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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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용봉지회 (1)
용봉지회.
구파일방과 팔대 세가를 주축으로 이뤄지며, 16세 이상 25세 이하의 후기지수들로 이뤄지는 그들만의 축제.
간혹 그들과 친하게 지내거나 촉망받는 중견 문파의 후기지수들이 참여하는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현월문의 소검후 천비령이 참가했으니깐.
남궁미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소검후에게 쏠린 시선이 어마어마하네요.”
“아무래도 검후의 제자라니······ 다들 마음이 동하겠지.”
주위의 시선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용봉지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명실상부 그녀였다.
남궁천은 주변을 둘러보며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다들 그녀에게 비무 신청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구나.”
“소검후가 열여섯에 절정에 올랐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요?”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 그녀의 검을 꺾을 수 있다면, 단박에 이름을 떨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혈안이 되었구나.”
말을 끊은 남궁천의 시선이 시후를 향했다.
남궁미와 철우까지도.
세 사람의 시선이 쏟아지자 시후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본 남궁천이 가볍게 웃음 지었다.
“물론, 우리 차 아우 덕분에 그 기회가 훨훨 날아갔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겠지.”
힐난이라기보다는 재밌는 일을 기대한다는 듯한 어투였다.
그런 남궁천의 반응에 시후는 고개를 돌려 천비령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시후와 눈이 마주치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어제의 피로가 다 안 풀렸나 보네요.”
남궁미의 말처럼 천비령의 얼굴은 아직도 피로에 절어 있었다.
하긴, 어제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걸 생각한다면, 이렇게 개회식에 얼굴을 들이민 것만 해도 대단했다.
지독한 근육통은 물론이거니와, 내공이 다 회복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내공이라는 녀석은 한 톨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불리기 쉽지만, 최후의 최후까지 짜낸다면 곱절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니깐.
시후도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인사에 답하곤 앞을 보았다.
그곳에는 이번 용봉지회의 개회식을 위해, 현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중이 막 단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단상에 올라 주위를 가볍게 둘러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올라와 보니, 34년 전 용봉지회에 처음 참여했던 때가 떠오르는군.”
내공을 실은 목소리는 낮지만 깊은 울림을 가졌기에 멀리까지 생생히 들렸다.
덕분에 수군거리는 소리는 한순간 멈추었고, 천비령을 향했던 대다수의 시선은 제갈중에게 향했다.
시선이 모이자 잠시 말을 끊은 제갈중은 진지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의 나는 저 아래서 위를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지. ‘저 늙은이 말 참 길구나’라고.”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피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제갈중도 그에 맞춰서 웃음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만, 소림사 스님들은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34년 전, 용봉지회는 소림사에서 이뤄졌으니깐.
제갈중은 소림사 쪽을 바라보며 손사래를 쳤다.
“아,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니 소림에서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소. 자, 그때를 추억하며 짧게 끝낼 테니 나중에 딴소리 말고 잘 듣거라.”
다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가 다시금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가 오른손 검지를 펼쳤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알려 주마. 첫째, 만취하지 마라. 매년 술 먹고 난동부리는 녀석들은 절간에서도 나오더구나. 술을 마시는 건 좋으나 만취해서 말썽을 부린다면, 지회가 끝날 때까지 진법에 처박아줄 테니 알아서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의 말에 개방의 거지들이 울상을 지었다.
다소 불만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제갈중은 그쪽으로 눈빛조차 주지 않은 채 중지를 펼쳤다.
물론, 여전히 검지는 펼쳤기에 특정 손가락 모양을 취한 건 아니었다.
“둘째, 싸우지 마라. 혈기왕성한 나이인지라 술을 마시거나 해서 싸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당한 비무를 통해서 승부를 가려라. 그리고 그 비무는 무조건 각 문파 어른들의 참관하에 해라. 이를 어길 시 즉시 문파로 돌려보낼 것이고, 해당 문파의 장문인에게 엄벌을 내려달라는 서신을 보낼 것이다.”
좌중을 둘러보는 제갈중의 시선에 더는 장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약지까지 펼치었다.
“마지막으로 현월문 소속의 천비령은 비무를 절대 금한다. 이유는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이는 아버지께서 직접 내리신 말씀이니, 불만 있는 자들은 오늘 청심당으로 찾아가도록. 자, 개회식은 여기서 끝이니, 지회를 마음껏 즐기길 바란다.”
그 말을 끝으로 대다수의 시선은 천비령에게 쏠렸다.
곧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중 몇은 개회식이 끝나면 곧장 비무를 신청하고자 투지를 불태우던 자들도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사방에서 제각각 떠드는 통에 마치 시장통을 찾은 듯 시끄럽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을 본 제갈중은 가볍게 발을 가볍게 굴렀다.
쿵!
덕분에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목소리가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리곤 바닥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사항이기도 하지만, 각 문파 인솔자들의 의견도 반영되었으니 불만이 있거든 여기로 올라와서 이야기하거라.”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누가 올라가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는 빠르게 사그라졌다.
하지만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는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일 게 분명했다.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던 남궁천이 다소 불안한 눈빛으로 천비령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미파에서 입단속을 단단히 해야 할 텐데 말이야.”
“아무래도 했겠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우리나 아미파 사람밖에 없는데, 굳이 이야기를 퍼트릴 이유가 없지요.”
“그게 무슨······?”
남궁천과 철우의 대화를 듣던 남궁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반응에 남궁천이 그녀의 귓가로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소검후와 비무를 원하던 자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것이 무산되었으니 차 아우에게 원망이 쏠리지 않겠느냐? 피하기만 한다고 하더라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닐 것이다.”
그의 말에 남궁미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자리 잡았다.
덕분에 시후의 마음에 불쑥 불안감이 생겼다.
그렇게 느낀 건 비단 시후만이 아니었나 보다.
남궁천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궁미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구에게 말하였길래?”
“어제······ 소소와 수련이에게만······.”
“끝났군.”
아니나 다를까.
천비령에게 쏠려 있던 시선의 일부는 시후를 향해 있었고, 수군거림은 점차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에 어린 감정을 읽은 시후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에 담긴 감정은 결코, 호의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원망 가득한 그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시후는 이 일의 원흉을 바라보았다.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울상을 짓고 있는 남궁미의 얼굴을 바라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약간의 감정을 담아서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트리고 말았다.
‘이 요망한 것.’
* * *
가을 햇볕치고 적잖이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자니 절로 졸음이 몰려왔다.
덕분에 남궁미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 모습을 본 남궁천은 살포시 웃더니, 짐짓 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차 아우가 누구 때문에 저리 고생을 하는데······ 하품이나 하고 있고······.”
그에 남궁미는 서둘러 눈을 비비곤 연무장 중앙에 있는 시후를 바라보았다.
남궁천은 그런 동생의 모습이 귀여운지 살짝 머리를 헝클었다.
“뭐, 진짜 싫으면 비무를 받아 주지도 않았겠지만.”
오늘만 해도 벌써 8명을 상대했음에도, 시후의 얼굴엔 힘든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천비령을 이겼으면 모를까, 졌다고 소문이 난 시후에게 덤비는 자들은 그다지 수준 높은 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일과는 무관하게, 시후가 펼치는 변칙적인 공격을 겪어 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온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무당의 표창운처럼.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던 남궁천은 혀를 가볍게 찼다.
“쯧, 차 아우가 낭인 출신이라곤 하나, 초식조차 사용하지 않는 그저 그런 낭인으로 착각하고 덤비면······. 저런 꼴을 당하는 것이지.”
“크헉!”
남궁천의 짐작대로, 표창운은 시후의 공격을 피해 허공에 몸을 날렸다가 가슴팍에 목봉을 얻어맞곤 나가떨어졌다.
목봉 끝에 두꺼운 천을 덧대긴 했지만, 허공에서 반 장가량 날아간 것으로 봐선 결코 작은 충격이 아닐 것이었다.
최소 반나절은 요양이 필요해 보였다.
숨을 제대로 쉬기조차 힘든 듯, 꺽꺽대는 그의 곁으로 그의 사형이 다가왔다.
손가락을 튕겨 혈을 몇 군데 눌러 주자 표창운의 안색이 한결 평안해졌다.
“좋은 비무였습니다. 사제에게도 좋은 공부가 된 듯합니다. 그럼 이만.”
그는 짧은 인사와 함께 아직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표창운을 부축하며 자리를 떴다.
“확실히 날붙이가 없는 무기를 쓰니깐 시원시원하게 끝나는군.”
남궁천의 말에 시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조심할 필요도 없으니 한결 편하네요.”
“그렇다고 너무 힘을 과하게 주진 말게. 방금도 자칫 잘못해서 뼈라도 부러졌다면······.”
“에이, 팔다리를 두들겨보니 그리 뼈가 약한 친구는 아니던걸요. 아무튼, 조심하도록 할게요.”
“그게 좋을걸세, 누군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비무 자체를 못 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남궁천의 말에 시후의 어깨가 움찔했다.
이미 오전에 있었던 청성과 곤륜의 사고로 인해서 목검과 목봉 등을 사용할 것을 지시받았는데, 여기에 사고가 더해진다면······.
정말 남궁천의 말대로 비무 중지가 내려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빌어먹을 ‘증명’을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직 ‘증명’은 시작 단계에 불과했으니, 그의 충고대로 주의가 필요했다.
[임무 : 증명]
[용봉지회에 참석한 인원들이 소검후 천비령과의 비무를 하지 못해 불만이 가득합니다. 그녀를 대신해 비무에서 승리하여 불만을 잠재우십시오. - 진행률 : 16%.]
용봉지회에 참석한 인원도 많았고, 시후에게 비무를 청하러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오히려 이렇게 되고 나자 남궁미가 가볍게 입을 놀렸던 게 도움이 됐다.
오늘만 해도 여덟 명이나 찾아왔다.
그리고 점점 입소문을 탄다면 더욱 빠르게 진행률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빌어먹을 정도로 잘 오르지 않는 진행률에 있었다.
한 명당 2%.
아무리 용봉지회에 참석한 인원이 많다고 한들, 이대로 간다면 일주일 내내 비무만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지금까지 비무를 치렀던 아이들은 촉망받는 후기지수가 아니라, 용봉지회에 처음 참여한 16세 어린아이들에 불과했으니깐.
아마도 인지도가 높은 후기지수를 이기면 진행률이 높게 상승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응? 왜 빤히 바라보는가?”
“아뇨, 저녁 먹으러 가시죠.”
남궁천 수준의 인물을 이긴다면 팍팍 오를 것이다.
물론, 이길 수 있다면 말이지.
비록 그림과 여자에 눈을 돌려 무공을 다소 등한시하긴 했지만, 그래도 호랑이 새끼였다.
천비령과도 박빙을 이룰 만한 고수였다.
괜히 남궁천에게 도전해서 시간과 내공을 허비할 바에는 지금 자신에게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아이들을 두들기는 게 훨씬 나으리.
하지만,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두 명을 더 상대하고 나서 발생했다.
[‘증명’의 진행률이 20%에 달했습니다. 일류 미만의 무인을 상대로는 진행률이 상승하지 않습니다.]
“썅.”
- 33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