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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93화 (93/210)

< -- 93 회: 선제공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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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라! 쫓아! 왜놈들 씨를 말리자!”

적이 일제히 해안가로 달아나자 더욱 힘이 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입에 게거품을 물고 독전에 독전을 거듭하는 이영남이었다.

그러나 이제 조선 수군도 저들의 사정권 안에 들어 포탄이 날아오고 가끔 조총의 탄알도 날아들고 있었다. 너무 급박하게 쫓은 결과이기도 했고, 적의 무수한 선박이 병목현상을 빚기도 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배가 해안에 닿을 수 있는 최대거리까지 선박을 이끌고 가자 앞의 배가 방해물이 되어 뒤를 따라 하선하려는 전함들은 도저히 더 나아갈 수 없는 현상이 왜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양쪽 해변 공히 다.

그런 적선을 쫓다보니 아군의 전함들도 너무 접근하게 되어 이제 적의 사정권 안에 든 것이다. 이를 본 이순신이 명했다.

“더 이상은 접근 말라! 원거리에서 포 사격으로 저들을 육지로 내쫓아라!”

“네, 장군님!”

명을 받아 이를 또 다시 분주히 전하는 이영남이었다. 곧 이순신의 명이 먹혀 적들이 멀리서부터 하선하여 헤엄쳐 도주하는데 이를 향해 가끔 아군의 포만 작렬할 뿐 전황은 급격히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군에 한한 일이고 육지에 상륙한 적들은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서 육상에서 포와 조총을 난사하였다. 그러다 잘못해 아군이 맞아죽는 경우도 숫하게 생겨났다. 이렇게 반 시진이 흐르자 아군의 포격에 육상의 적 모두 뺑소니를 치고, 모래톱에 박힌 왜선 수백 척이 외로운 신세 되어 바닷물에 씻기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도 곳곳에 바닷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왜적이 수없이 많았다. 이제 자비를 베풀어 밧줄만 던져주어도 그들은 총질은 고사하고 생명줄에 매달려 대롱거렸다. 하기야 총이 있다 해도 물에 젖어 당분간은 쓸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제 전리품을 챙길 차례였다. 조선군은 아직도 목만 내놓고 있는 왜병은 물론 쓸 만한 전함 모두와 함께 적의 무기며 화약을 쓸어 담았다. 이때 또 멀리 달아났던 자들이 이를 보고 배가 아팠는지 총질을 해왔다.

다시 아군의 포가 작렬하고 별 수 없이 또 사정거리를 피해 멀리 달아나는 적들이었다. 이후 그들은 아군이 전리품을 노획하는 구경꾼이 되어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어찌 하랴. 꼭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인 것을.

땅 위의 개가 아무리 짖은 들 지붕 꼭대기에 있는 닭이 눈 하나 깜짝 안 하듯, 왜적이 산에서 지랄발광을 하거나 말거나, 조선수군은 유유히 휘파람까지 불며 알뜰히 전리품 수거해 나갔다.

* * *

“뭐, 뭐라고? 아군 15만이 적 6만 아니 5만에 쫓겨 패퇴했다고?”

“네,  다이코덴카(太閤殿下)!”

“아이고, 목이야.........!”

갑자기 뒷목을 잡고 뒤로 넘어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덴카(殿下)! 덴카!”

이시다가 열심히 부르나 금방 히데요시는 인사불성이 되어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 * *

“하하하.........! 적 15만을 패주시키고 적선 500척을 나포했다고 아니 총 650척인가? 하하하.........! 삼 년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는 대단한 수확물이로구나! 아 하하하.........!”

기분 좋아 대소하는 이진 또한 너무 기분이 좋아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험, 험.........!”

순간적으로 기쁨을 크게 발산했으나, 일국의 군주로써는 너무 체통이 없는 것 같아, 애써 기쁨을 누르며 진정시키려 하나, 그것이 잘 되지 않아 연신 입가로 웃음이 비집어 나오는 이진이었다.

“가만, 가만 이럴 때가 아니지.”

잠시 후 겨우 진정을 한 이진이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의 일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곧 그의 말이 송익필에 의해 받아 적혔다.

“차제에 기왕 차지한 이키 섬은 물론 양이와의 무역항으로 번성중인 히라도(平戶島) 또 그 밑으로 고토열도(五島列島)까지 점령하여 아국의 영토로 삼고, 유구국까지 해상 무역로를 보호토록 하라. 단 군량은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라. 하고 무역항에서만은 왜상이이라도 반드시 통행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이들을 보호해주어라! 이 모두를 관장할 종2품 대왜수군통제사(對倭水軍統制使)에 이번 전투에 공이 많은 원균을 보임한다. 대소전함 250척에 수군 1만5천을 그 밑으로 배정한다. 또 대마도수군통제사에는 이번 전투에 공이 큰 유극량을 보임한다! 또 무역항인 히라도의 관리를 위해 이 섬의 도주(島主)로는 귀화인 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를 임명한다.”

이 명령서를 받고 가장 입이 찢어진 사람은 당연히 원균이었다. 그라고 뚜렷이 큰 공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제대로 논공행상을 했다면 이억기가 받아야할 상이었다. 어쨌거나 주상이 자신을 알아준다니 더욱 신이 나 충성을 맹세하는 원균이었다.

이진이 이런 포상을 한데는 다 인물을 보고 내린 자리배치에 지나지 않았다. 군량을 자급자족하라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군주의 체면상 돌려 말했을 뿐이지, 약탈을 하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 자리이니 만큼 순후 충직한 이억기에게는 맞지 않았다. 오히려 탐심이 가득한 원균이 맞는 지라 그런 명령서를 하달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진의 명에 따라 조선수군은 채 전리품을 제대로 정리 할 새도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히라도를 거쳐 다섯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고토열도까지 쳐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출항하는 이순신으로서는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적의 수군력은 이번 전투를 계기로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 떨어져 히라도로 대 선단이 들이닥쳤을 때는 적의 수군은 아군의 전력에 놀라 뭍으로 전부 피신하고 수많은 상선만이 즐비했을 뿐이었다.

이 당시 국제무역항이었던 히라도는 포루투갈 아니 이제 스페인에 복속되었으니(1580년)스페인의 상선과 네덜란드 상선, 그리고 최근 플리머스(Plymouth)해전에서 그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바람’을 등지고 싸워,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패퇴시키고 신흥 해상강국으로 떠오른 영국의 배들과, 멀고 가까운 근동 아시아의 배들이 즐비해 동아시아 최대 무역항의 하나로 번성을 누리고 있었다.

아무튼 손쉽게 이 항구를 손에 넣은 이순신은 곧 이를 아직 부임하지 않은 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를 대신해 원균에게 맡기고, 남하해 고토열도까지 수중에 넣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 * *

다시 대 전단을 이끌고 이키 섬으로 돌아온 이순신은 원균에게 히라도와 고토열도의 관리를 맡기고 전열 정비에 온 힘을 기울였다. 도합 650척의 전함이 새로 생겼고, 또 간몬해협 전투에서 아귀를 맞추듯 왜적 2만2천을 포로로 잡았으니, 도합 3만의 포로들이 또 생겨났다.

이들의 관리가 쉽지 않은 터. 이순신은 말 안 듣는 놈 몇 놈을 본보기로 처형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순치시키기에 여념이 없는데 주상 이진으로부터 새로운 명이 떨어졌다.

‘명국의 복건 앞바다에 있는 고산국(高山國)을 점령하라!’는 새로운 명령이었던 것이다. 이에 이순신은 먼저 히라도에 전령을 급파해 상인중에 고산국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부터 수배했다.

다행히 교역을 위해 드나든 스페인 상인들이 다수 있었다. 이순신은 그들을 후대한다는 조건을 걸어 이키 섬으로 보내도록 했다.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그들이 합류하자 이순신은 기존 왜의 포로들을 모두 격군 삼아 먼 항해를 떠났다.

상인들을 향도로 세워 나포한 전함 포함 총 1,100척에 항왜 포함 7만을 거느린 이순신의 대 전단은 남으로 방향을 잡아 일로 일로 남으로 향했다. 다시 히라도를 지나 고토열도를 지나 규슈 남단의 야쿠섬(屋久島) 차례로 아마미오섬(庵美大島), 도쿠노섬(德之島), 유구국의 근해를 지나 미야코섬(宮古島), 아리오모테섬(西表島)를 거쳐, 마침내 대만(臺灣) 남부를 눈앞에 둔 것은 이키섬을 떠난 지 근 이십일 만이었다.

마침 밤이고 긴 항해에 모두 지친듯해 이순신은 안핑(安平:臺南) 항 내해에 근접해 하룻밤을 쉬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해가 밝자마자, 탐망선 30척을 동시에 띄워 안평 항의 내부 정찰에 나섰다.

점심나절이 되자 속속 돌아와 보고를 하는데 한족(漢族) 즉 명국 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대략 5천명, 왜인이 500명 정도 양이가 100여 명 정도 있을 뿐 큰 세력이 없다는 보고였다. 크게 안도한 이순신은 그래도 혹시 몰라 일제히 포성을 울리며 3만 군사를 상륙시켰다.

이에 해상무역과 해적활동을 하던 한족 정착민 대부분이 집으로 숨는 가운데, 일부 한족이 무기를 들고 대항에 나섰으나 그 수가 기백을 넘지 않아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았다. 그 속에는 왜인과 몇몇 양이도 끼어있었으나 전투를 벌이고 자시고 할 게재도 아니었다.

조선수군의 일제사격 음에도 놀라 뿔뿔이 도망치는 놈들을 일일이 쫓아가 나포해오는 게 전투의 전부였다. 너무 손쉽게 제법 그럴듯한 도시 하나를 손에 넣으니 오히려 허탈감을 느끼는 이순신이었다.

그때부터 이순신은 이백 척 단위로 전단을 꾸려, 대만 섬 전 해안을 돌며 점령에 나섰다. 그 기간이 무려 한 달을 소모했지만 이렇다 할 전투는 없었다. 북부의 지룽(基隆)과, 단수이(淡水) 항에서 산발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밋밋하기 짝이 없는 저항이었을 뿐이었다.

아직 내륙은 아니지만 대만 해안 전부를 손에 넣은 이순신은 곧 장계를 올려 주상 이진에게 승전 보고를 했다. 그로부터 한 달 보름 만에 선편으로 장문의 비답이 내려졌다.

[우선 공의 승전을 온 조선 백성들과 함께 경축해 마지않는다. 이미 공이 전투에 임해 알 수 있듯 그곳은 현재 명국의 관할도 아니고 아무 주인 없는 땅이다. 고산족(高山族) 이라는 원주민과 일부의 한족들이 관할 통치기구도 없이 제멋대로 거주할 뿐이다. 해서 과인은 그곳 고산국을 고산도(高山道)라 명명하며 조선의 구도(九道)의 하나로 복속시킨다. 따라서 우리의 땅에 관리가 없을 수 없으니, 이억기를 고산통제사(高山統制使) 겸 고산관찰사(高山觀察使)로 임명한다. 그 휘하로 전선 300척과 원래의 조선수군 15,000에 항왜 15,000을 배치한다. 이들에게는 임무가 있으니 고산 전토에 커피나무를 심어 상품화 할 것이며, 영국이나 에스파냐의 조선 기술자를 어떻게 하든 포섭하여, 양이의 최신 배로 3~4층 갑판과 3~4개의 돛을 갖추고, 무역과 군용으로 사용되는 400톤급 이상의 대형범선인 갈레온선(galleon船) 50척 이상을 빠른 시간 내에 건조할 것을 명한다. 또 장전식 대포의 기술이나 현물도 입수하되, 입수하는 대로 배의 건조방식과 함께 조선 본토에도 전하라. 이는 조선 내에서도 생산, 건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 공은 이억기 통제사에게 인수인계가 끝나는 대로, 나머지 전함과 병력을 이끌고 귀국하도록 하라.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빈다. 朝鮮國王 李珒]

이에 따라 이순신이 그대로 행하니 그가 귀국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였다. 또한 이로써 무주공산이었던 현 대만(臺灣)이 조선 영토에 편입되어, 조선 팔도(八道)가 아닌 구도(九道)의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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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베풀어주신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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