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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24화 (106/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24화 북방 토벌 (1)

시후는 갑옷을 벗어 침대 위에 내던졌다.

아무리 움직이기 편하게 고안되었다고는 하나, 무복과 비교한다면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대로 두면 침대에서 웅크리고 잘 수밖에 없었지만, 시후는 정리를 하기 전에 막사 밖으로 빠져나갔다.

듬성듬성 풀포기가 자라나려는 삭막한 대지에 거무스름한 땅거미가 내리깔렸다.

“이런, 저녁 회의는 어쩌려고 갑옷을 벗었나?”

시후는 뒤에서 들려오는 남궁천의 목소리에 돌아봤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또한 무복으로 갈아입은 뒤였으니깐.

“저녁 회의 전까지 비무나 할까요?”

“안 그래도 병사들이 긴장하고 있을 텐데 못하는 소리가 없군.”

“그냥 해 본 소리예요. 했다가 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요.”

시후는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이틀 전, 워낙 무료하여 비무를 했다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족히 한 시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달렸으니, 학을 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남궁천은 그런 시후의 반응에 여전히 웃음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저들로선 자네가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 아닌가? 그것도 돌을 밀어 준 자를 생각한다면 견제하지 않을 수 없겠지.”

“고작 천호장을 견제한다고 뭔가 달라지나요.”

시후는 금 열 관도, 정오품 자리인 지주도 받지 않았고, 이번 북벌에 참여하여 받은 직위는 고작 천호장이었다.

말도 안 되는 교환비였지만, 시후가 요구했던 사항들이 제법 있었기에 천호장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보다, 이제는 정말 언제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겠군.”

남궁천의 말에 시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저문 탓인지, 막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맴돌던 놈들의 눈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건 없다.

기습은 통하지 않을 테고, 상대는 언제든지 이쪽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깐.

물론, 놈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대책은 마련되어 있었다.

매를 길들여 매를 사냥한다.

천응단(天鷹團)은 놈들이 부리는 매를 사냥하고자 야심 차게 준비한 조직이었다.

“아마도 저녁 회의는 저 이야기로 시작하겠죠?”

“그러지 않겠나. 아무래도 눈을 가리는 것부터 시작일 테니 말일세.”

고도의 훈련을 통해서 길렀기에 언제든지 놈들의 눈을 뽑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기의 문제일 뿐.

남궁천과 잡담을 나누는 사이, 두 사람에게 병사가 다가왔다.

“충!”

“무슨 일인가?”

“회의 시간을 앞당길 테니 서둘러 참석하시라는 대장군의 명입니다.”

“끄응······. 알겠네.”

남궁천은 얕은 신음을 흘렸다.

서둘러 참석해라 했으니 갑옷을 입을 시간은 없을 것이니깐.

시후의 표정 또한 구겨졌다.

“또 한 소리 듣겠네요.”

“이렇게 보면,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닌가 싶군.”

남궁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제갈려의 막사로 향했다.

하지만, 막사는 비어 있었다.

둘은 걸음을 돌려 진지 가장 중앙에 지어진 거대한 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시후의 막사가 다소 진지 외곽 쪽에 있는 탓이었을까.

안으로 들어가자 빈자리는 거의 없었다.

아니, 두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운다면 빈자리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

시후와 남궁천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 늦게 알려 줬군.』

남궁천의 전음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갑옷을 벗고 있었는데, 아주 씹고 뜯기에 좋은 먹잇감이 만들어졌다.

“우리 천호장들께선 어디 산책이라도 다녀왔나 보오.”

두 사람에게 말은 건넨 이는 총병관을 기준으로 좌측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총병관에게 제법 가까이 앉은 것으로 보아,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위가 제법 높은 인물이 분명했다.

게다가 총병관이 이를 용인하고 있는 만큼, 감정적으로 받아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시후를 대신해서 남궁천이 앞으로 나섰다.

“갑옷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 닦는 와중에 오느라 늦었습니다.”

“허허, 어디 흠집이라도 난다면 대장간이라도 찾아가겠군?”

“갑옷에 흠집이 생긴다는 건 전공이 늘어난다는 것과 같을 텐데, 구태여 지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남궁천의 대답에 허를 찔린 것인지,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또 누가 나설 것인가.

시후는 주변을 쓱 훑었다.

다들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총병관에게 향하는 시선을 제대로 숨기진 못했다.

“앉게.”

총병관의 말에 시후와 남궁천은 군례를 취하곤 자리에 앉았다.

저자가 문제였다.

전군도독부(前軍都督府)의 좌우도독(左右都督)의 위(位)에 있으며, 이번에 북방 토벌의 총병관으로 임명된 그는 시후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늦었지만 시작하지.”

그는 한 번 더 시후의 속을 긁었다.

시후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는 사이, 천응단을 이끄는 단주 적무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하루 동안 머리 위로 날아든 놈들의 눈은 총 여섯입니다. 이 주변에는 별 볼 일 없는 부족들이 자리 잡고 있으나, 위치상 아마도 잘라이르족과 우량카이족까지 연락이 갈 것입니다.”

“그들과 조우할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는가?”

“늦어도 내일 오후입니다.”

다들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전군도독부는 나머지 오군도독부와 궤를 달리했다.

수도 그렇지만, 질에서도 한참이나 앞서갔다.

게다가 저들 전체를 상대하기 위해 병력을 꾸렸는데, 고작 두 부족으로는 이 대군에 흠집조차 내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언제가 적당하겠나?”

“어느 정도로 경계하는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내일부터 놈들의 눈이 얼마나 자주 비추는지 확인하여······.”

적무호의 말이 길게 이어지자, 총병관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짧게.”

“늦어도 사흘 뒤에는 놈들의 눈을 모조리 뽑아 버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

이후 회의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물론, 중간중간 시후를 건드리는 자들이 있었다.

병법에 관해 아느냐 묻고, 그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삼면을 밀고 들어오는 형국에서 물러남은 패퇴를 부를 뿐이니, 눈앞의 피해에 연연하지 않고 말을 뒤로 물린 뒤 한쪽을 뚫을 것이라 말해.』

제갈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번은 넘어가도, 다음에는 폭발했을 것이다.

시후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막사를 빠져나왔다.

더 있었다간 열불이 치밀어 올라 소리라도 지를 뻔했으니깐.

“똥개도 자기 집에선 절반을 먹고 들어가는 법이네.”

남궁천이 성큼성큼 뒤따라오며 저들을 씹어댔다.

평소 그의 언행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었기에 시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그렇지 더럽게 크게 짖네요.”

“원래 그런 거야. 그래도 숙부께 들은 것보단 덜한 편인걸?”

어느새 뒤따라 나온 제갈려도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제갈려는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총병관의 호의를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아무리 좌우도독이라고 할지라도, 현 한림원의 수장인 제갈명은 꺼림칙할 수밖에 없을 테니깐.

황제는 곁에 있는 내각 대학사보다도, 그의 말이 더욱 영향력이 크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시후는 돌아오는 내내 총병관을 욕하곤 막사 침대에 올려져 있는 갑옷을 발치로 밀었다.

“아, 맘 같아선 그대로 둬서 지게 만들고 싶다.”

영무제의 북벌은 실패해야 한다.

애초에 그렇게 짜여있으니깐.

내버려 둔다면 북벌은 무위로 돌아갈 공산이 컸다.

하지만, 쿠빌라이의 사망으로 흑련회가 북원과 접촉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했다.

흑련회까지 개입한 상황에서 단순한 북벌 실패로 끝날 것인가?

모른다.

그렇기에 금 열 관도, 정오품 자리인 지주도 반납하고 이번 북벌에 참가했다.

목표는 하나.

북벌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흑련회가 북원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막는다.

아니, 한가지 목표가 더 있었다.

“다 끝나기만 해 봐라······.”

시후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발에 걸리적거리는 갑옷을 걷어찼다.

마치 그 갑옷이 총병관인 것처럼.

* * *

시후는 저 눈을 찌푸리며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을 바라봤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 속도를 늦추어 남궁천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기 뭔가가 있는데요?”

“어디 말인가?”

“저기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 보이죠? 그 상태로 쭉 고개를 들어보세요.”

남궁천의 시선이 시후가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하늘과 땅의 경계선을 이루는 그곳엔 좁쌀만 한 형체가 아른거렸다.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미동조차 없었기에 사람인지 돌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았다.

“말 위에 올라탄 사람 같긴 한데 확신하긴 어렵군.”

“저도 긴가민가해서요.”

“알리겠는가?”

“아뇨.”

시후의 즉각적인 대답에 남궁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명을 요구하듯 바라봤다.

“우리가 내공으로 안력을 돋우고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저들의 눈에 보이겠어요? 아마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테고, 혹여 확인을 위해 정찰병을 보낸다고 해도 저기 계속 있으리란 보장이 없잖아요?”

불신이 가득 담긴 대답에 남궁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깐 려한테는 이야기해 두죠.”

시후는 말을 끝으로 오밀조밀 걸어가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가볍게 말을 내달렸다.

제갈려는 본대 중앙에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총병관까지 있었으니, 제갈려에게 말을 건넨다면 그의 귀에도 들어갈 것이다.

남궁천은 멀어지는 시후의 뒷모습을 보곤 피식 웃음을 지으며 뒤따랐다.

시후는 호의와 적의 그 중간쯤의 시선을 받으며 제갈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시후는 곧장 의심가는 곳을 가리키며 알려 줬지만, 제갈려는 경지가 낮아 보이지 않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그래도 슬슬 육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어.”

“대책은?”

“뭐, 당분간은 방관이지.”

제갈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천응단을 이끄는 적무호를 힐끔거렸다.

이틀 전, 그가 내뱉은 말이 있으니 당분간은 저들의 시선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시후가 제갈려와 귓속말로 속삭이고 있자 시선이 점점 쏠리기 시작했다.

물론, 총병관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후는 모른 척 뒤로 물러났다.

그의 자존심상 시후가 시야에서 멀어져야지 제갈려를 불러서 물어볼 테니까.

다만, 상황은 시후의 예상과 다소 다르게 흘러갔다.

제갈려가 총병관에게 정보를 전해 주기도 전에, 지평선에 닿아 있던 사람의 형체는 점점 크기를 키워 갔다.

다가오는 것이다.

“이거, 뒤통수 맞았군.”

“정말 이놈이나 저놈이나 도움이 안 되네요.”

“동감일세.”

조금 시간이 지나자, 대열 곳곳에서 달려오는 인물을 발견한 듯 소란이 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고, 대열은 멈춰 섰다.

“그것보다 대단한 패기가 아닐 수 없네. 이 숫자를 보고 두려움 없이 달려오다니 말이야.”

“뭐, 꼴을 보아하니 화살에 편지를 매달아 날리겠는데요.”

시후의 예상은 정확했다.

화살의 사정거리 밖에서 말을 멈추더니, 등에서 활을 매어 한 발 쏘아 보냈다.

화살은 제법 멀찍이 떨어진 바닥에 내리꽂혔다.

다들 눈치를 살폈다.

화살을 쏘아 낸 장본인은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았으니깐.

시후는 등 떠밀려 나서는 병사 대신에 바닥에 꽂힌 화살로 다가갔다.

말에서 내려 화살을 쥐자 놈은 말머리를 돌려 온 길을 되돌아갔다.

시후는 화살대 중간에 달린 편지를 펼쳐 볼까도 싶었지만, 그랬다간 누군가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 것을 알기에 그대로 총병관에게 다가갔다.

첨사 중 하나가 화살을 건네받더니 곧바로 총병관에게 전달했다.

잠시 후, 총병관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나더니, 손에 들린 화살이 반 토막 났다.

- 125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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