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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53화 (53/210)

< -- 53 회: 간신들을 모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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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이었다. 이진은 약속대로 세 명 외에 한 명을 더 불러들여 특강을 하고 있었다. 그 면면들은 훈련도감 지사 신립, 내금위장 권율, 권율의 추천에 의해 겸사복장이 된 홍계남 외에도 지변사재상 신립이 그들이었다.

홍계남을 만나 무예를 시험해본 바, 권율의 말 그대로였다. 힘이 센데다가 용맹했고, 기사(騎射)는 물론 과히 신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정확히 과녁 한 복판에 화살을 꽂아 넣었다.

아무튼 홍계남이 이진에 의해 겸사복장이 되자 이진은 전의 겸사복장이었던 이춘길을 방면토록 했다. 물론 당시 기분이 나빠 수감한 면도 있었지만, 다른 겸사복장이 임명되기 전에 그를 거기에 계속 앉혀놓는 것도 위험부담이 있는 일인지라, 신임이 임명되자 바로 방면했던 것이다.

이일이야 천생 무장이니 함께 가르친 것이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아무튼 네 사람을 사정전에 앉혀놓고 막상 강의를 하려니 또 마음이 바뀌는 이진이었다.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자신을 측근에서 모시는 사람들만 가르치고자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하여 비변사 내에도 많은 무인들이 새롭게 임명되어 실무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상기된 것이다.

그들 또한 막상 전쟁이 터지면 일선 지휘관으로 임명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던 이진으로서는 기왕 강의를 하려면 이들도 한꺼번에 모아 놓고 강의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이진은 이 날은 주안상만 대령하라 시키고 말을 시작했다.

“과인이 생각을 해보니 기왕 전략전술 등 제반 병사(兵事) 전반에 언급하려니, 차라리 이에 관계된 사람 모두를 한꺼번에 불러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진짜 강의는 내일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오늘은 모처럼 함께 모였으니 술이나 한 잔씩 합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렇게 해서 이날은 술 한 잔씩을 나누며 군신간의 우의를 두텁게 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 이튿날 저녁.

사정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어제의 인물 넷 외에도 군기시 정 한효순을 비롯해, 유사당상에 임명된 고경명, 김천일, 김시민, 그리고 비변사 실무를 담당하는 10명의 낭청, 이외에도 이진의 객이 된 김덕령, 최담령, 이인경, 송익필 형제, 심지어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던 도사 지함두까지 한 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일별한 이진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과인이 여러분을 이렇게 모아놓고 몇 마디 하려는 것은 시대가 변하면 전략전술도 따라서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과인이 그 예를 들지요. 조총 좀 줘보세요.”

“네, 전하!”

군기시 정 한효순이 이진의 명에 의해 가져온 조총을 이진에게 가져다주었다.

“오늘 이 조총이라는 것을 처음 본 사람이 많을 것이오. 이것이 양이들이 새롭게 발명한 조총 내지 화승총이라는 것이오. 이것을 일본은 오래전부터 피아간의 전투에 사용하여 많이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익숙하게 사용하오.”

“이 심지에 불을 붙이면 안에 든 납탄이 날아가 사람을 살상하는데 20보 안에 있는 사람이 맞으면 대부분 절명하오. 이런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적들과 싸우려면 전술도 달라져야 할 것은 당연한 노릇 아니오? 해서 말 이오만........”

여기서 말을 끊고 장내의 인물들을 한 번 둘러본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저들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대부분이 총병 내지 포수들은 최소 3열 횡대로 배치가 되오. 무슨 이야기냐? 이 조총을 숙련된 포수가 쏘면 1분 안에 두 발 정도 쏠 수 있소. 쉽게 말해 그 두 발을 쏘는 동안에는 총을 쏘기 위한 예비동작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계속 총성이 이어지도록 전열이 쏘고 앉으며 뒷열이 쏘고 이렇게 해서 처음 열까지 돌아올 동안 총성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죠. 이런 것을 모르면 일제 사격을 하고 장전을 하는 동안에는 아군이 무방비 상태가 되는데 이래서야 되겠소, 안되겠소?”

“안 됩니다. 전하!”

“맞소. 이것도 하나의 전술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네, 전하!”

“다음으로 과인이 또 하나의 예를 들겠소. 과인이 지금까지 모은 첩보에 의하면 적은 제대로 무장된 병사만 30만 명이오. 그 중 최소한 20만 이상이 조선에 상륙할 것으로 과인은 예견하고 있소.”

“정말 이오십니까? 전하!”

모두 깜짝 놀라는 가운데 믿어지지 않는다고 반문하는 자가 있으니, 아제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는 이이첨이었다.

“과인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3년 후 이맘때쯤이면 정확히 알 것인즉 그때 가서 논합시다.”

“그럼, 3년 후가 왜구의 침입시점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소.”

“어찌........!”

“과인은 천기를 볼 줄 아오. 아는 사람은 아는 일이니, 그것도 훗날 논할 때가 있을 것이오.”

이이첨의 계속되는 물음에 세조 대왕까지 끄집어내기 싫었던 이진은 이 말로 얼버무리고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런 20만 대군을 맞아 아군은 밀리고 밀려 적의 일로 군이 문경새재를 넘어 일로 한양도성으로 향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아군을 그쪽으로 급파했소. 헌데 아군의 조건은 적세가 너무 강해 적이 침입한지 이때가 채 보름도 안 된 시점이오. 헌데 지금과 같이 미리미리 준비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적을 맞게 되었는지라, 아군은 기병 수천 명과 채 무장도 빈약하여 틈난 나면 도망치려는 오합지졸 6천, 도합 8천이요. 허나 적은 총 5만이요. 어찌 대결해야 하겠소? 또 우리의 강점은 적보다 원거리 무기가 조금 낫다는 정도라면? 또 하나의 상황은 아군이 급히 가야 조령에 매복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잡을 수 있는 상태요.”

“흐흠.........!”

이진의 말에 모두 생각에 잠기나 대부분이 이맛살을 찌푸리고 암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더 더군다나 입을 열어 말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모두 패전을 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희심의 미소를 짓던 이진이 돌연 대전내관을 불러 명했다.

“김여물 이라는 자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조정으로 불러들여라. 비변사 낭청을 제수할 것이니 아예 첩지를 띄워라!”

“네, 전하!”

탄금대 전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신립과 함께 강물에 뛰어들어 함께 전사한 그가 돌연 생각났기 때문에 내린 지시였다. 그러고 이진이 장내 인물들의 표정을 살피니 아직 모두 생각에 잠기고 있으나 여전히 암울한 표정들이었다. 이런 그들을 보고 이진이 말했다.

“숙제요. 밤새 답을 찾아보시오. 아니면 교훈이라도 찾던지. 오늘은 여기까지.”

모였던 모두가 주상이 답을 줄 알았다. 김빠지는 결론을 안고 그들은 이진의 지시에 따라 일부는 퇴궐을 하고, 일부는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다음 날.

승정원 회의를 개최하려니 표정들이 모두 어두웠다. 이에 이진이 물었다.

“무슨 일이오?”

“예상한 대로 벌써부터 한양 내의 사대부들부터 상소가 빗발치기 시작하옵니다. 전하!”

도승지 이항복의 말에 이맛살을 찌푸린 이진이 말했다.

“비답을 내리지 않겠소. 하니 그런 줄 알고 다른 안건이나 개진하오.”

“아침부터 성균관 유생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전하!”

“유소(儒疏:연명 상소)라도 올리겠다는 거요. 뭐요?”

“아마 그럴 것 같사옵니다. 전하!”

“흐흠........!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로고.........!”

차자(嗟咨: 탄식하고 한탄함)하는 이진의 표정은 침통함을 넘어 차라리 슬펐다.

* * *

이날 아침은 비변사 회의도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회의에 참석한 기존 대신들의 심드렁함 때문이 아니라 궐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요 때문이었다. 성균관 유생 200명이 단체로 연명 상소를 올리고는 왕의 비답(批答)을 기다린다고, 모두 궐 앞에 꿇어 앉아 연좌시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들 틈에는 일반 사대부들도 상당수가 나와 호읍(呼泣:흐느껴 울다)하며, 일부는 돌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일부는 답을 안 주실 바에는 차라리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부숴달라고 협박하는 자까지 생겨났다.

시간이 갈수록 시위는 더 격렬해져갔다. 유생들 전원이 식사를 거르는 권당(捲堂)을 행하더니, 오후에는 아예 성균관을 비우겠다는 즉 공관(空館)을 하겠다는 결의를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진은 비록 늦은 오후지만 비변사 회의를 통보하고 이를 주재하기 위해 어보를 옮겼다.

이진이 임어한 가운데 모두 좌정하자 이진이 무겁게 입을 떼었다. 성균관을 예하에 거느리고 있는 예판 정철에게 눈길을 고정시키며 이진이 물었다.

“여전하오?”

“네, 전하!”

“흐흠.........!”

무겁게 침음한 이진이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요?”

“전날 전하께서 내린 결정을 철회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허허........!”

헛웃음을 웃던 이진이 돌연 행행(遊幸:성이 발끈 나서 자리를 박차고 떠남)하다가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말했다.

“과인이 직접 행행(行幸:임금이 대궐 밖으로 행차함)하여 그들을 만나보겠소.”

“아니 되옵니다. 전하!”

이번에는 이이첨 이하 낭청들이 들고 일어나 말렸다.

“아, 아니오. 그들을 모두 근정전 앞뜰에 집합시키시오. 그곳에서 과인이 직접 그들을 만나보리다. 어명이니 당장 시행하시오.”

“아니 되옵니다. 전하!”

이이첨 이하 만류에도 이진은 차갑게 잘라 말했다.

“과인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무 말 마시오.”

그리고 이진은 먼저 차분하게 일어나 어보를 근정전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 * *

결박을 지은 자, 도끼를 든 자, 조악한 돌을 들고 시위하는 자, 흰 머리 띠를 두르고 묵묵히 꿇어 엎드려 있는 자 등등, 300여 명이 근정전 뜰 앞에 불려와 무릎을 꿇고 있는 속에서 이진이 근정전에서 나와 기단 위에 섰다. 그 뒤로는 문부백관들이 도열해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과인의 말이 들리는가?”

“네, 전하! 흑흑흑........!”

이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조선 천하의 유일한 임을 해우했다는 영광에 벌써부터 울음을 터트리는 자들이 상당했다.

그런 이들을 일별한 이진이 무거운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인이 한 달 전에 꾼 꿈 이야기를 한 토막 들려 줄 테니 잘 들으시오.”

이렇게 운을 뗀 이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갑자기 과인의 앞에 넓디넓은 푸른 바다가 펼쳐졌소. 곧 그곳에는 수많은 왜적선이 떠 있었소. 그들은 아무 저항 없는 바다를 유유히 떠와 부산진에 일제히 상륙했소. 마치 개미떼를 방불케 했소. 자그마치 완전 무장을 갖춘 20만 대병이 일제히 상륙해 부산진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소. 아무 준비도 못했던 군과 관아는 대항할 힘이 없어 도주하는 백성들 틈에 끼어 달아나기 시작했소. 그러자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소. 닥치는 대로 베고 죽였소. 아녀자나 처녀들은 모두 그들에게 붙잡혀 강간을 당하고 길가에 버려졌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악다구니 같이 울어대고 저녁나절의 부산진은 그들이 놓은 불로 화광이 충천하고, 주검들은 도처에 널려 파리 떼만 들끓었소. 제법 젊은 사람들은 적이라 하여 코가 베어졌소. 그들의 전공을 증거 해줄 증거물들로 베어진 것이오. 참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소. 그들에 밀린 오합지졸 조선군은 연전연패를 당하고, 나라에서는 창황히 군사들을 모아 문경새재를 넘으려는 그들의 일군을 막으려고 급파했소. 그러나 다 도망치고 기껏 모은 병사가 6천에 그간 나라에서 키운 기병 2천이 고작이었소, 그러나 적은 그 한 갈래 군사가 5만 대군이었소. 급파된 장수는 문경새재 높은 곳에서 막아볼까 했으나 실기했소. 그 장수는 급조한 군대 된 아군이 도망 갈까봐 탄금대 푸른 물을 등 뒤에 두고 배수진을 쳤소. 또한 이유는 아군의 기병 전력을 살리기 위해서였소. 그러나 결과는 아군의 대패였소. 결과적으로 기병 전력도 살리지 못했소. 주로 논밭이라 말들이 내닫지를 못한 것이오. 결국 장수는 탄금대 푸른 물로 뛰어들고 아군들은 죄다 적들에게 베임을 당했소.”

“전하..........! 흑흑흑..........!”

“전하..........! 엉엉엉.........!”

여기저기 통곡이 터져 이진이 말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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