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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32화 (114/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32화 조우 (4)

창을 몸에 바짝 당김과 동시에 왼발에 실려 있던 체중을 오른발로 옮겼다.

그 찰나의 순간.

검 세 자루가 찔러 들어왔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 위협적인 건 없었다.

“오나!”

끌어당겼던 창을 종으로 휘둘렀다.

기지개를 켜는 듯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세 자루의 검을 튕겨 냈다.

녀석들의 팔이 하늘로 향했다.

재차 휘두른다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지만, 아쉽게도 그럴 여유는 없었다.

등을 찔러오는 공격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깐.

“육망!”

금빛 궤적이 만들어 낸 그물은 촘촘했다.

빗물조차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시후는 때로는 튕겨 내고 때로는 끌어당기며, ‘공방 일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줬다.

“하앗!! 천향일로!!”

남궁천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낭비라곤 찾아볼 수 없는 움직임으로 놈들을 농락했다.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마치 거대한 방패처럼 단 한 치의 밀림도 없었다.

시후와 남궁천이 성벽처럼 굳건히 자리를 틀어막자 조급해지는 건 놈들이었다.

목숨을 초개처럼 불사르듯 미친 듯이 달려들었지만, 두 사람은 그마저도 쉬이 거두지 않았다.

어차피 빈 자리를 다른 녀석이 채울 거라면, 지친 녀석들을 상대하는 게 편하다.

“삼휘!”

시후는 오른발을 뒤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상체를 낮춘 뒤, 창끝을 길게 잡고 낮게 휘둘렀다.

창이 바닥을 휩쓸고 지나자 먼지가 자욱이 일어났다.

가까이 있던 놈들은 정강이가 부러지고, 그보다 조금 멀리 있던 놈들은 다리가 잘려나갔다.

놈들이 빈자리를 메꾸기는 사이, 시후는 잠시 눈을 돌려 산 아래를 바라봤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왔다.”

다른 쪽 길목을 틀어막고 있던 별동대가 뒤를 잡았다.

다만, 길이 넓지 않은 데다가 오르막길인지라 뚫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 보였다.

좀처럼 진척이 없어 보였으나, 이미 뒤를 점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놈들에겐 후퇴라는 선택지는 사라졌으니깐.

조급함은 이성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이성을 갈아먹고 자라난 조급함은 공포를 낳았다.

그나마 이뤄지던 합조차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인질이 필요할 뿐이다! 무의미한 피를 더 흘리기 싫거든 쿠빌라이의 아들을 넘겨라!”

남궁천이 재차 소리쳤다.

시후가 했던 말과 다르지 않았지만, 상황은 그때와 달랐다.

후퇴는 불가능해졌고, 뚫는 건 여의치 않았다.

남은 선택지는 단 두 개.

놈들이 어떤 선택지를 고를지는 불 보듯 뻔했다.

* * *

“으하하하하! 몰아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거늘, 사로잡다니!”

팽초량은 기쁨을 담아 종유와 연위랑 어깨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로 강하게 두들겼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인상을 찌푸리긴커녕 환하게 웃으며 고통을 인내했다.

“그보다 차 천호는 어디에 갔나?”

“음······. 그자가 돌아오면 직접 여쭤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종유의 대답에 팽초량의 굵은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대답을 피하는 이유를 짐작기 힘들었으니깐.

하지만, 팽초량은 인내심이 깊은 인물이었고, 이번 일에 대한 공 때문인지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 시각, 시후는 홀로 구주신협을 찾아갔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구주신협이 사라졌던 곳으로 향하자, 대놓고 흔적이 이어졌으니깐.

“말해라.”

구주신협은 바위에 앉은 채로, 다짜고짜 말하라며 시후를 재촉했다.

덕분에 시후는 속으로 웃을 수 있었다.

그의 조급함을 엿볼 수 있었으니깐.

“일문일답 어때? 거짓말하지 않기로 하고.”

“널 어떻게 믿지?”

“내가 이 자리로 찾아온 거 보면 몰라? 거짓말할 거였다면 그냥 오질 않았지.”

“오지 않았으면 넌 죽었다.”

“그러겠지.”

시후의 심드렁한 대답 때문일까.

구주신협의 눈빛이 한층 더 사나워졌다.

하지만, 시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손을 섞어 본 결과, 시후는 최소한 제압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좋다. 하지만, 추후 거짓으로 밝혀지거든 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는 죽일 것이다.”

“좋아, 먼저 질문해.”

“네놈은 누구냐.”

예상을 벗어나진 못했다.

간단히 질문을 넘기는 방법도 있지만, 그랬다간 그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내 이름을 묻는 게 아니라면 질문의 범위를 좁혀서 물어.”

“······ 날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말해라.”

질문이 바뀌었다.

이전보다야 날카로울지 몰라도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은 아니었다.

“일하다 보니 알게 됐지.”

더욱 매서워지는 눈빛.

시후는 미리 준비해 둔 말을 덧붙였다.

“강소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목가가 하루 만에 멸문지화의 변을 당한 이야기는 유명하지. 목가의 장자는 관에 조사를 요청했으나, 관에서는 무림의 일이라며 개입하지 않았고, 뒤늦게 도착한 숙부라는 자는 목가의 재산을 모조리 꿀꺽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후환을 없애기 위해 죽이려 들었지. 그 덕분에······.”

“아무리 많이 쳐 줘도 내 또래로 보이는데, 십 년 전 일을 알고 있다는 게 수상하지 않나? 게다가 내 얼굴도 알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과거 일을 들먹이며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 했지만, 구주신협은 그리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시후는 사실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네 이야기를 읽었어. 얼굴은 용모파기를 봤고.”

거짓은 아니었다.

‘천무’는 구주신협의 이야기였으며, 용모파기는 영상으로 수없이 봐 왔다.

시후의 당당한 태도에 구주신협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차례다.”

“흑련회엔 왜 들어간 거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라고 했다.”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

“내 차례다. ”

“망할.”

부족하긴 했지만, 구주신협의 말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그는 알고서도 흑련회에 투신했다.

복수를 위해서.

하지만, 단순히 복수할 생각이라면 계속 흑련회에 몸담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일문일답이라는 조건을 내건 자신이 원망스러울 만큼.

하지만, 약속은 약속인 만큼 입을 꾹 다물었다.

“왜 인제 와서 이들을 쫓는 것인가? 내가 그토록 주장했을 때는 아무런 반응조차 없지 않았는가?”

“도움을 요청한 대상이 잘못됐어. 이미 흑련회에 포섭된 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니 들어줄 리 없지.”

“누굴 말하는 건가? 판관? 지주? 그들조차 포섭되었었다면 내가 누구에게 말해야 했는가!”

갈등 없이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목가의 멸문과 고통받는 구주신협의 과거는 필수 불가결이었다.

“나야 모르지. 이젠 내 차례. 어차피 복수가 목적이라면 흑련회를 나와서 정의맹에 들어오는 게 어때? 네가 거기 있으면 죽어간 식솔들이 원통해서 구천을 떠돌 텐데?”

“입 닥쳐라! 네가 뭘 안다고? 정의맹 또한 흑련회와 마찬가지다! 풀 한 포기 남기지 않는 완벽한 파멸로 이끌어 서로 자멸토록 할 것이다!”

구주신협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이 전해졌다.

그 저릿한 살기에 시후는 위화감을 느꼈다.

이상하다.

구주신협.

아니, 목주림의 성격은 이렇지 않다.

그가 어떻게 ‘구주신협’이란 별호를 얻었겠는가.

모두가 헛소리라 외면했지만, 홀로 흑련회와 외로운 싸움을 했을 정도로 정의의 표본이었다.

그런 그가 단순히 흑련회에 투신했다고 이렇게 성정이 변했을까?

절대 아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지독한 살기도 수상했다.

묻고 싶은 게 생겼다.

하지만, 이번 질문은 시후의 차례가 아니었다.

“쿠빌라이의 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글쎄······ 내 권한이 아니라서 확답은 못 하겠지만, 아마도 볼모로 붙잡아 둘 거 같은데? 그가 칸의 핏줄에 가장 근접하니깐.”

“그럼 기회는 있군.”

흑련회에서 다시 쿠빌라이의 아들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발언이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가정이 아니었다.

시후는 깊게 심호흡한 뒤, 그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너 혹시, 얼굴이 무척 자유분방하게 생긴 노인네를 만나 적이 있나? 얼핏 보면 개방처럼 보이는 늙은인데······.”

“그래, 만났다. 그분을 통해서 이 힘을 얻었지.”

그 대답에 시후는 절망했다.

목주림 또한 천외무신을 만났다.

천외무신은 신기자와 더불어 큰 흐름을 조율하는 준 마스터 NPC였다.

각기 절대 무적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절대 정면에 나서서 뭔갈 하진 않았다.

신기자의 경우에는 특정 NPC에게 이것저것 깨달음을 준다.

가장 대표적으로, 신의가 만들게 될 기초 금창약이 그러했다.

그에 반해, 천외무신은 조금 이질적인 존재였다.

신기자가 깨달음을 준다면, 이 녀석은 균형을 맞춘다.

무슨 말이냐면, 시후에게 정파를 대변하는 일원신공을 줬으니, 다음은 사파와 마교의 무공을 뿌려 균형을 맞추는 식이다.

문제는 목주림이 얻은 무공이 마교 쪽으로 추측된다는 점이었다.

필시 일원신공과 같은 신화 등급의 무공일 것이다.

아직 얻은 시기가 자신보다 늦어서 약할 테지만, 마공의 특성상 강해지는 시기는 급속도로 빨리 찾아올 것이다.

‘죽여야 한다.’

하지만, 회유할 수 있다면 그만한 전력이 없었다.

시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살기가 느껴지는군.”

바위에 앉아 있던 목주림은 어느새 뒤로 물러나 있었다.

시후가 그게 아니라고 변명하려는 찰나,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무슨 대화를 나눴길래 이리도 안색이 안 좋은가?”

남궁천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대답하기 어려웠다.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뒤를 이어 팽초량이 뭐라 이야기를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시후는 잠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뒤, 멀찍이 떨어져 말을 몰았다.

실제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깐.

“변방 일을 처리하는 거로 봐서 지위는 그리 높지 않은 듯한데, 단독으로 행동한다는 건 그만큼 신뢰한다는 거고······.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신뢰를 쌓았지?”

아무리 빨리 마공을 접했다고 한들, 고작 다섯 달이었다.

곧바로 흑련회에 접촉했다고 해도 그와 기간이 비슷할 텐데, 단독 임무를 수행할 만큼 신뢰받고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젠장, 완전히 돌아섰다고 가정하면 최대한 빨리 죽여야 하는데······.”

지금이야 앞서지만, 몇 달만 지나면 따라잡힐 것이고, 거기서 몇 달이 지나면 우위는 뒤바뀐다.

시후가 현 상태에서 열심히 발악해도 결과는 뒤바뀌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다른 것들을 더 얻으면 바뀔 순 있겠지만.

“고작 참월창으로 만족할 게 아니네.”

참월창보다 더 강력한 무공을 구해야 했다.

못해도 절대 등급.

아니, 고금이나 신화 등급을 구하면 더 좋을 것이다.

문제는 자운유성창이다.

슬슬 제갈려가 세가로 귀환할 때가 다가오는데, 그 말은 곧 자운유성창을 돌려줘야 함을 의미했다.

무기와 무공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었다.

게다가 기껏 창의 거리감에 익숙해졌는데 검법을 익힐 수도 없지 않은가.

미래의 큰 후환으로 닥칠 적의 등장과 힘이 약해질 시기가 맞물리자, 시후의 골이 지끈지끈 쑤셔 왔다.

‘자운유성창을 뺏길 순 없다.’

그렇다고 안 주고 버틸 수 있냐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이걸 가질 방법이······ 있다.”

아니,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자운유성창은 값진 보물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보물을 찾아 주면 되지 않겠는가?

“아무래도 그게 가장 좋겠지.”

팔진도해법(八鎭圖解法).

제갈세가가 잃어버린 진법이라면, 자운유성창과 값어치가 비슷하리라.

- 133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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