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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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마교 (1)
낮과 밤이 바뀐 듯이 달려 천산산맥 초입에 도착하자, 추나행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기존에 입었던 옷과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았지만, 그 외의 복식은 제법 달라졌다.
가장 대표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어깨에 둘러멘 망태기와 입에 문 풀뿌리.
행여라도 있을 놈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변장으로는 상당히 어설펐다.
너무나도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으니깐.
하지만, 저건 올바른 변장이다.
입에 침이 마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쓴 풀뿌리를 씹는 건 약초꾼들의 습관이니 말이다.
“뒤에 거리를 두고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추나행은 그 한마디를 남기곤 훌쩍 앞으로 나아갔다.
드높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후는 슬슬 쫓아야 하지 않은가 싶었지만, 백리은이 출발한 건 그로부터 반 각이 더 지난 뒤였다.
추나행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적은 있어도, 이렇게 완전히 떨어진 적은 처음이었다.
즉, 지금이 대화를 나눌 적기였다.
“생각해 봤느냐?”
생각은 해 봤다.
너무 많이.
천산산맥까지 오는 동안 생각할 시간은 넘쳐났으니깐.
시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고민에 고민을 더해서 내린 답변을 내놓았다.
“그럴 생각은 없어요.”
“······ 의외로구나.”
거절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백리은의 목소리엔 당혹스러움이 묻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팔황이었다.
시후 쪽에서 발을 붙잡고 늘어져도 모자랄 판국에, 거절이라니.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후의 거절은 근거가 충분했다.
그가 던졌던 말은 진심이 아니었으니깐.
‘알람이 뜨지 않았다.’
백리은이 진심으로 사승(師承) 관계를 원했다면 알람이 떴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제안했을 때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거짓된 호의.
왜 거짓을 했는가.
그에 관한 고민에 고민을 더 해 봤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후는 고민을 그만두었다.
혼자 끙끙 앓아 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테니까.
“애초에 제자로 들일 생각도 없지 않으셨어요?”
이어지는 침묵.
긴 침묵은 대답을 들은 것과 진배없었다.
하지만, 시후가 원한 건 답이지, 이런 지루한 침묵이 아니었다.
백리은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일까.
산을 오르다 말고 백리은이 몸을 돌렸다.
“네가 익히고 있는 무공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더냐?”
시후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조자룡의 무공’이라고 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절대 등급의 무공’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내 어느 쪽도 그가 원하는 답이 아닐 거라는 걸 깨달았다.
백리은은 침묵하는 시후를 향해 검지를 뻗었다.
“왜 그 창으로 무공을 펼칠 때 위력이 강해지는지 알려 주랴?”
[임무 ‘부활한 조가창식’이 발생합니다.]
* * *
천산산맥은 험지다.
정도를 논하자면, 팔진도해법을 얻었던 사천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쉬이 다닐 수 있는 곳 또한 아니었다.
사람을 만난다면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은밀히 숨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골라도 제대로 고른 모양이군.”
백리은의 말에 추나행은 대답 대신 주변을 살폈다.
혹시라도 주변에 더 숨어 있는 놈들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시후는 눈을 잔뜩 찌푸린 그의 곁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예상 지점까지 얼마나 남았죠?”
“여태까지 왔던 속도로 나아간다면 반나절.”
“지금처럼 사람이 있다고 가정한다면요?”
“못 갈 수도 있다.”
날이 선 대답.
하지만,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가갈수록 경계는 삼엄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경계를 뚫고 최대한의 정보를 긁어모아야 하는 건 추나행의 역할이었다.
추나행은 유심히 주변을 살피며 놈의 사각지대를 파악했다.
얼마 뒤, 그는 확신에 찬 얼굴로 일어서며 두 사람을 불렀다.
“만약을 대비해서, 도주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품으로 손을 집어넣었지만, 밖으로 빠져나오진 못했다.
“일 없네.”
“노야.”
“자네를 두고 떠나는 일은 없을 테니 그리 알게.”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듯 딱 잘라 말하자, 추나행이 감격한 듯 몸을 한차례 떨었다.
이후, 단순히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고 말하듯 백리은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추나행이 조금이라도 의심 보이는 곳이라면, 먼저 나서서 확인하였다.
백리은 덕분에, 감시를 뚫고 지나가는 중임에도 나아가는 속도는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이건······.”
세 사람은 이름 없는 봉우리에 올라선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마을이다.
아니, 마을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거대했으니 ‘성’이라 부름이 옳았다.
그것도 족히 수십만은 살 법한 거대한 성.
“차라리 잘됐군.”
추나행의 말에 시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잘됐다는 걸까.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말이다.
* * *
땅거미가 질 무렵, 추나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게.”
백리은이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지만, 추나행을 만류하진 못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단순히 규모만 파악하고 돌아가기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추나행은 조금 더 정보를 얻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들키면 절대 도망칠 수 없다.’
그 사실을 추나행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는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개방도였다.
“해가 뜨기 전까지 돌아오겠습니다.”
“붙잡히면 구하러 가겠네.”
추나행이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붙잡히면 운명을 같이할 테니,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응원과 마찬가지였으니깐.
그렇게 추나행은 떠나갔다.
곧 사위는 어둠에 잦아들었다.
시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잘 준비를 했지만, 백리은은 추나행이 걱정되는지 하염없이 산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추나행이 당장에 붙잡힐 리도 없을 테고, 들킨다면 꽤 큰 소란이 일어날 테니 쉬고 있으라 말하려 했지만, 어차피 두 사람이 동시에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가 먼저 먼저 눈 좀 붙이고 있을 테니깐, 시간이 적당히 지나면 깨워 주세요.”
대꾸는 없었지만, 그의 고개가 미미하게 끄덕이는 게 느껴졌기에 시후는 걱정 없이 눈을 붙였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시후는 여명이 스며드는 새벽하늘을 목도할 수 있었다.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전히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백리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후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추나행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점차 하늘이 밝아질수록 백리은의 표정은 어두워져만 갔다.
붙잡힌 건가? 정말 구하러 갈 것인가?
시후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지금 백리은이 죽는 건 계산 밖이었다.
팔황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 고작 정찰로 목숨을 잃어선 곤란했다.
그 또한 모를 리 없었다.
“그······.”
그냥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꺼내려는 찰나, 우두커니 서 있던 백리은이 몸을 움직였다.
시후가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가려 했으나, 그가 달려간 방향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땟국물로 얼룩진 꾀죄죄한 얼굴.
그 얼굴이 제법 반갑게 느껴졌다.
백리은처럼 달려가 반겨 줄까도 싶었지만,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에 믿고 있었다는 듯 씩 웃어 주었다.
추나행은 백리은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오더니 시후를 바라보곤 혀를 찼다.
“눈곱이나 떼거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추나행은 눈을 비비는 시후를 바라보곤 피식 웃음을 지으며 바닥을 발로 비볐다.
그리곤 바닥에 놓인 돌 하나를 주어 들더니, 바닥에 쭉쭉 선을 긋기 시작했다.
다소 엉성한 사각형을 큼지막하게 그리더니, 선을 따라 땅을 콕콕 내려찍기 시작했다.
간격이 일정했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번을 서는 놈들의 위치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사각형 선 주변으로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세 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후의 시선에 추나행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안으로 몰래 들어갈 수 있음 직한 곳이네.”
* * *
염탐(廉探)하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수십 년간 하오문에 구른 정보책에게 묻는다면, 백이면 백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의심받지 않을 것.’
모든 정보는 상대방을 의심하지 않을 때 흘러나오는 법이다.
그렇기에 하오문이 그토록 기루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교의 의심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며칠간 주변을 지켜보며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마교는 젊다.
번을 서는 놈들이야 가장 말단에 있는 놈들일 테니 젊은 건 당연하지만, 추나행이 멀리서 지켜본 바로는 안에 기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젊었다.
그러고 보면, 당가를 습격했던 놈들도 대부분 젊었다.
“마공은 일정 수준에 다다르지 못하면 오래 살기 힘들다. 절정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마기는 불혹에 다다랐을 즈음부터 육체를 갉아 먹기 시작하지.”
“으음······.”
백리은의 말에 추나행이 신음을 흘렸다.
시후가 왜 그런 소리를 냈는지 바라보자,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번을 서는 놈들의 대화는 죄다 쓸데없는 게 전부인지라, 오늘 밤 성내로 들어가서 내일 하루 안을 돌아보려 했습니다.”
그의 용감무쌍한 계획에 백리은이 고개를 저었다.
안에는 수십만이 기거하는 만큼, 눈에 띄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추나행에겐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의 나이는 오십 근처.
마교에서 마공을 익히고도 그 나이까지 살아 있다는 건, 최소한 초절정에 발을 디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 보듯 뻔하다.
“들어가고 나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건 어떻겠는가?”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면 사람도 오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는 건 의미 없는 짓 아닌가?”
정보를 얻기 위한 잠복인데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든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안으로 들어가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내한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끙······. 번을 설 때 나누는 잡담과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추나행은 쉽사리 포기하기 힘든 유혹인 듯 한참을 고민했다.
“십 년만 젊었어도······.”
십 년이 아니라 이십 년은 젊어야 가능했을 테지만, 시후는 따지고 들지 않았다.
구태여 그의 속을 긁을 필요는 없을 테니깐.
“이틀만 더 지켜보다가 돌아가지요.”
영양가 없는 이틀이 될 것이다.
추나행이 말하길, 번을 서는 놈들의 대화는 기루 이야기가 구 할을 차지한다고 했으니깐.
“우리가 도울 건 없겠나?”
백리은의 물음에 추나행은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수천 리 길을 와서 기껏 얻은 정보라곤, 마교 놈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것과 철혈대주가 새로이 임명됐다는 것 정도였으니깐.
“도와주셔 봤자, 춘앵이가 어떻고 낙화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만 들으실 게 뻔합니다. 저 녀석이라면 그런데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아니, 애꿎은 저는 왜 끌어들여요?”
“요놈아, 네가 불노괴의 제자와······.”
추나행이 정주에서 일을 거론하려 하자, 시후가 재빨리 그의 말을 잘랐다.
“아, 그 덕분에 아침 잘 얻어먹었잖아요.”
“쫓아내려고 했던 녀석이 누군데?”
그것에 관해서라면, 시후도 할 말이 없었다.
시후가 입을 다물자 추나행이 씩 웃었다.
“그래도 네 녀석 덕분에 닷새 동안······. 아!”
추나행이 말을 하다말고 뭔갈 깨달은 듯 손가락을 튕겼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자, 추나행이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시후의 손을 붙잡았다.
“차 소협,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들어보게.”
그 말에 시후는 등에 소름이 돋았다.
지칭하는 단어가 ‘네 놈’, ‘네 녀석’ 등에서 ‘차 소협’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어떤 부탁을 하려기에 이러는 것일까.
아직 무슨 부탁인지 이야기를 듣지도 않았지만, 추나행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보며 확신했다.
대단히 위험한 부탁일 것이란 것을.
- 15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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