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5화 (15/210)

< -- 15 회: To be or not to b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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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이진이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이진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현대인의 생활습관에 길들여진 이진으로서는 매우 많은 부분에서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고, 많은 부분을 개혁해야겠다는 것도 절실히 느낀 여행이기도 했다.

어찌됐든 당장 개혁을 시도하고 임란에서 최소한의 피해를 입으려면 자신이 권력을 쥐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고, 또 밤이 길면 꿈도 많다고 이진은 자신의 계획을 앞당기려 결심했다.

이를 위해 이진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이진은 송익필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여 밀계의 논의에 착수했다. 이진의 계획에 처음에는 놀라 펄쩍 뛰던 송익필도 이진의 진정한 저의를 알고 결국 그의 계획에 동참하여 꾀를 빌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이진은 어의 허준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김체건과 김명순은 물론 정철의 불려 올리기에 실패한 검계 삼인방 까지 내원을 막는데 동원하여 잡인의 출입을 일절 금했다. 그런 가운데 허준과의 밀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주안상이 차려진 가운데 사양하는 허준을 강제로 상 앞에 불러 앉혀 겸상으로 마주 앉은 채 둘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따른 술을 마저 들고 오늘 우리 진지한 대화를 한 번 나누어 봅시다.”

“네, 군 마마님!”

아무 것도 모르는 허준으로서는 이진이 먼저 잔을 들어 올려 권하니 고개 돌려 술 한 잔을 비우지 않을 수 없었다.

소고기보다 비싼 돼지고기로 만든 적(炙)을 안주로 허준은 이진의 권유로 여러 잔을 연달아 비웠다. 공복에 도수 높은 술을 대여섯 잔 배우자 허준의 얼굴이 불콰해졌다. 이진 또한 약간 술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넌지시 물었다.

“우두(牛痘)로 두창을 시험하는 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소?”

“중죄인과 자원한 천민 열 명을 상대로 실험을 한 결과 여덟 명은 효과가 있었으나,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너무 과하거나 덜 투약한 것이 아니 오?”

“그렇게 결론지었으니 분명 효험이 있다고 단정 짓고, 조금 더 실험을 거친 후, 널리 보급할 예정입니다.”

“하하하........! 오직 인간만을 숙주로 하는 것이 두창이오. 해서 전 인류로부터 추방시킬 수 있는 것도 이병이기도 하오. 이와 같이 나는 명국이나 조선의 의야들이 전연 알 수 없는 병에 대한 상식과 치료법도 많이 알고 있소.”

이진의 자신에 찬 말에 고개를 갸웃한 허준이 두려움에 찬 음성으로 물었다.

“혹여 시신을 해부해 본 것이 아니 오신지?”

허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진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두를 만들게 하여 시험해본 것만으로도 그가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본디 성품이 개망나니이니 조선의 국법으로 금하고 있는 해부를 통해 의학적 지식을 얻지 않았나 하는 물음이었던 것이다.

“하하하........! 물론 의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몸에 칼을 대는 것은 물론 해부도 허용해야할 것으로 나는 보고 있지만 내가 굳이 남을 해부해보거나 한 적은 없소. 하지만 내게는 곡절이 있으니 한 번 들어보겠소?”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마다 상식을 뛰어넘는 소리고 해괴한 언행뿐이니 허준은 호기심과 두려움에 찬 눈으로 이진을 응시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굳은 안색으로 술 한 잔을 들이 킨 이진은 안주를 집을 생각도 안하고 멍하니 천정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여전히 무거운 안색으로 대답을 하듯 안 하듯 상관없다는 어투로 입을 열어 물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도 더 지난 조선의 모습이 궁금하질 않소?”

“그야 누구라도 궁금한 사항 아니겠습니까?”

허준의 대답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이진이 허준만이 들을 수 있는 낮고 빠른 말투로 말했다.

“한마디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 땅에 사라지고 없소. 그 대신 같은 백성들이 살되, 왕도, 양반도 천민도 없는 남녀마저 모두 평등한 세상이 되어 살고 있소. 서얼 차별은 당연히 없고요.”

“정말 그런 세상이 있습니까?”

“내 말을 계속 들어보오.”

놀람에 찬 허준의 말을 일축한 이진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국왕 대신에 19세 이상의 어른들만이 나라의 제일 웃어른을 비밀투표로 뽑소. 이 정치제도도 중요하지만 하늘에는 비행기라는 물체가 있어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고, 바다에는 거대한 철로 만든 배가 떠다니오. 뿐만 아니라 한양과 부산진을 한 시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고속열차라는 것이 있어 사람을 실어 나르기도 하오.”

“에잉, 무슨 믿지 못할 거짓말을........”

“내 말을 계속 들어 보오.”

“의술의 발전도 비약적이라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사람의 몸에 칼을 대 몸을 열어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기도 하고 이식시키기도 하오. 또 수많은 약들이 발명되어 사람을 치료하기도 해 인간의 수명이 근 100세에 도달해 있소.”

“허허, 참 내.........”

허준의 표정을 보아하니 거짓말도 정도껏 하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허준의 표정을 본 이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풍(風)이 왜 생기는 것이오?”

“그야 열이 치성하여 생기는 것이옵니다. 습은 담을 만들고 담은 열을 만드옵니다.”

“그렇게 뜬구름 잡는 식이 라서야 어디 되겠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사람의 인체 내에는 약 3만 리에 이르는 혈관이 있소. 그냥 비교가 안 될 테니, 지구의 둘레를 두 바퀴 반 내지 세 바퀴 돌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면 되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땅도 평평하다 생각하고 있을 것 아니오?”

“그야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소. 동그랗소.”

“그럼 사람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동그란 물체도 너무 크다보면 평평하게 느껴지게 되어 있소.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있는데, 벌써 약 100년 전에 양이(洋夷)들은 이 지구상에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던 신대륙을 발견했소. 이 과정에서 지구를 빙 돌아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기 때문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증명되었소.”

“그 땅에서 가져온 식물이 구황작물이라고 당신도 곧 보게 될 것이오. 아무튼 그렇게 긴 혈관 중에서 머리에 분포된 뇌혈관이 막히거나 안에서 터지면 소위 말하는 중풍이라는 병이 발병하는 것이오. 이 병이 얼마나 고약하냐 하면 400년 후에도 특효약이 아직 발병되지 않았소.”

“허허........! 글쎄........!”

거짓말 같은데 어딘가 솔깃한 즉 20~30% 정도는 믿음을 갖는다 할까. 허준의 표정이 그러했다.

“당신이 생각 못하는 다른 의학적 지식도 많지만 그것은 차차 이야 하기로 하고, 오늘은 조선의 운명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합시다. 4년 아니 채 4년도 안 남았소. 정확히 3년 후 4월 달이면 왜놈들이 대대적으로 쳐들어올 것이오.”

“허허........! 어찌 그런 일이.........”허준이 믿지 못하겠다는 말에도 이진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이미 왜국은 오랜 세월 지속되어 왔던 내란이 풍신수길 이라는 인물에 의해 일통 되었소. 그러나 그가 보기에 양이들과의 통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신흥 세력들과 이제는 필요 없는 무장 병력들을 일소하기 위해 당장 내년이면 대마 도주가 조선 땅에 들어와 수호통상을 청할 것이오. 명분은 조선과 왜가 힘을 합쳐 명국을 치자는 것이죠. 아니면 명국 정벌에 조선은 길을 내주던지 뭐 이런 식이오. 그러나 .........”

“조선의 반응은 무례하다고 답서도 없이 사신단을 억류하다가 다시 돌려보내고 훗날 통신사도 파견하니 허........ 정사 서장관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마저 의견이 갈리오. 즉 황윤길은 병선을 준비하는 것 등으로 보아 반드시 내침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를 하나, 김성일은 그런 조짐이 전혀 없고 풍신수길이라는 인물을 보니 그럴 주제도 못 된다고 보고 하오.”

“이런 엇갈린 보고 속에서 조선 조정은 전쟁설을 퍼트려 민심을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하에 전연 대비를 안 하고 있다가, 내가 말한 시점에 왜구 20만이 대거 부산포에 상륙하오. 이 여파로 단 스무날 만에 한양이 왜놈들에게 떨어지고 연이어 함경도는 물론 평양성마저 떨어지오.”

“다급한 왕은 의주로 몽진을 가 애타게 명의 구원병을 기다리게 되오. 결국 명의 원병으로 평양성을 탈환하고 끝내는 강화조약으로 조선을 되찾긴 하나, 이 기간이 무려 팔 년이고, 이 기간 동안 다치거나 굶주려 죽은 아국 백성이 수백만 명에 달하오. 어떻소? 내 말이 일말의 가능성은 있어보이오?”

이진의 이야기가 이쯤에 이르자 너무나 구체적인 사항들을 열거하며 이야기를 하는 모양새가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세세하고 사실적이었다. 허준이 벙긋 입만 벌린 채 아무런 말을 못하자 이진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이 보기에 믿을 수 없거나 말거나 내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고 그럴듯해 보이지 않소?”

“그렇사옵니다. 군 마마님!”

“이는 내가 천기(天機)를 볼 수 있기 때문이오.”

“네?”

이진의 말에 너무 놀란 허준이 곧 무의식중에 반문했으나, 너무나 실제적이어서 안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믿기에는 조금 뭐한, 묘한 상황에 자신이 처했음을 알았다.

"내가 생사지경에 처한 순간 세조대왕께서 나타나셔서 이능(異能)을 선물해준 때문이니, 그런 줄 알고 더는 알려 하지마오. 너무 알려다가는 다치는 수가 있으니까. 하하하.......!”

“어찌 그런 일이........”

이진이 웃음으로 얼버무렸지만, 허준에게는 모두 놀랍기만 사실이라 해연이 놀라마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이 일어나오. 내 일도 그런 일에 속한다고 생각하면 속 편할 것이오.”

“백 번 양보하여 군주마마님의 말 대로라 치면, 군주마마께옵서 저에게 진정으로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이옵니까? 제게 의학적 지식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겠고, 아마도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시는 듯한데..........”

“하하하........! 이제 뭔가 좀 대화가 통하는 것 같소. 옳게 보셨소. 내 한 가지만 더 물읍시다.”

“장차 주상의 뒤를 이어 누가 보위에 오를 지 가늠할 수 있겠소?”

“어찌 일개 의생이 ..........”

“내 앞에서는 그렇게 겸양하실 필요가 없소. 솔직히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해보오. 그래야 이야기가 진전될 수 있소.”

“음........!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당금 주상께서는 신성군 마마에게 성총이 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

“내 생각도 그러 하오. 그러나 .........”

여기서 이진이 말을 끊자 몹시 궁금한 듯 허준의 눈이 이진의 입에서 떼어지지 않고 있었다.

“신성군 후는 임진년의 병란 중에 피난을 가다가 병사를 하고 광해가 다음 대 보위에 오르오.”

“그 말이 사실이옵니까?”

“..........”

다급히 물어오는 허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던 이진의 안색이 갑자기 차갑게 굳어졌다. 절로 오싹 한기가 도는 허준이었다.

“내가 간하고, 뜻 있는 선비들이 간한다고 이 나라 조정이 전쟁준비를 하겠소?”

“.........!”

이진의 물음에 허준 역시 회의적이라는 듯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의께서 날 도와주시오!”

갑자기 허준 앞에 부복하여 연거푸 고개를 조아리는 이진이었다. 당황한 허준이 같이 부복하여 같이 맞절을 하며 더듬거렸다.

“이 어찌 황감한 일이옵니까? 군 마마님!”

“도와주시오. 아니면 이 나라 왕실이 불탐은 물론 수백만의 조선 백성들이 병화를 피할 길이 없소.”

여전히 엎드려 간곡히 청하는 이진의 눈에는 어느새 비감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허준은 덜덜 몸이 떨려오는 것을 금치 못하고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대충 이진의 뜻을 감지한 탓이었다.

“도와주시오. 허 선생! 이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척간두에 선 조정과 헐벗은 백성들을 위해.........!”

“마마, 이러시면 안 되옵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내가 일어나면 내 뜻에 따라주는 것이오?”

“마마.........!”

답을 못하고 엎드려 그 또한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 또한 백척간두에 섰음을 깨달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굳게 결심을 한 허준이 마침내 이진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못난 한갓 의생이지만 마마님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고맙소. 허 선생! 내 당신의 이름을 천고에 빛나게 해주리다.”

“감읍하옵니다. 마마님!”

같이 눈물을 흘리나 허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이 승낙하지 않는다면 이 집을 나서기도 전에 목 없는 귀신이 된다는 것쯤은 먼저 헤아렸다. 그렇다고 이진의 하는 양으로 보아 자신을 허술히 놔줄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죽으나 사나 이제 그와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 허준이었다.

그런 허준의 눈동자를 쏘아보듯 바라보던 이진이 엉뚱한 질문을 했다.

“신경독이 무엇인지 아오?”

“그야........!”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는 허준이었다.

“어떤 자극을 주면 반응하는 것이 신경인데, 이 신경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소. 해서 말 이오만 신경독이라는 것을 쓰면 대체로 호흡곤란을 일으킨다거나 급작스럽게 심장이 마비가 되어 죽는 독도 있소. 외부에서 보기에는 갑작스런 토사곽란이나 심장마비로 보이는 것이지. 이런 독을 구할 수 있겠소?”

“그야.........!”

한참을 궁리하던 허준이 입을 열었다.

“복어독이면 아마 그런 증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흐흠........! 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외부로는 일체의 출혈이나 증상이 없어야 하오.”

“먹자마자 증상이 나타나는 관계로 우선 혀가 마비되어 말을 못 하게 되고, 최소 두 시진 후면 심장이 멈추어서 사망하게 됩니다.”

“좋소! 허 선생께서는 그 독만 구해 내게 전달하면 되오.”

“알겠사옵니다.”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이진이 갑자기 차갑게 안색을 굳히고 말했다.

“어의께서는 졸지에 제자를 구하신 것으로 해야겠소.”

“네?”“아! 내 그 제자는 구해주리다. 당분간은 그 제자가 어의를 모시고 다닐 것이오.”

“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이진은 곧 김명순을 별채로 불러들여 12시진 허준을 감시하도록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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