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13화 (95/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13화 맺음 (5)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그사이, 모든 사후 처리를 마쳤다.

수적들은 내공을 폐하여 관아에 넘겼다.

그들은 북방 전선으로 끌려가거나, 죽을 때까지 빛 한 점 보지 못하는 광산 노예로 끌려갈 공산이 높았다.

북방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 어떻게 되든 십 년 내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놈들이 털었던 상선의 물품들을 서문세가에서 후한 값에 사들이며, 그 돈은 고스란히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그 처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천 또한 이렇게 평가했다.

“아무리 천룡 상단에서 돈을 지원해 줬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서문세가가 이렇게 단기간에 위세를 회복했는지 알겠군.”

서문세가는 그리 많은 돈을 쓰지 않고도 민심을 얻었다.

시후 또한 얻은 게 있었다.

바로 남궁천의 잔소리.

사흘간 이어진 잔소리는 시후의 귀를 먹먹하게 할 지경이었다.

결과적으로야 빙검을 죽였지만, 비천보어검이 없었다면 결과는 반대가 되었을 것이다.

남궁천이 시후를 생각하는 마음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약소했다.

시후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인내한 결과, 오늘 아침에야 드디어 남궁천의 잔소리가 끝을 맺었다.

해방된 시후는 창가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후의 반대편에 제갈려가 털썩 앉았다.

“왜 잔소리 들을 때처럼 넋을 놓고 있어?”

“잔소리라니,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다 나한테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이야기라서 얼마나 주의 깊게 경청한 줄 알아?”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제갈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당연하지. 천이 형님이 해 주신 말들은 가슴속 깊이 새겨들으며······.”

“오늘 아침에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해?”

그 질문에 시후는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가슴으로 이해한 말은 머리로 기억하지 않는다.”

“······ 헛소리를 뭐 이렇게 당당히 하는 거야?”

제갈려는 시후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곧 차 한잔을 시킨 뒤, 시후와 같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광주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보다 조금 더 남쪽에 자리한 향항은 겨울에도 눈 대신 대부분 비가 내렸다.

눈이 아닌지라 다소 서늘했다.

하지만, 손에 들린 찻잔이 시후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해 주었다.

말없이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던 시후는 차를 다 마시곤, 손끝으로 식탁을 톡톡 두들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데?”

“뭐가?”

“아냐, 그냥 혼잣말이야.”

시후는 거리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제갈려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로도 남궁미와 남궁천도 번갈아 다가왔지만, 시후는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중이라 말하며 자리를 지켰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후에게 점소이가 슬쩍 다가왔다.

왼팔과 왼 다리가 동시에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보면 누구나 수상하게 생각할 테지만, 천만다행으로 점소이를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저기······.”

“빨리 줘.”

말도 꺼내기 전에 시후가 재촉했다.

점소이는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바지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편지를 꺼냈다.

덕분에 시후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니, 무슨 그딴 곳에······.”

손으로 붙잡기도 싫었지만, 읽기 위해선 받아야 했다.

시후는 점소이의 체취가 그득 밴 편지를 받아들었다.

‘서문주옥의 서신을 획득했습니다’라는 알람을 확인하곤 재빨리 펼쳤다.

「현문 다관.」

시후는 눈치를 살피는 점소이를 지나치며 밖으로 나섰다.

내리던 비는 멎었지만, 질척거리는 땅은 찝찝함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지도의 도움으로 도착한 현문 다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시후는 거침없이 들어갔다.

쏟아지는 세 쌍의 시선과 번뜩이는 검 두 자루.

시후의 얼굴을 확인한 서문주옥이 고개를 끄덕이자, 어둠 속에서 빛나던 검이 검집 안으로 몸을 숨겼다.

“자리를 비워 주십시오.”

“가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서문주옥의 표정은 단호하면서도 간절했다.

게다가 시후가 위험한 인물도 아니고, 대외적으로 본다면 협객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조용히 밖으로 물러났다.

시후는 자연스럽게 서문주옥의 앞에 앉았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던 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도 시후는 태연했다.

“원하는 게 뭔가?”

“원하는 거라뇨?”

시후의 질문에 서문주옥은 탁자 위로 조그만 주머니를 던졌다.

일전에 그에게 건네줬던 주머니다.

“반지가 싸구려라 마음에 안 들었나요?”

“지금 장난치는 거로 보이는 건가?”

“뜻깊은 의미가 있는 반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죠?”

“그때를 기억하자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을 뿐, 난 뜻깊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 적 없네.”

“아하, 그러시구나. 그럼 이건 가져갈게요.”

시후는 손을 뻗어 주머니를 낚아챘다.

다만, 그와 동시에 주머니가 있던 곳에 다른 물건이 놓였다.

서문주옥의 동공이 거친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에이, 이게 왜 떨어진담.”

시후는 어설픈 연기를 하며 다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서문주옥의 손이 더 빨랐다.

그는 누더기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조각난 옥 반지를 부여잡았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건 마음에 드시나 보네요. 그럼 이건 필요 없으시죠?”

주머니는 시후의 손위에서 떠올랐다가 내려오길 반복했다.

덕분에 서문주옥의 눈은 끊임없이 주머니를 따라다녔다.

시후는 몇 번 반복하며 간을 보려고 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간절해 보였기에 그냥 던져 줬다.

서문주옥은 조금 전 필요 없다는 듯 던져 준 사람이라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태도로 공손히 받았다.

허겁지겁 주머니를 풀자 아무런 특징 없는 옥가락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라도 어디 깨진 곳이 없나 집요한 시선으로 관찰했다.

혼자 있다면 혀로 핥아 보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크흠!”

시후는 헛기침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서문주옥은 그제야 시후가 있다는 걸 깨달은 듯, 가락지를 품 깊숙한 곳에 넣었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할 테니깐.

그래서 그가 던진 질문은 매우 간단했다.

“잘 지내던가?”

짧은 질문에서 그의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다.

아니, 간절하기보다는 절실한 느낌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기에 시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반응으로 인해서 주옥의 간절하던 표정에 금이 갔다.

시후는 맛있는 건 뒤에 먹는 편이었다.

그리고 매는 먼저 맞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진실을 말했다.

“몇 년 전에 죽었어요.”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흐릿해진 동공에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전해졌다.

때렸으니 달래줄 때였다.

“그런데 자식이 있죠. 올해로 딱 열두 살이 된.”

주옥의 눈에 생기가 맴돌았다.

하지만, 이내 곧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부모가 없는 열두 살의 아이.

몇 년 전에 죽었다고 했으니,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잠시나마 생각해 봤을 것이다.

바라보는 시선에 고마움이 가득했다.

“고맙네. 내 물심양면을 충족시켜 주진 못해도, 물만큼은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해 주겠네.”

그 말에 시후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정이 있는 그로서 혜아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천룡 상단을 의식한다면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한다.

그렇기에 시후도 이렇게 몰래 접근할 수 있도록 틈을 준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올 거란 걸 예상했지만, 저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그것도 상당히.

“그보다 궁금하지도 않아요?”

주옥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럴 리 있겠나.”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물어요?”

“내 핏줄일 텐데 궁금하지 않을 리 있겠나.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네. 하지만, 그럴 수 없네. 그 아이도 소중하지만, 지금 이루고 있는 가정 또한 소중하니 말일세.”

“집으로 들인다면요?”

“부족함 없겠지만, 불행하겠지. 보호하겠지만, 보호받지 못하겠지.”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천룡 상단의 힘은 서문세가보다 강하다.

그런 천룡 상단의 무남독녀인 주옥의 아내가 과연 혜아를 곱게 볼 것인가.

겉에서는 잘 챙겨 주겠지만, 뒤에선 어떻게 될지 모른다.

주옥의 손이 닿는 곳에선 지킬 수 있을지 모르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진배없는 위험이 도사릴 것이다.

주옥이 생각하는 바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후는 더욱 짜증이 났다.

“그래서 얼굴조차 알려고 하지 않고 모른 척 살아가겠다는 거예요?”

“알면 보고 싶어지고 보면 곁에 두고 싶겠지.”

시후는 애초에 서문세가에 혜아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정의맹에서 맹활약해야 할 테니깐 말이다.

결과적으로 주옥이 혜아를 찾지 않는 건, 시후가 바라던 바였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눈앞에서 그러겠노라 말하는 걸 듣고 있으니 슬슬 짜증이 들었다.

“그간 보살펴 줬던 비용은?”

절로 말이 짧아졌다.

시후의 감정은 말투에도 묻어 나왔다.

주옥도 모르지 않을 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간 돌봐 준 날들을 계산해서 주겠네. 자네가 절정급 고수니, 천룡 표국에서 책정된 몸값에······.”

“아. 저는 단순히 가주님에게 알려 드리러 온 거고, 돌봐 준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분들 기준으로 지급해 주세요.”

“그리하겠네.”

절정 고수의 몸값은 책정할 수 있었다.

수많은 표국에도 절정 고수가 극히 드물었지만, 초절정에 다다른 고수까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칠괴의 몸값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다들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이건 시후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투정이었다.

“아, 참고로 두 분이에요. 괜찮죠?”

“거짓만 아니라면야······.”

“참고로 그 아이를 돌봐 주신 분들은 가주님도 알 걸요?”

시후의 말에 주옥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에 기겁한 당황한 것이다.

“지금 정의맹에서 수로채를 정리하려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런데 그 전에 녹림채도 정리했던 거 알고 있으시죠?”

주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는 눈빛이었다.

“쌍괴.”

시후는 그 말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독선의 대명사라 불릴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아이에 관해서도 들었을 것이다.

“참고로 그 아이······ 아니, 이름을 부를게요. 혜아의 부모를 찾아 달라고 한 건 쌍괴예요. 하오문을 통해서 의뢰를 넣었으니 거짓말 같거든 직접 알아보시던가요.”

주옥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시후는 그런 주옥을 바라보다가 다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오니 다소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두 호위가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시후는 뒤를 가리켰다.

“이야기 끝났으니 들어가세요.”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가주님은 여기에 온 적이 없다.”

“물론이죠. 아, 그보다 조금 충격을 받으신 것 같던데 잘 모셔가세요.”

시후의 말에 두 사람이 황급히 안으로 뛰어들었다.

안이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주옥이 만류했는지 시후를 쫓아 나오진 않았다.

시후는 객잔으로 돌아가다 말고 다관을 한번 돌아봤다.

입맛이 썼다.

- 114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