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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91화 (73/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91화 황릉으로 가는 길 (2)

둘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제갈려는 측천파흑선에 취해서 말이 없었고, 시후는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느라 말이 없었다.

명진제가 아무리 시후를 좋게 봤다고 한들, 이만한 보상을 미리 준다는 건 말도 안 됐다.

당연하게도 명진제의 보상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기존에 받았던 임무 ‘발본색원’의 내용이 수정되어, 임무의 선택 여부가 사라진 채, 강제로 진행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건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으니깐.

다만, 수정된 내용은 상관이 있었다.

기존 ‘황실에 위협을 가했던 무리 소탕’에서 ‘황실에 위협이 되는 무리 소탕’으로 수정되었다.

고작 몇 글자가 바뀌었을 뿐이지만, 바뀐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난이도가 몇 배로 올라갔음을 의미했다.

‘위협을 가했던’은 배교와 흑련회를 의미했지만, ‘위협이 되는’에 해당하는 건 잠재적 세력까지 모조리 포함되는 것이었다.

‘설마’ 싶은 마음에 이민족 국가 등이 속하는지 물었지만, 명진제도 그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았다.

“자, 받아.”

제갈려가 충분히 감상했는지 측천파흑선을 넘겨주었다.

꼭 자기 물건인 것처럼 구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제갈려는 어서 받으라는 듯 팔을 흔들었다.

시후는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며 측천파흑선을 받아들었다.

[측천파흑선(則天破黑煽)]

「봉인되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측천파흑선은 아직 열쇠의 기능밖에 하지 못했다.

어차피 측천파흑선을 깨운다고 해도 시후 자신이 쓸 건 아니었기에 아쉽진 않았다.

중요한 건 ‘전설의 자취를 쫓아서’ 였으니까.

[완성된 측천파흑선을 획득하여 ‘측천무후의 황릉’이 지도에 드러납니다.]

일원신공의 획득과 동시에 얻었던 임무를 드디어 재개할 수 있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시후가 감회에 젖어 들자, 제갈려가 옆구리를 쿡쿡 찔러 왔다.

“이제 가면 되는 거야?”

“뭐, 별다른 일만 없다면.”

“아흐······.”

제갈려는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후를 따라나선 이유이자, 일생일대의 꿈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탓이다.

잔뜩 흥분한 그녀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입안에서 맴도는 웅얼거림이기에 모든 걸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주체할 수 없는 기대감에 튀어나온 욕설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참이나 흥분에 휩싸였던 그녀가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며 허둥거렸다.

“어쩌지?”

“뭐가?”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있잖아······. 비령은 어떻게 해?”

잊고 있었다.

시후는 골이 지끈지끈 아파져,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 상태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으니 제갈려가 옆에 앉으며 물었다.

“검후가 돌아오길 기다릴까?”

“최소 한 달은 걸린다고 했는데, 그걸 기다리자고?”

“그럼 어떻게 해?”

물음에 물음으로 답하자, 다시 물음이 이어졌다.

가장 좋은 방법은 천비령이 스스로 떨어져 주는 것이지만, 검후가 문주령으로 명했으니 비령은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공범을 만들까?”

“어떻게 설명하고? 게다가 비령이 잘도 넘어오겠다.”

“그럼 진법으로 가둬 놓을까?”

“가두긴 뭘 가둬. 그랬다가 뒷감당은 어떻게······ 잠시만, 가둔다고?”

가둔다.

시후는 ‘가둔다’라는 말에 꽂혔다.

뭔가 방법이 떠오를 듯 말 듯 머릿속이 간질간질했다.

제갈려는 그런 시후의 모습을 보곤 자기 생각에 동의한다고 판단했다.

“화산은 워낙 산세가 험해서 자연적인 진법이 많은 편인데, 일단 화산으로 데려간 다음에 진에 가둬 놓고······.”

제갈려의 장황한 계획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한참을 누워 있던 시후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래, 가두자.”

“그럼 네가 비령을 데리고 조양봉 근처로 가서······.”

“아니, 진법에 가두진 않을 거야.”

시후의 말에 제갈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억지로 가두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가두려면 진법에 스스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야지.”

“무슨 소리야? 스스로 들어간다니?”

시후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그에 제갈려가 급히 뒤따라 나왔다.

“어디가?”

“하오문 좀 다녀올게. 이 이야기는 그다음에 다시 하자.”

“하오문은 갑자기 왜?”

“찾을 사람이 있어서.”

“이 와중에 누굴? 아니, 그보다 갑자기 사람은 왜 찾는다는 거야? 하던 이야기마저 하고 가야지!”

제갈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시후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이대로라면 하오문까지 따라올 기세였다.

분타라면 따라와도 상관없었지만, 시후가 향하는 곳은 하오문의 총타였다.

아무리 같은 정파라고 한들, 기본적으로 하오문은 그늘에 숨어 있는 문파였다.

아는 사람은 안다고 해도 제갈려를 데리고 갔다간 썩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누굴 찾느냐면 스님 한 분을 찾는 거고, 왜 찾느냐면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지. 그리고 이 이야기는 더 해 봤자 제자리걸음이니깐 생략. 또 질문은?”

대화를 끊겠다는 듯 단호한 어조로 말하자 제갈려는 고개를 저었다.

시후는 다시 뒤로 돌아 하오문의 총타로 향했고, 제갈려는 그런 시후의 모습을 지켜보다 방으로 돌아갔다.

* * *

북경에서 산서성의 성도인 태원까지는 말을 몰았으나, 태원부터는 강을 이용했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배가 말보다 빨랐으니깐.

그 말은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말이 더 빠르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딱 화음까지만 배를 탔다.

“화음······.”

화음은 나름의 사건이 있던 곳이었다.

남궁천과 남궁미, 그리고 철우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고, 돈을 아끼기 위해 사공들에게 역으로 경매를 걸었던 기억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루터를 살폈지만, 그때의 사공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시후의 눈에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의 주인은 나루터 끝자락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였다.

배는 나루터에 닿았고, 시후와 제갈려, 비령이 배에서 내리자 아이는 쪼르르 달려왔다.

열 살 전후로 보이는 아이는 주머니를 꼼지락거리더니, 다소 구겨진 서찰 하나를 꺼내었다.

하오문의 서찰이었다.

아이는 시후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차 대협이 맞으시죠?”

“대협은 아니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은 맞을 거다.”

“히히, 받으세요.”

서찰을 받아들면서 손을 슬쩍 만져보니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시후는 서찰을 받음과 동시에 은 한 냥을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돈은······.”

“오래 기다린 거 같은데 그냥 받거라.”

아이는 우물쭈물했다.

서찰을 전달하고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지만, 받은 적이 없으니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시후는 아이의 손에 강제로 돈을 쥐여주었다.

“행운은 찾아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이야.”

“감사합니다!”

시후에게는 가벼운 호의였지만, 아이에게는 며칠 동안의 노동의 대가일 것이다.

아이는 차가운 영하의 날씨에도 땀이 날 정도로 인사한 다음에야 뒤돌아 달려갔다.

말들의 준비운동이라도 시킬 겸, 시후는 서찰을 읽기 위해 말 위에 올라타 천천히 걷도록 고삐를 흔들었다.

“그제 막 진령산맥 들어섰다고 하니, 딱 서안에서 마주칠 수 있겠네. 그리고······.”

배교 분타의 토벌 근황은 썩 나쁘지 않았다.

아직 강서, 복건, 광동의 세 지역은 건드리지 못했지만, 나머지는 거의 다 쓸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점창파에서는 약간의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이 있었다.

“아, 그리고 아쉽게도 무영묘적의 흔적은 놓쳤다네.”

그 말은 곧 ‘분서는 안 잡혔다’라는 말과 동일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제갈려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사부님은?”

시후가 서찰을 품에 집어넣자, 비령이 급히 물어 왔다.

알아보긴 했지만, 말해 줘도 괜찮을지 걱정되었다.

비령은 그런 시후의 눈치를 알아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정확히 어디에 숨겨 두는지 위치를 모를 뿐, 구천종주의 위치는 다 알고 있어. 가장 먼저 청해호로 가셨겠지.”

“그럼 말해 줘도 상관없겠지. 청해에서 막 사천을 넘었다는데, 어디로 가는진 몰라.”

“청성과 아미를 들리시겠네.”

비령은 확신하듯 말했다.

그와 동시에 시무룩해졌다.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였기에 제갈려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옆으로 몰았다.

“왜 그래?”

“사천으로 갔으면 다음은 호남이고, 그다음에 화동을 쭉 돌아서 가시겠지······. 그럼 우연이라도 뵙지 못할 테니까······.”

“어이구, 검후께선 이리도 귀여운 제자가 눈에 밟히시지 않을까 모르겠네. 비령이는 얼굴도 예쁜데 맘씨는 더 예쁘고, 너무한 거 아냐?”

시후는 요즘 들어 부쩍 사이가 가까워진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남은 거리를 계산했다.

서안까지는 300리였으니, 빠듯이 달리면 저녁은 서안에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산을 마친 시후는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속도를 올렸다.

“점심 안 먹어!?”

제갈려는 화음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생각이었는지 앞서가는 시후를 불렀다.

하지만, 시후는 말을 멈출 생각도, 화음에서 쓸데없이 뭉그적거리다가 하루를 허비할 생각도 없었다.

“육포 먹어!”

시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생각에 들떠 있던 두 사람은 육포를 시후라고 생각하며 잘근잘근 씹었다.

“천천히 가!”

* * *

시안 또는 장안이라고 불리는 서안은 매우 유서 깊은 도시였다.

낙양과 더불어 ‘양대 도시’라고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과거 천하의 중심을 논할 때는 이 서안을 절대 빼놓을 수 없었다.

‘장안의 화제’라는 말과 함께, ‘관중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得關中者得天下)’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영광에 불과했다.

엄청난 식량 생산을 자랑하던 관중의 분지는 당나라에 이르러 생산력이 감소하였다.

서안이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안이 망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안에 있었던 성을 허물었다고 한들 백성들을 보호해 주는 성벽은 온전했고, 여전히 서안은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도시 중 하나였다.

실로 대단했던 과거의 걸맞게 성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다.

성벽 길이만 총 35리에 달했다.

시후는 막 그 성문을 지나고 있었다.

그 뒤를 바짝 뒤쫓던 제갈려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꼭 거기서 기다려야 해?”

“당연하지.”

“그냥 근처 지나갈 때 붙잡고 말 걸어도 괜찮잖아.”

“그럼 불심 어린 모습을 못 보여 주잖아.”

시후는 가슴을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시후의 태도에 제갈려와 천비령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가증스럽다······. 불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절을 찾는다니······.”

“행여나 스님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 나 혼자 좋자고 하는 거 아니잖아?”

“알아. 내가 그 정도 생각도 없겠니?”

시후는 혼자서 다녀오겠다는 걸 계속 따라오면서도 투덜거리는 제갈려의 태도에 걱정이 앞섰다.

혹여 그녀가 실수라도 하진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걱정을 떨치지 못한 채, 세 사람은 현장 법사의 동상을 지나 자은사(慈恩寺)에 다다랐다.

“이제부턴 언행 조심해.”

“네네.”

제갈려는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그 눈빛과 행동은 사뭇 진지했다.

시후는 곧장 대안탑(大雁塔)을 올랐다.

7층까지 오르니 스님을 꾀어낼 미끼가 눈에 들어왔다.

다라수(多羅樹) 잎으로 제작된 불경.

불제자라면 누구나 한 번은 눈에 넣고 싶어 할 물건이었다.

이제 목표가 한시라도 빨리 오길 기도하는 일만 남았었다.

불경 앞에서 합장한 채 시간을 죽였다.

중간중간 제갈려가 시후의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을 쳤지만, 연신 층을 오르내리는 스님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곧 장난을 그만두었다.

다만, 볶은 콩을 허공에 던지며 입으로 받아먹기 시작했다.

“제발 좀······.”

제갈려를 꾸짖으려던 시후는 저 아래층에서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소리를 들은 건 시후뿐만이 아니었기에, 제갈려는 급히 콩을 씹어 삼키느라 목이 메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빠르게 물 한 모금을 마시곤 서둘러 합장을 취했다.

한층 한층 오르던 발소리의 주인공은 아래층까지 다다랐다.

여유 있는 걸음으로 아래층에 있는 석가모니 상을 비롯해 서장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둘러 보는 듯했다.

다 둘러 봤는지 계단이 삐거덕대며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시후는 두 눈을 감았다.

이 순간만큼은 진실로 신에게 빌었다.

자신의 연기가 먹히기를.

계단을 다 올라왔는지, 계단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분명 내 등을 보고 있을 것이다.’

상대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걸었다.

발소리는 부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함 앞에 멈춰 서는 게 느껴졌다.

그 앞에서 합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곧 시후 일행의 쪽으로 올 게 분명했다.

시후는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속으로 마흔을 헤아렸을 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남은 걸음은 이제 다섯, 넷, 셋, 둘, 하나.

시후는 바로 옆에 다다른 상대를 바라봤다.

“어?”

“아?”

시후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쩍 벌렸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시후는 고개를 흔들어 놀람을 벗어 내고 합장했다.

그에 상대도 얼떨떨한 얼굴로 시후를 향해 손을 모았다.

“시주께서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

“불제자라면 누구나 대안탑에 오기를 염원하겠지요. 게다가 그 덕분에 이렇게 주지 스님을 뵙다니, 다 석가께서 우리의 만남을 인도하고 계신 듯합니다.”

“아미타불.”

시후의 말에 평정사의 주지 스님은 연신 염불을 외었다.

깨어진 불상과 ‘살불살조’라는 화두로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었던 그를 바라보며 시후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 92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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