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6 회: 북방 평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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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영화나 연속극에 나오는 전쟁 장면과는 차원이 틀렸다. 기껏 말 몇 십 필만 동원해 다리나 죽어라 하고 찍어 대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대초원에 6~7만의 전마들이 일제히 발굽을 놀리며 돌진하는 광경은 장관이다 못해 소름이 돋는 장면이었다.
그 진동이 얼마나 큰지 치달리는 군사는 물론 소차 위에 있는 신립과 송익필에게도 고스란히 그 진동이 전해질 정도였다. 어쨌거나 최초의 양측 격돌이 발생했다.
쿵쿵쿵..........!
두두두..........!
우지끈 뚝딱!
의성어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파열음과 함께 여기저기서 전마와 사람의 비명소리 애달프고 양측의 무기 부딪는 살벌한 소음만이 온 전장에 가득했다.
“죽여라, 죽여!”
“도륙 내!”
히히힝.........!
창, 창, 캉캉........!
으악........!
아비규환의 대혼란, 대 격전.
이런 대혼란 대격전의 대회전이 몇 번 거듭되자 아무래도 비슷한 전투력이다 보니 인원이 부족한 쪽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회가 거듭할수록 산술적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군사 적은 쪽이 급격히 숫자가 적어지며 불리해졌다. 이를 바라보던 휘발부 족장 홀가적(忽哥赤)이 단안을 내려, 동문을 열고 아군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두두두 ..........!
펑, 펑, 펑!
쾅, 쾅, 콰쾅!
동문을 벗어나 전마들이 채 속도의 탄력을 받기도 전에 때 아닌 조선군의 화포가 맹렬하게 이들을 타격했다. 최대한 전장에 접근해 동문을 유효사거리 내에 넣은 조선군의 일대 타격에 반 이상이 절단났다.
포탄에 피격된 말도 말이지만 이들이 쓰러지는 바람에 장애가 되어 같이 넘어지는 전마들이 부지기수였다. 이에 더욱 힘을 받아 날뛰는 장백여진의 세 부족 전사들과 낭패아한의 기병들이었다. 그럴수록 나목간(那木竿)이 거느리는 우라부의 전사들은 떼죽음을 당해나갔다.
그렇게 되자 성안에서는 군사를 더 내보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적의 포탄이 아군의 기마대가 아닌 성문을 부수기 위해 달려드니, 곧 문루가 터져나가고, 육중하다 싶은 동문마저도 터져나가는 것은 수유의 일 같이 느껴지는 홀가적이었다.
해서 묘수를 찾아 고민하나 묘수를 찾을 수 없었다. 벌써 초원의 전장은 정리가 되어가는 듯 많은 수의 기마들이 포의 사정권 밖에서 이쪽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성문을 틀어막아! 무슨 수를 쓰더라도 틀어막아!”
홀가적이 악에 받쳐 고함을 치자, 적병에게 굴리기 위해 구해온 통나무며 돌들이 성문 쪽으로 집중 투하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안심을 못한 홀가적이 말을 타고 성문으로 달려가는데 포탄이 반 마장 떨어진 자신의 위치까지 떨어지자 움찔하지 않을 수 없는 홀가적이었다. 이에 반해 조선군 측은 사기가 오를 대로 올라 있는 상태였다.
아군 기마대는 적의 기마 대병을 무찔러 이제 이삭줍기 식으로 항복이나 받으러 다니고 있는 형편인데다, 아군의 화력 곧 성문을 부술 듯하니, 포수들 뒤에서 문 열리기만 학수고대하던 왜병들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성문을 주시하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성을 포위한다!”
“성을 포위한다!”
더 이상 추살할 기병도 없자 낭패아한은 나머지는 장백여진에게 맡기고 서둘러 말을 몰아 서쪽 성문 쪽으로 행했다.
이 우라 성은 서쪽에 송화 강을 등지고 축조되어 있어서, 서쪽 끝까지는 갈 필요가 없었다. 곧 강변서부터 시작해 남쪽으로 동문까지 일단 포위망을 구축하는 낭패아한이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남문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는 낭패아한이었다.
“저들이 남문을 열고 나왔으면 상황이 좀 달라졌을 텐데........”
혼자 중얼거리던 낭패아한은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 하는 탄성을 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도 먼저 위장 포격을 개시한 일부의 조선군 화기 영장 2개 사병(司兵)들이 성안으로 간헐적으로 포탄과 함께 신기전을 쏘아 올리는 것을 본 까닭이었다.
“북문도 마찬가지겠지........!”
이 작전을 계획한 사람이 누구인지 용의주도하다는 생각을 하며 괜히 진저리를 치는 낭패아한이었다. 이때 동문 쪽에서 와아........! 하는 함성이 일어 동문 쪽으로 말을 달려가는 낭패아한이었다.
그 시간.
기어코 동문이 포격에 박살이 나니, 서로 전공을 다투는 왜, 명, 조선 군 할 것 없이 일제히 동문 쪽으로 난입해 들어갔다.
한참 후, 이 모양을 보게 된 낭패아한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끝났구나.........!”
그 뒤에는 아마도 휘발부와 우라부를 지칭하는 말이 빠져 있을 것이다.
낭패아한의 말대로 처음에만 장애물 때문에 지체되었지 그것이 교두보를 확보한 군사들이 지켜주는 가운데 신속히 치워지자, 적은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고 아군만 우글우글 병목 현상을 빚을 정도였다.
쇄도하는 군사들로 미어져라 터져라하는 가운데 이제 성내 곳곳에서 접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항왜들이 잔인해서 그동안의 울분을 폭발하듯 눈에 띄는 인간이고, 심지어 멋모르고 어리대던 가축까지 걸리는 족족 도륙하며 성의 중심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자신들의 말로 거성이라 해도 결코 크지 않은 성에 피해를 입을세라 부족민들까지 전부 끌어들이다보니, 이건 적이 쳐들어오지 말 탄 보병이 되어 서너 명씩 떼 지어 달려드는 적들에 의해 좋은 먹잇감 밖에 되지 않는 우라부와 휘발부족들이었다.
이런 전투가 한동안 계속되자 성의 중심부에서 싸우고 있던 홀가적은 자신의 판단 착오로 인해 양 부족민들이 떼죽음 당하고 있고, 당할 것을 알았다. 항복을 상의하려고 해도 우라 부족장 나목간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전사한 모양이라 단념하고 스스로 말에 뛰어내려 항복을 외치는 홀가적의 두 눈에는 어느덧 비분의 눈물이 소리 없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항복하라! 항복해!”
결코 말이 되지 않는 짐승의 울음소리에도 용케 아군들은 알아듣고 항복대열에 합류하고 있었다. 거기에 적군까지 항복을 종용하는 목소리 높아지기 시작했다.
“항복하라! 항복해!”
“항복하는 살려준다!”
갈수록 커지는 적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이미 전의를 상실한 양 부족민들은 다투어 항복 대열에 합류하니, 이를 보는 홀가적의 가슴은 찢어졌다. 아니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 * *
“하하하.........! 이제 엽혁부와 합달부의 부족장까지 스스로 회사품을 적게 받겠다고 사자를 보내왔단 말이지?”
“네, 폐하!”
도승지 이원익의 대답에 다시 한 번 가가대소를 하던 이진이 우뚝 말을 멈추고 말했다.
“결코 사자로써 해결될 일이 아니다. 칭기야누(淸佳努)와 양기누(揚吉努)가 직접 입조해 고하도록 하라고 해라. 짐이 조무래기들을 만날 일이 없다!”
“알겠사옵니다. 황상!”
도승지 이원익이 나가자 신립이 올린 장계를 펴서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는 이진이었다.
“적 사상 1만5천 중경상 5천, 아군 중상자 포함 사상 6,500명........”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인명 피해가 났구나! 조선의 부흥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피해가 너무 막심한 걸. 하지만 이로써 북방도 짐의 명령 일언 하에 제 군사들을 동원할 수 있으니, 이만하면 북방도 평정되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 하하하........!”
이에 장단을 맞추는 자가 있으니 오랜 세월 측근에서 모심으로써 이진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읽어내는 김 상선이었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감축 드리옵니다. 폐하!”
못지않은 여인 제조상궁 정옥빈까지 옆에서 함께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요새 비록 그녀와는 잠자리가 소원하지만 전혀 그런 내색이 없는 그녀이고 보니, 때로 신통한 마음이 드는 이진이었다.
“오늘은 모처럼 옥빈을 안을까? 아니지. 경축연이 먼저지. 그러나저러나 이러다 경축연으로 나라가 거덜 나는 것은 아닌지 몰라!”
즐거운 비명인지 괜한 엄살인지를 떨며 허허거리는 이진의 기분은 정말 좋은 듯 여전히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황상! 경축연을 준비하오리까?”
“그래. 유시에 할 수 있도록, 제 대신과 소주방에 이르도록 해라!”
“네이~! 황상!”
함께 고개를 조아린 대전내관이 잽싸게 편전을 빠져나갔다.
* * *
어둠이 내려앉는 경회루 곳곳에 횃불이 밝혀지는 것을 시작으로 문문백관은 물론 내명부, 종친부의 인물들까지 속속 연회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를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이진 때문에, 깜짝 놀란 치들이 전부 종종 걸음으로 속히 제 위치를 찾아갔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로다. 나 때문에 우리 조선 백성들이 모처럼 기 펴고 살 수 있음이야!”
자신을 이 땅에 보내준 누구인지 모르는 절대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이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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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후의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