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4 회: 황제의 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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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발해 만에 진을 진 이순신은 병력을 세 등분으로 나누었다.
주상 이진이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적은 단지 전선 칠팔십 척에 5천 수군이 전부라 했으니, 바다에는 1/3만 남겨도 승산은 차고 넘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병력을 각각 천진 성과 영하 성에 나누어 배치했다.
병력은 각각 천진에 2만, 영하에 1만5천, 바다에 남은 수군이 1만5천이었다. 원래 조선 본토에 남은 수군으로 치자면 5만이 안 되었다. 대마도에, 왜에, 고산도에 나가 있어, 이순신이 수군 보강을 역설하자 주상 이진이 보충을 해주었던 것이다.
이진의 원래 계획으로는 곽재우와 김덕령이 지휘하는 4, 5사단을 1만 명 규모로 창설하고, 다시 1사단부터 2만 명으로 증원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야인 포로들 3만이 대거 1, 2, 3사단에 편재되는 바람에, 수군을 증원할 여력이 생겼던 것이다.
아무튼 이순신은 김억추와 송희립을 각각 천진과 영하 성 공략의 대장으로 삼아, 이들에게 병력을 쪼개주고 자신은 모함인 대 전단을 지킬 겸, 명군의 수군을 기다리는 작전을 취했다.
지금 북경 성을 공략하는 1사단도 모두 이곳으로 철수하기로 약속이 된 바, 천려일실이라고 수군이 잘못되는 날이면 조선 자체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에, 신중하고 사려 깊은 성격인 이순신은 제해권을 남에게 넘겨주는 모험을 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이 1사단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한 육상 공격을 시작한 그 시각, 북방의 요양성(遼陽城)에서는 조선군의 일방적인 공격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요양성을 지키는 장수는 조선과 인연이 많은 도사 엄일괴였다. 간신히 익균으로부터 목숨 붙여온 그가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조선군 4만이 성을 에워싸고 두드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그가 조선군의 내침을 보고 받은 것은 조양(朝陽)이 막 떠오르는 시각이었다. 밤새 도둑마냥 이슬을 맞고 왔는지 하여튼 조선군의 이른 내습에 엄일괴는 보고를 받자마자 동문 문루에 올라 상황을 살폈다.
뽀얀 먼지구름이 막 떠오른 해를 가렸는데 얼마나 많은 군사가 질주해오는지 몰라도 마치 일식을 보는 듯 했다. 이에 엄일괴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조선의 국왕에게 찍힌 자신의 처지로서는 더 물러날 데가 없음을 알고 마음을 추슬러 담대하게 나갔다.
그것도 잠시 잠깐이었다.
도착하자마자 5천이 지키는 그렇게 크지 않은 성을 포위하는 것 같더니 각종 포를 포진시키기 시작했다. 엄일괴의 생각으로는 성을 공략하기 위한 운제나 충차 또는 비조 등을 들고 설칠 줄 알았다.
그것은 그만의 착각이었다. 조선의 군사력을 너무 얕잡아 봤던 것이다. 각종 포가 방렬되는가 싶더니 일제히 포사격을 전개하는데, 성문이고 문루고 수십 발의 포탄에 금방이라도 걸레쪽이 될 듯싶은 어마마한 위력이었다.
실제로 엄일괴 본인 자신도 문루가 적의 포탄에 피격되는 바람에 기둥 하나와 함께 지상으로 내동댕이쳐졌으니, 그 위력이 어떠했는지는 알만 할 것이다. 아무튼 목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가 기적적으로 피륙의 상처만 입은 엄일괴는, 그 길로는 적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 관사로 줄달음쳐왔다.
그리고 엉덩이만 내놓은 채 애꿎은 5천 군사만 닦달해 성 위로 올려 보냈다. 그러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용기가 난 엄일괴가 다시 성문을 집중적으로 막으라고 소리치고 다니는데, 난데없이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크........! 이건 기마대의 질주소리 아니냐! 끝났구나! 잡히면 조선에 끌려가 온갖 망신과 함께 고초를 당할 터.”
스스로 자진하기 위해 장검을 빼드는 순간.
“컥.........!”
순식간에 목에 밧줄이 걸리는가 싶더니 자신의 몸이 기우뚱 넘어가며 그대로 땅을 쓸며 끌려가기 시작했다. 야인 기병의 마삭(麻索)에 걸려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그의 몸이 붕 띄워져 마상에 앉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내 졸도를 했다. 너무 겁이 나 스스로 정신 줄을 놓은 것이다.
* * *
두두두두..........!
와아..........!
결국 조선군의 맹폭 앞에 승천문(承天門)이 터져나갔다.
대기하고 있던 기병들이 일제히 문 안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문 안에 있던 명의 오군영 소속 병사들과 어림군 일부가 기마에 휩쓸려나갔다.
그러나 더 이상의 전진은 쉽지 않았다. 오군영 소속 3만 병사가 이곳에 다 모인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인의 장막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금수교(金水橋) 중 두 개는 오폭으로 부서져 나갔으나, 세 개는 멀쩡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그 위를 오군영 소속 병사들이 빼곡이 밀집해 있어 기마로도 전진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확인한 이일이 전 병사를 뒤로 물렸다. 그리고 그 위에 대완구 중완구를 동원해 비격진천뢰를 퍼붓기 시작했다.
곧 곡사포와 수류탄의 합작품에 금수교가 자체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니 그 위에 있던 피륙으로 된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저들의 제1방어선을 돌파하니 이번에는 거대한 문이 떡 버티고 서서 앞으로 가로막고 서있었다.
외조(外朝)가 시작되는 오문(午門)이 그것이었다.
높이가 약 13장(十三丈:38m), 벽의 두께가 12장(十二丈:36m). 여간해서는 포로도 부셔질 것 같지 않아 이를 바라보는 이일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이 보니 비록 날은 청명하지 않았지만 봄기운이 가득했다. 형이 가해졌다는 앞의 광장은 피로 얼룩져 있고, 옆을 흐르는 통자하(筒子河)조차도 어쩐지 붉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정신 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이일이 막 작전지시를 내리려고 하는데, 오문 문루에 백기 하나가 내걸리더니, 얼굴을 반쯤 면포로 감싼 자 하나가 불쑥 나타나 말을 걸었다.
당연히 떼 놈 말이라 이일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에 이일은 주상 이진이 특별히 붙여준 역관 홍 순언(洪 純彦)을 불렀다.
“오.........! 석대인!”
“아니, 자네는 홍 역관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대인!”
“참으로 반갑네, 반가우이........!”
‘이것들이 지금 뭔 지랄들 하고 있는 거야?’
이일의 생각이었다. 역관이라고 통역 차 불러놨더니, 대뜸 두 사람이 오랜 지기라도 되는 양 떠벌이고 있는 꼴이 영 못마땅한 이일이었다.
말을 알아듣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표정과 행동만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이일은 그래도 잠시 두고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자네가 역관으로 온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대인!”
“내가 지금 병판 직을 맡고 있는데 잘 부탁하네.”
“그럼, 대인께서 이 나라의.........”
이때 홍순언의 어깨를 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이일이었다.
“아는 사람이냐?”
“그렇사옵니다. 장군님! 저 분이 소인이 종계변무(宗系辨誣) 주청사 시, 통역관으로 왔을 때, 큰 도움을 주신 석성이라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병조판서 직을 맡고 있다고 하시는 군요.”
“그래서?”
“저분이 우리 조선에게는 큰 은혜를 내리신 분이십니다.”
“지금 사담을 하자는 것인가?”
서로 총칼을 맞대고 있고 일각을 다투는 이 공방전에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역관 때문에 짜증이 나는 이일이었다. 자연히 그의 말투가 퉁명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당사자가 70 가까운 고령인데다가, 특별히 주상이 내린 사람이라 아무리 중인 신분의 역관이라지만, 함부로 하기도 어려운 처지의 이일이었다. 그런 눈치를 알만한 대도 홍순언은 자꾸 이일을 잡고 늘어졌다.
“그게 아니오라 아주 중요한 일이니 잠시 소인의 말을 들어주시죠. 좀 멀리 떨어지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 아예 거리까지 물려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홍순언이었다.
그가 이일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홍순언은 대대로 역관 집안에서 성장한 당대 최고의 역관이었다. 그런 그가 젊은 시절 통역관으로 북경에 갔다가 우연히 기루(妓樓)에 들렀다. 그곳에서 그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그런데 하필 그 여인이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어보니 여인이 대답하기를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장사치를 비용이 없어,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몸을 홍루에 팔았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들은 홍순언은 역관에게 허용된 중국 교역을 위한 상업 자금을 모두 털어 술집에 주고 그 여인에게 자유를 찾아 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그 여인은 타고난 미모로 명나라 황제의 측근이자 외교를 담당하는 예부상서 석성(石星)의 후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생명의 은인인 홍순언이 조선에서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둘의 만남은 다시 이루어졌다.
1584년 홍순언이 명나라 조정 문서에 ‘태조 이성계 아버지가 이자춘이 아닌 이인임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고치기를 청원하는 사신단’(종계변무 주청사)의 통역으로 다시 북경에 오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홍순언은 손꼽아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는 그 여인이 부군 석성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모두 털어놓고, 홍순언이 다시 북경에 오면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 석성이 기꺼이 그녀의 청에 부응하니 둘이 상봉한 것은 물론이고 석성의 도움으로 종계변무 건도 해결할 수 있었다. 석성이 당시 외교 책임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사실 명나라에서는 태조 부친 문제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조선을 통제하기 위해 200년 동안 고쳐주지 않았다. 잘못 정리된 조선 왕실 종통 문제를 고치기 위해 많은 사신이 명나라에 파견됐지만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홍순언이 해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원 역사에서 홍순언은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다시 명나라로 원군을 청하러 간다. 이 당시 국방을 책임지는 병부상서가 되어 있는 석성의 도움으로 원군 출병을 허락받는 일이 또 생긴다. 풍전등화인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킬 결정적 기회를 한 여인을 통해 얻었던 것이다.
소설 같은 내용이지만 이는 엄연한 실제 내용이다. 이때도 중국인들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關係) 즉, 이들 말로 ‘ㅤㄲㅘㄴ시(關係)’라는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당장 이 혜택을 본 사람이 북방 연해도 관찰사로 파견된 한응인이었다. 이 종계변무주청사의 서장관이 그였던 까닭에, 이를 해결한 공으로 그는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런 두 사람의 관계 속에 조선과 명국의 중요한 외교전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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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