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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73화 (55/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73화 배교 총타 (1)

정의맹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면 개방과 하오문이 가장 바빴지만.

하지만, 움직이는 것과 비교해서 성과는 미미했다.

십여 일간 정신없이 움직이며 정보를 물어왔고, 다른 문파와 연계하여 배교의 분타도 급습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다만, 그뿐이었다.

분타는 텅 비어 있었다.

꼬리를 붙잡으면 자르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해를 등진 채 그림자를 뒤쫓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지지부진한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후와 남궁천이 돌아왔다.

지아를 데리고 말이다.

소림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최근 모용세가에서 고독을 이용한 사건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술사의 조종이 필요한 강시에 불과했다.

강시란 술사가 없이 존재하기 어려운 법이니깐.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상식은 깨어졌다.

비록 감정이 결여되었지만, 지아는 분명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참회동에 가둬야 하지 않겠소?”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하오.”

몇몇은 지아를 가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궁천은 그녀 스스로 도움을 주고자 정의맹에 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대부분이 남궁천보다 한 배분 높은 위치에 있었지만, 그 공로를 생각지 않을 순 없었다.

게다가 신의 또한 힘을 실어주었다.

“이 아이가 협조하지 않으면 알아낼 수 있는 게 극히 적어지니, 원하거든 방장실이라도 내어 주는 게 옳지 않겠는가?”

신의의 말처럼 방장실을 내어 줄 순 없는 노릇이지만, 회의를 통하여 최소한의 자유를 보장했다.

어차피 지아의 무공수위는 일류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에 불만은 빠르게 잠식되었다.

그 결과, 지금 지아는 정론각 내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신의께서는?”

“여전합니다.”

“대붕 상단의 생존자들은 아무도 못 찾았습니까?”

천 씨 세가에 약을 팔았던 대붕 상단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산적들 때문이지만, 그 과정이 미심쩍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기적의 비약이라 주장한 물건을 어디서 구했는지도 알아내야 했다.

“대다수는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행방이 묘연한 자가 셋 있소. 아마도 절강과 복건에 숨어 있을 것으로 짐작되긴 하나, 생김새가 너무 평범하여 시일이 적잖이 걸릴 것으로 생각되오.”

비걸개의 말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하여, 절강과 복건 쪽으로 아이들을 보내 놨으니, 늦어도 이번 주 내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소.”

“대붕 상단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일단락하고, 다음으로······.”

한참 추격 중인 배교의 사자와 급습했던 분타에서 발견한 흔적들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제와 비슷한 이야기들이었다.

꼬리를 잡았으나 끊겼다.

분타를 습격했으나 별다른 건 없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발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쾅!

불이각을 담당하던 정빈 대사가 정론각 문을 박차듯 들어섰다.

정진 대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 말하려 했으나, 정빈 대사가 손을 번쩍 들이 올리며 소리쳤다.

“귀주 분타 급습에 성공했답니다!”

그 외침에 몇몇 인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들 그의 손에 들린 서찰을 보기 위해 다가가려 했으나, 정빈 대사는 그보다 한발 빠르게 정진 대사에게 건네주었다.

정진은 곧바로 서찰을 훑었다.

다들 정진의 입만 바라봤다.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걸 보니 단순히 급습만 성공한 게 아닌 듯했다.

정진이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틀 전, 귀주 육반수에서 남쪽으로 70리 정도 떨어진 곳에 배교의 분타로 짐작되는 폐 사찰을 습격하여, 짐을 꾸리고 있던 무리를 급습하는 데 성공······. 그리고 놈들이 모이는 지점을 알아냈다는 내용이오.”

정진의 말에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장 놈들을 치러갑시다!”

“불가하오.”

정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모두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깃들려 했으나, 부정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놓치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 성급히 움직이기보다는 확실히 놈들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할 것이 아니겠소.”

불제자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었다.

그 덕분에, 다들 정진이 얼마나 화를 꾹꾹 눌러 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 * *

시후는 산을 오르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서리 내린 산길에는 한 쌍의 발자국만 아로새겨져 있었다.

“망할.”

시후는 불평을 토해내며 힘겹게 오른 길을 다시 내려갔다.

얼마 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르는 제갈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똑바로 서서 오르기도 힘든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오르고 있었다.

시후는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인기척을 내며 다가갔다.

곧 제갈려는 고개를 들어 시후의 얼굴을 확인했다.

“애먹이려고 따라온다고 했냐?”

“······ 손 좀 잡아 줄래?”

“쯧.”

시후는 혀를 차며 손 대신 창을 내밀었다.

제갈려는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창을 붙잡았다.

가파른 산을 오를 때는 앞에서 끌어 주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컸다.

제갈려가 따라왔다.

불이각에서 기다리라고 그리 말했지만, 도통 들어먹지 않았다.

제갈마혁도 못 꺾은 그녀의 고집을 시후가 이길 리 만무했다.

“야, 다리에 힘줘.”

시후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한 그녀를 채근하며 산을 올랐다.

사천과 섬서, 호북에 걸쳐 있는 대파산맥(大巴山脈)은 ‘촉의 잔도’라 불리며 험난한 지대로 유명했다.

시후는 지금 막 호북과 섬서의 경계를 지나고 있었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고 한들 정상은 있기 마련이기에, 시후는 흐느적거리는 제갈려를 이끌고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온통 산뿐이었다.

대파산맥은 방향감각이 없는 자라면 몇 날 며칠 동안 산을 헤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드넓었다.

시후는 조그맣게 지도를 외쳐, 게임의 시스템으로 현 위치를 확인했다.

서쪽으로 대략 90리만 더 가면 집결 장소가 될 듯했다.

곳곳에 흩어져 있을 배교의 눈과 귀는 피했을 것이다.

두셋, 많아야 네댓 명씩 움직이도록 찢어졌는데, 이들을 다 감시할 정도면 무슨 짓을 해도 배교를 못 잡을 테니깐.

시후는 눈에 파묻혀 누워 있는 제갈려의 허벅지를 툭툭 발로 찼다.

“일어나. 이제 능선 따라 쭉 내려가면 되겠네.”

“으으······.”

제갈려는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더니, 쭉 펼쳐진 능선을 확인하곤 떨리는 동공으로 시후를 바라봤다.

“어디까지 가야 해?”

“90리.”

풀썩.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다.

제갈려는 다섯 살짜리 꼬맹이들이 부모에게 투정 부리듯 땅에 드러누웠다.

“뭐하냐?”

“난 여기까진가 봐.”

“개수작 부리지 말고 일어나.”

시후가 발로 몇 번이고 걷어찬 다음에야 제갈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길을 걷는 건 곤욕이다.

그게 산길이라면 거론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된 여정이다.

결국, 시후는 제갈려를 앞세워 그 속도에 맞춰 걷기로 했다.

자신의 도움이 없다면 밤늦게까지 걸어야겠지만, 한 번은 고생해 봐야 앞으로 정신을 차리지 않겠는가.

“내가 불이각에 기다리라고 몇 번을 말했어? 쓸데없이 따라와서 사람 귀찮게나 하고 말이야······.”

시후의 발언은 다소 과한 면이 있었다.

그 탓일까, 앞에서 걷고 있던 제갈려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더니 고개를 떨궜다.

따지고 보면 제갈려를 보호하는 임무가 가장 우선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자신이 절강에 다녀오는 사이, 잠자코 소림에서 기다리지 않았는가.

시후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제갈려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말이 좀 과했어.”

제갈려는 침묵했고, 시후의 마음은 조금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더 허비할 수는 없었다.

“어서 가자,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럼, 저기까지만 업어 줘.”

그녀는 능선 끝자락에 닿아 있는 높다란 산을 가리켰다.

‘쌍것.’

* * *

대파산맥은 사방에서 솟아난 듯한 산들로 인해,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산들이 즐비해 있었다.

물론, 그와 비례해서 이름 없는 계곡도 상당수 있었다.

“저곳이군요.”

남궁천이 가리킨 방향은 계곡 사이에 옹기종기 모인 바위들이었다.

거리가 적잖이 거리가 있었기에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이미 저쪽 바위 틈바구니로 들어간 인원만 십수 명에 달했다.

저들과 이동 경로가 겹쳤을 리는 없다.

눈 때문에 족적이 남을까 싶어, 일부러 다니기 힘든 길로 돌아왔으니깐.

삐이이익.

하늘 위 저 높은 곳에서 매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오문에서 천금을 들여가며 구매한 해동청(海東靑)이다.

목이 꺾어지도록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이 곧바로 만파견자를 바라봤다.

저 울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으니깐.

“근방 200리 반경 내에 우릴 제외하곤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의 말에 제갈려는 바닥에 꽂아놓는 천로수변을 뽑았다.

정의맹 인원은 일부를 제외하고 죄다 능선에 서 있었다.

제갈려의 진법으로 인해 몸을 숨길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제갈려는 기고만장해진 채로 저 뒤에서 우쭐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차 아우가 고생했지.”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네요.”

남궁천의 위로에 다소 화를 누그러트렸지만, 헤죽헤죽 웃어대는 제갈려를 보니 조금 더 고생을 시켰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추나행을 비롯한 개방 제자들이 먼저 다가가 주변을 살폈다.

잠시 바위 주변을 뒤지던 그는 곧 허리를 펴며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다들 소리에 주의하며 계곡으로 내려갔다.

능선 위에서 지켜보느라 정확히는 못 봤지만, 지금 추나행이 기웃거리는 바위 주변에서 뭔가를 조작했다는 건 확실했다.

추나행이 이런 기관에 적잖이 일가견이 있으니, 곧 입구가 열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한 식경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추 장로?”

목일자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겨울이라는 날씨에 걸맞지 않게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이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고독 때문에 이곳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만 해도, 사로잡은 인원 중 셋이 희생되었다.

사로잡은 인원이 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문을 여는 방법까지 알아낼 여력이 없었다.

“내 이럴 줄 알았소이다. 아무리 추 장로가 자신 있다고 말했었지만, 최소한의 장치는 준비해야 하지 않았소!”

주목 장로의 목소리가 커졌다.

덕분에 추나행의 얼굴은 세수라도 한 듯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입구를 부수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제로 들어가려고 하면 입구를 비롯해 안쪽까지 무너지는 기관은 기본이었으니까.

다들 구시렁거리며 추나행을 욕하고 있었다.

시후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애만 태우는 찰나, 옆에서 낮게 중얼거리는 제갈려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명효릉(明孝陵)이랑 비슷하네.”

시후는 급히 제갈려의 팔을 잡아당겼다.

너무 세게 잡아당겨 거의 품에 안는 형국이 되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제갈려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너 알아?”

“당연하지. 거기에 얼마나···.”

시후는 급히 제갈려의 입을 틀어막았다.

대외적으로 제갈려는 그곳에 간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제갈려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지만, 다행히 둘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들은 사람은 없었다.

시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뗐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려는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추나행에게 다가갔다.

추나행은 제갈려의 말을 듣더니,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돌이 옆으로 밀려났다.

[배교 총타로 향하는 비밀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시후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배교 총타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 자신이 모르는 길을 제갈려가 찾은 것이다.

아직은 배교를 정리할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을 말릴 수도 없었다.

시후는 환호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홀로 고개를 푹 숙였다.

‘조졌다.’

- 74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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