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40화 북경으로 (2)
마구간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철우는 제갈려와 함께 등장한 시후에게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내었다.
“같이 가게 됐어.”
짧은 말 한마디에 모든 걸 함축한 시후였지만, 철우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지켜보던 제갈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로 끝이야?”
“려 누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 그래”
덕분에 옆에서 지켜보던 시후는 소리 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후가 말에 올라타자, 뒤를 이어 제갈려와 철우도 각자 말에 올라탔다.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철우는 말에 올라탄 채로 뒤를 힐끔거리는 시후를 향해 물었지만, 시후는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말들은 며칠간 마구간에 묶여서 달리지 못한 분노를 풀어내듯, 시원시원하게 달렸다.
제남을 빠져나온 뒤, 관도에서 어느 죽립인이 가로막기 전까지는.
“누구냐!”
철우는 말을 즉각 세움과 동시에 땅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섣불리 공격을 이어가진 않았다.
아무리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 할지라도, 앞에 어떤 함정을 펼쳐 놨을지 몰랐기에.
시후도 철우의 뒤편에 섰고, 제갈려는 뭔가를 꺼내는 듯 말 위에서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다만, 죽립인이 손끝으로 죽립을 위로 올리자,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죽립 아래 드러난 얼굴은 대단한 미녀이자, 세 사람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나도 같이 가.”
천비령의 말에 가장 뒤에 있던 제갈려가 앞으로 나섰다.
“비령?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됐어. 북경까지만 같이 가.”
그녀의 말에 제갈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아미파에서······.”
“같이 안 가면 혼자라도 갈 거야.”
천비령의 고집에 제갈려는 당황했다.
같이 북경으로 간다면 제갈세가는 아미파에게 시달릴 수도 있었다.
지금의 집도 간신히 나왔는데 문제까지 일으킨다면, 곧장 집으로 소환될지도 몰랐기에 제갈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제갈려와 반대로 시후는 찬성이었다.
어차피 그녀는 검후를 찾으러 저 멀리 떠나야 했으니깐.
“혼자 가는 것보다는 넷이 더 안전하겠지. 게다가 두 사람은 가벼울 테니 말에 같이 타도 큰 무리는 없지 않아?”
세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제갈려는 철우의 입이 열리려고 하자, 한발 먼저 나섰다.
“난 반대야. 아미파에서 얼마나 지금 골치 아픈 상황일지 짐작도 못 하겠어. 검후와 척을 지는 상황까지 올지도 모르는데 그걸 넘어가자고?”
천비령은 제갈려를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하지만, 잘못한 게 없으니 그녀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찬성과 반대가 한 표씩.
두 사람의 시선은 동시에 철우에게 향했다.
“같이 가도 괜찮지?”
“제대로 생각해 보고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아미파와 검후의 부탁을 어기면서까지 비령을 도울지, 아니면 쟤를 이대로 돌려보낼지.”
“애한테 왜 협박이야?”
“이게 협박이라니, 누군가는 이런 문제로 협박을 하나 보네? 이건 단순히 조언인데?”
비령과 제갈려가 정답게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던 철우는 고개를 한차례 휘젓더니 곧바로 결정했다.
“혼자 가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걸 외면했던 우리한테 화살이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돌려보내면 된다니깐?”
“돌아가실 겁니까?”
철우의 질문에 천비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가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강제로라도 돌려보내야······.”
“누가 누굴 강제합니까?”
평소와 다르게 철우가 핵심을 찔렀다.
누가 천비령을 강제로 돌려보낼 것인가.
철우의 시선에 시후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제갈려는 곧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떨구었다.
“난 동의 안 한 거야. 둘이서 알아서 해.”
제갈려는 즉시 말 위에 올라타 배를 걷어찼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앞으로 달려가는 제갈려를 바라보던 시후는 철우와 눈이 마주쳤다.
“저랑 같이 타면 저녁도 못가서 말이 퍼질 겁니다.”
하긴, 철우 혼자만의 무게도 상당한데 거기에 아무리 가볍다고 한들 천비령까지 더해진다면, 오늘 저녁은 푸짐한 말고기를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덕분에 시후의 흑마는 세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푸르르.
투레질하는 흑마를 다소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시후는 천비령을 돌아봤다.
위아래로 쭉 훑어봤지만, 아무리 무겁다고 한들 둘이 합쳐서 철우보다야 무겁겠는가.
시후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쉬웠지만 단박에 말에 올라탔다.
그리곤 쭈뼛쭈뼛 서 있는 천비령을 바라보곤, 말 뒤편을 턱으로 가리켰다.
“야, 타.”
* * *
철우는 제남에서 북경까지 말을 타고 이틀이면 충분하다 호언장담했지만, 그건 아무런 방해 없이 달릴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제남을 떠난 다음 날 점심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멈출 기세가 없었다.
“무슨 놈의 가을비가 이리도 많이 오는지 모르겠네. 철우야 언제쯤 그칠 거 같아?”
“글쎄요······. 저도 이 시기에 하북에서 비가 이렇게 내리는 건 처음 보는지라.”
철우도 예상 밖의 상황에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비구름이 가득 낀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령의 얼굴에도 짙은 그늘이 내렸다.
“초조해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지금까지 찾아오지 않았다면,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찻잔을 어루만지던 제갈려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비령은 뭔가 잔뜩 물어보고 싶은 듯했지만, 제남을 떠나오면서 했던 제갈려의 행동에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다.
“아미파에서는 사천으로 돌아간다고 했지?”
“응? 아, 응!”
“아미파도 제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도망친 너를 찾을 생각을 하긴 어려울 거야. 기껏해야 개방에 부탁하는 정도일 텐데, 개방이 지금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널 아미파로 데려다줄까? 글쎄, 내 생각에는 그럴 것 같지 않아.”
제갈려는 말을 길게 내뱉곤 손에 쥔 찻잔을 홀짝였다.
덕분에 비령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자신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제갈려가 다시금 말을 걸어 줬기 때문일까.
‘둘 다일 수도 있겠지.’
제갈려의 말로 물꼬를 튼 두 사람의 대화는 한두 마디씩을 계속 주고받더니, 언제 싸웠냐는 듯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그러던 비령이 잠시 곁눈질로 시후를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옆에 놓인 창이지만.
“그런데 그 창은 어디서 난 거야?”
“제갈세가의 창고에서.”
“과연 제갈세가네. 얼핏 봐도 예사 물건이 아닌데 창고에 있다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 ‘보통’ 창고가 아니라 ‘보물’ 창고였을 테지만.
그에 질겁한 제갈려가 손을 내저었다.
“저런 물건이 창고에 있는 집이 어디에 있어? 저건 할아버지께서도 아끼는 물건이야.”
“하긴······. 그보다, 그 귀한 물건이 왜 쟤한테 있어?”
“선의를 표한 보답이지.”
“자꾸 헛소리만 계속할래?”
시후의 대답에 으르렁대던 제갈려는 품에서 천로수변을 꺼내 들었다.
단, 그건 시후에 대한 협박이라기보단 천비령의 낯빛을 새파랗게 바꾸는 데 일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비령은 저 물건으로 펼친 진법에서 한바탕 곤욕을 치렀기에,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그런 비령을 본 제갈려는 서둘러 천로수변을 품에 넣곤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정말 장백산까지 혼자 갈 수 있겠어?”
“길만 따라가는 건데, 못 갈 건 없잖아? 아, 장난이야 장난. 사람들 틈바구니에 숨기도 하면서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할 거야.”
“정확히 장백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굳이 그런 고생을 해야 해?”
“어차피 내가 근처에 가면 사부님이 알아채지 않을까?”
둘의 이야기를 듣던 시후는 잠시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굉장한 불안감.
너무나도 강렬한 느낌에 시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집중했다.
‘뭐 때문이지? 장백산이라는 단어가 문제인가? 아냐,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 비령이 검후를 찾아 헤맨다는 게 문제인가? 그것도 원래 일어나야 할 일 중 하나이니깐 상관없어. 도대체 뭐가 틀어졌지?’
분명 비령과 관련된 일일 것이다.
“장백산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그러는 거야?”
“음······. 한, 열흘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거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아주 천천히 이동했을 그녀가 자신들과 합류하여 기간이 단축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시후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날 것 같았지만, 간신히 흥분된 마음을 억눌렀다.
“고작 열흘 정도 찾으려고 가는 거라면, 그냥 안 가고 말겠다.”
시후의 말에 비령의 고운 아미가 꿈틀거렸다.
폭탄은 두었으니, 심지에 붙을 붙일 때다.
“아, 뭐 사부님을 향한 마음이 일주일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뭐? 지금 말 다 했어? 어디가? 야!”
시후의 비아냥에 잔뜩 뿔이 난 천비령이 소리쳤지만, 시후는 그녀를 무시한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
어디서 배웠는지 몰라도, 아래에서는 어지간한 왈패들도 하지 않을 욕이 마구 들려왔다.
이로써 그녀가 장백산을 내려오는 시기는 조금 늦춰질 것이다.
물론, 이번 발언으로 인해 그녀와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겠지.
하지만, 그녀가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 * *
비는 그쳤지만, 이틀간 쏟아진 비로 인해 길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진창을 마구잡이로 내달릴 수도 없었기에 이른 저녁 시간이 돼서야 북경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정말 바로 갈 거야?”
“당연하지!”
질문은 제갈려가 했지만, 대답하는 비령의 시선은 시후에게 꽂혀 있었다.
시후는 한쪽 입꼬리를 미묘하게 끌어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
그 모습을 본 비령이 이를 꽉 깨물며 곧장 뒤돌아섰다.
떠나는 비령을 붙잡으려던 제갈려는 곧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시후를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비령을 몰아붙인 거야?”
“다 네가 모르는 이유가 있단다.”
“그 이유를 말해 보던가?”
제갈려가 사유를 캐물었지만, 시후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말을 몰았다.
덕분에 둘 사이에 있는 철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시후는 그런 철우에게 막 생각났다는 듯 말을 걸었다.
“며칠 신세 좀 져도 괜찮지?”
“아, 물론입니다.”
“대답 안 해 줄 거야?”
“난 어디 들렀다가 가야 할 곳이 있으니 먼저 가.”
시후가 아예 대놓고 무시하자, 이내 제갈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으르렁거리며 앞을 가로막았다.
“할아버지가 이러라고 자운유성창을 주신 건 아닐 텐데? 어디 가는 거야?”
“개인적인 볼일을 보러 가는데 내가 왜 너한테 보고해야 해?”
“그럼 가지 마.”
제갈려의 억지에 시후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졌다.
‘지금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시후는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제갈려의 귓가로 입을 가져다 댔다.
“청홍검을 준다면 알려 주지.”
제갈려가 급히 철우를 바라봤지만, 철우는 둘 사이의 문제에 끼어들기 싫은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이를 꽉 깨물던 제갈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앞으로 이런 협박은 씨알도 안 먹힐 줄 알아.”
제갈려는 제법 화가 났는지 발을 쿵쿵 구르며 걸음을 돌렸다.
시후는 그 뒤를 따라가려는 철우에게 다가가 말 고삐를 건네주었다.
“문을 지키는 위사들에게 미리 말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면 고맙고.”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 시후는 북경에서 북경반점을 찾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김서방을 찾는 일과 다름없을 줄 알았지만, 지도에서 북경반점을 검색하자 단 한 곳만이 떠올랐다.
덕분에 시후의 표정은 떨떠름하게 변했다.
“덕분에 발품 팔 일은 없겠네.”
게다가 거리도 멀지 않았다.
북경의 화려한 거리에도 골목길은 존재했고, 북경반점은 후미진 골목길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쉽게 찾아왔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하오문이 그사이에 망했나?”
시후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혹시나 해서 문을 슬쩍 밀어보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안을 살펴봤지만, 역시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깜짝 파티라도 해 주려고 이러나······.”
한숨을 내쉬며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퀴퀴한 냄새가 맴돌았다.
사용하지 않는지 제법 오래된 듯했다.
뽀얗게 쌓인 먼지에 시후의 발자국이 외롭게 새겨졌다.
“거기 사람없······.”
소리치려던 시후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분명 처음에 들어올 땐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새 구석 의자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이었다.
“천변이가 전해 준 서찰은 들고 있나?”
‘이미 알고 있었군.’
노인의 말에 시후는 품에서 하오문주의 서찰을 꺼내 들었다.
곧 서찰을 펼쳐 직인이 찍힌 서찰 아랫부분을 보여 주자,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옆으로 밀었다.
[‘하오문 총타의 비밀통로(1)’를 찾았습니다.]
- 41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