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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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배교 총타 (6)
성문 너머까지 정리했지만, 문을 여는 대신 성벽을 넘었다.
다행히도 강시는 성루 안에 있기에 징그러운 광경은 보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성벽 위에 네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댄 채 잠을 자듯 뻗어 있었다.
“정말 작은 성이네요.”
성벽 아래서 내려다본 풍경은 제갈려의 말대로 성을 연상케 했다.
비탈진 길이지만, 제법 반듯하게 다져 놓은 길,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광경들까지.
그렇기에 어색했다.
그와 동시에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애들이 없네.”
전쟁터를 제외하면, 아이들이 없는 곳은 없다.
아니, 전쟁터라고 할지라도 아이들, 소년병은 있었다.
하지만, 배교의 총타인 이곳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이쪽으로 와라.”
한밤중이라면 좋겠지만, 아직 해가 저물려면 시간이 제법 남았다.
그때까지 기다릴 바에 한시라도 빨리 진을 해체해서,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본대를 들이는 게 우선이었다.
검후는 성내를 쭉 훑어보더니 전방을 가리켰다.
“저쪽이라고 했었나? 그럼 이 길로 쭉 따라서······.”
“이쪽으로 가는 게 가장 나을 겁니다.”
준혁이 검후의 말을 끊으며 나섰다.
자신만만한 태도였기에 다들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여태껏 보아온 결과, 딱히 나서는 걸 즐기는 성향은 아니었기에 더욱 의외의 모습이었다.
“잠시 둘러보니 그길로 가면 중간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안 걸리고 갈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순 있습니다.”
검후는 다부진 그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결정권자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준혁이 앞장을 섰다.
가야 할 방향은 북동쪽이었지만, 그가 향한 곳은 북서쪽이었다.
준혁은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게 아니라, 반원을 그리듯 돌아갔다.
다소 의문이 들 법한 경로였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일행의 의문은 빠르게 종식되었다.
지나갈 때는 그 무엇보다 신속하게, 멈춰 있을 때는 태산처럼 고요하게 움직였다.
기가 막힌 완급의 조절이었다.
움직임은 투박했으나, 길에서 사각을 찾아내는 능력은 발군이었다.
그 결과, 목적지의 절반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각당하지 않았다.
한순간에 이곳의 지리를 파악한 독고준혁의 능력에 모두가 경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합니다!”
“별 볼 일 없는 재주입니다.”
“자신의 재주를 깎아내리지 마십시오. 덕분에 예까지 저들의 눈을 피해 오지 않았습니까?”
운허의 칭찬에 준혁은 뿌듯해하면서도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더 앞으로 간다면, 주위의 시선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곳부터는 별다른 수가 없으니 검후 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렇다면 최단 거리로.”
검후는 빠른 결정을 내렸다.
가야 할 길은 탁 트여 있었기에 따로 길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빠른 돌파만이 필요할 뿐.
진의 핵은 족히 5장 높이는 될 법한 거대한 목탑이었다.
목탑은 불길한 붉은색 기운이 은은하게 감싸고 있었다.
“역시, 아무런 조치도 안 취했을 리가 없지. 제가 탑에 둘린 진을 해제하면 검후께서 박살을 내주세요.”
“어느 정도로?”
“주춧돌조차도 날려 버려야 해요.”
검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려와 시후가 나란히 앞장섰다.
여섯 사람 중 둘의 경공 실력이 가장 떨어졌거니와, 핵을 파괴하기 위해선 진을 먼저 해제해야 했으니깐.
“앞에 누가 가로막든지 간에 신경 쓰지 말고 달리거라.”
검후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다.
절대적인 신뢰를 끌어냈기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검후는 조약돌 몇 개를 주워들곤 눈짓을 보냈다.
시후는 제갈려와 시선을 교환한 뒤, 전력을 다해 달렸다.
저 멀리 떨어져 있던 강시 술사들은 골목에서 튀어나온 시후 일행을 발견하곤, 목에 묶어 둔 무음필대를 입으로 가져갔다.
삑, 삐빅, 삐비비빅.
소리가 들리는 순간.
우두커니 서 있던 강시들이 일제히 몸을 돌리며 대열을 갖췄다.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지는 낮은 종소리와 함께, 산 위에서 달려오는 배교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불과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덕분에 여기까지 얼마나 안전하게 이동했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감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강시 중 가자 앞에 있던 놈이 시후를 향해 푸르죽죽한 팔을 휘둘렀으니깐.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강시의 머리가 풍선처럼 터져나갔고, 몸은 그대로 땅에 허물어졌다.
“달리라고 했지!”
시후는 바로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검후의 날 선 목소리에 창을 아예 등으로 돌려 맸다.
신경 쓰지 말라고 했으니, 무조건 지켜 줄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검후는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다.
앞을 가로막는 강시들은 죄다 머리가 터지거나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좌우를 지키는 운허와 준혁의 활약도 눈부셨다.
둘은 선을 넘어서지 않고, 선을 넘는 강시를 허락지 않았다.
무음필대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지만, 늦었다.
“조금만 지켜 주세요!”
이미 목탁 앞에 도달했으니깐.
[돌발 임무 ‘내부붕괴’가 발생합니다.]
[해당 임무는 일정 시간 동안 특정인을 지켜야 합니다. 10:00]
조금이라더니, 지켜야 할 시간이 무려 10분이다.
시후는 주위를 둘러봤다.
지붕과 바닥에 자리 잡은 숫자만 이백은 넘어 보였다.
달려오는 숫자를 포함하면 거의 천에 육박할 것이다.
“이쪽은 여섯인데 너무하는군.”
남궁천의 발언은 겁을 먹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여태껏 해소하지 못한 분노를 풀어낼 수 있다는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사실 그의 말은 틀렸다.
제갈려는 지켜야 할 대상이니 다섯이다.
시후는 그의 말을 정정해 주는 대신,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는 인물을 찾았다.
하지만, 찾을 필요는 없었다.
상대가 먼저 나섰으니 말이다.
“검후께서 어려운 걸음을 하셨구려.”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가득한 중년인으로, 붉은빛 도포에 황금 장식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눈 아래는 확인하기 힘들었다.
중년인은 새하얀 섭선으로 얼굴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었다.
“날 알고 있나?”
“알다마다. 팔황 중 유일하게 강호를 돌아다니는 검후를 모를 순 없지 않겠소? 대업을 이루는데 가장 큰 변수를 만들어낼 검후가 제 발로 찾아오다니 기쁘기 그지없소이다.”
“그래? 기쁘다니 다행이네. 내려와 봐. 내려와서 이야기하지.”
“껄껄, 이야기를 나누고 싶거든 검후께서 직접 올라와 보시구려.”
“산이 오르기 싫으니 네가 내려오거라.”
“내가 내려갈 일은 검후의 숨이 끊어졌을 때밖에 없을 것 같소만······. 그보다 저 아이는 언제까지 앉혀 둘게요? 이래선 대화를 나누기엔 부적합하지 않겠소?”
검후는 변명하지 않았다.
말로 시간을 끌려고 했으나, 너무 얄팍한 술수였고 상대를 너무 우습게 보는 처사였다.
무반응에 중년인이 멋들어지게 섭선을 접으며 검후를 가리켰다.
“쳐라.”
그와 동시에 천이 훌쩍 넘는 인원이 달려들었다.
저들 중 대부분은 강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팔다리를 날리는 정도로는 막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시후는 급히 검후의 어깨를 잡았다.
검후는 다급한 와중에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시후는 말없이 손에 막야검을 쥐여주었다.
놈들은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하지만, 검후는 시후가 건네준 막야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검이 울고 있었다.
남궁천이 들고 있는 간장검도 마찬가지였다.
두 검이 공명하게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앞!”
시후가 코앞에 다다른 강시를 바라보며 소리치자, 검후는 막야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은빛 섬광과 함께 강시 머리는 땅을 굴렀다.
단, 하나가 아니라 적게 잡아도 삼십 이상.
검후는 단 한 수에 삼십이 훌쩍 넘는 목을 베었다.
그러나 천이라는 숫자에 삼십은 삼 할도 아닌 고작 삼 푼에 불과했다.
영향력을 끼치기엔 아주 미미한 숫자.
하지만, 검후가 사용한 힘의 양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라면······.”
검후는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마침 안개 바깥으로 해가 저물고 있는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다만, 목탑 주변은 한낮과 비교해서 다를 바 없었다.
검후의 손에 들린 막야검은 어둠이 내리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밝게 빛나고 있었으니깐.
“쉴 틈 없이 몰아쳐라!”
“그래, 맘껏 와라.”
눈앞의 강시들은 이성이 없었다.
그렇기에 용감했다.
자신의 몸을 태울 것이란 걸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검후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몸을 뉘는 강시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옆에서 보조를 맞추던 운허와 준혁은 혀를 내둘렀다.
“검후의 경지가 이토록 뛰어났을 줄이야······.”
“말 그대로 천외천이로군.”
오히려 운허와 준혁이 뒤로 물러나야 할 판국이었다.
5장.
그 안으로 들어온 강시는 온전히 서 있을 수 없었다.
삼 푼이라는 수치는 이미 갱신된 지 오래였다.
검후는 그 짧은 시간에 이백이라는 숫자를 베어 넘겼다.
게다가 지친 기색조차도 없었다.
“뭐야, 고작 이 정도로 주둥이를 놀렸어? 내가 숨이 끊어져야 내려오겠다더니, 평생 그 위에서 살겠다고 선언한 건가?”
검후는 웃으며 막야검을 까딱거렸다.
그 비웃음과 비아냥을 듣고 중년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청강시(靑僵尸)는 죄다 물리고 백령강시(白靈僵尸)를 앞세워라!”
중년인의 말에 강시의 절반 이상이 뒤로 물러났다.
최초에 달려든 강시를 비롯해 바닥에 쓰러진 놈들은 죄다 피부가 파리하게 질려 있었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령강시는 분칠이라도 한 듯 새하얀 피부를 자랑했다.
마치 몸에 피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본교의 백령강시를 상대로도 그리 여유 있을 수 있을지 두고 보마!”
백령강시는 기존의 청강시와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뛰어났다.
기본적으로 움직임이 부드러웠다.
죽은 이상 굳을 수밖에 없는 관절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레 손발을 움직였다.
힘 또한 발군이었다.
땅을 가볍게 박찼음에도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푹 패였으니깐.
“계속 보기만 해야겠는데?”
백령강시는 검후의 일격을 받아 내지는 못했지만, 청강시처럼 일수에 십수 마리가 쓸려나가진 않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위협적이지 못했다.
물론 이전과 달리 미미한 효과는 있었다.
거리를 3장까지 좁혔으니 말이다.
다만, 목이 달아나는 건 여전했다.
제아무리 대단한 강시라고 한들 막야검을 들고 있는 검후의 검기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하물며 남궁천이 들고 있는 간장검 덕분에 모든 무공을 한 단계 높게 펼칠 수 있다는 건, 그 어떤 변수조차 용납하지 않게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중년인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모든 강시를 깨워라! 내공은 무한하지 않다! 쏟아부으면 쓰러지기 마련이다!”
어디에 숨어 있던 건지 몰라도, 베었던 수만큼의 강시가 충원되었다.
그리고 물러났던 청강시도 재차 합류하여 달려들었다.
내공을 소진케 하고자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사자를 다시 사지로 밀어 넣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검후는 낯빛을 굳히면서도 묵묵히 베어 넘겼다.
“제아무리 팔황이라고 한들 내공은 무한하지 않다! 계속 몰아쳐라!”
중년인은 검후의 안색이 굳어진 걸 보고 착각하여 소리쳤다.
물론, 내공이 바닥난다면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울 것이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다만, 놈은 검후의 존재감으로 인해 시간이 시후의 편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제갈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요.”
목탑을 감싸고 있던 불그스름한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본래의 목적을 이룰 때였다.
검후는 사방을 휩쓸어 버린 뒤 몸을 돌렸다.
“막아!”
중년인이 다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검후는 목탑을 향해 천천히 검을 찔렀다.
지독하게 느렸지만, 그 무엇보다 빨랐다.
검 끝에 뭔가 아른거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목탑이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갔다.
콰과과광!
목탑은 나뭇조각으로 변해 사방으로 비산했고, 주춧돌은 자갈로 변해 콩 볶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돌발 임무 ‘내부붕괴’를 완료하였습니다.]
[배교 총타를 감싸고 있던 ‘불입불출진’과 ‘대마라혈진’이 사라집니다.]
[배교 총타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 7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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