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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40화 (122/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40화 숨기려 하는 것 (4)

다절편은 사용하기 어렵지만, 상대하기는 더 어려운 무기였다.

특이한 무기답게 전투의 궤를 달리했다.

어디를 잡느냐에 따라 길이가 달라지기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거리감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막기도 어렵다.

아니, 막는 게 되려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다절편이 무기를 휘감으며 어떤 식으로 공격이 이어질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니깐.

게다가 무기가 휘감긴다면 움직임이 제약됨을 의미하기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막을 때 이야기고!”

시후가 전력으로 펼친 실영보는 이름에 걸맞게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았다.

마치 시후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청은 그런 시후의 주변을 밝히려는 듯 다절편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촤르륵, 촤르륵!

다절편이 휘둘러지며 매끄러운 마찰음을 만들어 냈다.

물론, 시후의 몸에 닿진 못했지만.

“언제까지 피할 셈이냐!”

청이 잔뜩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청의 말과 달리 시후가 그냥 도망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시후는 다절편을 피하며, 놈이 왼손잡이라는 것과 좌측을 파고들 때 조금 더 반응이 느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보통 왼손잡이는 왼쪽, 오른손잡이는 오른쪽의 반응이 빨랐다.

무인의 경우는 무조건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시후는 확인을 위해 안으로 파고들었다.

청의 공격이 닿는 거리는 스무 보.

그 안에 들어서자 다절편이 요동쳤다.

청은 붙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후의 발을 노렸다.

다절편 끝에 달린 표(鏢)는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시후의 발목을 노렸다.

막을 것인가 피할 것인가.

시후의 선택은 후자였다.

방향은 허공.

교천영신으로 땅을 박차며 몸을 띄웠다.

청의 손목이 급히 움직였다.

촤악!

표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건 시후의 발바닥.

시후는 허공에서 재차 몸을 뒤집었다.

하지만, 무당의 제운종도 곤륜의 운룡대팔식도 아니기에 공중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순 없다.

단순히 몸을 비트는 정도에 그쳤다.

청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아래로 뻗었다.

“파월아!”

청이 급히 다절편을 당기려 했지만, 한 장이 훌쩍 넘는 길이 때문에 회수가 늦었다.

쩌엉!

“흡!”

다절편은 중간중간 편을 이어 주는 고리 덕분에 충격에 강했다.

고리를 정확히 때리지 않는 이상, 끊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후는 다절편을 끊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참월!”

땅에 내려서자마자 참월을 날리며 거리를 좁혔다.

좁혀진 거리 때문일까.

청은 잡아당겼던 다절편을 짧게 잡았다.

마치 양손에 쌍절곤을 든 형태였다.

덕분에 시후는 주춤거렸다.

장병기의 단점은 거리를 좁혔을 때 약하다는 것인데, 청은 색다른 방식으로 문제점을 해결했으니깐.

“멀리 있으면 길게 잡아서 채찍처럼 사용하고, 가까이 다가오면 짧게 잡아서 곤처럼 사용한다. 그거 괜찮아 보이는데?”

“하앗!!”

청은 대화를 나눌 시간 따윈 없다는 듯 달려들었다.

지금이야 짧게 쥐고 있다고 하지만, 반대쪽 손을 놓는 순간 자운유성창만큼 길어질 것이다.

시후는 그 사실을 계속 되뇌었다.

시작은 아래서부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청은 바닥을 반 바퀴 돌며 왼손을 놓았다.

가슴을 향해 찔러오는 편.

챙!

시후는 초식조차 사용하지 않고 가볍게 쳐 냈다.

청 또한 먹힐 거로 생각지는 않았는지, 이전과 같이 양쪽을 짧게 잡으며 자세를 낮췄다.

바닥에 발바닥을 바짝 붙인 채 천천히 접근했다.

확실히 장병기를 상대로 접근할 때는 자세를 낮추는 게 좋았다.

하지만, 조가창식에는 자세를 낮출 상대를 조지는 방법이 네 가지는 있었다.

가장 먼저 비룡붕요(飛龍鵬繞).

하단을 찌른 뒤, 쳐 내려는 다절편을 휘감았다.

“하앗!”

청이 옳다구나 싶어서 잡아당기려 했지만, 자운유성창은 간발의 차이로 빠져나갔다.

재차 휘두르는 공격 또한 마찬가지.

같은 실수가 여러 번 반복되자 시후는 씩 웃었다.

청의 반응이 늦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시후는 그 이유를 확신했다.

“너, 한쪽 눈이 안 보이는구나.”

청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대답 대신 다절편을 휘둘렀다.

이번엔 길다.

시후 또한 창끝을 붙잡으며 허리를 잔뜩 비틀었다.

다절편은 시시각각 다가왔고, 시후는 응축된 힘을 토해냈다.

“파천도래(破天到來)!”

광풍이 몰아쳤다.

자운유성창이 지나간 땅에는 풀뿌리가 뽑히고 땅이 들썩였다.

갑작스러운 강한 공격에 청은 다절편을 마구 돌리며 공격을 상쇄했다.

촉촉이 젖은 흙과 갈린 풀잎에 청의 옷이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와룡등천! 분혼파쇄!”

연이어 펼친 초식은, 붕악굴천과 마찬가지로 조가창식의 후반부 초식.

위력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파천도래에 이어 두 개의 강맹한 공격이 몰아치자, 청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조가창식의 후반부 초식은 내공을 바닥에 버리는 수준으로 잡아먹는다.

공격이 이어질수록 시후의 얼굴은 파리하게 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이엔 일진광풍이 몰아쳤다.

내공이 먼저 바닥나느냐, 청이 막지 못해서 뚫리느냐.

청은 연거푸 뒤로 밀려나고 몸 곳곳에 생채기가 생겨났다.

반푼만 더 깊었다면 정맥이 잘릴 뻔하기도 했고, 복부를 꿰뚫릴 뻔하기도 했지만, 끝끝내 시후의 공격을 막아 냈다.

격정적인 공격을 쏟아 낸 시후와 모든 걸 쏟아부어 막아 낸 청, 두 사람 사이엔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시후는 그사이에 남은 내공을 점검해 봤다.

대략 일 할도 아닌 일 푼.

하지만, 웃을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청은 낯빛을 굳혔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저 멀리서 들려 오던 쇠 부딪히는 소리는 어느새 잦아든 지 오래였다.

청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곧 손이 새하얗게 변하도록 다절편을 움켜쥐었다.

* * *

흔히들 가장 지독한 무리를 꼽으라면 ‘동창’이 빠지지 않는다.

태어날 때의 기억조차 떠올리게 해 준다는 악명은 구주 전역에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동창과 비교해서 절대 뒤처지지 않는 곳이 있었다.

바로 사천당가.

동창이 태어날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다면, 당가는 삼도천(三途川)에 빠트렸다가 꺼내 준다는 말이 있었다.

종패는 세간에 왜 그런 소리가 떠도는지 이유를 보여 주었다.

물론, 삼도천에 빠트렸다가 못 꺼내는 경우도 있었다.

가슴에 깊은 자상을 입었던 명은 삼도천에 가라앉았다.

그나마 청과 월은 멀쩡했다.

아니, 멀쩡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아으······. 반 각 뒤에 들어올게요.”

제갈려는 인상을 찌푸리며 진을 빠져나갔다.

충분히 이해했다.

청과 월은 손가락과 발가락은 물론이고, 그 위로 한 뼘 정도가 시꺼멓게 타들어 간 상태였다.

지독한 독 때문이었다.

시후 또한 속이 메슥거렸지만, 직접 들어야 직성이 풀릴 듯하여 고개를 돌린 채 있었다.

종패는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단이 좋군. 이 정도로 오래 버티는 건 오랜만이야. 영승아.”

종패의 부름에 영승은 붉은색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꽉 묶어 둔 줄을 풀자, 곱게 접은 기름종이가 나왔다.

손바닥만 한 크기였는데, 펼쳐도 펼쳐도 기름종이만 나왔다.

한참이나 기름종이를 벗긴 뒤에야 곱게 접은 비단이 나왔다.

시후가 안을 구경하려고 고개를 들이밀려 했지만, 당가팔수 여럿이 달려들어 앞을 막았다.

“혹시라도 흡입할 수 있으니 떨어져 계십시오.”

이전에 흑오공(黑蜈蚣)의 진액과 인면지주(人面蜘蛛)의 말린 배설물을 섞을 때와는 달랐다.

당가팔수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어릴 정도니, 종패의 손에 들린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영승은 주머니 몇 개를 더 꺼내었다.

종패는 비단을 펼쳐 조심스럽게 한곳으로 모았다.

영승은 마지막으로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옥으로 만든 자기를 건넸다.

종패가 슬쩍 눈치를 주자, 죄다 뒤로 물러났다.

시후도 더 멀어져야 할 거 같아서 진 끄트머리까지 물러났다.

종패는 모은 가루를 자기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경견하던지, 평생을 바쳐 선단(仙丹)을 만드는 도사와 같았다.

종패는 가루를 채워 넣은 자기의 뚜껑을 닫은 뒤,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사용한다만, 영광으로 알 거라. 본가의 작령환(灼靈丸)을 누군가가 먹는 건, 근 이십 년 만에 처음이니깐.”

종패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잔뜩 묻어 나왔다.

자기를 흔드는 그의 손이 빨라졌다가 느려지길 반복했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그의 손은 완전히 멈췄다.

잠시 후, 영승은 종패에게 조그만 소도를 던졌다.

종패는 자기를 평평한 돌 위에 내려놓더니 청과 월을 바라봤다.

“자비를 베풀어 기회를 한 번 더 주마. 지금이라도 모든 걸 실토한다면 먹이지 않겠다.”

종패가 자비를 베풀 듯 말했지만, 청과 월은 눈을 꼭 감은 채 고통을 인내하고 있었다.

“좋다. 그 정도 강단이 있으니 지금까지 버텼겠지. 자, 그럼 누가 먼저 먹을 테냐? 먼저 먹을 놈이 눈을 떠 보아라.”

둘은 거의 동시에 눈을 떴지만, 미세하게 청이 빨랐다.

“한쪽 눈밖에 없어서 그런지 빠르군?”

종패는 고개를 끄덕이곤 소도에 얇게 검기를 둘렀다.

그와 동시에 자기를 세로로 베어냈다.

반으로 갈라진 자기 안에는 둥근 환단이 정확히 반으로 잘려 있었다.

종패는 행여 손이라도 닿을까, 자기 주둥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붙잡곤 월에게 다가갔다.

그 기척을 느낀 청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지만, 아혈을 점한 상태인지라 노려보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종패는 피식 웃으며 월의 지창혈을 건드렸다.

그러자 마치 먹이를 갈구하는 새끼 새처럼 입을 쩍 벌렸다.

종패는 어미 새였다.

반으로 잘린 자기를 뒤집어, 환단을 월의 입에 떨어트렸다.

그와 동시에 안면과 목 주변 십여 개의 혈도를 두들겼다.

월의 입이 닫히고 목울대가 꿀렁였다.

시후가 속으로 오 초쯤 세었을 때, 월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종패는 말을 걸었다.

“혀를 깨무는 정도로 목숨을 끊을 수 없음을 모르진 않겠지? 모든 것을 실토하면 단번에 숨을 끊어 주마.”

말이 끝남과 동시에 월의 아혈을 풀어 주었다.

“끄······, 흑련회 화남 지부 소속······.”

“가만히 내버려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배가 될 것이다. 아쉽게도 죽음 이외에 벗어날 방법은 없으니,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거든 어서 모든 것을 불어라!”

“독왕문······ 협력······ 당가······ 사냥······.”

월은 고통 때문에 뜨문뜨문 말을 이었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중간 종패가 질문을 던지며 원하는 대답도 들었다.

다만, 반 각이 넘어가자 월은 간단한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종패는 약속대로 월의 고통을 덜어 준 뒤, 죽은 월을 죽일 듯 노려보는 청을 바라봤다.

“청풍명월이면 네가 조장이겠지? 역시, 조장이라 그런가? 입이 무겁······. 아, 내가 아혈을 안 풀어 줬구나. 작령환을 만들어 보는 건 나도 처음이라서 조금 긴장했군.”

종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손가락을 튕겨 청의 아혈을 풀어 주었다.

“일단 너한테는 안 먹이고 물어볼 텐데, 대답 잘 해 주면 이걸 사용할 일이 없겠지?”

“······ 나는 월과 다르다.”

“두고 보면 알게 될 일이지. 일단, 네가 이들의 조장이 맞는가?”

청은 간단한 것조차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종패는 대답을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재차 질문을 이어갔다.

“네 동료가 말하길, 채집꾼을 죽인 건 우리를 끌어들일 미끼라며? 그리고 애뢰산 계곡에 뭐가 있는 거야? 그리고 화남 지부 소속이라면서, 화남 지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게 말이 돼? 조장은 알려나?”

청은 섞어 만든 독으로 인해 팔이 썩어 가는 와중에도 신음조차 흘리지 않을 정도로 인내심이 대단했다.

종패는 월에게 얻어 낸 정보를 토대로 되물었지만, 청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좋아, 시작하지.”

종패는 반으로 잘린 나머지 자기를 들어 올렸다.

청은 절대 굴하지 않겠다는 듯 의지를 다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월의 전철을 밟았다.

- 141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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