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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60화 (42/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60화 절반의 성공 (5)

시후는 쌍괴와 헤어진 뒤 악양루로 향했지만,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 네가 왜 여길······ 그보다 이젠 괜찮아?”

“빨리도 물어본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보러 오지도 않고 말이야.”

제갈려의 말에 시후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사실 제갈려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법 꼬여 버린 상황인지라 제갈려의 상태를 확인한다는 건 우선순위보다 저 뒤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한 삼십 위쯤으로.

“단순히 심력이 다해서 기절했다고 하길래, 그냥 푹 자는 게 나을 거로 생각했지.”

“근처에는 와 봤고?”

“음······ 강변에서 한 번?”

시후의 대답에 제갈려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했다.

제갈려의 날이 선 반응에 시후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 했다.

“아, 이거 정말 잘 썼어. 없었으면 죽었을 거야.”

“······ 이야기 들었어, 녹림 총채주랑 정면으로 붙었다며?”

“붙었다기보다는 도망치면서 간신히 버틴 거란 게 옳지만.”

“세 분으로서도 붙잡아 두는 게 최선이었는데 그 정도면 대단하지. 네가 없는 사이에, 네가 싸우는 광경을 봤던 사람들이 열심히 소문 퍼트리고 있더라.”

제갈려의 말에 은근한 기대감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소문일까. 목숨을 걸었는데 나쁜 소문은 아니겠지.’

시후는 나중에 돌아가서 물어보리라 다짐하며 악양루로 들어갔다.

초설이라는 간판이 사라졌음에도 내부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주변을 둘러보는 시후를 향해 점소이가 빠르게 다가왔다.

“공자님, 어디로 모실까요? 저희 악양루에서는······.”

“장 총관님을 뵀으면 하는데.”

장 총관을 거론하자 점소이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다만, 아주 맹탕은 아니었는지 금방 표정 관리를 한 뒤,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곤 위로 올라갔다.

“뭐 때문에 온 거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할 게 있어서.”

“무슨 부탁?”

시후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갈려도 딱히 대답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는지, 별로 아쉬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소이가 계단을 내려왔다.

“위로 모시겠습니다.”

그 뒤를 따라 오층으로 올라가자, 그곳엔 장 총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시후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이를 꽉 깨물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렇······ 군요.”

이를 꽉 깨무느라 그런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발음이 다소 뭉개져 있었다.

‘내가 초설을 데려간 것도 아닌데, 왜 저런담.’

속으로 짧게 혀를 찬 시후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의뢰 넣으려고 하는데요.”

“이쪽 방으로.”

그를 따라 도착한 방은 문이 삼중으로 되어 있는 특수한 방이었다.

하기야, 악양루는 공개적으로 노출된 하오문의 지부인 만큼, 대화를 엿들으려는 무리가 적지 않을 것이었다.

‘어차피 들어도 상관없지만.’

“의뢰 내용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며······.”

“모용세가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시후가 부연 설명을 끊으며 말하자, 장 총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신의 말이 끊긴 것 때문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등장한 ‘모용세가’라는 이름 때문인 게 분명했다.

“모용세가는 지금 반쯤 봉문한 상태라서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비용을 산정하면······.”

“아, 시시콜콜 다 필요한 건 아니고요. 조건은 최근 누가 출입했는지, 마지막으로 출입한 사람이 언젠지 이것만 알면 돼요.”

“그렇다면······ 거리와 위험 부담 비용을 생각해서, 금 서른 냥을 받겠습니다.”

시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폭리다.

단순히 요녕으로 연락만 취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을 개인적 앙심으로 부풀린 비양심적인 폭리.

하지만, 그의 말에 시후는 시원하게 품에서 금 서른 냥을 꺼내 던졌다.

장 총관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실컷 웃어라.’

그가 돈을 챙기자, 이번엔 시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의뢰 신청서를 작성해야죠.”

“예?”

그의 얼빠진 대답에 시후의 입가에 어려 있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의뢰 신청서를 작성하자고요. 금 열 냥 이상의 의뢰에서는 작성하는 게 관례잖아요? 빨리 가지고 와 주시죠.”

투두둑.

장 총관의 손에 들려 있던 돈들이 바닥을 굴렀다.

한순간에 피가 모두 빠져나간 듯, 사색이 되어 버린 그가 손을 벌벌 떨었다.

그의 모습을 본 시후는 턱을 치켜들었다.

* * *

시원하다고 말하기엔, 12월의 해풍은 살을 저미듯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하지만, 시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망망대해를 훑어보고 있었다.

“이쯤 되면 놓쳤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은데.”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다······.”

시후의 혼잣말을 제갈려가 받아 주었다.

시후가 뒤를 돌아봤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곳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 있진 않았다.

지난 닷새 동안 수로채를 추적했고, 그 말은 땅을 밟아보지 못한 기간이 그와 동일하다는 걸 의미했다.

덕분에 제갈려는 뱃멀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닥이라도 청소 중이냐?”

바닥을 나뒹구는 제갈려를 향해 비아냥거리며 물었지만, 시후의 도발에도 그녀는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꼴을 보아하니 축포가 터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는듯했다.

물론, 입으로 터지는 축포가.

“그 상태로 토하면 볼 만하겠는데.”

“일어나면······ 당장이라도 토할 거 같아.”

“애꿎은 사람들 고생시키지 말고, 저기 난간에 가서 물고기 밥이라도 줘.”

입을 웅얼거리는 모양새가 욕을 퍼붓는 거 같았지만, 입속에서 맴도는 옹알이에 그치는 듯했다.

잠시 후, 한계에 도달했는지, 제갈려는 난간으로 달려가 눈물 콧물과 함께 제3의 걸쭉한 액체를 쏟아 내고 있었다.

“차라리 저 멀리 수평선이라도 보고 있어. 그러면 멀미가 조금 가실 거야.”

제갈려는 눈물을 쓱 닦으며 코를 풀었다.

곧 태연한 얼굴로 손에 묻은 코를 난간에 문지르는 모습에 시후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진짜 더러워 죽겠네.’

“그보다, 육지에는 언제 올라간대?”

“글쎄, 또 교초혼 장로가 고집을 피우고 있나? 아, 가까이 오지 마.”

아직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옷에 문지르는 모습을 보자, 시후는 절로 식욕이 떨어졌다.

‘깨끗한 걸 봐야 한다.’

시후는 고개를 돌려 다시 주변을 찬찬히 훑었다.

“응? 배를 돌리는데?”

제갈려의 중얼거림에 시후는 가장 선두에 있던 주작단의 배를 바라봤다.

그녀의 말대로 배는 180도로 선회하고 있었다.

“하기야, 바다로 나온 이상 어떻게 잡을 거야? 어차피 배를 수리하려면 포구로 들리거나 해야 할 테니, 그때를 노리는 게 현명하지.”

제갈려의 말은 현실성이라곤 없었다.

해안에서 대기 중인 게 아니라면 그들이 언제 나타날 줄 알고 노리겠는가.

사실상 수로채를 잡는 방법은 없었다.

적어도 그들이 알아서 강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바다 멀리 나갔을 때는 파도가 거칠었지만, 연안으로 다가오자 점차 배의 흔들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던 사람들은 빠르게 본래의 혈색을 되찾았다.

그리고 몇몇 사람은 땅에 내리자마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중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제갈려였다.

시후는 땅에 얼굴을 비비는 그녀를 뒤로한 채 목일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 두고······.”

“관과 협조를 좀 더 공고히 할 필요가······.”

목일자가 의견을 제시하면 교초혼은 딴지를 걸기 일쑤였다.

시후는 주변을 슬쩍 맴돌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지만, 교초혼 때문에 대화의 진전이 없어 다시금 뒤로 물러났다.

제갈려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시후가 일어나라고 잔소리라도 하려는 찰나,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던 소년이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다만, 그 속도는 기어 다니는 것보다도 느렸다.

‘검을 찬 무림인들이 사방에 있기 때문이겠지.’

시후가 곁으로 다가가자 소년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차, 차시후 대협 맞으시죠?”

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품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하, 하오문에서 왔습니다.”

그 말에 시후는 속으로 감탄했다.

고작 닷새 전이였다.

악양루에 의뢰를 넣었던 때가.

악양에서 심양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만 해도 사천리는 훌쩍 넘을 것인데, 아무리 강소성 끝자락에 왔다고 한들 지금 도착할 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하오문에서도 계속해서 지켜봤다는 거겠지.”

“예?”

“아냐, 그만 가 봐.”

손을 휘휘 내젓자 소년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다리를 질질 끌며 멀어졌다.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자신이 부탁했던 의뢰는 간단했기에 종이에 적힌 글자는 간단했다.

「모용세가에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인원은 고용인 팔남이와 개똥이이며, 그 날짜는 12월 4일로 지난 엿새간 나왔던 인원은 없습니다.」

당장 날짜를 확인했다.

12월 11일.

요녕에서 강소성까지 하루 만에 도착한 놀라운 정보력에 감탄할 새는 없었다.

여기 적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늦어도 일주일 내로 모용세가에 도착해야만 했다.

“어허! 그 역할을 누가 한단 말입니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립니다!”

시후의 귓가에 기어코 언성이 높아진 목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시, 교초혼이 연이어 딴지를 걸며 쓸데없는 제안을 했을 것이다.

시후는 두 사람에게서 관심을 거두며 주위를 둘러봤다.

땅과 격렬한 포옹을 마친 제갈려의 옷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누구 찾아?”

“아니, 누가 오지 않을까 싶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곧바로 종이를 달라는 듯 손을 뻗었다.

‘못 줄 것도 없지.’

종이를 받아든 그녀의 표정이 더욱 괴이하게 변했다.

사실, 시후가 이 정보만 알고자 하오문에 의뢰를 넣은 건 아니었다.

이 의뢰는 미끼에 불과하다.

“왔다.”

시후가 중얼거리자 제갈려는 그의 시선을 쫓았다.

개방도였다.

게다가 우측 허리춤에 매달린 다섯 개의 매듭은 지위가 제법 높은 인물임을 의미했다.

그의 안색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곧바로 추나행을 향해 달려왔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추나행의 귀에다가 몇 마디 말을 내뱉었다.

남궁미와 헤어지고 난 뒤, 때가 꼬질꼬질 묻어 시커멓던 추나행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뺨을 짝짝 때렸다.

“목 장로! 교 장로! 이리로 오시오!”

서슬 퍼런 그의 목소리에 한참이나 열을 올리던 두 사람은 눈치를 살피며 다가갔다.

그 뒤로도 추나행은 각 문파에 지위가 있는 인물은 모조리 불러 모았다.

덕분에 땅에 내려와서 기뻐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무슨 일이지?”

“설마 또 배를 타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그거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일이 터진 거 같은데······.”

이곳저곳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막을 둘렀는지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에 어려 있는 감정을 읽기는 쉬웠으니깐.

한참이나 이어졌던 그들의 대화는 한 식경이 훌쩍 넘어서야 끝을 맺었다.

따로 인원을 모을 필요는 없었다.

다들 주변에 모여 있었으니까.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 추나행이 앞으로 나섰다.

모두 그의 입을 바라봤다.

하늘도 심각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것일까.

간간이 불어오던 바람도 멎었다.

추나행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수로채 추적은 잠정적으로 멈춘다. 그 대신, 우리는 요녕으로 갈 것이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따가운 시선을 한몸에 받은 그는 멀리 북녘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북동쪽이었다.

“모용······ 모용세가가······ 멸문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저 멀리 북녘에서 날아온 듯 아주 서늘했다.

모두의 간담마저 얼려 버릴 만큼.

- 61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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