대신들의 면면을 둘러보던 이진이 물었다.

“옛 명의 신료들 중 덕망과 학식이 뛰어난 자들을 초치하라는 명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황상의 명으로 벼슬을 하사했으나 대부분이 고사하고 움직이지를 않사옵니다. 황상!”

이조판서 이이첨의 말에 이진이 노여운 안색으로 말했다.

“저런, 저런, 무슨 일을 그렇게 처리하나? 하고 원숭환은 어떻게 됐어?”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거인(擧人)이 되었으나 지금은 향리인 광동성(廣東省) 동완현(東莞縣)에 머물러 있사옵니다. 이에 황상의 명을 전했으나 여전히 고사하며 입궐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옵니다. 황상!”

원숭환(袁崇煥)이 누구인가?

과거 송(宋) 대에 금(金) 나라에 맞서다가 진회(秦檜)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은 악비(岳飛)와 함께 ‘반청 흥한(反淸興漢)’의 영웅으로 숭앙되는 인물이 그였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담대하고 지략이 풍부해 문관(文官) 출신이면서도, 패전만 거듭하던 명나라 지휘관으로서는 유일하게 청의 공격을 두 번이나 막아낸 인물로, 끝내는 환관들의 농간으로 처형이 된 명장이었다.

중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인물이므로 이진은 그를 탐내어, 아직 25세 밖에 안 된 청년이지만 여러 번에 걸쳐 이곳에 오기 전부터 칙서를 보낸 바 있었다. 그런 인물이 꼼짝을 안한다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말은 거칠 수밖에 없었다.

“짐의 명에 응하지 않는 자들은 이제는 강제라도 잡아다 짐 앞에 꿇려! 알겠소?”

“네, 폐하!”

이진의 노여운 목소리에 제 대신들이 급히 부복해 답했다.

“하고 삼향(三餉)을 폐하라 했는데, 호조는 이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는가?”

여기서 삼향(三餉)이란 요향(遼餉), 초향(剿餉), 연향(練餉)의 통칭으로, 근래 조선의 침입을 방어하고 농민의 반란을 탄압하기 위해 증가된 군비를 메우기 위해 거둔 세금을 말한다. 그런데 그 세금이 기존 거두던 세액과 같았으니, 근래 명은 배증된 세금으로 인해 백성들이 아주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런 요인 외에 몇 가지 요인이 겹쳐 명국 백성들의 저항이 적어 조선이 이들을 점령하는 데는 한결 수월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진의 물음에 호판 김신국이 대답했다.

“일단 제조상으로 이를 폐하고 각 성과 예하단위 행정조직에도 모두 통보했사오나, 이 외에도 개혁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걸로 아뢰옵나이다. 황상!”

“짐도 알아. 그러니까 우선 백성들의 목줄을 죄는 것부터 과감히 폐지하고 차근차근 개혁을 해나가자고.”

“네, 황상!”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광해를 들라고 해.”

“네, 황상!”

제 대신들이 물러가고 이진은 광해를 기다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광해가 들어오자 꿈에서 깨어난 듯 깊은 생각에서 벗어난 이진이 그를 맞아 미소를 띠고 물었다.

“어때? 이곳의 생활이?”

“사는 것은 어디나 다 같은 것 같사옵니다.”

“애늙은이 소리하지 말고. 이여송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이진이었다.

“명군의 총 공격에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사옵니다. 황상!”

“하긴 명의 조정으로 보면 심복지환일 텐데, 이들을 멸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겠지. 아닌가?”

“그렇사옵니다. 황상!”

“흐흠.........! 정말 그렇다면 이여송으로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겠군.”

“해서 틈왕의 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사옵니다. 황상!”

“무슨 말이야?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빨리 얘기해봐.”

“네, 황상!”

“지금까지 이여송의 군대는 지주와 대부호들 심지어 현지에 주둔하던 각 왕들의 재물을 약탈하여 군자금으로 삼고, 또 빼앗은 토지를 가난한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배분하는 정책만으로도 큰 인기를 누려 세를 유지했으나, 명의 반격과 우리의 제재로 더 이상 타 지역으로 진출을 못하자 현재는 한계 상황에 이르러 기존 세력의 이탈은 물론 추가 군사 모집도 쉽지 않은 상태로 내몰리고 있사옵니다. 황상!”

"그래서?"

“해서, 이 여송은 모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제는 세금마저 안 걷겠다고 선언할 태세입니다. 황상!”

“그게 뭔 소리야! 세금 징수 없이 어떻게 나라가 유지 돼?”

“더 이상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책이나 당분간은 또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정권을 유지하지 않겠사옵니까? 황상!”

“흐흠.........! 고연.........! 그 풍조가 우리에게 유입이 되면 안 되지 않는가?”

“당연합죠. 중대 사안인바, 마땅한 조처가 있아야 할 줄로 아옵니다. 황상!”

“자꾸 제재를 가하면 우리와 틀어질 테고, 그것 참.........!”

고뇌하는 이진이었다.

바람 잘 날 없는 지존의 자리.

이럴 때면 차라리 훈장 노릇이 편했다고 생각하는 이진이었다.

그의 이마에 내 천(川)가 그려져 펴지지 않는 가운데, 광해가 대책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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