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41화 환골탈태 (1)
“생각보다 아는 게 없군.”
종패는 피에 절은 소도를 바닥으로 내던지며 말했다.
한두 개의 정보를 제외하면, 대부분 월의 입에서 나온 말이 진실이란 걸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그보다, 고작 초절정 초입 넷으로 당가를 사냥하겠다니······. 우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나?”
종패가 청을 툭툭 차며 물었지만, 사자는 말이 없는 법.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 질문의 답은 남궁천에게서 나왔다.
“제 생각에 이들은 당가의 전력을 끌어내는 미끼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끼?”
“당가의 힘은 개개인의 능력도 있지만, 그간 이룩해 둔 수많은 성과도 한몫하지 않습니까?”
“작령환을 먹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종패는 어림없는 소리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남궁천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죽은 청을 가리켰다.
“작령환이 당가에서 자신 있어 하는 독이란 건 알겠지만, 저자가 모르는 것을 말하게 만들 수는 없는 법 아닙니까?”
종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리고 곧 생각에 잠긴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던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곧이어 남궁천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듯하군. 더 말해 보게.”
“당가의 비전인 적령환으로 이번 일의 모든 것을 실토하게 했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무슨 의문인가?”
“저들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당가에서 추가 지원이 왔지 않았겠습니까?”
종패가 눈을 찌푸렸다.
저들의 계획이라는 말은 듣기조차 싫었으니깐.
하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한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피의 복수를 해야 할 테니.”
“그런데 저들의 계획에는 당가에서 추가적인 지원이 왔을 때를 가정한 계획은 없지 않았습니까?”
놈들이 실토한 계획은 딱 여기까지였다.
채집꾼들의 실종을 조사하러 온 당가 인원을 죽인 뒤, 당가의 본대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다음이 없었다.
종패는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술을 뗐다.
“계획이 성공한 다음에 추가 계획을 세우려고 했을 수도 있지 않나?”
남궁천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종패는 다소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어찌 되었건, 이들이 당가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다소 확신에 찬 남궁천의 말에 당가 측 무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별개로 시후는 고민에 빠졌다.
흑련회에서 왜 당가를 노리는가.
단순히 정파의 전력을 줄이기 위함이라 생각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요동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모용세가와 달리, 기본적으로 사천은 용담호혈(龍潭虎穴)이었다.
성도에서 서쪽으로 사백 리만 가면 청성파가 있고, 그와 비슷한 거리에는 아미파도 존재하니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사이가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천의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교류가 잦아 여느 분파들보다 사이가 좋았다.
하물며, 두 문파가 없더라도 당가는 강했다.
무공 또한 팔대세가에 이름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독과 암기술은 그보다 더 매서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가를 칠 바에는 곤륜파나 광동진가를 노리는 게 몇 배는 나았다.
“이유가 없단 말이야······.”
“응? 무슨 말이야?”
시후의 혼잣말에 곁에 있던 제갈려가 물었다.
간략하게 생각한 바를 말해 줬지만, 제갈려도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났을 뿐이었다.
그 사이, 당가 사람들에게선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계속 이어졌다.
“돌아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운남은 당가의 힘이 직접 닿는 곳이 아니니, 일단 돌아가서 사태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다수는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시후의 생각도 동일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흑련회가 당가를 노리는 게 확실한 상황에서 밖에 나와 있는 건 위험했다.
당가는 돌아감이 옳다.
종패는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침묵을 이어 갔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종패는 결정을 내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당가로 돌아간다.”
정답을 내뱉었다.
하지만, 종패는 더 할 말이 있었는지 재차 입을 뗐다.
“단, 빈손으로 갈 순 없으니 목가 놈의 목을 베어 가야겠다.”
목가.
종패는 독왕문의 문주인 목장원의 목을 원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종구와 천태를 어떻게 볼까? 우리는 아직 혈채를 다 받아 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당가의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음과 관련된 열 사람의 목이 달아난다고들 말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내키지 않았을 텐데 고맙네. 도움은 절대 잊지 않겠네.”
종패는 남궁천과 시후를 향해 허리 숙여 감사 인사를 건넸다.
서둘러 사천으로 돌아가도 모자랄 판국에 되려 독왕문을 찾아가는 건, 정말 당가만이 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종패는 왜 당가와 원한을 맺지 말라고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천과 시후는 당가의 복수에 동참할 이유가 없음에도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아닙니다. 무림의 일에 죄 없는 양민을 죽였으니, 당연히 단죄해야 합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군.”
“그럼 조심히 가시길 바랍니다.”
“그보다 정말 같이 가지 않아도 괜찮겠는가?”
종패의 걱정스러운 말에 남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당가 무인들과 함께 목장원의 머리를 가지고 사천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남궁천은 채집꾼의 시신이라도 찾아 주고 싶다며 남겠노라 말했다.
“그리 오랫동안 찾을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남궁천의 대답에도 종패는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시선을 보내던 그는 시간을 더 지체하기 어려웠는지 곧 몸을 돌렸다.
하지만, 당패철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종패 숙질, 저는 남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당가에서 아무도 남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남아야 당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이 혹시라도 독충이나 뱀에 물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남겠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렇기에 종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가 거친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더니, 곧 입술을 꽉 깨물며 몸을 돌렸다.
종패는 당패철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 조심하거라.”
종패의 진심 어린 걱정에 당패철은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가오자, 남궁천이 격하게 반겨 주었다.
“안 그래도 독사에 물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감사합니다.”
“아니지. 감사해야 할 사람은 우리지. 당가에서 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서 주다니······. 왜 남궁세가가 천하제일이라 불리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군.”
당패철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남궁천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제가 생각한 게 아니라 여기 차 아우가 말을 꺼낸 겁니다.”
남궁천의 말에 당패철이 묘한 시선으로 시후를 바라봤다.
시후는 등에 꽂히는 그의 시선이 부끄러워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채집꾼의 시신을 찾겠다는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 * *
애뢰산 기슭에 도착한 뒤, 시후는 풀숲을 뒤지면서 세 사람과 조금씩 거리를 벌렸다.
티가 안 나도록 풀숲을 열정적으로 뒤적이며 제법 멀찍이 떨어졌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지면 찾을지도 모르기에 적정 거리를 유지했다.
시후는 눈치를 살피다가 나무 뒤에 숨었다.
“지도.”
재빨리 지도를 확대했다.
목표는 계곡.
다만, 애뢰산 주변에 계곡이라 부를 만한 곳은 너무나도 많았다.
시후는 그중 너무 작은 곳은 제외하고, 접근성이 용이한 곳도 배제했다.
그렇게 추린 곳은 총 다섯.
“차 아우, 흔적을 찾았나?”
“아뇨!”
남궁천의 목소리에 시후는 황급히 나무 뒤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곤 다시 바닥을 훑어보며 흔적을 찾는 시늉을 했다.
시후도 시간이 남아돌아서 채집꾼의 시신을 찾자고 제안한 건 아니었다.
청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청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돌발 임무 ‘숨기려 하는 것’이 ‘환골탈태’로 갱신됩니다.]
청에게서 ‘애뢰산 계곡에 영물(靈物)이 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임무가 갱신되었다.
임무 ‘환골탈태’를 확인해 보니, 영물의 정체는 바로 독각혈망(獨角血蟒)이었다.
시후는 갱신된 임무를 보자마자 무조건 잡으리라 다짐했었다.
독각혈망은 영물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귀한 녀석이었다.
놈의 내단은 내공 한계치를 돌파하게 해 주며, 만독불침(萬毒不侵)은 아니더라도 천독불침(千毒不侵)에 이르게 해 준다.
뿔과 비늘을 이용한다면 금사박투와 비견될 만한 물건을 만들 것이었다.
물론, 보통 사람은 다룰 수 없을 테니 무강의 객잔으로 가야겠지만.
하지만, 이 모든 건 시후가 독각혈망을 찾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세 사람과 나누기엔 너무나도 아까웠다.
“잠시 모여 봐요.”
시후는 넓게 퍼져 있는 세 사람을 불렀다.
당패철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기대에 찬 눈빛이었지만, 시후 주변은 매우 깨끗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 남궁천과 제갈려가 도착했다.
시후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렇게 찾아다니는 건 효율적이지 못한 거 같은데, 흩어지는 게 어때요?”
“반대일세. 흑련회란 곳에서 이곳으로 사람을 보낼 것을 가정하면 뭉쳐 있어야 하네.”
“어차피 그때까지 있을 것도 아니잖아요? 막말로, 이렇게 찾다간 한 달도 더 걸릴 것 같은데요?”
애초에 당가에서도 서른 명이 뿔뿔이 흩어져서 찾을 때조차 사흘을 예상했다.
그런데 이렇게 똘똘 뭉쳐서 찾으면 얼마나 걸릴지는 불 보듯 뻔했다.
당패철과 제갈려는 남궁천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듯 그의 입을 빤히 바라봤다.
고민은 짧았다.
“나와 차 아우는 단독으로 다니고, 두 사람은 함께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남궁천의 답이 있고, 대충이나마 구역을 정했다.
시후는 재빨리 애뢰산 기준으로 북쪽부터 남서쪽까지 훑어보겠노라 말했다.
예상되는 다섯 곳 중 세 곳이 그곳에 있었다.
게다가 이동하는 길에 나머지 하나도 들릴 수 있었고, 어차피 세 곳에 없더라도 나머지 한 곳을 찾아가면 될 일이었다.
“독충과 독사를 주의하며 찾되, 혹시라도 물린다면 독이 퍼지지 않도록 혈도를 점한 뒤 찾아오게. 특히, 붉고 검은 녀석들을 주의하게.”
당패철의 충고를 들은 뒤 세 방향으로 찢어졌다.
지금 있던 곳은 애뢰산을 기준으로 동남쪽이었기에 시후는 북쪽으로 내달리며 첫 번째 계곡으로 향했다.
“있을 법한데?”
짙은 안개 덕분인지 서늘함이 느껴졌다.
시후는 조심스럽게 계곡을 훑었다.
조그마한 기척들은 죄다 무시했다.
망(蟒), 이무기라고 불릴 정도면,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할 테니까.
시후는 이끼 때문에 미끈거리는 바위를 조심스럽게 지나며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여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도에서 봤을 때는 제법 큰 계곡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니 이무기가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크기였다.
시후는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여기보다 큰 곳이······.”
어중간하게 큰 곳은 제외했다.
확실히 커야 했다.
지도를 쭉 훑어보던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밖에 없네.”
예상 지점은 하나로 좁혀졌다.
시후의 미간 또한 좁혀졌다.
독각혈망이 있을 법한 위치는 지금과 완전히 반대인, 북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계곡이었다.
- 14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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