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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112화 (112/210)

< -- 112 회: 북방 평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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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처럼 길게 흐르는 낮은 내, 숨바꼭질하듯 산재한 구릉과 구릉 사이로 질 좋은 목초지가 연이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뒤로는 마치 그림 속의 배경이라도 되는 양 아직도 흰 눈을 이고 서있는 산봉들이 치달리고 있었다.

이런 풍광으로 끝났으면 시골 이발소 그림이라도 되련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내와 구릉 사이에 20마장은 될 듯한 대평원에는 지금 5만이 넘는 군사가 대치고 있으니 긴장감이 팽팽했다. 흥분한 전마들의 투레질 소리 대초원에 가득한데, 살의에 가득찬 자들의 거친 호흡소리 금방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듯 급박했다.

“공격!”

“공격!”

“공격 앞으로!”

“앞으로!”

양쪽 장수의 명에 따라 뿔 고동, 초적(草笛)소리 긴 공명음을 남기고, 전의를 북돋우는 전고소리는 뛰노는 심장보다 더 빠르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와와와..........!

온 들판을 덮듯 덮쳐오는 2만5천의 기마대에 대항하여, 아군은 양 측면으로 5천씩 나뉜 낭패아한의 기마대가 발 구르는 전마들을 달래며 명을 기다리고 있고, 굵은 통나무로 몇 겹의 통나무 목책을 세운 명군의 선두에는 조총 병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 뒤로는 잔뜩 시위를 당기고 있는 궁수들이 서있고, 그 뒤로는 거마병들이, 그 뒤로는 창병을 위시한 살수들이 긴장한 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모두 명에서 귀의한 조선군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후방 높다란 소(巢) 위에는 전군을 지휘하는 신립이 위치해 독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일단의 조선군들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기마대 공격!”

“기마대 공격!”

신립의 명에 대형 붉은 기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가자!”

와아..........!

신립의 명에 따라 적진을 향해 내달리는 낭패아한의 1만 기병이었다.

이에 맞서는 주서리부는 쐐기꼴 진형으로 그 선두에는 추쿵거가 연신 채찍을 휘두르며 내달리고 있었다. 용감한 자만이 부족장이 될 수 있다는 부족의 전통에 부합되는 행동이었다.

“일제 사격!”

“일제 사격!”

신립의 명에 금방이라도 덮칠 듯 다가오는 전마들을 향해 일제히 심지에 불을 당기는 조총 병들이었다.

탕 탕 탕 탕.........!

일제히 총성이 울려 퍼지고 이어 대기하고 있던 다음 열이 달려들어 일제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히히힝.........!

픽 픽 픽........!

전마와 사람 조총에 맞아 무더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없이 달려드는 주셔리 부족이었다. 금방이라도 적의 전마 말발굽이 덮칠 듯 위기감을 느끼는 명군들이었다.

이런 그들을 위해 후위에 있던 궁병들이 하늘 높이 궁시를 놓았다. 들판에 널린 것이 적이다. 중력까지 이용하여 적을 살상하자는 살 법이었다. 이때 낭패아한의 기병이 적의 후미를 향해 비스듬히 짓쳐들었다. 후위를 잘라먹자는 수법이었다.

우지끈 뚝딱!

드디어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선두 기병이 굵은 통나무를 통째로 부수고 난입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이미 조선에 귀의한 명군의 조총병과 궁수들은 퇴각하고 없었다. 앞에는 어느새 거마병들이 창을 바닥에 깊숙이 꽂고 밀집 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로 후미로 후퇴한 궁병들이 다시 한 번 곡사를 놓았다. 이제 피아간에 본격적인 사투가 벌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이때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천지를 진동하는 지축음이 땅을 뒤집어 놓을 듯 들려왔다. 주셔리 부족장 추쿵거가 돌아보니 야류장 부족과 너연 부족이었다. 자신들을 응원하러 올리는 없었다.

적으로 온 것이 맞을 것이다. 전부터 조선인과 내통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추쿵거였다. 아무리 그들이 가세했기로서니 여기서 등을 보일 수는 없었다. 오직 돌파만이 살길이었다.

“돌파한다!”

창을 휘두르며 먼저 창이 밀집된 지역으로 뛰어드는 추쿵거였다. 뒤를 따라 부족전사들이 그를 에워싸듯 하며 적의 창 숲으로 일제히 난입했다.

창진이 부서지는 것과 함께 적의 비명소리 끊이질 않지만 퇴로마저 막힌 지금은 오직 적진, 전진의 종 돌파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 추쿵거였다. 이에 따라 추쿵거는 더욱 매섭게 전마에 채찍질을 가했다.

이런 보람이 있었는지 적의 전열이 일시에 붕괴하며 후방의 지휘부부터 꼬리를 마는 게 보였다. 이에 더욱 사기가 치솟은 전사들이 용기백배하여 적진을 향하여 무섭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 아아아.........!

적에게 꼬리를 잡힐세라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 마냥 무조건 앞으로 달아나는 적병을 향해 충살해가는 부족 전사들의 이빨이 보였다. 신명이 절정에 오른 것이다. 이에 반해 적들은 구릉 사이로 스며들기 바빴다.

이때였다.

구릉 위에 일단의 조선 병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무엇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펑 펑 펑!

쾅 쾅 쾅!

무지막지한 화력이 아군의 중앙을 강타해 말이고 사람이고 간에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게 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저들의 사거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고였다. 저들의 화력을 향해 안으로 안으로 난입하는 주셔리 부족 전사들이었다.

이때였다.

쾅, 쾅, 콰쾅!앞쪽에서 무엇이 연이어 터지며 불꽃과 함께 일대가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적의 진마저 부순다는 파진포(破陣砲) 지뢰가 말의 무게에 의해 작렬하고 있는 것이다.

비명 소리도 없었다. 오로지 불꽃과 뒤집어지는 땅거죽 그리고 하늘 높이 솟구치는 전마와 사람의 시체만 있을 뿐이었다. 뒤늦게 흙과 함께 아군의 시체 후 두둑 떨어지는 것을 본 추쿵거는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뒤로 말을 돌리면 병목현상이 일어나 패배를 자초하는 것. 이제는 죽으나 사나 돌파밖에 없었다. 이럴수록 추쿵거는 악을 쓰며 외쳤다.

“돌격!”

“돌격!”

그것이 그의 최후의 음성이었다.

콰쾅!

그 소리를 끝으로 그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

먼저 고막이 파열되고 강력한 화력에 온몸이 찢겼다.

콰과과광! 콰광! 쾅쾅!

연이어 폭발음이 들리고 주셔리 부족들은 이름 모를 구릉 사이에 전마와 함께 생명을 묻기 시작했다.

와아.........!

엎친 데 덮친다는 격으로 앞에는 또 일단의 조선 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편전과 중화기로 무장한 병사들이었다.

용케 지뢰를 피한 전사들이 이제는 그들의 밥이 되어 꼬치 꿰거나 폭사했다.

이에 따라 구릉의 저지대는 지형이 변하고 살아 숨 쉬는 주셔리 부족전사들이 눈에 띄게 줄어갔다.

“옆으로, 옆으로!”

구릉 입구에 진입했다가 안의 참상을 목격한 암반 하나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뒤로 틀라면 일대 혼란이 일어나 패배를 자초하는 일. 제법 영악하게 지휘하나 이제는 여진 3개 부족 기병이 자신들을 충살해오니, 이것은 도대체가 일방적인 도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때 또 불쑥 불쑥 구릉 위 칠 부 능선위로 솟구치는 병사들이 있으니 조선의 조총병과 궁수 들이었다. 이들이 또 한 번 일제 사격과 쇠뇌를 퍼부우니 주셔리 부족은 그야말로 급전직하 사기를 잃어갔다.

“총공격!”

“총공격!”

수많은 구릉 중 가장 높은 구릉 위에 나타난 신립의 독전에 이제는 반마삭(絆馬索)을 든 조선군 살수들까지 나타나 설치니 옴치고 뛸 수조차 없다.

이에 따라 급속히 사기를 잃은 주셔리 부족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열에서 이탈해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곳곳에서 이 모양이 자행되니 기껏 싸우려던 자들도 급속히 전의를 잃어갔다.

여기에 기름마저 부으니 항복을 종용하는 목소리였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준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준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목소리였으나, 종내는 전 군사가 다 외치니, 이 소리만 대평원에 메아리쳤다. 이에 전투의지를 잃고 속속 말에서 내려 항복하는 주셔리 부족들이었다.

이렇게 되니 일부 대항하는 자들은 더 많은 적에 에워싸이게 되고 그만큼 빨리 죽어나갔다. 그러 속에서도 항복하는 전사들이 속속 늘어나니 대평원에 평화가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반 시진 후였다.

서로 대승을 축하하며 전과를 헤아려 보니 적 2만5천 중 물경 8천이 사상되었고, 1만7천 명이 포로가 되었다. 이에 반해 아군 또한 가볍지 않은 피해를 입으니 4천의 사상자를 낸 바 주로 명에서 귀의한 자들이었다.

“하하하.........! 어떻소?”

자랑스럽게 두 왜장을 둘러보며 묻는 신립이었다.

한마디 칭찬을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는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당장이라도 무기만 주면 우리도 이 정도는 싸울 수 있소. 아니 더 나을 지도 모르지.”

이에 반해 왜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는 다른 말을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조선군의 화력이 놀랍소!”

“하하하..........! 그렇지요?”

비로소 활짝 펴진 얼굴로 가가대소 하는 신립이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내 맹우(盟友)들에게 감사의 인사나 전하고 오리다.”

말과 함께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는 신립이었다. 그곳에는 흙먼지와 선혈로 뒤덮인 두 인물이 있었다. 곧 야류장 부족의 족장 나하추(納哈出)와 너연 부족장 타이추(台楚)였다.

“고맙소!”

“이제 같은 조선 백성끼리 인사도 부담스럽구료.”

“하하하.........! 어찌 됐든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지요.”

두 부족 공히 각각 1만씩의 전사를 내어 합동작전을 편 바, 말은 비록 사양하나 뿌듯함이 묻어나는 얼굴과 당당히 편 어깨로 그들의 기분을 알 수 있을 듯했다.

“자, 자,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가서 승전 축하연이라도 엽시다.”

“고맙소!”

타이추의 사례에 씩 웃으며 앞장서는 신립이었다.

곧 중군 천막에는 너연, 야류부족장은 물론 낭패아한, 조승훈, 엄일괴, 두 왜장, 여기에 각 영장들이 몰려들어 시큼털털한 마유주를 한 잔씩 쭉 들이키고 있었다.

“오늘도 특히 조, 엄 두 부사단장께서 고생이 많았소.”

“별 말씀을..........! 조선군의 화력이 아니었다면 큰 희생을 치를 뻔했습니다. 이 자릴 빌어 감사를 표합니다.”

“하하하.........! 한 식구끼리 무슨 소릴..........!”

누가 한 소리를 금방 돌려주는 신립이었다.

좌중의 분위기를 깨며 진중한 목소리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신 장군!”

왜장 고시니 유키나가였다.

“오늘 싸우는 것을 보니 도저히 피가 끓어 못 견디겠소. 우리도 저 명군과 같이 진정으로 항복하면 전장에 설 수 있는 것이오?”

“하하하.........! 황상께서는 특별히 차별하는 분이 아니시니, 그렇게 되지 않겠소? 요는 진정성이 의문이지요?”

“험험........! 그야.........!”

잠시 망설이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새삼 마음을 굳혔는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살다 죽느니 차라리 귀의하여 전장에 서고 싶소. 이대로 죽는다면 생이 너무 무의미하지 않소? 부탁하오!”

갑자기 신립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자존심을 굽히는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이를 따라 구로다 나가마사도 말했다.

“저 역시 같이 전장에 서고 싶습니다. 저 역시 진심입니다. 제 나이 아직 젊지 않습니까? 이대로 생을 끝내기에는 너무 허무합니다.”

“좋소. 내 황상께 적극 건의해보리다. 내 생가에는 아마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오. 자, 그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오늘의 승전을 자축하면서 한 잔씩 쭉 듭시다.”

“고맙소!”

사의를 표한 제장들이 다시 마유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한 사발을 가볍게 비우고 소매로 입을 쓱 닦은 나하추가 물었다.

“이제 주셔리 부족은 어떻게 되는 것이죠?”

“모르긴 몰라도 영토며 부족민 모두 조선에 편입되지 않겠소?”

“그렇게 되겠죠?”

묻고 난 너연 부족장 타이추(台楚)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이렇게 될 게 뻔한데 죽음을 자초한 추쿵거가 미련해 보였고, 같은 부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타이추였기 때문이었다.

“자, 자, 한 잔씩 들 더 합시다. 낭패아한 사단장은 물론 각 영장들도 고생 많았소. 술이 부족하면 더 가져오면 되는 것. 오늘은 마음껏 한 번 마시고 취해보도록 합시다.”

신립의 말에 벌써 따라진 각자의 잔을 들어 올리는 제장들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승전 연은 길게 늘어질 것 같더니, 조금 있다가 금방 파하게 되었다. 각 영장은 물론 다른 부족장들까지 부하들을 통솔해야 된다고 몸을 사리니, 신립 혼자 마실 수 없어 일찍 파하게 된 것이다.

신립 또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절도가 있는 사람이라 내버려두어도 대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모두 자리를 털고 나가자 신립은 곧 서체에 능한 자를 불러들여 황상에게 올릴 장계 내용을 구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어 주셔리 부족마저 조선 백성이 되고, 그 영토마저 조선에 편입되니, 기 장백여진 전체의 영토를 하나로 묶어, 이진은 이를 북간도(北間道)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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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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