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6 회: 십년대계(十年大計) 부국강병(富國强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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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이진은 네 사람을 편전으로 불러들었다. 곧 공조판서 김명원, 신임 호조판서 이덕형, 삼시청장 유성룡, 전매청장 이항복이 그들이었다. 네 사람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진이 입을 열었다.
“과인이 그대들을 부른 것은 노파심에서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함이니 잘 듣소.”
“네, 전하!”
“우선 새로 발족한 전매청에 대해서 이야기 합시다. 아시다시피 소금에는 제염감(製鹽監)이 있질 않소? 과인의 외조부가 감당을 하고 있소만?”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들 그 체제를 그대로 존치시켜 산하에 두는 것으로 합시다. 이와 마찬가지로 담배는 사연감(司煙監), 인삼은 사삼감(司蔘監)의 명칭으로 신설하여, 이들을 전담 관리케 하는 것으로 합시다. 또 생산에서 수매에 이르는 전 과정은 이들이 관리 감독케 하는 것으로 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소?”
“네, 전하!”
“하면 전매청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물론 세 하위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도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세 물품의 가공 및 유통을 전담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오.”
이렇게 말하고 이항복 이하 네 사람의 표정을 한 번 살핀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과인이 예를 들어 말해 보겠소. 지금까지의 삼은 그냥 판매되거나 건삼(乾蔘) 형태로 판매되지 않았소?”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항복의 대답에 만족한 표정을 지은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왜 그 방법 밖에 없소? 증기로 찌는 방법은 어떻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건삼이 하얗다면 찐 것은 홍색을 띌 것이오. 해서 과인은 이를 홍삼(紅蔘)이라 명명하거니와 이는 대 명국 수출용으로 하시오. 물론 하루아침에 과인이 말한대로 뚝딱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 생각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이야 수 천번이라도 실험을 거치다보면 궁극에는 그렇게 될 것 아니겠소?"
"물론 이옵니다. 전하!"
이항복의 대답에 만족한 표정을 지은 이진이 마저 하던 말을 계속했다.
"물론 국내 수요도 있으니, 국내는 건삼을 공급하도록 하고 말이오.”
“알겠사옵니다. 전하!”
“과인이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과인이 알기에 수분 함량을 1할5푼 정도로 줄여, 창호지에 싸서 서늘한 그늘에 보관할 경우, 20년도 무난히 보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오. 하면 회춘제로 여기는 명국 사람에게는 큰 수입원이 되어 현 재정으로만 따진다면 6~7할을 이들이 감당할 수도 있다고 보오.‘
“물론 우리의 재정 규모가 커지면 상대적으로 그 비율이 적어지겠지만, 그만큼 매력이 있는 제품이니 5년 근에서 7년 근을, 적당한 이문을 남겨주는 선에서 수매 받아, 이의 제품 개발은 물론 명국 수출까지 전담조직을 만드는 것이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전하, 그렇게만 되면 우리 조선으로 보면 더할 나위없는 보물 덩어리이나 과연 그렇게 많은 인삼 재배의 적지가 있을 런지?”
이항복의 말에 이진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과인이 언제 쓸데없는 말 하는 것 봤소?”
“아, 아닙니다. 전하!”
이진의 말에 당황한 이항복이 더듬거리는 것을 보고 씩 미소를 지은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과인이 송 대방에게는 일렀소만, 그대의 말대로 인삼 재배지도 적지가 있소. 아무데서나 잘 되는 것이 아니고, 과인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개성, 금산, 괴산, 용인, 풍기 등이 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소. 하니 적극 생산을 권장하여 국부의 5할을 이들이 점할 수 있도록 이 청장은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하고 담배는 말이오. 수매과정에서 아예 건조한 담배만 받는 것이오. 그래야만 적은 비용으로 저장이 가능할 것 아니오?”
“그렇사옵니다. 전하!”
“하니 각 재배농가에서는 아예 건조실까지 지어 수매에 응하도록 하고, 이를 몇 등급으로 나누어 봉지담배나 궐련이라고.........”
이렇게 말한 이진은 그 자리에서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담배의 굵기는 물론 크기까지 만들어 보이며, 그런 크기로 20개들이 여러 제품을 개발하도록 하는 한편, 끝에 담배연기를 거를 수 있는 증연(蒸煙)장치(필터)까지 개발한 제품도 선보이도록 했다.
끝으로 이는 대 명국 또는 대 왜 등 타국 수출용으로 전량 재배하는 것이니, 국내에서 유통이 안 되도록 각별히 신경을 쓸 것을 당부했다.
이어 소금에 대해서도 언급하니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은 서해 남해에 염전을 집중시키되, 이를 압록강과 두만강 수운을 이용하여 야인들에게 공급하는 방안도 세세히 세우도록 했다.
다음으로 이진은 삼시청장 유성룡을 보고 말했다.
“먼저 도자기에 대해 이야기 하겠소. 실상을 파악해 보면 잘 알겠지만 지금 사옹원의 분원이 광주에 이어 창원에도 설치되어 있소. 주로 거기서 골분도자기가 생산 되오 만, 과인은 이를 도자기의 주원료가 산출되는 하동과 산청까지 확대시키고자 하오. 물론 입지 선정과정에서 우선은 땔감이 중요하니, 미리 미리 산림상태를 파악해, 고령토 생산 위치와 연계하여 가장 효율적인 곳을 선정하도록 하오.”
“네, 전하!”
“하고 청자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도자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명국 사람들이 좋아하니 이들의 수출용으로 집중 육성하고, 골분도자기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양이들에게 잘 먹힐 것이오. 또 일본 상품용으로는 백자가 가장 좋을 듯싶소. 과인이 알기로 왜는 아직 제대로 된 도자기를 만들지 못하오. 만약 석년에 우리가 저들에게 패했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도자기공들이 제일 먼저 끌려갔을 것이오.”
“양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소. 100년 후에나 어떻게 생산을 해볼까, 아무튼 이만큼 중요한 기술이니 이들의 보안책을 마련하는데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오. 하고 과인이 어제 말한 대로 골분도자기 색상도 청자, 백자 등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제조토록 해보오. 과인이 알기로 철분(鐵粉)의 양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것으로 알고 있소. 하니 연구소 등을 하나 설립하던지 해서, 세계 제1의 제품들을 연속 생산해서 세계 시장을 주름잡도록 하오.”
“네, 전하!”
“과인은 여러 말을 하는데 경들은 한마디씩만 하면 되니 과연 편하구료.”
이진의 말에 모인 사람들 모두 민망한 표정을 짓자 이진이 웃으며 말했다.
“웃자고 한 소리이니 부담가질 것 없고, 차나 한 잔 마시고 또 시작합시다.”
준비된 녹차 한 잔을 마신 이진이 잠시 멍한 표정으로 무엇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녹차의 밋밋한 맛에 전생에서 즐겨마시던 커피가 떠올랐던 것이다.
‘구황작물 구입과정에서 커피는 안 들어왔나? 어찌 보고를 못 받았지? 궁중에도 없고?’
한 번 더 고개를 갸우뚱한 이진은 이 문제는 빠른 시일 내에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생각을 접었다.
“생사(生絲) 문제에 대해서 과인이 여러분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자면, 과인이 광범위하게 세작들을 운용하는 바, 아무래도 조선 비단의 품질이 명국보다는 떨어지기에, 그들의 제작 기술을 좀 훔치도록 했소. 헌데 아직 성공하지 못했소. 과인이 판단하기로는 염색 기술상의 문제인 것 같은데, 무어라 단언하기 어렵구료. 아무튼 이 기술을 우리가 소유하기 전까지는 생사 생산에 주력해 세계 제1의 수출국으로 거듭나도록 합시다.”
여기서 말을 끊고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과인이 알기로 조선의 농사꾼들이 대부분이 소작농이요. 그러다보니 좀 과장해서 말하면, 한 뼘도 안 되는 농토에 온 가족이 다 매달려 농사를 짓는단 말이지. 이렇게 되니 무슨 현상이 벌어지겠소? 남의 눈에는 무척 게으른 사람들로 비치기 십상일 게요.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일거리가 없는 걸? 어찌 들 생각하오?”
“그런 경향이 있사옵니다. 전하!”
모처럼 공판 김명원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러니 무슨 현상이 벌어지겠소? 알다시피 농촌 사람들은 다 부지런하오. 해 떨어지면 자고 새벽 같이 일어나서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소. 이는 열악한 조명 탓도 있지만, 기후 탓이 아닌가 하오. 한여름 낮 기온이 얼마나 덥소? 그러니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고 더운 시간에는 가급적 피하자는 것이지. 그러니 진시(辰時:오전 7~9시) 무렵에는 대개 새참을 먹지 않소? 그러고는 잠시 쉬는 것을, 외부인들이 해 뜨는 시각으로 보면, 일 시작한지 얼마 나 됐다고, 금방 또 쉬는 것으로 보일 테니, 그 얼마나 게으르게 보이겠소?”
“문제는 여기서 아예 일을 끝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요. 작은 농토에서 더 할 일거리가 없는 것이지. 이 후의 일거리를 찾아주자는 취지의 것이, 뽕나무 식재와 한지 생산에 필요한 닥나무 대량 식재요. 버려진 하천부지, 황무지, 가까운 야산에. 과인이 한 가지 호판에 묻겠소?”
“말씀 하시옵소서. 전하!”
“아직도 산림, 소택지, 하천 등이 대부분 나라 소유로 남아 있지요?”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것을 쓸데없이 나라에서 움켜쥐고 있지 말고, 이런 야산 등이나 소택지 등을 민간에게 개방하여, 이런 유용한 경제림을 조성하잔 말이오. 그래서 누에도 기르고, 거 어디냐? 세검정(洗劍亭) 들 알지요?”
“네, 전하! 부근에 조지서(造紙署:종이 만드는 곳)가 있고, 세초(洗草)를 그곳에서 행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김명원의 대답에 웃으며 이진이 말했다.
“대답 잘 하셨소. 세초(洗草)가 뭐요? 실록 편찬에 사용되었던 사초(史草)와 원고들을 없애는 일로, 간혹 불태우기도 했으나, 보통은 종이에 먹물로 쓴 원고를 물에 씻어, 글씨는 지워버리고 종이는 재활용하잖소?”
“그렇사옵니다. 전하!”
“물론 종이를 아껴야 하겠지만 풍족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 아니오?”
“그 또한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진이 계속 맞는 말만 하니, 계속 그렇다고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는 공판 김명원이었다.
“그러니 이런 유용한 나무들을 산야 가득 가득 심어, 반실업자인 농군들의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하고, 나라는 나라대로 이를 외국으로 수출해 국부를 쌓자는 것이 과인의 취지요.”
“곧 시행 방안을 수립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전하!”
공조판서 김명원의 말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이진이 다시 한 번 편전 내의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어쩌다 보니 제일 늦게 언급이 되 오만, 이앙법 말이오. 수시로 파견한 경차관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앙법이 실시되는 경지면적이 전라도 지방은 1할8푼에서 2할로 2푼 상승했다고 하고, 경상도지방은 그보다는 조금 나아서 1할2푼에서 1할 5푼으로 상승했다니, 속된 말로 과인이 혀가 닳도록 누차 강조한 것이 다 헛수고이질 않소?”
가볍게 한숨을 내쉰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충청도는 언급할 것도 없고. 하여튼 과인이 지난번에 이야기 한 대로 앞으로 감사는 물론 지방 수령들까지 고가에 제 일순위로 적용하여 승진과 퇴출에 반영하도록 할 테니, 유 청장은 이를 수시로 닦달하도록 하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지요?”
“네, 전하!”
“이 이앙법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가장 큰 원인이 저수지나 보 등 수리시설을 간단하게 확충할 수가 없어서가 아닌가 하오.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나, 그간 임란에 대비하느라, 정군들을 농한기에는 2개월씩 동원하여 훈련시킨 바가 있으나, 앞으로는 한 달씩으로 기간이 단축되었으니 도움이 될 것이고. 아무튼 앞으로는 각 감사, 고을 수령 이장 등을 통해 계속 닦달하는 체제를 만들어, 최소 10년 내에 5할로 끌어올리도록 하오.”
“네, 전하!”
“하고 나라 살림을 운용하다보면 이 외에도 산적한 현안들이 무수히 많소. 도로도 지금의 이 상태로는 절대 안 되지만 당분간의 수운(水運)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생산은 늘어나는데 유통방법은 오로지 수운에 의지하다 보면 분명 한계에 봉착할 것이지만, 이 또한 어찌 하겠소. 나라 살림의 운용에는 다 우선 순위가 있으니, 과인은 최소 20년 내에 저 부산에서 의주까지, 아니 저 북쪽의 회령까지 최소 우마차가 맞지나 갈 수 있는 정도의 넓이로 넓히려 생각하고 있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이 자리에서 언급할 이야기까지 언급이 되었지만, 이는 공판이 관장할 사항이니 과인의 말을 명심해 듣고 계획이나 일단 세우고, 차근차근 시행에 옮겨보도록 합시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모인 자들 모두가 부복한 가운데 이진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혼자 하 떠드니 벌써 출출해져 오는 구료. 하여 과인이 수라상을 준비했으니, 함께 식사도 하면서 미처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눠보도록 합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들의 인사를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으로 받은 이진이 곧 제조상궁 정옥빈에게 명해, 수라상을 바로 들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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