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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39화 (21/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39화 북경으로 (1)

종일 뒤숭숭한 하루였다.

남궁 남매가 떠나간 뒤 이를 캐물어 보는 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시후는 모르쇠로 나왔지만, 말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법.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남궁무의 죽음은 삽시간에 용봉지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남궁무의 죽음이 주는 무게감은 대단히 컸다.

덕분에 사람이 둘만 모이면 그 이야기를 하느라 시끌벅적했다.

“목만 돌아왔다고 하던데, 어떤 미친놈이지?”

“좋지 않아. 뭔가 일어날 거 같아.”

“종남은 돌아갈 준비를 하는 거 같던데?”

“우리도 돌아가려나?”

“그럼 용봉지회는 어떻게 되는 거야?”

게다가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머리만 덩그러니 돌아온 남궁무의 죽음에, 일단 문파로 돌아가서 상황을 지켜보자는 추세가 주를 이루었다.

덕분에 용봉지회의 마무리까지 이틀이 남았지만, 떠나는 문파가 속출했다.

오죽하면 당가는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건만 짐을 싸고 떠났겠는가.

덕분에 커다란 숙소에는 시후와 철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문제는 철우였다.

팽가에서는 철우 혼자만 온 터라, 홀로 북경으로 가야 하는 그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형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북경까지 같이 갈까?”

“아, 아닙니다. 제가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 팽철우! 혼자 가도 충분합니다.”

가슴을 두들기며 호기롭게 말했지만, 시후는 보았다.

어젯밤 지현에게 혹 집안의 어른들이 올 때까지 제갈세가에 머무를 수 있겠냐 물어보는 모습을.

그런 팽철우를 바라보던 시후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조금 그를 가지고 놀릴까 싶었지만, 다음 임무가 북경에서 이뤄지는 걸 생각해 볼 때, 그 일대에서 힘깨나 쓴다는 팽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적당히 자존심을 세워 줘야지.’

“흠, 그럼 나는 어디 북경으로 같이 갈 사람을 구해 볼까······.”

시후의 말에 철우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저렇게 뜨니 한결 순해 보이는걸.’

“시후 형님도 북경에 가십니까?”

“응, 그런데 이 시국에 홀로 가려니깐 무서워서 큰일이네. 어디 같이 가 줄 사람 없으려나.”

“으하하하, 시후 형님. 제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제가 동행해 드리겠습니다!”

국어책 읽듯 딱딱한 말투였지만, 철우는 그걸 분간하지 못했는지 호탕하게 가슴을 두들기며 외쳤다.

정말 순진하기가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의 호언장담에 시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면 고맙지.”

“흐흐, 그럼 출발하기 전에 배부터 채우러 가실까요?”

“먹성하고는······. 그래, 가자.”

철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식당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그 웃음이 밥을 먹는다는 행복감 때문인지, 집으로 가는 길에 든든한 아군이 생겼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식당에 다다르자 두 사람의 걸음은 잠시 멈추었다.

“응?”

식당 안에서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대화를 나눈다기보다는 말다툼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침부터 왜 싸우는 걸까요? 나온 음식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철우의 혼잣말에 시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녀석다운 생각이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목소리 주인공의 뒷모습이 보였다.

“절대 안 가요!”

“가야 합니다. 검후께서 직접 본 파에 부탁하셨는데, 그렇게 고집부린다고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사부님이 가신 곳만 해도 여기서 삼천리인데, 그 곱절은 떨어진 아미파로 같이 가자고요? 싫어요. 죽어도 안 가요.”

“그래서 말하지 않습니까. 제갈세가에 남아 있겠다고 약속하시면······.”

“그냥 사부님한테 갈 거라고요!”

이야기를 계속 듣자 하니, 아미파에서 많이 양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검후가 아미파에 천비령을 부탁했으니, 정현 사태도 웬만해선 아미파까지 그녀를 데리고 가고 싶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제갈세가에 부탁하는 방법을 이야기했지만, 천비령은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고 있었다.

시끄러운 말다툼에 철우는 접시에 음식을 담은 뒤 멀찍이 떨어져 앉으려고 했지만, 시후는 그 팔을 잡아당겼다.

“왜 멀 리가? 여기 앉자.”

시후가 앉은 자리는 아미파의 바로 옆이었다.

철우가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완강히 거부했지만, 시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젓가락을 놀렸다.

덕분에 울며 겨자 먹기로 철우는 불편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뜬금없는 시후와 철우의 등장에 정현 사태와 천비령의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심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고집을 피워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만약 천 소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경우, 검후 님을 뵐 낯이 없습니다.”

“제가 고집 피워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면 되잖아요!”

“그럴 순 없습니다.”

천비령이 제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봤자, 끊임없이 같은 말만 내뱉는 정현 사태 앞에선 소귀에 경 읽기였다.

씩씩거리는 천비령을 지켜보던 시후는 젓가락으로 접시를 살짝 두들겼다.

“언제 출발할까? 북경까지 거리를 생각한다면 어찌 되었든 꼬박 이틀은 걸릴 텐데.”

“저희가 타고 온 말들이 워낙 잘 달리긴 하니, 점심에 출발한다면 내일 저녁에는 당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북경이 그렇게 가까웠나?”

북경을 거론하고도 재차 북경을 입에 올렸다.

옆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후보다 한참이나 둔한 철우는 그 시선을 느끼지 못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게다가 이곳부터 북경까지는 길이 매우 잘 닦여 있어서 말이 달리기에도 좋죠.”

“며칠간 마구간에 묶여 있었을 텐데, 북경까지 간다면 녀석들도 신나게 달리겠군.”

“아주 줄기차게 달릴 테죠. 그럼, 점심 먹고 출발하는 거로 알고 지현 형님께 말해 두겠습니다.”

잠시 후, 곁눈질로 천비령을 흘겨보니 그녀도 마찬가지로 이곳을 힐끔거리는 게 얼핏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던 시후가 피식 웃으며 젓가락을 놀리던 중, 식당 입구로 들어서는 제갈려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누군가를 찾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그 모습에 시후의 가슴 한편에는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곧 시후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씩 웃으며 시후에게 다가왔다.

시후는 조금 더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께서 보자고 하시네요.”

왜 슬픔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시후는 흘러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젓가락으로 접시를 가리켰다.

“이거만 다 먹고 가도 돼요?”

“뭐,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겠지만, 편하실 대로 하세요.”

시후는 젓가락을 집어 던지듯 식탁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라질 것.’

* * *

시후는 귀를 후벼팠다.

다소 건방지다면 건방질 수도 있는 그의 행동에도 제갈마혁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제가요?”

“그래.”

“다른 사람을 부르려다가 착각했다거나, 노망이 들어서 말이 헛나오신 건······ 끄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후의 정수리에는 장죽(長竹)이 닿아 있었다.

덕분에 시후는 청심각 바닥이 얼마나 깨끗한지 확인하듯, 열성적으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고놈 주둥이가 말썽이구나. 아직 십 년은 까딱없다.”

‘천무 온라인의 오픈까지도 살아 있는 NPC니, 최소 이십 년은 끄떡없겠지.’

시후는 부어오르기 시작한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통이 경감되었음에도 두개골이 바스러지는 느낌이었다.

시후는 눈물이 살짝 맺힌 눈으로 제갈마혁을 노려보았다.

그런 시후의 시선에도 제갈마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보내기는 싫지만······.”

“그럼 내보내지 않으심이······. 크흑.”

“이놈아, 말 끊지 말거라.”

혹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곳에 다시금 닿은 장죽에 시후는 비명조차 크게 내지르지 못했다.

‘빌어먹을! 혹 맞았다고!’

악을 쓰고 싶었지만, 압도적인 힘은 모든 걸 정당화시켰다.

시후는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로 다짐했다.

“아무튼, 발목에 족쇄라도 채우지 않는 이상 집을 나갈 것이 분명하니, 네가 조금 붙어서 지켜봐 주어라. 길어야 반년이다. 생채기 나는 정도는 신경 안 쓸 테니, 팔다리만 온전하게 데리고 오너라.”

“만약에, 정말 만약의 가정인데, 팔다리 중 하나라도······.”

“네 녀석도 외팔이 외다리로 살아가고 싶다면.”

“안 합니다. 안 해요.”

무사히 데려오지 못한다면, 제갈세가와 척을 지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할 이유가 없었다.

팔황 중 하나인 제갈마혁과의 관계가 틀어진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게다가 시후는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시후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물씬 풍겼다.

다만, 상대는 아주 효과적인 대화 수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제갈마혁은 품에서 천로수변을 꺼내 들었다.

“집어넣으시죠.”

“할 테냐?”

“다시 안 한다고 말하면 그걸로 뭘 하실 겁니까?”

“별거 있겠느냐? 생각이 바뀔 때까지 잠시 멸세지옥(滅世地獄)을 경험하면 되는 거지.”

일전에 천비령이 잠시 경험했다가 탈진했던 그 악랄한 진법을 마치 동네 꼬마에게 사탕을 주겠다는 듯 태연히 말했다.

‘미친 노인네 같으니라고.’

돌아가는 꼴을 보니 거부할 수는 없어 보였다.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시후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기간제 임무 ‘제갈세가 차녀 생존기’가 진행됩니다.]

무시무시한 임무 명을 보자마자 시후는 곧장 취소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생존기라니.

얼마나 지독한 일이 펼쳐질지 임무의 이름에서부터 암시되어 있었기에 시후는 뒷골이 당겼다.

억지로 호랑이 굴에 들어왔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뭘 주실 겁니까? 제 몸값이 그리 싸구려는 아닌데요?”

“고작 이쑤시개 같은 창 좀 휘두르는 거로 허풍이나 칠 생각이더냐?”

“아니, 그거야 어르신에겐 창 좀 휘두르는 수준이겠지만······.”

“됐고. 일단 그 구질구질해 보이는 쇠꼬챙이를 들고 따라오거라.”

시후가 대답할 새도 없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심각을 나섰다.

바닥에 기대놓은 자신의 사모를 바라보던 시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구질구질한 쇠꼬챙이라고?

말하는 모양새가 대단한 신병이기를 주겠다는 것 같았다.

기대감에 부푼 시후는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제갈마혁은 청심각을 나와 내원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갈마혁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던 내원 무사들은 뒤에 따라오는 시후를 막으려고 했지만, 물러나라는 제갈마혁이 가벼운 손짓에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사라졌다.

몇 번이나 똑같은 상황을 겪으며 다다른 곳은 텅텅 비어 있는 공터였다.

다만, 공터에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안개가 어려 있었다.

신의가 숨어 있던 경각혈향진과 비슷해 보이는 곳이었다.

“여기 있거라.”

그는 주변을 둘러보던 시후에게 짧게 말하곤,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가 모습을 감춘 뒤 100 정도를 세었을까.

안개 속에서 나온 제갈마혁의 손에는 시후가 매고 있던 창과 얼추 비슷한 길이의 창이 들려 있었다.

“혹시라도 잃어 버렸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도록 잘 간수해야 할 게다.”

“얼마나 대단한 무기길래······.”

시후의 중얼거림은 금방 멎었다.

[자운유성창(子雲流星槍)을 획득했습니다]

[자운유성창]

「고금을 통틀어 오대 창술가였던 조자룡의 진(眞)무기입니다.

모든 창술을 1성 더 높게 펼칠 수 있습니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다’라는 속담을 잠식시키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무기로 절대 부러지지 않습니다.

진기의 소모가 1할 늘어나지만, 모든 창술의 위력이 3할 상승합니다.

100일간 치성을 드린 천령목의 기운으로 사특한 기운이 감히 침범하지 못합니다.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적을 상대할 시, 내공의 소모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청홍검(靑紅劍)을 함께 소지할 시 모든 효과가 2배로 상승합니다.」

시후는 숨이 멎을 뻔했다.

한참이나 눈을 떼지 못하는 시후의 귓가에 제갈마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후께서 시장통에서나 팔 법한 무기를 들고 다니던 영창정후에게 선물했다는 무기다. 네가 들고 다니기엔 터무니없이 좋은 무기이니, 아침마다 일어나면 창을 놓고 절을 해야 할 게다.”

남들이 들었으면 비웃을지 몰라도, 알람을 읽어나가던 시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눈이 멈추었다.

‘청홍검.’

조자룡이 하우은에게 빼앗은 무기이자, 그의 이름과 더불어 거론되는 명검.

그가 죽고 난 후, 같이 무덤에 잠들었던 청홍검은 최근 조운지묘의 도굴 사건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시후의 입꼬리가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시후는 제갈마혁을 돌아보며 허리를 수직으로 꺾으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흘흘, 썩은 동태눈 같더니, 갑자기 생기가 도는구나.”

“이런 귀한 물건을 주시는데, 당연하죠.”

따악!

“끄아악!”

“누가 준데? 요놈아, 빌려주는 거다”

또다시 정수리에 닿은 장죽에 시후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바닥을 구르며 시후는 그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 봤지만, 준다는 말은 없었기에 머리를 감싼 채 욕을 내뱉었다.

‘쌍.’

물론, 입 밖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 40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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