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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69화 (151/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69화 대화합 (5)

“알아냈다.”

시후는 갑작스레 찾아온 신의의 방문보다도, 그의 말이 더욱 당황했다.

다짜고짜 알아냈다니.

하지만, 옆에 있던 서괴가 어깨를 움츠리는 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천양초 뿌리.”

눈이 마주친 신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는 어서 말해 보라는 듯 신의를 재촉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주저하는 기색이 매우 강했다.

“일단 철가 놈을 불러오게.”

“내가 전하면 되네.”

“전하는 과정에서 누가 들을까 봐 그러네.”

신의가 워낙 목소리를 내리깐 탓에 서괴는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후괴를 찾으러 나가자마자 신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후는 그의 한숨에서 뭔가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천양초 뿌리가 필요했던 사람이 죽은 건 아닌 거 같은데······. 맞아요?”

신의의 고개가 미세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시후의 입속에선 ‘그럼 왜?’라는 말이 맴돌았다.

하지만, 신의의 착잡한 표정에 묻진 못했다.

얼마 뒤, 서괴가 후괴를 데리고 돌아왔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 신의의 입을 주시했다.

“들은 이야기는 그 누구한테도 말해선 안 되네.”

“물론일세. 여기서 들은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약조하겠네.”

“혜아가 묻는다고 해도 알려 줘선 안 되네.”

“으음······.”

‘그 누구’라는 말 속에 혜아는 들어 있지 않았는지, 쌍괴는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신의는 대답이 떨어지기 전까지 말을 할 기색이 없었다.

두 사람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신의는 기막을 펼쳤다.

“천양초 뿌리는······ 문 장문인이 필요로 하던 물건일세.”

“문 장문인?”

후괴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되물었지만, 신의는 제대로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쌍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동파 장문인은······.

“멀쩡하잖아?”

서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하자, 시후도 비무대를 비롯한 각종 숙소를 지을 때 진두지휘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수많은 제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구릿빛 피부를 뽐내며 나무를 베고 돌을 날랐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팽가의 피가 흐르지 않으냐고 물을 정도로 건강한 그가, 도대체 왜 천양초 뿌리가 필요하단 말인가?

신의는 세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양초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기를 그득히 품었다고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네.”

“갑자기 웬 천양초 이야기인가?”

후괴의 물음에 신의는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재차 말을 이었다.

“뿌리, 잎, 열매 중 어느 것 하나 양기를 띠지 않는 물건이 없지. 당연히 가장 양기가 강하게 뭉치는 건 열매지만, 뿌리도 그에 못지않네. 그건 자네들이 더 잘 알겠지.”

쌍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하지만, 신의의 말투 속에는 그들을 힐난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문 장문인은 자네들도 봤다시피 매우 건강하네. 근 수십 년간 그 흔한 고뿔조차 걸리지 않았다고 하더군. 하지만, 그에겐 한가지 근심이 있었네.”

신의는 잠시 말을 끊은 뒤 몸을 앞으로 숙였다.

“바로 후대를 잇지 못했다는 것.”

그 말을 들은 쌍괴는 귀를 후벼팠다.

잘못들은 게 아닌가 싶었으니깐.

하지만, 신의는 제대로 들었노라 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가 캐물은 게 아니라 문 장문인이 야밤중에 날 찾아왔었네. 도통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진맥이라도 해 줄 수 있겠냐고 하더군. 맥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하니, 양기가 어쩌고 하길래 혹시나 해서 물었네. 그러자 자네들이 얽힌 이야기를 해 주더군. 정체 모를 두 명의 고수가 물건을 강탈해 갔다고.”

쌍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천양초 뿌리를 훔침으로써 사람이 죽은 건 아니지만, 물건의 주인이 그 장문인이었다니.

가장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차악의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의는 두 사람의 표정이 썩어 문드러지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 걱정할 필요 없네. 어차피 천양초 뿌리를 먹었다고 한들, 문 장문인은 후대를 이을 수 없는 몸이네.”

“후대를 못 잇다니?”

“아무리 토양이 비옥하다고 해도 씨앗이 있어야 싹을 틔울 것 아닌가. 문 장문인은 씨앗이 없네.”

* * *

그다음 날부터 쌍괴는 온갖 쓸데없는 일을 자처하고 나섰다.

중간중간 문 장문인을 향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통에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그는 두 사람의 시선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비무가 진행될수록 사람은 더욱 몰렸으니깐.

그 와중에 시후는 한가했다.

그들과 달리 비무만 참가하면 되었으니깐.

다만.

“내일은 좀 힘들겠네?”

제갈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파죽지세로 올라갈 것 같았지만, 내일 마주하는 상대는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내일은 비령과의 비무가 예정되어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말이다.

“아, 제법 늘었던데.”

“늘긴. 애초부터 비령이 밀렸던 적이 없지 않았어?”

“연계가 너무 자연스러워졌단 말이야. 예전에는 조금 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틈 자체를 보법으로 매워 버리는 통에 각이 안 보여.”

시후는 말을 돌리며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곧 현월문 소검후 천비령 소저와 산동성 철풍검 조위언 소협의 비무가 치러지겠습니다! 두 분은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그와 동시에 비무대 위의 공동파 장로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이 비무대 양쪽으로 올라왔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천비령! 천비령!”

“소검후! 이번에는 몇 합으로 끝낼 거요!?”

아직 손도 섞지 않았지만, 비령의 승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비령은 무공을 숨기지 않았다.

대놓고 드러내며 단박에 상대를 제압했다.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으로.

안 그래도 빼어난 외모로 인기가 좋았지만, 연신 화끈한 비무를 보여 줌으로써 군중들은 그녀를 애타게 찾았다.

“철풍검 힘내시오!!”

비령의 상대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하는 응원이 아니라 그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두 사람은 마주한 채 공동파 장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살수를 펼쳐선 안 된다는 이야기와 그를 어길 시 개입할 것이라는,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였다.

그는 두 사람의 확답을 들은 뒤 비무대 가장 끝으로 물러났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공동파 장로는 축복을 기원하는 은전(銀錢)을 비무대 위에 던졌다.

땡그랑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비령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자세를 낮춘 뒤, 사선으로 검을 올려친 것이다.

상대는 막거나 물러설 수밖에 없지만, 이전에 물러났던 상대가 얼마나 추하게 떨어졌는지 철풍검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물러서지 않고 검을 눕혀 비령의 공격을 막았다.

철풍검의 팔이 뒤로 젖혀졌고, 비령 또한 반발력에 의해 검을 휘두르던 반대 방향으로 몸이 돌았다.

하지만, 그건 비령이 의도한 바였다.

비령은 반발력을 이용해서 자세를 낮춤과 동시에, 왼 다리를 쭉 뻗은 채 몸을 팽이처럼 돌렸다.

철풍검의 선택지는 두 개로 강요되었다.

몸을 공중으로 띄우거나, 뒤로 물러나거나.

그 또한, 당장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깐.

“흡!”

하지만, 철풍검의 선택은 대부분의 예상을 빗나갔다.

공중으로 몸을 띄우긴 했으나, 비령의 머리 위를 훌쩍 넘겨 지나갔다.

비령도 설마 넘어가리라곤 예상치 못한 듯 황급히 몸을 돌렸다.

찰나의 틈을 확보한 철풍검이 재빨리 검을 찔렀다.

비령은 아직 몸을 다 돌리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검을 막기는 요원해 보였다.

그의 검이 비령의 어깻죽지를 관통하려는 찰나, 비령의 겨드랑이에서 검이 솟아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겨드랑이 사이로 검을 찔러 넣어 철풍검의 검을 막았다.

비령의 기가 막힌 대응에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철풍검은 마냥 감탄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곳을 노리기 위해 다급히 검을 비틀었다.

그걸 보고 있을 비령이 아니었다.

“착자결이라.”

비령은 무당파 제자들이 곧잘 펼치던 착자결로 검을 붙잡아 두었다.

철풍검이 떼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팔을 흔들었지만, 비령은 검에 아교를 잔뜩 발라 놓은 듯 떨어질 줄 몰랐다.

그 사이, 자세를 바로 한 비령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시후는 그 모습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곧 끝나겠네.”

* * *

시후는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내일 있을 비무를 그려 보았다.

선공은 자신에게 있다.

비령이 공격하는 주된 방향은 하체다.

유연한 몸놀림을 통하여 균형을 무너트린 뒤 공격하는 걸 즐기는 편이기에, 그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한다면 앞설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비령이 착자결까지 익힌 이상, 창을 붙잡아 둔 채로 근접할 여지는 충분하니깐.

그렇다면 애초에 무기를 맞댈 수 없도록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문제는, 강하게 밀어붙이면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점이었다.

“그 허점조차 파고들지 못할 정도로 밀어붙이면 되긴 한데······.”

그럼 살초(殺招)다.

전력을 다할 수도, 적당한 힘을 쓸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이렇게 적절할 때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지면, 놈이 붙어 있을 여지가 없어질 테고.”

벌써 떨어질 순 없다.

그렇다고, 비령에게 올라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져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걸 말하자니 시후의 자존심도 상했지만, 비령의 연기는 실로 처참한 지경이었으니깐.

‘이겨야 한다.’

하지만, 살초를 펼치지 않는 수준에서 이겨야 한다.

이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참 까다로웠다.

“젠장, 구천종주를 다 끝내지도 않았는데 이 모양이면······. 나중에는 비비지도 못하겠네.”

시후는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도 답이 나오지 않자, 쌍괴를 찾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몇 걸음 떼기도 전에 누군가가 시후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 언제 오셨어요?”

“지금 막 왔다. 그보다 밤이 늦었는데 어디를 가느냐?”

“아, 내일 있을 비무 때문에 조언을 좀 구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시후는 말끝을 흐리며 은근슬쩍 눈빛을 보냈다.

그 시선에 백리은이 피식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자는 눈짓을 보냈다.

그의 맘이 변할세라, 시후는 얼른 몸을 돌렸다.

방은 정말 잠을 자기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즉, 간단한 다기(茶器)조차 없었다.

“공용으로 쓰는 주방이 있는데, 차를 한잔 내올까요?”

“내오기 귀찮아서 물어보는 것 아니더냐? 되었다. 차 한 잔 얻어먹고자 온 건 아니니깐.”

속내를 들킨 시후는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백리은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계획을 세웠기에, 그가 다시 돌아온 건 호재였다.

“갑자기 본가는 왜 다녀오신 거예요?”

“볼일이 있어서지.”

볼일이라.

중독에서 벗어나자마자 본가로 달려갈 일이 뭔지 의문이 들었지만, 묻진 않았다.

백리은의 표정을 보니 가만히 있어도 말해 줄 것 같았으니깐.

실제로 그는 시후가 말이 없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내가 후대를 위해 준비를 너무 안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 들러 그간 얻은 바를 남기고 왔다.”

그의 말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의가 없었다면 그는 어찌 될지 몰랐다.

다만, 신의가 숭간에 없었다면 무리해서 가지도 않았겠지만.

“그리고 신의가 내게 사용한 물건이 보통 물건이 아니니, 나도 네게 보답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의 말에 시후는 잠시 멈칫했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리은은 목이 부서지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후를 보곤 피식 웃으며 품을 뒤졌다.

잠시 뒤 그는 탁자 위에 한 권의 책을 놓았다.

“네 녀석의 무공에 관해 정리해 두었다. 모자랐던 건 이것으로 해결될 것이다.”

그의 말에 시후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탁자로 손을 뻗었다.

[임무 ‘부활한 조가창식’의 보상으로 ‘백리은의 심득(心得)’을 얻었습니다.]

- 170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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