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97화 천마 (1)
천마는 금정신니의 머리를 박살 내기 위하여 손을 아래로 내려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섬전처럼 쏘아지는 금빛 용과 봉황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같잖은!”
박한 평가와 달리, 천마는 금정신니의 머리로 향하던 손을 거두어들여 용의 주둥이를 찢고 봉황의 날개를 뜯어내었다.
금정신니는 그 틈을 이용해 뒤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빈자리를 시후가 채웠다.
덕분에 팔문금쇄진은 아직 깨어지지 않았다.
[팔문금쇄진의 영역에 들어왔습니다. 해당 위치는 생문(生門)이며, 상승 효과로 인해 내공 소모가 8할로 감소합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효과였다.
단순 계산으로도 다섯 배나 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금정신니는 이 상태로도 천마에게 밀렸다.
게다가 시후의 개입은 팔문금쇄진의 붕괴를 막았을 뿐, 올바른 대안은 아니었다.
다른 이가 생문을 담당해야 했다.
『생문을 옮길 테니 신호를 주면 뒤로 오 보 물러나라.』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제갈마혁의 전음이 은밀하게 날아들었다.
시후는 그의 전음에 답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천마가 달려들 것만 같았으니깐.
“달아나더니 죽을 자리를 찾아왔군.”
천마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웃음 뒤편에 숨어 있는 지독한 살의 탓에 시후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자, 한 번 더 공격해 보아라.”
천마는 아예 손을 늘어트렸다.
실로 오만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힘을 가진 이상 오만이라 부를 수 없었다.
저건 자신감이라 부름이 옳다.
그의 넘치는 자신감에,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창을 휘두를 듯 자세를 잡았다.
천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후는 어깨를 뒤로 젖히며, 무릎을 굽혀 중심을 낮췄다.
그와 비례하여 비틀어지는 허리.
붕악굴천을 위한 기수식이었다.
시후의 몸이 끌어 올려진 내공에 맞춰 금빛으로 번쩍였다.
그리고 잠시 뒤 어깨를 앞으로 쭉 내질렀다.
패도적인 기운이 천마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다만, 그와 반대로 시후의 신형은 뒤로 날아갔다.
붕악굴천을 날린 반동을 이용하여 뒤로 물러난 것이다.
[해당 위치는 두문(杜門)이며, 상승 효과로 인해 상대의 모든 공격을 8할 경감시킵니다.]
두문에 있는 이상, 천마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제아무리 천마라 할지라도 위력이 8할이나 감소된 공격은 두렵지 않았다.
물론, 필살의 의지를 담지 않는 공격이어야만 이런 이야기가 통하겠지만, 그런 힘을 두문에 퍼부을 바에는 생문을 뚫어내는 게 현명하다는 걸 천마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막 붕악굴천을 막아 낸 천마 또한 그 사실을 아는지, 시후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짠 내 나는 땡중 다음은 무당의 말코인가.”
뒤에 물러나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금정신니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공진의 몫이 되었다.
애초에 무공은 그가 금정신니 보다 미약하게나마 우위에 있었다.
문제는 상성.
불문의 무공은 마공에 강하다.
그에 반해, 무당의 무공은 마공을 상대로 딱히 이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천마를 마주한 공진의 눈빛에선 두려움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릴 뿐.
그의 결연한 태도에 천마는 비웃음을 흘리며 손에 두른 수강을 좀 더 길게 뽑아냈다.
그리고 그 길이가 두 자(60cm)로 늘어남과 동시에 천마는 움직였다.
공진 또한 그에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검강을 길게 뽑아내며 그를 맞이했다.
쾅!! 쩌어어엉!!
두 사람의 격돌에 고막을 부숴 버릴 듯한 굉음이 연신 터져 나왔다.
시후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마의 움직임에 맞춰 창을 휘둘렀다.
다만, 생문에 있을 때와 달리, 창은 천마의 손에 맥없이 튕겨 나왔다.
그러나 시후는 굴하지 않고 계속 공격을 이어 갔다.
사문(死門)이나 상문(傷門)이라면 모를까, 두문에 있는 이상 당연한 결과였다.
두문은 휴문(休門)과 마찬가지로, 상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역할이 더 컸으니깐.
그렇기에 시후는 전력을 다하는 대신, 천마가 무시하기 힘들 정도의 공격을 쏟아부었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건 생문이었다.
“고작 이 정도냐!”
공진의 호기 어린 외침에 화답하듯, 천마는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자세히 그를 관찰한다면 금정신니를 무릎 꿇릴 때와 달리, 그의 기운이 미묘하게나마 감소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시후 혼자만이 아니다.
휴문을 맡은 백리은도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 눈을 반짝였다.
그는 제갈마혁을 바라보더니 짧게 입술을 달싹였다.
『좌로 이 보.』
『하체.』
『뒤로 삼 보. 가슴.』
팔문금쇄진은 천마를 가둬 두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천마를 짓눌러 죽이겠다는 듯 거센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의도를 알아챈 천마의 얼굴은 와락 구겨졌다.
“감히!”
노성과 함께 천마의 몸에서 폭풍과 같은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래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중력의 존재를 잊었는지 하늘로 솟구쳤다.
“내가!”
그의 손에 둘린 수강이 더욱 길게 늘어났다.
아니, 이제는 수강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수강은 검의 형태를 띠었다.
검 위에 덧씌운 검강이 아닌, 순수한 기의 결정체로 만든 검강이었다.
힘으로 팔문금쇄진을 박살 내 버리겠다는 천마의 의지가 전해졌다.
공진이 태극신공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자, 빗물을 잔뜩 머금은 그의 도포 자락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격돌.
콰아아아앙!!
공진은 태극혜검을 펼치며 천마의 공격을 흘려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속절없이 뒤로 밀려났다.
제갈마혁의 지시는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다들 팔문금쇄진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공진이 물러나는 만큼 뒤를 쫓았다.
덕분에 바로 붕괴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둑을 맨손으로 받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천마와 손을 섞을 때마다 공진의 검에 맺혀 있는 검강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흩어지기 바빴으니깐.
그를 저지하기 위해 사문과 상문을 맡은 천태진인과 백리은 또한 미친 듯이 공격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천마는 모든 공격을 받아 내면서도 공진의 검을 기어코 꺾어냈다.
그리고 공진은 실이 끊어진 연처럼 뒤로 훨훨 날아갔다.
바닥에 떨어진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죽은 것일까?
하지만, 그를 향한 걱정을 하기엔 이른 시점이었다.
곧 그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으니깐.
[팔문금쇄진이 해제되었습니다.]
이점이 사라졌다.
물론, 천마도 힘으로 팔문금쇄진을 뚫어냈기에 적잖은 내공을 소모했을 것이다.
그건 천마의 손에 쥔 검강의 크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그 크기는 절반에 불과했다.
천마는 그마저도 유지하기 버거웠는지 곧 허공에 흩어 버렸다.
자세히 관찰하니,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건 시후뿐만이 아닌 듯, 다들 결의에 찬 눈빛을 보냈다.
『최대한 내공을 갉아먹는 쪽으로 간다. 넌 가장 마지막에 달려들 거라.』
시후는 제갈마혁의 전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힘이 빠진 천마라지만, 시후 정도는 가볍게 눌러 죽일 수 있었다.
차라리 다른 이들이 힘을 빼 준 뒤에 합류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었다.
시후는 뒤로 물러나 잠시 싸움을 지켜봤다.
싸움의 형세로는 당장 무너지진 않을 것 같았기에 자리를 벗어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공진에게 다가갔다.
“공진 진인?”
불러도 미동조차 없는 모습이 죽은 건가 싶었지만, 어깨에 손을 올리자 미약한 온기와 함께 몸을 비트는 움직임이 전해졌다.
‘살아 있다.’
시후는 조심스럽게 그를 눕힌 뒤 젖은 품을 뒤져, 천령단이 들어 있는 자기를 꺼냈다.
내공 증진은 바랄 수 없지만, 내상 치료에는 그 무엇보다 좋은 약이다.
안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두 알을 꺼내어 공진의 입에 들이밀었다.
“삼킬 수 있겠어요?”
시후의 염려와는 달리, 공진은 천령단을 입에 넣어 주자 빗물과 함께 삼켰다.
시후는 그가 편히 누워 있을 수 있게 눕혀 준 뒤 다시 돌아왔다.
그 사이, 남은 여섯은 육합진(六合陳)을 이뤄서 천마를 상대하고 있었다.
육합은 천지와 사방(四方)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육합진에서의 육합은 십이지에 따온 것이다.
팔문금쇄진과 마찬가지로 육합진도 방위별로 맡은 바 임무가 정해져 있었다.
가장 중요한 곳은 당연히, 정면을 맡아야 하는 자축(子丑)이었다.
물론, 그 반대인 오미(午未)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
그리하여 자축은 제갈마혁이 맡았고, 오미는 백리은의 몫이었다.
그리고 인해(寅亥)와 묘술(卯戌)은 검후와 연설련의 것이었다.
두 사람은 제갈마혁의 팔이 되어 그를 도울 것이다.
두 자리는 다리가 자유롭고 빨라야 했다.
진유(辰酉)와 사신(巳申)은 당연히 적시걸과 천태가 담당했다.
“잘 맞네.”
급히 진을 이뤘음에도 여섯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천마의 몸이 제갈마혁에게 쏠리면, 자연스럽게 검후와 연설련이 그를 도왔다.
그럼 백리은을 포함한 세 사람은 그 뒤를 노렸다.
물론, 팔문금쇄진과 비교하면 육합진은 진법 자체적인 효과가 정말 미미했다.
반의반도 안 되는 수준이니, 말해 봤자 입만 아플 것이다.
하지만, 제갈마혁은 천마를 상대로 정말 잘 버텼다.
천마는 팔문금쇄진을 파훼하기 위하여 엄청난 내공을 쏟아부었지만, 그는 가장 내공 소모가 적은 경문(景門)을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으음······.”
시후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잘 버티고 있다는 게 유리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제갈마혁은 천마의 초식을 받아 내면 받아 낼수록,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이십여 초식을 더 받아 내자, 꾹 다문 입술 사이로 가느다란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도 기어코 한 번의 공격을 더 받아 내고 뒤로 물러났다.
시후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천령단을 건넸다.
“신의가 준 겁니다.”
그는 고맙다는 말 대신 뒤를 부탁한다는 눈빛과 함께 바닥에 천로수변을 꽂아 모습을 감췄다.
진탕된 내기를 진정시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테니, 그의 도움을 바라긴 어려울 것이다.
제갈마혁이 빠지자마자 다섯은 자연스럽게 오행진으로 바뀌었다.
다섯은 천마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공격을 쏟아부었다.
이어지는 연환 공격 속에서 천마는 집요할 정도로 백리은을 노렸다.
백리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마의 주먹에 가슴을 얻어맞고는 뒤로 물러났다.
시후는 그를 부축하기 위해 후다닥 곁으로 다가갔다.
“쿠웩!”
마공에 내기가 진탕된 탓일까.
그가 토해낸 피는 검게 죽어 있었다.
시후는 그를 부축한 채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바로 지척과 다름없었지만, 어차피 근방에 안전한 곳은 없었다.
그에게도 천령단을 먹인 뒤 시후가 고개를 들자마자, 하늘로 솟구치는 겸 한 자루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겸 주인의 손까지도.
“끄아아아아!!”
적시걸은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반대쪽 손에 들린 겸을 천마의 팔뚝에 박아 넣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대가로 그는 가슴에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해야 했다.
시후는 홍설에게 받은 비단 손수건을 꺼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다가오는 기척에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시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는 마치 인상을 찌푸리는 듯했다.
“봐······ 봤냐? 내가, 쿨럭쿨럭!!”
시후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사라진 왼손 팔꿈치 아래를 묶어 출혈을 막았다.
그리곤 뭔가 더 말하려는 그의 입에 천령단을 두 알이나 쑤셔 넣었다.
당장 주둥이를 놀리고 있지만, 그의 상태는 공진과 비슷했다.
운기조식을 취한다고 해도 얼마나 내력을 회복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가 빠진 탓인지, 남은 세 사람은 정말 미친 듯이 뒤로 밀려났다.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쓰러진 이는 천태 진인이었다.
시후는 그에게 달려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가슴이 뻥 뚫린 이상, 살아날 방도는 없으니깐.
이어 검후와 연설련은 동시에 좌우로 튕겨 나갔다.
둘 다 검이 부러지긴 했지만, 죽은 천태 진인이나 손이 달아난 적시걸 등과 비교하면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맨손으로 달려들기엔 천마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천마는 두 사람이 달려들지 않자 고개를 돌려 적시걸을 바라봤다.
시후는 조용히 자운유성창을 움켜쥐며 그 앞을 가로막았다.
흐르는 빗물 때문에 시야는 좋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바로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천마는 제 팔에 틀어박힌 겸을 뽑아 들더니 고개를 들어 시후를 노려봤다.
“비켜라.”
“비키게 해보든가.”
시후의 대답과 동시에 그는 운기조식을 취하는 적시걸을 향해 겸을 던졌다.
캉!!
이를 용납할 시후가 아니었다.
옆으로 튕겨 나간 적시걸의 겸이 바닥에 틀어박혔다.
꽈르르르릉!!
하늘에 기어코 번개가 쳤다.
천마의 얼굴에 짙은 음영이 생겼다.
그런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기쁨이었다.
“곱게 죽이진 않으마.”
- 198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