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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81화 (163/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81화 변수 (3)

눈을 떠 보니 낯선 천장이었다.

그와 동시에, 시후의 입꼬리가 위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기뻐하긴 일렀다.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온몸의 근육들은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듯 아우성을 질렀다.

시후는 정신과 육체와의 싸움에서 정신의 힘에 손을 들어주었다.

“방······ 인 건 확실한데.”

휑하다.

시후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창문은 있었다.

반쯤 열린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의 세기를 보아하니 대낮이었다.

시후는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펴보려 했지만,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걸음을 멈췄다.

“일어나셨습니까?”

“아, 예.”

끼이익.

경첩이 비명을 지르자 문이 열렸다.

붉다.

붉은 도포에 붉은 가사를 둘렀기에 자칫 잘못 보면 섬뜩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명경지수’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맑은 눈을 본다면, 이전에 느꼈던 감정은 한순간에 사라질 게 분명했다.

시후는 재빨리 합장을 취했다.

“요 며칠 시주를 지켜봤습니다.”

표정이 보일까 싶어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의 시선이 뒤통수에 내리꽂히는 게 느껴졌다.

시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그보다 더욱 깊은 세월은 담은 두 눈을 마주했다.

“더는 몸을 혹사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십시오.”

시후는 합장을 풀지 않고 다시 허리를 숙였다.

노승의 눈이 더욱 깊어졌다.

“포달랍궁은 아직 문을 열고 나갈 때가 아니라오.”

그걸 바라고 일보일배를 행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포달랍궁의 개입은 일정 조건이 갖춰졌을 때나 가능하니깐.

“청정을 깨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럼 왜 문을 두드린 것입니까?”

“배를 올리고 싶습니다.”

그 대답에 노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마지막 숨을 내쉬듯 아주 깊은 한숨이었다.

“부처님께 배를 올리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 홍궁(紅宮)의 출입은······.”

“저는 승불(勝佛)께 배를 올리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노승의 얼굴이 굳어졌다.

“승불을 모시는 곳은 홍궁도 백궁(白宮)도 아니지 않습니까?”

포달랍궁은 홍궁과 백궁으로 나뉘었다.

백궁은 지금 시후가 누워 있던 생활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에 반해, 홍궁은 부처를 위한 공간이었다.

소림으로 치면 천왕전이나 대웅보전과 같은 곳이었다.

예불과 참선 등을 행하는 곳.

하지만, 포달랍궁 내에는 이도 저도 아닌 곳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시후가 이야기를 꺼낸, 승불을 모시는 투전옥(鬪戰獄)이 있었다.

흉흉한 이름이었다.

싸울 투(鬪)에 싸울 전(戰)자라니.

게다가 뒤에 옥(獄)이라 붙인 것 또한 또한 정상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투전옥은 승불을 모시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제천대성의 사당이라면 다른 곳에도 많이 있소만.”

“그가 천계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들렸던 곳이 바로 이곳이지 않습니까?”

굳어질 대로 굳어진 노승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방을 나섰다.

그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시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까지 나가라고 했다면 이와 같은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을 것이다.

시후는 초조한 마음으로 제발 허락이 떨어지길 기도했다.

하지만, 한 식경이 지나고 반 시진이 지났음에도 노승은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배고픈데······.”

어제부터 쫄쫄 굶었기에 등가죽이 배에 달라붙을 지경이었다.

시후는 주머니에 넣어 둔 바짝 마른 육포를 잘게 찢어 우물우물 씹었다.

그러던 와중,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난리 났겠네.”

자유로운 인질이라고 하나 인질은 인질이었다.

감시하는 눈도 있었을 테니, 적시걸의 귀에 분명 포달랍궁에 들어갔노라 말이 전해졌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겠지.”

포달랍궁이 문을 열고 나온다면 적시걸은 당장 서장을 떠나야 한다.

그가 나름 정의로운 악이라고 하지만, 과거 포달랍궁의 행동을 돌이켜보면 그는 살계를 열어도 될 대상에 포함될 테니깐.

그가 제아무리 팔황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해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포달랍궁이 문을 닫고 삼십 년간 무엇을 했겠는가.

조금 전 방으로 들어왔던 노승만 하더라도 쌍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수준이었다.

* * *

노승이 찾아온 건 한 시진이 훌쩍 지나서였다.

그리고 그와 연배가 비슷한 노승이 함께 찾아왔다.

“투전옥에서 배를 올리고 싶다고 하셨소?”

“예.”

“시주, 포달랍궁은 사람을 받지 않소. 이번에 시주를 안으로 들인 이유는 며칠간 보여 준 진실된 태도 때문이었는데, 안에 들어오자마자 이러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애초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오?”

“예.”

시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구태여 거짓을 말할 필요는 없었으니깐.

그에 두 노승의 백미가 꿈틀거렸다.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했다니, 더욱이 허락해 줄 수 없겠구려.”

거부가 떨어졌다.

하지만,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아직 기회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을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스님,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과연 그게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까?”

시후가 뜬금없이 질문을 던지자 두 노승이 빤히 얼굴을 바라봤다.

호기심이 동하는 표정을 보니 더 말해 보라는 듯했기에, 시후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누구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한낱 벌레 미물 또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지요. 스님들 또한 열반이라는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시주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목적을 위해 타인을 속이는 건 옳지 않지요.”

“속이다니요? 제가 거짓을 말한 적 있습니까?”

“일보일배로 홍산을 오르며 부처님을 뵈려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급하게 일을 진행하려다 보니 꼬였다.

하지만, 풀어 낼 수 있다.

당장 방법이 떠오르지 않지만, 노승의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적의보다 호의에 가까웠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시후는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던지고 보니, 다음 말이 떠올랐다.

노승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질문이 아닌 척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는 존재이며, 제천대성은 부처가 된 현장법사에게 투전승불이라 불리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 또한 부처지요.”

일보일배로 홍산을 오른다는 것은 당연히 석가모니를 위해 절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시후는 노승이 먼저 부처님이라 이야기를 꺼냈기에, 자신이 절을 올린 건 투전승불을 향해서였노라는 괴변을 펼쳤다.

만약, 스님이 그 뜻이 아니었다고 말하면 또 다른 변명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시후는 그의 입을 주시하며 기도했다.

두 노승은 한참을 침묵하며 눈빛을 교환하더니, 뒤늦게 나타났던 노승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인가 싶었지만, 아쉽게도 아니었다.

“맞습니다.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부처가 되는 길을 하나가 아니지요.”

깨달음으로 열반에 들어도 부처가 될 수 있으며,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을 이루어도 부처가 될 수 있다.

하물며,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에도 부처가 될 수 있는 법이었다.

시후는 마주한 노승의 눈에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그와 설전을 펼쳐야 하리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설전이 매우 길게 이어지리라는 것이었다.

“시주께서 추구하는 길을 듣고 싶습니다.”

이 해답을 어떻게 던지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리라.

시후는 노승의 깊은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었다.

평정사의 초오 대사 덕분에, 시후는 이미 이쪽으로도 제법 깊은 지식이 깃들어 있었으니깐.

“저는······.”

* * *

“부처를 만나 내면의 부처를 일깨우시길.”

노승은 짧은 덕담과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시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투옥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투전옥을 본 소감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작다.’

웬만한 정자보다도 작은 건물이었다.

사람을 빼곡히 채워 넣는다면 스무 명도 못 들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시후는 숨을 깊게 들이쉰 뒤 내공을 일으켰다.

은은한 금빛이 몸을 휘감으며 몸에 활력이 돌았다.

물론, 단순히 활력을 느끼고자 내공을 일으킨 건 아니었다.

그 상태로 투옥전 문을 붙잡았다.

전기라도 통한 듯, 문고리를 잡은 손을 통해 짜릿함이 전해졌다.

문이 묻는 듯하였다.

정말 들어올 것이냐고.

시후는 들이마셨던 숨을 내뱉으며 재차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문을 당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고작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하나 넘었을 뿐이었다.

아직 투전승불의 불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후는 욕이라도 한바탕 내뱉고 싶었지만, 이제부터는 손짓 하나도 주의해야 했다.

뻐근한 목을 뒤로 젖히며 투전승불의 불상을 똑바로 바라봤다.

정확히는 투전승불의 종모(終毛)로 만들어진 불상을.

그리고 일 배(一拜)를 올렸다.

[투전승불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그와 동시에 어깨가 뻐근해졌다.

이 배를 올렸다.

팔이 납덩어리를 단 듯 축 늘어지려 했다.

삼 배를 올렸다.

무릎 관절 사이에 모래를 집어넣은 듯 짜릿한 통증이 전해졌다.

횟수가 더해질수록 몸에 가해지는 고통은 점차 그 크기를 키워 갔다.

삼십 배를 올렸을 때부터는 눈이 감기지 않았다.

그리고 삼십일 배를 올렸을 때, 추가로 가해지는 고통은 없었다.

다만, 눈을 감았다.

자신이 아니라 투전승불의 불상이 눈을 감았다.

거기서 일 배가 추가되자 불상이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정확히 시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른 침을 삼켰다.

하마터면 욕을 내뱉을 뻔했으니깐.

알고는 있었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일 배가 더해질수록 행동은 커졌다.

단순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고개를 돌리고, 주먹을 쥐었던 손을 펼쳤다.

이윽고 발을 뻗었다.

불상의 크기는 시후와 비슷했다.

아마도 다섯 걸음만 더 걸으면 시후의 얼굴 앞까지 다다를 것이다.

시후는 몇 배를 올렸는지 헤아려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108배를 올려야 했다.

눈이 시려왔다.

그러나 짓눌리는 마음을 다시 일으키며 절을 올렸다.

바닥에 손바닥과 이마가 바닥에 닿자, 앞에서 나무 바닥이 짓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걸음 가까워진 투전불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총 다섯 번의 절을 더 하자, 거리는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좁혀졌다.

억지로 침을 삼키며 다음 일 배를 올렸다.

바닥에 이마가 닿은 순간.

끼이익.

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지만, 투전불상은 눈앞에 없었다.

그리고 몸을 완전히 일으키는 순간.

요추(腰椎) 한 부분에 짜릿한 통증이 전해졌다.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혀를 깨물며 억지로 참아내었다.

입안에 비릿한 혈향이 맴돌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단순히 요추를 누른 게 아니었다.

혈을 누른 것이다.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손이 땅에 닿을 때 경거와 양계를 짓눌렀고, 바닥에 엎드릴 때 태백과 함곡을 건드렸다.

소해(少海)와 소해(小海)를 동시에 두들길 때는 시후도 뒤돌아 설 뻔했다.

그를 계기로 두 개의 혈을 동시에 건드리기 시작했다.

곤륜과 복류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천정과 곡택은 한결 편했다.

견정과 완골을 누를 때는 되려 시원함 마저 느껴졌다.

시후는 기분 좋게 절을 올리려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촉이 좋지 않았다.

보통 이런 느낌을 받았을 때는 정말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겼다.

그리고 손바닥과 이마가 바닥에 닿았을 때,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이 108배였다.

그 말은.

“끄윽······.”

시후는 백회에서 느껴지는 아득한 고통에 정신을 잃었다.

다만, 정신을 잃기 전 주르륵 떠오르는 알람 중 하나를 읽을 수 있었다

[······니다.]

[······니다.]

[기경팔맥을 완전히 개통하여 모든 혈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 18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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