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61화 (143/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61화 마교 (4)

추나행이 앞에서 달리며 연신 뒤를 힐끔거렸다.

빈도가 잦아진 걸 보아하니, 곧 질문을 던질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분명 이렇게 물을 것이다.

확실······.

“확실한 게지?”

“두 번만 더 물어보세요.”

시후는 질문에 대한 답 대신, 알아듣기 힘든 말을 남겼다.

다만, 담담한 어투와 달리 표정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보통이라면 바로 말을 걸지 않을 테지만, 추나행의 호기심은 보통을 넘어섰다.

“두 번 더 물으면 뭐가 있는가?”

“그럼 백 번을 채우거든요.”

시후의 목소리에는 냉랭함을 넘어 살기마저 맴돌았다.

그제야 추나행은 자신의 의구심이 과했다는 것을 느꼈는지, 입을 닫았다.

세 사람은 마교의 그늘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단순히 천산산맥을 벗어난 게 아니라, 신강과 청해를 지나 감숙에 다다랐다.

마교의 추격은 없을 것이다.

아니,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추나행은 머물렀던 흔적을 눈곱만큼도 남기지 않고 지웠으니깐.

그나마 신경 쓰이는 건 목주림이었다.

어찌 되었건 그의 제안을 거부한 꼴이다.

그가 관심 보인 정도를 생각한다면 분명 찾으려 했을 것이다.

외성을 죄다 뒤졌다면 난리가 났을 테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철혈대가 마교 십이대에 속한다고 하지만, 십이대 중 마교에 미치는 영향력을 헤아린다면 열 손가락을 넘어선다.

그런데도 세 사람이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보인다.”

백리은의 말에 고개를 들자 저 멀리 황하강을 끼고 자리한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난주에 있는 건 확실하겠지?”

추나행은 난주를 보더니 그새 까먹은 듯 질문을 던졌다.

그에 시후는 손가락 두 개를 펼친 뒤, 천천히 한 개를 접었다.

한 번 더 물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듯 말이다.

추나행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후 세 사람은 말없이 달려 난주에 도착했다.

난주는 여전히 상인들로 붐볐다.

시후는 희망에 들뜬 그들의 표정을 보며 안도했다.

아직 난주는 안전하다.

아직은 말이다.

“석영루로 가죠.”

시후의 말에 두 사람이 인상을 구겼다.

다만, 인상을 구긴 이유는 서로 달랐다.

백리은은 이름에서 기루임을 짐작했기 때문이고, 추나행은 그곳이 하오문 분타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굳이 하오문에 들릴 필요가 있는가?”

아무리 지금 협력하는 사이라고 하지만, 개방과 하오문의 관계는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둘은 서로를 언제든지 제 밥그릇을 뺏어갈 수 있는 승냥이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도 그러했으니깐.

그렇기에 추나행의 투정도 이해했다.

하지만, 시후가 지금 석영루로 가는 건 단순히 하오문과 친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왜 여기까지 이렇게 고생하며 달려왔는지 잊었어요?”

불만으로 삐죽이던 추나행의 주둥이가 쏙 들어갔다.

“확실한 게지?”

그의 물음에 시후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 *

시후와 추나행은 백리은을, 백리은은 석영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석영루를 관찰하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군.”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부탁해 봤는데, 역시나 이 정도 거리에서 들키지 않고 확인하는 건 제아무리 팔황이라도 버거웠나 보다.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이어 추나행이 따라오려 했지만, 시후는 손을 들어 올리며 그를 저지했다.

“제가 지금 가는 곳이 어디죠?”

“하오문의 분타지.”

“그 수식어를 빼면요?”

“기루이지 않은가.”

추나행의 대답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계시네요.”

“날 놀리는 게냐?”

시후의 물음은, 해를 가리키며 ‘저것이 뭐냐’라고 묻는 수준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명백히 조롱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후는 그런 의미로 물은 게 아니었다.

그가 잊고 있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을 뿐.

“따라오려면, 최소한 씻기라도 하셔야죠. 아니, 그 복장도 마찬가지.”

손가락을 뻗어 그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여기저기 기워입은 옷을 둘째치고 대롱대롱 매달린 일곱 개의 매듭.

대놓고 ‘나 개방의 장로요’라며 떠드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추나행이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시후는 그를 더 나무라지 않았다.

왜 따라오려 했는지 이해했으니깐.

혈랑과 독마.

기형도 사내가 말했던 두 놈이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있다.

흑련회의 지배를 받는 녹림과 수로채가 뭉친다거나, 흑백선자가 남궁무를 죽이는 등의 사건들.

그 중 혈랑과 독마는 난주혈사의 주범이었다.

“걱정하지 마요.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없다면 그것 또한 문제겠지.”

그렇다.

마(魔).

마교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인물들에 붙은 단어였다.

목주림에게 호의를 보이는 검마와 비교한다면, 독마의 무공 수준은 떨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힘을 자랑한다.

“일단, 안에 들어가 볼게요.”

“조심하거라.”

시후는 추나행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석영루로 다가갔다.

아직 기루가 문을 열기에 이른 시간이었지만, 안에선 금 연주와 함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열다섯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쪼르르 다가왔다.

“혼자십니까? 잘 오셨습니다. 우리 석영루······.”

“나 알지? 분타주님은 어디에 있어?”

얼굴을 못 알아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오문 분타에서 시후를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깐.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이 층을 올려다봤다.

“······ 위에 계십니다.”

“안내해.”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방 너머에는 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분타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내가 지금은 다 돌려보내라고 했을 텐데?”

“아, 저 그게······.”

아이가 난처한 듯 말끝을 흐렸지만, 시후의 다음 행동은 아이를 경악게 만들었다.

끼이익.

“뭐야? 누가 허락도 없이······.”

뾰쪽한 목소리로 소리치던 여인은, 시후의 얼굴을 확인하곤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산산맥으로 갔다고 들었는데, 벌써 볼일이 끝났습니까?”

“지금 손님 중에 나이가 제법 있는 남자 두 사람이 있죠?”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역으로 질문을 던지자, 여인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시후가 그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었고, 하오문은 아직 시후에게 진 빚을 갚지 못했다.

굳이 ‘갑’과 ‘을’로 나누자면, ‘갑’은 시후였다.

“기루를 찾는 손님의 대다수는 둘 아니면 셋이죠. 게다가 손님 중에 나이 어린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고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못 해도 예순이 넘어 보인다면요?”

“······ 둘로 좁혀지죠.”

다소 퉁명스러운 태도에도 시후가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여인도 낯빛을 굳히며 대답했다.

하오문 지부장에 오를 정도면 어수룩하지 않다.

시후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무엇 때문에 그곳에 갔는지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하오문을 찾아와 누군가를 찾는다?

뻔한 이야기였다.

“혹시, 둘 중 난주에 처음 들른 쪽이 있습니까?”

물음에 여인의 고개가 움직였다.

방향은 위에서 아래로.

시후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덩달아 여인도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저, 혹시······.”

“모르는 편이 나을 겁니다.”

대답해 준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정점에 있는 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실제로 앞의 여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긴 했어도, 곧 다부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뭘 하면 되죠?”

“부족함이 없도록 대접해야죠.”

“저, 독을 타거나 산공독을 쓰면······.”

“절대 안 됩니다.”

시후는 기겁하며 말렸다.

누구한테 독을 쓴다는 말인가.

그랬다간 독마는 호쾌하게 독을 들이킨 뒤 이곳을 박살 내 버릴 것이다.

다소 격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굴에 살짝 그늘이 스치려 했기에, 시후는 황급히 뒤편을 가리켰다.

“제가 누구와 함께 갔는지는 아시죠?”

“아!!”

그녀는 백리은의 존재를 깨달은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이렇게 둘러대는 편이 나을 것이다.

행여라도 마주쳤을 때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인다면, 더욱 곤란한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니깐.

* * *

모든 일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

독마의 안전장치는 당연히 백리은이다.

독이 위협적이긴 해도 그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혈랑은?

“놈을 막는 건 우리 두 사람이군.”

추나행의 말에 시후는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시후의 머릿속에 혈랑에 대한 기억은 보잘것없었다.

단순히 독마의 곁에 붙어 있었다는 정도.

그의 무공 수위가 어떤지 알고 있기는커녕, 어떤 무기를 쓰는지조차 몰랐다.

시후의 마음속에 걱정이 쌓여 가는 사이, 석영루 가장 높은 층 창가에 새하얀 천이 걸렸다.

백리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힐끔 바라봤다.

“나와 최대한 먼 곳에서 싸우도록 해라.”

그게 원하는 데로 되는 건가?

하지만, 그는 따지고 들 시간이 주어지진 않았다.

길거리를 전력으로 달려가더니 석영루 기왓장을 박차곤 가장 위층으로 솟구쳐 올랐다.

달이 땅으로 내려온 것일까.

그의 몸이 새하얀 빛을 내뿜었다.

그와 동시에 석영루에서 지독한 마기가 느껴졌다.

“갈!!”

콰과과과광!!

단 일수.

손을 한 번 뻗었을 뿐인데, 오 층짜리 목조건물을 삼층으로 바꿔 놓았다.

“폭, 폭약이다!”

폭약으로 오해받을 정도의 파괴력.

재앙과도 같은 무위.

이것이 바로 무림의 정점에 서 있다는 팔황의 힘이었다.

저 안에 있는 누구도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마교의 정점에 서 있는 자다.

희뿌연 먼지 구덩이 속에서 한차례 거센 바람이 불었다.

자욱한 먼지가 걷히자, 육십을 훌쩍 넘긴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건물 끝으로 다가와 바닥에 있는 백리은을 노려봤다.

“정파 놈들의 정보력이 상상 이상인 걸까, 아니면 우리의 문제일까?”

노인은 태연하게 옷을 툭툭 털며 물었다.

“······ 둘 다인 것 같습니다.”

대답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

백리은의 얼굴에 아쉬운 감정이 스쳤다.

행여 방금 일격으로 혈랑을 처리했다면, 독마를 확실하게 요리할 수 있었을 테니깐.

“그렇다고 해도, 놀랍군. 가까운 곤륜과 소림 등이 있는데, 저 멀리 복건에 있어야 할 저놈이 여기에 있다니.”

“당장 떠오르는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마침 근처에 있다가 우연히 알아챘다. 둘째, 나머지 놈들이 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네 생각은?”

“둘 다입니다.”

팔황 중 한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한 대화.

시후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독마가 저런 태도를 보인다는 건 하나다.

혈랑이 둘을 무조건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

“어느 쪽이든 호재군.”

독마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좋지 않다.

정말 좋지 않다.

여기서 백리은을 잃는다면, 저울의 추가 마교 쪽으로 확 기운다.

독마를 죽여서 이쪽으로 추를 기울이려던 행동이 되레 독이 되었다.

독마는 시후와 추나행을 힐끔거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일각이면 충분하겠지?”

“그 절반만 주셔도 됩니다.”

‘빌어먹을.’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힘껏 움켜쥐었다.

‘버틴다.’

지독하게 버틸 것이다.

독마와 백리은의 싸움은 시간만 충분하다면, 백리은이 이길 것이다.

그동안 버티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추 장로님, 제가 앞에서 상대할 테니 뒤에서······.”

삐이이이이이익!!

시후는 화들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은색 신호탄이 저 높이 솟구쳤다.

개방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개방에서 그 누가 온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순 없었다.

그 사실은 추나행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개방을 부른다?

같이 죽자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지만, 추나행은 씩 웃으며 신호탄 줄을 흔들었다.

“안전장치는 이런 게 안전장치지.”

“무슨······.”

헛소리냐고 따지려 했지만, 저 멀리서 응답이라도 하듯 신호탄이 터졌다.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내가 왜 확실한 거냐고 물어본 줄 아느냐?”

모른다.

“확실하지 않으면, 내가 쓸데없이 연락을 취한 게 된다는 말이지.”

이어 추나행은 위를 올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오지 못하는 상황? 누가 못 온대?”

- 16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