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70화 수색 (3)
남궁천이 간장을 찾아 막간산을 찾아 헤매는 사이, 시후는 그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시후가 도와준다고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증오를 곱씹을 수 있도록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 일이었다.
하지만, 남궁천이 간장검을 찾는 동안 시후에겐 심각한 문제가 생겨 버렸다.
“뭘 하지?”
시후는 시간이 남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초조한 얼굴로 발을 굴렀다.
여태까지 바쁘게 달려왔기에 뭔가를 기다리는 데 익숙지 않은 것이었다.
이곳에 갇힌 뒤로 처음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삼십 분이 넘도록 고민했지만, 딱히 뭘 해야 할지 떠오르진 않았다.
아니, 한가지 있긴 했으나, 아직도 어떠한 단서조차 잡지 못하는 게 있긴 했다.
시후는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정확히는 손바닥을 감싸고 있는 금사박투를 쳐다봤다.
“지금 이 녀석을 풀 수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아?”
자물쇠는 굳건했고 어떤 열쇠가 맞는지는 짐작조차 못 했다.
「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100)
능력이 잠겨 있습니다. (10)」
게다가 저 숫자.
알 수 없는 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측천무후와 연관이 있다면······.”
측천무후에겐 기본적으로 ‘위대한 여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당 태종이 태평성대를 이뤘던 시기가 ‘정관의 치’라고 불렸다면, 측천무후도 그에 못지않은 ‘무주의 치’를 이루었다.
그 당시, 여인의 몸으로 황제의 위에 오른 것도 놀라운데, 완벽에 가까운 통치와 혁신에 가까운 개혁 정책을 펼쳤다.
후대에 칭송이 끊이지 않는 인물을 찾기는 힘든 것처럼, 측천무후에게도 숨길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지독한 남성 편력과 자신에 관한 반대파의 발본색원.
드러난 능력 중 두 가지를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던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반대파를 처리한 여제’와 ‘살해 시, 일정 확률로 내공을 회복’은 언뜻 보기에도 대단히 살벌한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이 수투의 능력을 풀 방법은 손에 피를 묻혀야 할 것이란 것을.
“죄 없는 사람의 목숨을 해쳐야 한다면······.”
차라리 능력을 개방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던 시후가 순간 멈칫했다.
뺨을 짝짝 두들기며 생각을 떨쳤다.
“고작 NPC들이야. 밖에선 내 뇌가 뜨겁게 익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제 코가 석 자다.
당장에 제 몸이 어찌 되어가는지도 모르는 와중에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자, 시후는 한없이 깊은 심해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식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시후의 처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은 것과 같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시후는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무작정 걷는 방법을 택했다.
한참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대나무 군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빼곡히 자라난 대나무 숲길은 올곧게 뻗어 있었고, 요동치는 시후의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그제야 시후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좋네.”
막간산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정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장장이 부부로 위장했던 두 사람이 사라진 산은 고요했다.
드높이 자라난 대나무 가지들은 곧은 기개를 보여 주었다.
줄곧 불어오던 바람이 멈추자, 고요함은 그 깊이를 더해 갔다.
그 길을 걷노라니, 절로 숙연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여유롭던 산책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남궁천과의 호감도가 80을 넘겨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1인 미궁 ‘떨어진 자웅보검(雌雄寶劍)’에 들어오셨습니다.]
* * *
간장과 막야는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애초부터 만들기를 음양에 따라 암수 두 자루의 검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궁천이 얻었던 물건은 간장검 하나였다.
그렇다면 남은 막야검의 행방은?
시후도 몰랐다.
아니, ‘몰랐었다’라는 과거형이 맞을 것이다.
“······ 아직 떨어진 건 아니지 않나?”
아직 간장을 못 얻었을 테니 ‘떨어진 자웅보검’이라는 건 틀려먹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 미궁에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은 하나였다.
바로 남궁천과의 호감도가 80을 넘길 것.
남궁천과의 호감도를 올리기가 터무니없이 어렵게 설정되어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였다.
단, 그건 20년 후의 남궁천이 독존혈랑(獨尊血狼)이라는 별호를 얻었을 때의 난이도였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데······. 길을 따라가면 되는 건가?”
시후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빽빽하게 솟은 대나무 숲 사이로,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날 법한 길이 나 있었다.
유일한 길인지라 오히려 의심쩍었다.
하지만, 달리 주변을 둘러봐도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시후는 자운유성창을 가슴높이로 들어 올린 채 천천히 나아갔다.
길을 올곧았기에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낡은 초옥 한 채와 그 앞에 앉아 있는 노모(老母).
혹시 몰랐기에 시후는 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저 몰골을 보고도 경계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다.
“비야? 비야가 온 게냐?”
지독한 가뭄에 메마른 논두렁을 연상케 하듯 지독히 갈라진 목소리.
시후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노모의 눈은 적출되어 텅 비어 있었고, 귀는 불로 지진 듯 뭉그러져 있었다.
아마도 노모는 간장의 아내 막야일 것이 분명했다.
그의 아들인 적비가 나라의 왕인 합려의 시해를 사주해, 그의 어미인 막야의 눈을 파 버리고 귀를 막아 버린 것이다.
툇마루에 앉아 있던 노모는 곧 지팡이를 짚으며 시후를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지팡이가 멀리 날아갔다.
그러나 노모는 멈추지 않았다.
땅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시후에게 기어오고 있었다.
시후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려 했지만, 차마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운유성창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시후도 천천히 다가갔다.
바닥에 넘어질 때 피부가 쓸린 것일까.
노모의 주름진 손끝은 갈라지고 터져서 피가 흘러나왔다.
시후는 그 주름진 손을 잡아 일으켰다.
노모는 앙상하게 마른 손으로 시후의 팔을 거슬러 올라가더니, 이내 등을 쓰다듬었다.
노모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손으로 확인하겠다는 듯, 아주 천천히 시후의 등을 쓸어내렸다.
“비야, 내 아들 비야. 네가 올 줄 알았다. 올 줄 알았어.”
노모는 입으로 흐느끼며 울 뿐,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
시후는 그 모습을 내려보다가 울컥하는 마음에 노모를 마주 안아 주었다.
“옥에 끌려갔어도 믿지 않았다. 암, 내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아비의 복수를 하고 이렇게 돌아오다니······.”
노모의 목소리는 기력이 쇠하는 것인지 몰라도 점점 잦아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모는 시후의 품에서 그대로 잠들 듯 쓰러졌다.
시후는 노모를 품에 안은 채,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그의 아들을 기다렸던 툇마루에 천천히 눕혀 주었다.
따사로운 햇살 때문일까.
노모의 몸이 빛나 보였다.
아니, 실제로 빛나기 시작했다.
빛은 점차 강해지더니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부 다 흩어진 건 아니었다.
노모가 빛으로 산화하면서 남긴 물건이 있었다.
막야검.
한 손으로 들어 올릴 수 있을 크기였지만, 어쩐지 한없이 무거워 보였기에 두 손으로 공손히 들어 올렸다.
[막야검(莫耶劍)]
「모든 능력이 비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필시 간장검과 만나야 해제될 것이다.
시후는 막야검을 품에 꼭 안은 채, 내려놓았던 자운유성창을 등에 멨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낡은 초옥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초옥으로 이어진 길도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시후는 등을 떠밀리듯이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1인 미궁 ‘떨어진 자웅보검’을 성공적으로 돌파하셨습니다.]
그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오자 1인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시후는 다시 뒤돌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걸었던 길에는 대나무가 잔뜩 자라나 있었다.
천년이 넘는 시간 속에 길은 사라졌다.
잠시 고민하던 시후는 초옥을 찾아 나섰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행동이지만, 사람이 항상 이성적일 수만은 없었다.
가끔 감성이 시키는 데로 움직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대나무를 헤치며 나아간 곳엔, 천년의 시간을 인내한 주춧돌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후는 품 안의 막야검을 주춧돌 위에 잠시 올려놓고 기도했다.
별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쓸데없는 자기만족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시후의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 * *
남궁천이 산을 뛰어다닌 지 닷새째가 되던 날.
그의 손엔 간장검이 들려 있었다.
시후가 끊임없이 분노를 되뇌라고 속삭였던 탓일까.
그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는데 섬뜩한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차 아우의 말대로, 검이 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더군.”
남궁천은 시후에게 간장검을 건네주었다.
무인에게 무기를 보여 달라는 건 실례였지만, 아직 남궁천은 아직 간장검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는 아닌 듯했다.
[간장검(干將劍)]
「오나라의 전설적인 도장(刀匠) 간장이 만든 검입니다.
제작자 간장의 목을 벤 검으로, 원수에게 지독한 복수심을 선사합니다.
‘원수’로 분류된 세력 또는 개인을 상대할 시, 모든 능력이 배가됩니다.
‘막야검’이 주변에 있을 시 공명하며, 모든 무공을 한 단계 높게 펼칠 수 있습니다.」
능력은 단순했다.
원수를 상대할 때 강해진다는 것과 막야검이 주변에 있으면 강해진다는 것.
하지만, 몇 할 단위가 아니라 배가된다는 점은 경악스러웠다.
어떻게 남궁천이 배교를 쓸어버리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는지 알 법했다.
시후는 혀를 내두르며 간장검을 남궁천에게 돌려주었다.
“왜 제가 고집부려서 그걸 얻자고 했는지를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배교를 만났을 때 그 검을 쥐어 보시죠.”
“흠······.”
남궁천을 간장검을 받아들곤 반대편 허리춤에 매달아 두었다.
그는 제멋대로 자라난 턱수염을 긁적이다가, 시후의 허리에 달린 새로운 검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긴 외견이 간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시후는 씩 웃으며 막야검을 툭툭 두드렸다.
“그 녀석의 단짝이죠.”
시후가 막야검을 슬쩍 건드리며 확인해 보자, 비활성화 상태였던 능력이 개방되어 있었다.
[막야검]
「오나라의 전설적인 도장(刀匠) 간장이 만든 검입니다.
스스로 목을 벤 적비와 지광으로 인해 선검(仙劍)으로 각성합니다.
‘악(惡)’으로 분류된 모든 이들들을 상대할 시, 모든 능력이 배가됩니다.
‘간장검’이 주변에 있을 시 공명하여 모든 무공을 한 단계 높게 펼칠 수 있습니다.」
선검이라는 것 자체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 검을 소지한 것 자체로 도가 계열 인물들은 자신에게 호감을 느낄 테니깐.
능력이야 간장검과 비슷하지만, 조건을 고려해 본다면 더 유용한 쪽은 막야검이었다.
“한 쌍의 검을 이렇게 나눠 가지니, 차 아우와 한결 더 가까워진 거 같아서 기분이 좋군.”
남궁천이 스스럼없이 낯간지러운 소리를 했다.
“남궁천 공자! 차 소협!”
다소 뻘쭘해지려는 사이, 산 아래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개방도였다.
“여태껏 이곳에 계셨습니까!?”
남궁천은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했지만, 시후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꼈다.
개방도 역시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했다.
그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보다 항주로 가 보셔야겠습니다.”
“갑자기 항주는 어째서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 71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