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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04화 (86/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04화 귀인 (2)

해는 저문 지 오래였지만, 주변은 밤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사방에 걸러진 등은 좁은 길목을 대낮처럼 비췄다.

다만, 그 빛은 붉디붉었다.

제갈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시후에게 속삭였다.

“진짜 홍등가로 오는 거였으면, 이야기하지 그랬어.”

“그런 거 아니니깐 입 닥쳐.”

시후는 퉁명스레 말을 내뱉으며 걸었다.

그러다 슬쩍 옆을 바라보니 제갈려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짜 그런 거 아니라고.”

시후는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제갈려는 여전히 죄스러운 표정이었다.

더 말해 봤자 구차한 변명이 될 것 같았기에 시후는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계속 홍등가를 걸었다.

하지만, 호객꾼들이 달려들진 않았다.

제갈려가 옆에 있었으니깐.

보통 여자와 함께 홍등가를 걷는데 호객하는 미친 종자는 없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시후가 등에 멘 자운유성창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디 보자······.”

시후는 걸으면서 연신 주변을 둘러봤다.

길거리 양쪽에 자리 잡은 건물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창이 활짝 열려 있었다.

비록 날이 추워 기녀들이 속살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슬쩍슬쩍 속살을 드러내며 길거리 취객들을 유혹했다.

제갈려는 그런 시후의 모습을 보고 걸음을 서서히 늦췄다.

누가 봐도 곧 이어질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기가 점점 더 끈적해졌다.

제갈려의 발 또한 땅에서 떨어지기 싫은 듯 더뎌졌다.

“찾았다.”

시후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붉은 등이 걸려 있는 허름하디허름한 건물이었다.

제갈려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난 이만 돌아갈 테니까······.”

시후는 재빨리 제갈려의 팔을 붙잡았다.

제갈려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완력과 내공에서 시후를 당할 수는 없으니 그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지금 네가 돌아간다면 난 네 머릿속에서, 네가 따라옴에도 불구하고 홍등가를 찾은 희대의 쓰레기로 낙인찍히겠지.”

“아냐,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이것 봐.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안 믿잖아? 네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

“아니, 이거 놓고······.”

시후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질질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낮게 들려오던 교성이 귓바퀴를 자극했다.

제갈려의 얼굴은 터질 듯 달아올랐다.

안에는 풍채 좋은 중년 여인이 의자에 몸을 파묻다시피 앉아 있었다.

극도로 화려한 유군(襦裙)과 희끗희끗 보이는 새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 들어왔음에도, 입에 물고 있던 장죽을 느긋이 빨아들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긴 연기를 내뿜으며 장죽을 까딱였다.

“후~ 남녀 한 쌍이 찾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다만, 빈방을 원하시거들랑 몸을 돌려 나가시고, 더 불러서 같이 즐기시려면······.”

“큰 방이 필요하겠지.”

시후가 말을 끊자 무표정하던 얼굴에 미소가 띠었다.

“간만에 풍류를 아는 공자가 왔네요. 그래, 몇 명이나 필요하신지요?”

“방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이.”

시후의 말에 제갈려의 시선은 더러운 짐승을 보듯 변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중년 여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럼 방은 어느 정도로 드리면 될까요?”

“내 한 몸 뉠 수 있을 정도.”

줄곧 시후의 팔을 뿌리치기 위해 용을 쓰던 제갈려의 움직임이 멈췄다.

눈치가 빠르면 빨랐지 느리진 않았기에 이질적인 대화임을 감지한 것이다.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혹시, 두 분이 함께하실 건가요?”

“이 친구는 보는 걸 즐겨서요.”

“고상하신 분이군요.”

여인은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계단을 올랐다.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계단은 연신 부서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덕분에 두 사람은 불안함을 느끼며 거리를 둔 채로 뒤를 따랐다.

삼층까지 올라간 여인은 가장 구석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낡은 홑 미닫이문을 열자 좁디좁은 공간이 나타났다.

여인은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시후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제갈려도 군말 없이 좁은 방에 몸을 집어넣었다.

방안은 세 사람이 들어가자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다.

여인은 그 와중에 벽에 걸려 있는 홍등으로 손을 뻗더니, 떼어내려는 것처럼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틱, 티틱, 틱틱.

다만,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인내라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등이 떨어졌다.

끼리릭.

낮은 쇳소리와 함께 방이 움직였다.

방 안의 물건이 움직인 건 아니다.

단지, 방이 통째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을 뿐.

측천무후의 황릉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기에 두 사람은 태연할 수 있었다.

내려가는 속도가 그리 빠르진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이 멎었다.

“길을 따라 쭉 가시면 됩니다.”

등을 건네받은 시후는 문을 옆으로 밀쳤다.

코끝으로 밀려오는 짙은 흙내음.

토굴(土窟)이었다.

단순히 땅을 파낸 게 아니라, 중간중간 나무 기둥을 세워 제법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하기야, 이런 승강 장치를 설치해 두는데 대충 흙만 파냈을 리 없지 않은가.

슬쩍 살펴본 시후는 이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걸었다.

제갈려도 팔을 붙잡고 뒤따랐다.

홍등이 그리 먼 거리를 비춰 주지는 못했지만, 걸음을 옮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토굴이 그리 넓지 않았기에 창을 살짝 비스듬히 메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창을 메고 몇 걸음 옮기기가 무섭게, 조금 전 들었던 쇳소리가 다시금 들렸다.

뒤돌아보자 방이 올라가고 있었다.

제갈려가 눈치를 살피더니 시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여긴 어디야?”

“홍등가.”

그 대답에 제갈려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채근하진 않았다.

“왜 하오문은 오랫동안 정사지간으로 취급받았을까?”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하오문은 왜 정사지간으로 취급받았는지 묻는 거야.”

“그야 천주방이 무너지기 전까지, 어디에 붙을지 눈치만 살폈으니 그렇지.”

십육 년 전.

천주방(天主房)이 사파 무리와 규합하여 정의맹과 맞붙었을 때, 다들 각자의 노선을 정했지만, 하오문만은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발을 완전히 뺀 것도 아니었다.

이쪽에도 발을 걸치고 저쪽에도 발을 걸쳤다.

최근에야 정의맹의 긴급 회의에도 참석하지만, 십 년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보다 하오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야? 여긴 하오문이 아니잖아?”

제갈려의 말마따나 하오문의 표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몇몇 곳을 제외하곤 하오문은 유곽을 지부로 삼지 않는다.

더욱이, 하오문 낙양 지부의 위치는 제갈려도 알고 있었다.

“누가 여기가 하오문이래?”

시후의 말에 제갈려는 걷는 법을 잊은 듯 멈춰 섰다.

뒤돌아보니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망하지 않았어?”

“망했지. 그러니깐 이렇게 유곽이나 운영하는 거고.”

“아니, 넌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하오문.”

“그 말은 하오문에서 여전히······.”

“감시해야 하니깐.”

시후는 제갈려의 오해를 일축하며 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뒤편에서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토굴에 울려 퍼졌다.

“감시해야 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천주방은 끝난 거 아니었어?”

“끝났지. 그래서 이렇게 명맥만 이어 가는 수준이지.”

명맥을 이어 나간다기엔 제법 규모가 있었지만, ‘사파제일방’이라 불렸던 과거와 비교해 보면 초라한 수준이었다.

제갈려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아한 듯 시후를 바라봤다.

“그런데 넌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내가 하오문과 좀 친해야지. 호법 장로에게 가입 제의도 받을 만큼 친밀하잖아.”

거짓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제갈려도 딱히 따질 부분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 경사진 길을 올라가니 무언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조금 더 다가가자 문고리란 걸 알 수 있었다.

시후는 문 앞으로 다가가 거침없이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윽.”

제갈려가 눈이 부시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럴 만도 했다.

미약한 홍등을 의지한 채 지나온 토굴과 달리, 길게 펼쳐진 복도에 줄지어 걸려있는 횃불은 옆 사람 모공까지 훤히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복도에 깔린 청석은 흙먼지 묻은 신발로 걷기가 미안할 정도로 반들거렸다.

그 끝에는 청석만큼이나 반짝이는 두피를 자랑하는 두 장한이 서 있었다.

“머리에 꿀이라도 발랐나······.”

지극히 낮은 중얼거림이었지만, 제갈려의 목소리를 들은 듯 눈을 부라렸다.

곧 우측에 있는 장한이 발을 강하게 굴렀다.

제갈려는 놀래서 시후의 뒤로 숨어들었다.

“하오문에서 온다는 연락을 못 받았소만.”

“그야 하오문 사람은 아니니깐.”

두 장한의 기도가 일변했다.

느껴지는 경지는 대충 절정의 초입.

싸운다면 백전백승이다.

하지만, 싸우러 온 게 아닌지라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하오문도는 아니지만, 내 보증인은 전여린 장로야.”

두 사람의 기도가 흔들렸다.

곧 시선을 교환하더니 군말 없이 문을 밀었다.

측천무후의 황릉보다야 얇지만, 그래도 육중하다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문이 열렸다.

열린 문 너머에는 막 초로(初老)에 접어들려는 중년인이 있었다.

“방주님!”

두 장정은 급히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했다.

과거 사파를 규합했던 천주방주였다.

그는 두 장정을 지나 시후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빠르다는 느낌은 못 받았지만, 인지했을 때는 이미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를 내준 뒤였다.

시후의 눈을 빤히 보던 그가 곧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따라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말이 없었기에 주저했는데, 제갈려가 옆에서 쿡쿡 찌르며 어서 따라가라는 눈빛을 보냈다.

시후는 제갈려의 채근에 거리를 유지한 채 천주방주의 뒤를 따랐다.

그는 안으로 들어간 뒤 나선형 계단을 올랐는데, 오르다 보니 공기가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상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천주방주는 계단 중앙쯤에 다다르자 옆에 나 있는 문으로 쏙 들어갔다.

드넓은 방에는 세 개의 상이 놓여 있었다.

“앉지.”

그의 권유에 시후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쯤 열린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아까 지나쳤던 홍등가 길거리가 내려다보였다.

“절정의 끝자락에 다다른 약관의 창수. 단 한 명의 이름이 떠오르는데, 혹시 비무광자라 불리는 적룡 패주 맞는가?”

저 빌어먹을 별호.

시후는 낯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주방주는 고개를 짧게 까딱이며 술잔을 채웠다.

“이 자리는 적룡 패주로서 온 것인가?”

“아뇨.”

“그렇다면, 전매의 말을 전하기 위해 왔는가?”

“전 장로는 선만 대 주었을 뿐이죠.”

“그런가.”

시후의 대답에 천주방주는 술잔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굴을 가리기 직전, 짧게나마 그의 눈빛에서 쓸쓸한 감정을 엿보았다.

그는 가볍게 술 한잔에 함께 감정을 털어버리곤 시후를 똑바로 바라봤다.

감정이라곤 단 한 톨도 담기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럼 본인을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나?”

“표면적으로는 그렇죠.”

“표면적이라······.”

천주방주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잔을 채웠다.

시후도 얼른 잔을 채웠다.

“표면 아래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선 술을 마셔야겠지?”

“물론이죠.”

시후는 천주방주를 바라보며 슬쩍 잔을 들어 올린 뒤, 입으로 옮기기에 직전에 몸을 돌렸다.

그 시선이 향한 곳은 벽이었다.

“같이 드시죠.”

시후는 우습게도 벽을 향해 잔을 들어 올렸다.

그 후로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제갈려가 뭐 하는 짓이냐고 입을 떼려는 찰나, 옆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의 주인은 곧 방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세 사람이 있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시후는 상대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잔을 놓고 오셨군요. 종요 선생.”

- 105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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