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33화 팔진도해법 (1)
이번 북방 토벌의 완료 조건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북원의 근간이 되는 열두 부족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방법은 그들을 모조리 몰살시키는 것이었다.
다만, 후자의 경우는 실현 가능성이 지극히 낮았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중 쿠빌라이 아들을 볼모로 붙잡는 건 몰살 다음으로 훌륭한 성과였다.
영향력이 가장 큰 쿠빌라이 부족의 구심점이며, 차기 칸으로 키워져야 할 그는 아주 효과적인 인질이었으니깐.
그건 영무제의 표정에서부터 드러났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쿠빌라이의 아들을 내려다보는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으니깐.
“별관 하나를 내어주고, 기거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일을 도와줄 나인 둘을 배정하여라.”
영무제의 말에 의아함이 들었다.
그가 북원에 가지는 적의를 생각할 때, 편의를 봐주겠다는 식의 발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깐.
하지만, 아직 그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또한, 타국에서 불안할 터이니 금의위 서른을 배치하여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하라.”
나인 둘에 금의위 서른.
의도는 명확했다.
공포를 심어 주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타국에 볼모로 잡힌 것도 두려울 텐데, 언제든 목숨을 해칠 수 있는 금의위 서른이라니.
과연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겠는가.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데려가거라.”
스스로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벌벌 떨고 있었기에, 금의위가 양팔을 붙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이어 영무제는 이번 북방 토벌의 상을 내리기 시작했다.
급히 토벌을 준비하며 국고가 제법 바닥났을 텐데도, 사망자 가족에게 지급되는 보상을 기존의 두 배로 늘리라는 등 민심을 신경 썼다.
뒤이어 다섯 갈래로 갈라졌던 부대의 성과에 따라 상을 차등 지급했다.
순서는 당연히 아래서부터 거론했다.
“또한, 성공적으로 북방 토벌을 마친 총병관에겐 녹읍 천 호를 하사토록 할 것이다.”
영무제의 말에 다들 눈치를 살폈다.
앞에 거론된 네 부대는 죄다 전군도독부 소속이었다.
아직 거론되지 않은 부대는 중군.
확실히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긴 했지만, 총병관이 가장 마지막에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은 모두를 불편케 했다.
“중군도독부의 첨사 종유와 경력사 연위랑에겐 각기 식읍 백 호를 내리며, 비단 스무 필, 금 열 관을 하사할 것이다.”
금 열 관과 비단 스무 필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식읍을 받는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녹읍은 세습할 수 없지만, 식읍은 그와 달랐다.
일반 관리가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물며 총병관도 녹읍을 받지 않았는가.
이를 통해서 영무제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종유와 연위랑의 속은 복잡할 테지만.
“또한, 이번 북벌에 참여했던 중군 병사와 장수들은 삼 년 치 봉급을 따로 전달토록 할 것이다.”
영무제는 이어 팽초량을 바라보더니 짙은 미소를 지었다.
“중군도독부 동지 팽초량은 바라는 것이 있는가?”
다들 눈을 부릅떴다.
많은 대신이 보고 있는 자리였다.
팽초량이 도독의 위를 달라고 한다면, 이례적으로 황실의 핏줄이 아닌 자가 도독에 오를지도 몰랐다.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팽초량은 짧은 침묵을 깨고 고개를 들었다.
“소신, 이번 북벌을 다녀와 보니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기에 관직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되려 관직을 내려놓겠다는 말에 다들 아연실색했다.
영무제 또한 예상치 못한 대답인 듯 당황한 기색을 비쳤다.
“이 이야기는 추후 다시 하도록 할 테니 다들 물러가거라.”
영무제의 말에 시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는?’
* * *
늦은 밤.
시후는 남궁천과 함께 자금성 내정(內庭)을 은밀히 거닐었다.
물론,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환관의 안내를 받고 있었으니깐.
“귀한 물건을 내리실 것 같군.”
막 석경문을 지나는 찰나, 남궁천은 환관과 다소 거리를 벌린 뒤 시후에게 낮게 속삭였다.
다소 들뜬 목소리였지만, 시후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기에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에 남궁천은 앞쪽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무무궁(無無宮)이었다.
“무무궁의 또 다른 이름이 진보관(珍寶館)이네.”
진보관은 총 네 개의 부속 건물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중앙을 비우고 동서남북으로 지어져 있었다.
시후는 쓱 훑어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방신?”
“정답입니다.”
환관 특유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지만, 아직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듣지 못했기에 그의 입을 주시했다.
“각기 사방신의 이름을 따서 청룡, 백호, 주작, 현무관이라 불리며 보관하고 있는 물건의 종류 또한 다릅니다. 우선······.”
환관의 특유의 장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주작관은 온갖 신병이기들이 모인 곳이었다.
잘 찾아보면 자운유성창에 비견되는 무기가 나올지도 몰랐다.
백호관은 세상에 나온 적 없던 진귀한 보화로 꽉 채워져 있다고 했다.
천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즐비하다고 하니, 들어가 보면 눈이 즐거울 것이다.
청룡관은 들어가는 것만으로 가지고 있는 병이 싹 나을 정도로 영약이 그득했다.
소림의 대환단은 물론이고 무당의 자소단까지 있다고 하니, 절정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남궁천에겐 초절정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천은 연신 청룡관을 힐끔거렸다.
그에 반에 시후는 현무관을 주시했다.
현무관은 지식의 보고였다.
온갖 고서적과 무림인들이라면 지나치지 못할 무공서로 빼곡히 채웠다 하니, 참월창을 대신할 무공을 얻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었다.
“두 분께 각기 한 가지 물건을 취하도록 허하셨으니, 내일 아침이 밝기 전까지 마음껏 고르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은 각기 청룡관과 현무관으로 서둘러 찢어졌다.
현무관으로 들어서자 옅은 먹 향과 오래된 서책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시후를 가장 먼저 반겨 준 건, 당연하게도 심법이었다.
필수 무공인 만큼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신법과 보법을 지나 검법이 나왔다.
역시 가장 사랑받는 무기인 만큼 검법 또한 비중이 작지 않았다.
창법은 도법을 지난 다음에야 나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양가창법이 눈에 띄었기에 뽑아서 확인했다.
[등급 : 절세]
[무공 : 양가창법]
[종류 : 창법]
아쉽다.
위로 갈수록 한 등급 차이는 상당히 크긴 하지만, 절정과 절세의 차이는 미미한 편이었다.
시후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양가창법을 꽂아 넣었다.
어차피 확인해 볼 무공은 넘치도록 많았다.
아니, 확인할 게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창은 검법과 도법에 이어 가장 많은 무공이었다.
확인해야 할 수가 무려 삼천.
“섬전창, 극진창, 추가창법······.”
시후는 손에 쥐었다가 놓길 반복하며 등급을 확인했다.
현무관 내에 있는 무공서는 최소 절정부터 시작이었다.
물론, 대부분이 절정이었지만, 간혹가다가 양가창법처럼 절세 등급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백여 권의 무공서를 줄기차게 뽑아내던 손길이 멈췄다.
[등급 : 절대]
[무공 : 무혈흑창]
[종류 : 창법]
처음으로 나온 절대 등급의 무공.
하지만, 이보다 높은 등급의 무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반쯤 뽑아 둔 채로 두었다.
이후 기계적으로 무공서를 뽑아내고 또 뽑아냈다.
절정 등급이 줄지어 나오다가 가끔 절대 등급이 나오기도 했다.
절대 등급의 비율은 일 푼.
“절정, 절정, 절정, 절대······.”
줄기차게 무공서를 뽑던 시후의 손길이 멈췄다.
[등급 : 절대]
[무공 : 조가창식]
[종류 : 창법]
절대 등급의 무공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무공서를 자세히 훑어보자마자 생각을 굳혔다.
이것으로 하겠노라고.
* * *
영무제가 내려 준 은밀한 보상을 받은 뒤, 남궁천과 시후는 바로 팔진도해법을 찾으러 가는 대신 며칠간 팽가에 묵었다.
남궁천은 대환단의 약력을 흡수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시후 또한 새로 얻은 조가창식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깐.
다만, 제갈려는 두 사람과 달리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 집에 돌아갈까?”
제갈려의 말에 시후는 휘두르던 창을 떨어뜨릴 뻔했다.
최소한 팔진도해법을 얻기 전까진 제갈려가 필요했다.
아니, 팔진도해법을 얻으려면 제갈려가 필요했다.
“근 반년간 중원을 돌아다니면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잖아? 뭐라도 하나 들고 가야지?”
“이거 있잖아.”
손목을 살짝 까닥였다.
무슨 행동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부채의 질과 흡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측천파흑선.
중원을 쏘다니며 얻었다 하기엔 차고 넘치는 값어치였다.
그리고 제갈려가 그간 겪었던 일이 오죽 많은가.
하루를 살아가듯 날마다 사건이 끊이지 않았으니, 요 며칠간의 무료함은 분명 지루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달릴 순 없었다.
그런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머리 위에 서려고 할 테니깐.
“아, 그럼 돌아가는 길에 이거 가지고 가. 난 사천으로 갈 일이 있어서 못 들릴 거 같아.”
시후는 태연스럽게 자운유성창을 건넸다.
자운유성창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하지만, 사천을 입에 담을 때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니나 다를까, 제갈려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원래 쓰던 창은 할아버지한테 맡기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아무 창이나 사서 쓰면 되지. 창을 돌려받는 게 그리 급한 것도 아니고.”
“그래?”
제갈려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운유성창을 건네받았다.
덕분에 시후의 속은 활활 불타올랐다.
혼잣말로 운이라도 떼야 하나 싶은 찰나, 연무장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차 아우와 함께라면 제대로 쉴 날이 없겠군. 사천은 무슨 일로 찾아가는 건가?”
대환단의 약력 덕분일까.
그도 아니면, 운을 뗄 수 있게 도와줬기 때문일까.
원래도 잘생긴 얼굴이 더 잘생겨 보였다.
“예전에 사천을 지나면서 겪었던 괴이한 현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일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잘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뭔가를 숨겨 놓은 진 같았거든요.”
“진? 무슨 진?”
진이라는 말에 제갈려는 호기심이 동하는 듯 관심을 보였다.
시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표정 관리에 힘썼다.
“갑자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앞에서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더라고? 첩첩산중인지라 당연히 헛것이라 생각했는데, 물에 빠져 죽을 뻔해서 바로 도망쳤지. 아는 거 있어?”
넌지시 물어보자 제갈려의 뺨이 붉게 상기되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고? 혹시, 진을 빠져나와서도 옷이 젖어 있었어?”
“어, 그게 신기하더라고. 조그만 옹달샘도 없는 곳이었는데 말이야.”
제갈려는 입을 뻥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제갈마혁에게서 제갈세가 진법의 정수를 잇는 중이니, 실전된 팔진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시후가 말한 건 팔진도의 초입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거 내가 아는 진법 같은데?”
“그래? 그런데 넌 세가로 갈 거라고······.”
“아직 한 달은 더 있다가 돌아가도 괜찮아.”
다급한 외침에 시후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제갈려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손에 들린 자운유성창을 시후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무슨 문제?”
제갈려의 물음에 시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나도 정확한 위치를 몰라.”
- 13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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