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38화 숨기려 하는 것 (2)
나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실종된 채집꾼들이 애뢰산에 오른 뒤 실종되었다고는 하나, 그들의 활동 반경을 생각한다면 족히 수십 리를 뒤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가 무인들의 표정에선 자신감 이외엔 그 어떠한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마라.”
종패의 말에 서른에 달하는 당가 무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만, 그 서른에 속하지 못한 당패철과 시후 일행은 멀뚱멀뚱 제자리에 서 있었다.
“패철은 세 사람과 함께 전체적으로 둘러보도록.”
“알겠습니다.”
당패철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좋아서 전체적으로 훑어보라는 거지, 사실 없어도 무방하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으니깐.
말을 마친 종패는 애뢰산 정상을 향해 나아갔고, 당패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일행을 산 아래로 안내했다.
내려갈 때는 길을 이용했지만, 실종된 채집꾼들이 길을 이용했을 리는 없었다.
산기슭에 다다른 네 사람은 우거진 풀숲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언제 어디서 독충과 독사가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힘든 산행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힘든 건 어색한 분위기였다.
“사전에 수색 방향에 관해서 이야기된 듯하니 너무 맘 쓰지 마십시오.”
남궁천의 위로 때문일까.
가장 앞에서 길을 만들어 내던 당패철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목 뒤를 긁적이더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봤다.
“신경 쓰였는가?”
“제법요. 아니, 상당히 많이요.”
제갈려의 뾰쪽한 대답에 당패철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누가 데려갈지 몰라도 걱정이구나.”
“흥, 저는 결혼 안 할 거니깐 제 걱정은 하지 마시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걸 텐데?”
“제 걱정을 해 주시는 패철 오라버니야말로 올해로 서른 아니에요? 아무리 무림인이 결혼을 늦게 하는 편이라고 해도, 그 정도면 사실상······.”
이후 제갈려는 한참 동안 당패철과 말다툼을 이어 갔다.
서로를 헐뜯는 듯한 대화가 오갔음에도 당패철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당패철은 당가에서 사흘 내로 결과를 찾아낼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시후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진행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직 장담하진 못하지만, 흑련회에서 독왕문에 손을 뻗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할 게 분명했으니깐.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얕은 개울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지켜보는 눈이 붙었다.
곁눈질로 살펴보자 남궁천 또한 눈치챈 기색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남궁천의 전음에 시후는 발끝으로 바닥에 놓인 자갈을 툭툭 건드리며 고민했다.
달려가 붙잡자니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두고 보자니, 거슬렸다.
차라리 모른 척 놔둔 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면 사로잡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시후는 짧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궁천은 다소 아쉬운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두 사람과 달리 제갈려와 당패철은 한가로이 떠들고 있었다.
“흔적을 찾고 있는 거 맞아요? 이리저리 빙빙 돌고만 있는 거 아녜요?”
“이 넓은 산에서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흔적을 찾으면 내가 당가 사람이 아니라 개방 사람이겠지.”
“앗, 그 말은 당가가 개방만 못 한다고 말하는 건가요?”
“적어도 흔적을 찾는 데는 개방만 한 곳이 없지. 설마 개방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제갈려야 모르는 게 당연하지만, 당패철에게도 걸리지 않는 수준이라면 확실히 독왕문은 아니었다.
시후는 두 사람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감시자를 어떻게 가까이 끌어들일지 고민했다.
‘넓게 퍼져서 찾는 척하다가 덮칠까? 그러다가 제갈려 쪽으로 달려들면? 당패철과 같이 붙어 있도록 하면······.’
다만, 고민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높은 피리 소리가 메아리쳤다.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당패철은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그는 일언반구의 설명조차 없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냅다 뛰었다.
덩달아 세 사람도 그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시후는 여전히 감시자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며 당패철을 쫓았다.
첩첩산중에 울려 퍼진 메아리 소리를 쫓아간다는 건 허무맹랑한 소리였지만, 당패철은 그걸 해냈다.
비록 뛰어가는 도중에 한 번 더 소리가 들리긴 했어도 대단한 능력이었다.
다만, 거리가 제법 있었기에 늦었다.
서둘러 도착한 네 사람을 반겨준 건 조그만 피의 웅덩이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시신 한 구와 바닥을 샅샅이 훑고 있는 종패였다.
시신은 당가 특유의 짙은 녹의를 입고 있었다.
“흉수는 하나. 무른 땅임에도 불구하고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정도니 최소한 절정의 끝자락. 패철, 계속 피리를 불어 모두 이곳으로 불러 모아라. 적색 상황임을 알려라.”
“예!”
종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패철을 품에서 피리를 꺼내 불었다.
뒤이어 속속들이 당가 인물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시후네가 도착한 지 일각쯤 흘렀을 때,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모여 있었다.
종패는 손가락으로 여섯 사람을 찍었다.
“종후, 명포, 연정, 적능, 운오, 영승은 각기 네 명을 골라 짝을 지어라. 일각 내로 오지 않는다면 찾으러 갈 것이다.”
한 명은 오지 않았고, 한 명은 땅에 몸을 뉘고 있으니, 두 조는 인원이 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각 뒤, 그들은 오지 않은 한 명을 찾기 위해 출발해야 했다.
* * *
쾅!!!
독왕문의 대문은 오늘 두 번째 수난을 겪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완전히 박살 났다.
“충환!”
내공을 잔뜩 실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독왕문을 뒤흔들었다.
이미 아침에 겪은 일이라 그런지 다들 이전보다 빠르게 달려 나왔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당가 무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살기를 뿜어내는 통에 다들 주춤거리며 거리를 두었다.
독왕문의 총관 우충환은 박살 난 문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당가에선 다른 문파를 찾을 때 문을 부수는 게 예의라고 배우는가? 아니면 문을 두드릴 줄도 모르는 건가? 당가일수라 불리는 자가 저 모양이니, 밑에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울까?”
충환이 비아냥거리자 종패의 눈이 뒤집혔다.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오냐, 네놈의 목을 잘라 종구와 천태의 원혼을 달래리.”
종패는 곧 허리에 매달린 박도를 뽑았다.
그의 성명절기는 삼양신장과 금룡편법이지만, 부수적으로 배운 탈혼도법 또한 제법 유명했다.
종패의 기세가 심상치 않자 충환은 뒤로 물러났다.
“자, 잠시, 문주님을 불러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
“아니, 네놈의 목을 잘라서 찾아가면 될 일이다.”
“막아, 막아라!”
충환이 다급히 소리쳤지만, 종패의 흉흉한 기세에 다들 물러날 뿐 막아서는 자는 없었다.
종패는 수십의 인파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도는 충환의 목을 취할 수 없었다.
“여전히 성질이 급하군.”
독왕문의 문주 목장원이 충환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너 또한 뒤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치졸한 성격은 변함없구나.”
“우리가 아무리 정사지간의 문파이고 당가보다 세가 작다곤 하지만, 나 또한 엄연히 일문의 문주이거늘. 문파의 현판과 대문을 부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문주인 나를 능멸하는구나. 이 또한 참으면 누가 독왕문에 붙어 있을까?”
“참으라 한 적 없다.”
“전면전을 하자는 것인가? 당가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현판을 부수고 대문을 박살 낸 것도 넘어갔거늘, 이제는 대놓고······.”
“헛소리 집어치워라! 당가를 건드려 놓고 살아 숨쉬길 바라다니, 오늘부로 독왕문은 문을 닫을 것이다!”
종패의 말에 목장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가를 건드리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모른 척 발뺌해도 소용없다. 네놈이 아니면 누가 종구와 천태를 죽일 수 있을까?”
종패는 더 말하지 않겠다는 듯 도기를 길게 뽑아냈다.
하지만, 목장원은 정말 억울한 듯 손을 내저었다.
“난 어제 곤명(昆明)에 갔다가 이제 돌아왔다.”
“헛소리 마라. 네놈의 거짓말 따위를 믿을성싶으냐?”
“허! 지부 대인이 증인이다! 오늘 아침에 직접 만나서······ 아무튼, 만난 것만은 사실이다!”
목장원의 말에 종패가 잠시 주춤거렸다.
바닥에 새겨진 발자국은 단 한 사람의 것이니 흉수는 분명 하나였다.
게다가 죽은 천태는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엄연히 당가팔수였다.
독왕문에서 단독으로 천태를 죽일 수 있는 인물은 문주인 목장원을 제외하면 없었다.
시후는 당장이라도 흑련회의 짓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증거 없는 주장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다.
답답해하는 시후의 곁으로 남궁천이 다가왔다.
“최소한 둘이군.”
“셋일 수도 있고요.”
“그 이상이면 곤란하겠어.”
시후와 남궁천은 초절정이라고 해도 한 명쯤은 상대할 수 있었다.
종패에겐 하나는 우습지만, 둘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지는 애매했다.
“위기를 모면하고자 거짓을 말했다면, 차라리 죽기를 바라도록 만들어 주마.”
“당가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대하지.”
종패는 박도를 집어넣기 전, 담벼락에 도기를 날려 무너트렸다.
그리곤 멀쩡한 문을 놔두고 무너진 담벼락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시후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누가 제일 발이 빠르지?”
종패의 곁에 모인 당가팔수 중 적능이 손을 번쩍 들었다.
“누군가 길을 막거든 싸우려 하지 말고 도망쳐라. 무조건 살아남는 걸 최우선으로 해라. 천태는 자만하여 죽은 것이다.”
“알겠습니다.”
“가라.”
적능은 종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쪽으로 내달렸다.
종패는 적능이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또 다른 당가팔수를 지목했다.
“명포는 아까 편성한 조원들과 함께 종구와 천태의 시신을 수습하여 사천으로 돌아가라.”
“······ 알겠습니다.”
명포는 다소 늦게 대답하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복수를 함께하지 못함에 분개했다.
하지만, 이 날씨에 시체를 며칠 동안 버려뒀다간 썩어 문드러질 테니, 빠르게 옮기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명포가 근처에 숨겨둔 시신을 찾으러 가자, 종패는 한차례 숨을 고르더니 매서운 눈빛을 뿜어냈다.
“다음으로······ 놈의 흔적을 쫓는 일이다.”
다들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종패의 입을 주시했다.
“종후와 연정은 종구의 시신이 있던 곳을, 운오와 영승은 천태의 시신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서 흔적을 쫓아라. 흔적을 지우며 달아나긴 했지만, 범위를 넓이다 보면 언젠가는 지우지 않은 곳이 나타날 것이다. 십 리가 되었던 백 리가 되었던 무조건 찾아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무리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
이제 남은 건 적능의 조원 셋이 전부였다.
“세 사람은 수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라. 추후 수색이 길어진다면 교대해야 할 테니, 고깝게 여기지 말아라.”
지원이라 함은 숙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자리는 둘째 치고, 일단 늦은 점심이라도 먹여야 할 것이기에. 세 사람은 마른 나뭇가지를 찾아 헤맸다.
종패는 모든 지시를 끝마치곤 독왕문을 노려봤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인물이 있었다.
“종패 숙질.”
당패철이 간절히 종패를 불렀다.
하지만, 종패는 당패철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당패철은 고개를 떨궜다.
보다 못한 남궁천이 나서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넌 나와 독왕문을 감시한다.”
- 13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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