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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87화 (169/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87화 시산혈해 (4)

“오랜만이군.”

목주림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광기에 물든 눈동자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차분한 그의 태도에 되레 위화감이 느껴졌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할 정도로 사람을 해친 이가 이토록 침착하다니.

게다가 목주림의 성정을 생각한다면 이럴 순 없었다.

시후는 복잡한 마음을 달래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각자의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 나아가 상대의 목숨을 취하는 데 급급했다.

덕분에 이쪽에 관심을 주는 이는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얼마 전에도 봤으니 오랜만은 아니야.”

“얼마 전? 시간관념이 상당히 관대하군.”

“서문 앞 자정(子正).”

그의 혈안이 번뜩였다.

“네놈이 그놈이었나?”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그머니 위로 치솟는 그의 입꼬리를 보자 섬뜩함이 느껴졌다.

마치 당장이라도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 것만 같았다.

“목천추는 어떻게 했나?”

막 땅을 박차려던 그의 몸이 덜컥 멈추었다.

그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맺혔다.

그는 그리워하며 슬퍼했다.

아쉽고도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의 얼굴에 맺힌 감정은 기쁨이었다.

대답을 들은 것과 다름없다.

그가 죽였다.

그와 동시에 시후는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왜?

하지만, 묻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 지경까지 뒤틀렸다면, 마공에 잠식당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살기.”

목주림의 얼굴에 표정이 지워짐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선수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반 박자 늦었다.

그렇기에 시후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적었다.

실영보를 펼쳐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자운유성창을 가로로 휘둘렀다.

아슬아슬하게 그의 검을 쳐 낸 뒤 자세를 바로잡았다.

다만, 물러나는 와중에 쳐 낸 터라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거리를 제대로 벌리지 못했다.

목주림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딱 달라붙은 채 검을 휘둘렀다.

하체를 노리는 그의 검에 시후는 내공 소모를 감소하기로 하고 땅을 박찼다.

그의 혈안이 재차 번득였다.

그리고 그보다 피를 잔뜩 머금은 검에 핏빛 검강이 맺혔다.

그에 맞춰 시후의 몸도 금빛으로 물들었다.

기와 신을 완성한 이후, 처음으로 십이성의 공력을 끌어 올렸다.

“죽어라!”

“파천도래!!”

두 기운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엉켜 들었다.

한쪽을 밀어내면 다른 한쪽이 밀려났다.

하지만, 완벽한 균형은 있을 수 없다.

목주림이 쏘아 낸 붉은 빛의 검강은 한차례 요동치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고, 시후는 안전하게 땅에 내려설 수 있었다.

다시 마주한 목주림은 한결 신중해졌다.

힘 차이가 제법 뚜렷했으니깐.

시후는 천천히 거리를 좁히려는 그를 향해 자운유성창을 겨누며 물었다.

“왜 목천추를 죽였나?”

“크큭, 그게 그렇게도 궁금한가?”

시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그의 목숨이 달아났으니깐.

적어도 그가 죽은 이유를 알고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목주림이 거리를 조금 더 좁히려 했지만, 시후는 재차 내공을 끌어 올리며 경고했다.

말하지 않으면 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나가겠다는 듯이.

“그자가 우리 집안의 모든 것을 삼켰으니깐.”

그는 대답과 동시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뭔가를 착각하고 있나 본데, 목가의 재산을 모조리 꿀꺽했던 그자와 목천추는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

“아니, 그가 집을 나설 때 가지고 간 비급 때문에 목가가 멸문지화를 당했다. 그때 비급이 있었다면 적어도 화를 피할 수 있었겠지.”

목주림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시후는 그것조차 내버려 두었다.

대답 한 번에 한 걸음씩을 허락하듯이 말이다.

“비급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들,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텐데?”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희망 사항일 뿐이지.”

“헛된 바람이라도 그땐 필요했다.”

“그래서 죽였다고?”

“감히 어머니를 입에 담으며 날 꾸짖는데 그냥 놔둘 순 없었지.”

맛이 가도 제대로 갔다.

이제는 확신이 섰다.

무조건 죽여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의문점 하나가 해결되지 않았다.

목천추는 대단한 고수다.

일전에 보았던 혈랑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팔황에 근접한 고수인 그를 어떻게 죽였을까.

목주림은 한 발짝 내디디며 그에 관한 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재빨리 왼발을 뒤로 내빼며 몸을 빙글 돌렸다.

검을 튕겨 냄과 동시에 일수만리를 날렸다.

팔이 살짝 젖혀진 상태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목주림은 땅을 굴러야 했다.

이어, 시후는 용적출해를 펼치며 바닥을 구르는 목주림의 목을 노렸다.

“흡!”

짧은 기합과 동시에 허리를 튕기며 일어나더니 검기 다발을 날렸다.

‘피할 건 피하고 쳐 낼 건 쳐 낸다.’

시후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쏟아지는 검기 다발을 뚫어냈다.

지척에 다다른 목주림이 몸을 비틀어 허벅지를 찔러왔다.

‘어림없다.’

그보단 자운유성창의 창대가 그의 옆구리를 강타하는 게 훨씬 빨랐다.

“크흑.”

다만, 목주림은 날아가는 와중에도 검기를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녀석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차피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움직임을 보면 그 또한 신을 완성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기는 그렇지 못했다.

기를 완성했다면 조금 전의 힘 싸움에서 그가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을 테니깐.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그가 폭렬기공을 사용한다면 얼추 비슷할 것이고, 개문을 사용한다면 전세는 단숨에 뒤바뀔 것이다.

즉, 쉴 새 없이 몰아쳐야 했다.

시후는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목주림을 향해 창을 뻗었다.

목주림은 검을 비스듬히 눕혀 흘려넘기려 했지만, 시후는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창을 빙글 돌렸다.

창술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拿)였다.

목주림이 다급히 창을 떨쳐 내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수많은 비무와 실전을 거치며 착(着)을 어느 정도 익혔다.

물론, 어느 정도라는 말은 숙련도가 부족함을 의미했지만, 부족한 숙련도는 힘으로 채우면 그만이었다.

목주림은 그에 대항하기 위한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당장이라도 피눈물을 흘릴 듯 눈을 부릅떴다.

그와 동시에 자운유성창에 맞닿은 그의 검을 통해 격정적인 떨림이 전해졌다.

팽팽한 균형이 유지되었다.

문제는 그건 시후가 의도한 균형이었다.

“끝내자.”

힘을 풀었다.

목주림의 두 팔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시후의 자운유성창도 퉁겨지듯 위로 솟구치는 듯했지만, 시후의 왼손은 어느새 창대 중앙을 잡고 있었기에 창은 정확히 반 바퀴가 돌아갔다.

“늦어.”

시후는 왼발을 강하게 디디며 창을 찔러 넣었다.

창날이 아니라 준(鐏)으로 말이다.

준은 일반적으로 창을 땅에 세워놓을 때 사용된다.

즉, 찌르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소리였다.

“끄윽.”

목주림이 끈적한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선 그보다 더욱 끈적한 토혈이 쏟아져 나왔다.

조금 더 강하게 밀어 넣었다.

먼가 쑥 뚫리는 느낌과 함께 더욱 깊게 들어갔다.

등을 비집고 나간 것이다.

목주림이 재차 피를 토했다.

바닥에 튕긴 토혈 때문에 옷자락을 더럽혔다.

자운유성창을 빼내기 위해 잡아당겼다.

하지만, 목주림은 잡은 창을 놓지 않겠다는 듯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자연스럽게 그는 앞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 토한 피 때문일까.

붉은 그의 눈에 핏기가 가셨다.

“크륵.”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핏덩이는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결국, 그는 마지막 말조차 남기지 못한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얼마 뒤 자운유성창을 잡은 그의 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마교 십이대 철혈대주 목주림을 사살하였습니다. 공적은······.]

[······.]

시후는 귓가를 간지럽히는 알람을 모조리 꺼 버렸다.

가슴을 관통한 자운유성창을 뽑아내자, 목주림의 시체는 힘없이 뒤로 쓰러졌다.

시후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머리 뒤편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향한 그의 손에는 굵은 황금빛 머리카락이 들려 있었다.

시후는 주변을 살핀 뒤 조심스럽게 목주림의 시체 위에 머리카락을 올려놨다.

사라졌다.

아니, ‘스며들었다’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황금빛 머리카락은 목주림의 시체에 스며들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다.

시후는 재빨리 주변을 훑은 뒤, 위태로운 화산파 제자를 돕기 위해 자리를 박찼다.

* * *

피해는 상당했다.

두 자리도 세 자리도 아닌, 네 자리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반 저잣거리 파락호끼리의 주먹다짐이 아니다.

날붙이를 사용하고 내공을 사용하는 무림인의 싸움이었다.

다친 이의 비율보다 죽은 이의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마교의 피해는 그보다 더욱 컸다.

여기저기 달아나다가 죽은 이를 모두 더하면 사망자만 다섯 자리에 달했으니깐.

승리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은 승리다.

제갈마혁은 끝없는 침묵 속에서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이미 천산산맥을 타고 있겠군.”

시체 수습도 못 하고 달아난 마교와 달리, 정의맹은 그럴 수 없었다.

다친 이를 치료하고 시체를 수습해야 했다.

제갈마혁이 말했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는 자리에는 피의 호수가 만들어졌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에서 나온 핏물이 모인 결과였다.

그 속에는 아직 건져 내지 못한 시체도 있었다.

그 와중에 그나마 좋은 소식이 있었다.

“우군도독부에서 수습을 위해 병력을 보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만의 정병이 온다고 하니, 최소한 이 참상을 정리할 수는 있을 듯합니다.”

팽충정의 말에 다들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

참혹한 이 광경을 지켜보는 건 괴롭기 짝이 없었다.

그는 더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는 듯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런 그를 대신해서 팽룡이 나섰다.

“다들 힘들겠지만, 이 기회에 놈들의 뿌리를 뽑아야 하오. 놈들이 다시 재정비하고 나온다면 역으로 우리가 쓸려나갈 수 있으니 말이오.”

“팽룡, 자네는 이런 대규모 살육이 익숙할지 모르나 우리는 아닐세.”

“나라고 이런 참혹한 광경이 익숙한 건 아니오. 하지만······.”

“우리도 알고 있네!”

양적림이 버럭 소리쳤다.

그는 화산파 장문인으로, 최전방에서 검을 휘두르고 휘둘렀다.

그의 애병인 천향검이 부러졌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나도 눈앞에서 목이 잘려나가던 금형이와 온몸에 칼을 찔린 채 죽어 나간 효성이의 복수를 해 주고 싶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를 쏟아 냈는지 아는가? 복수를 위해서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가?”

그의 말에 팽룡은 입을 다물었다.

이번 토로번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건 화산파였다.

그들은 화산의 이름을 드높이고자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웠다.

아니, 단순히 이름을 드높이고자 하는 이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몇몇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사형제를 돕기 위해 달려들었을 것이다.

사형제를 도우려고 목숨을 던지고, 그를 돕기 위해 또 다른 사형제가 몸을 던져 발생한 일이었다.

화산은 누구보다 용맹했기에 피해가 더욱 컸다.

“우리는 여기까지네.”

화산이 물러나겠노라 말했다.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더 피해를 본다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깐.

그렇게 화산은 토로번을 떠났다.

최초의 시후 기억 속에 화산은 제 잇속만 챙기는 문파로 기억됐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그들은 의를 행했다.

그렇기에 시후는 떠나는 화산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 188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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