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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클리어 공식-19화 (1/201)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19화 신첨어 (4)

“대협!”

시후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초설이 거의 안길 듯 달려들었지만,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장 총관의 모습을 보았는지 달려오던 상태에서 천천히 멈추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죠.”

장 총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뒤돌아섰고, 시후는 우두커니 서 있는 초설에게 다가오라 손짓했다.

곧 종종걸음으로 곁으로 다가온 초설은 시후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처음 뵀던 곳으로요.”

“제 방에서 처음······ 아! 아래에서 보셨군요······.”

얼굴을 넘어 귓불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분명 머리를 올린다는 말을 떠올렸겠지.

한껏 붉어진 얼굴의 초설과 함께 도착한 문은 장 총관이 직접 열어 주었다.

“약조하셨습니다. 이 이후로······.”

“남아일언 중천금!”

“일구이언은 이부지자입니다.”

시후는 자신의 말에 사족을 덧붙이는 장 총관 덕분에 시후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신의에 이어서 장 총관까지.

갑작스러움 패드립에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알았으니깐, 패륜적 발언은 그만하고 이만 물러가세요.”

장 총관이 문을 닫자 그 너머로 발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약조?”

초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기엔 장 총관과 약속한 시간이 길지 않았다.

시후는 곧장 초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앗!”

갑자기 손목을 붙잡힌 초설은 잠시 당혹스러워했지만, 손목을 강하게 빼진 않았다.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수준에 그쳤고, 시후는 그런 초설을 이끌고 맞은편 문을 열었다.

초설이 노을을 맞이하며 나왔던 노대를 난간이 빼곡히 에워싸고 있었다.

그 난간 위에는 형형색색 초롱이 자리 잡아 주변을 아름답게 꾸며 주고 있었다.

난간 끝에 다다르자 저 아래 위를 올려다보는 남궁천의 모습이 보였다.

“저쪽 아래로 손이나 한번 흔들어 주시죠.”

“네? 아······ 네.”

시후의 말대로 손을 흔들어 주던 초설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여길 이렇게 꾸미시고······ 장 총관님을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진심을 담아서 부탁했으니, 제 간곡한 마음이 통한 거겠죠.”

개뿔.

협박과 타협의 결과물이었을 뿐이다.

만약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홍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초설을 뒤흔들겠다는 협박을 했다.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홍설이 보낸 편지를 전달하지 않겠다는 타협도 제시하니, 장 총관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밤공기가 선선하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초설의 모습은 마치 광고 속 연예인 같았다.

그 모습을 잠시 살피던 시후는 얼른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언니가 있을 북쪽을 바라보던 초설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술······ 잔인가요?”

“아, 장 총관한테는 이미 허락받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얼른 잔부터 받아요.”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장 총관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모자라 술까지 허락해 줬겠는가.

다만, 초설은 순수한 사람이었다.

초설은 시후의 거짓말을 순진하게 믿었고, 건넨 잔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본 시후는 곧바로 눈을 감았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 뒤 길게 내쉬었다.

또다시 닭살 돋는 말을 내뱉어야 할 때가 왔다.

시후가 눈을 떴을 땐, 다소 가벼웠던 분위기가 확 바뀌어 있었다.

“정주에 있는 그대의 언니를 대신해서 한잔 따라 주겠소.”

자신의 말에 정주에 있는 언니를 생각한 것일까.

그녀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술 대신 그녀의 눈물로 잔을 채우기 전에 시후는 서둘러 술병을 기울였다.

옥으로 만들어진 술잔에 투명한 미미주(味美酒)가 채워졌다.

여성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대표적인 과일주답게, 달콤한 과일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다만, 잔의 절반 이상을 채웠음에도 기울어진 술병은 세워질 기미가 없었다.

초설이 술잔과 시후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그만 따르는 게 어떻겠냐는 시선을 보내왔다.

시후는 기어코 잔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기울인 술병을 세웠다.

“달이 보이시오?”

“네? 네, 보여요.”

시후의 뜬금없는 말에 초설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술잔처럼 가득 찬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휘영청 밝은 달은 세상에 빛을 나눠 주고 있었다.

그 후로 시후는 한참 동안 말을 아꼈다.

시간이 제법 흐른 뒤 시후의 손끝은 초설이 붙잡고 있는 술잔으로 향했다.

“그 안에도 달이 보이시오?”

시후의 말에 초설의 시선이 찻잔으로 옮겨갔다.

투명한 술로 가득 찬 잔에는 조금 전 하늘에서 보았던 달이 자리 잡아 일렁이고 있었다.

순간, 초설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떨림은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들린 술잔의 달은 크게 일렁였다.

“지금 당장 홍설을 만나게 해 줄 수는 없지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사람이 만날 수 있게 도와주겠소. 지금 준 달은 그 증표라고 생각하시오.”

준비한 연극은 끝났다.

관객의 반응만이 남았을 뿐.

시후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초설의 얼굴을 응시했다.

한참 동안 잔을 응시하던 그녀는 입으로 달을 삼켰다.

[‘초설의 소원’이 완료되었습니다. 선행 조건이 충족되어 연계 임무 ‘1,500리를 뛰어넘어’가 활성화됩니다.]

[해당 임무는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는 NPC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일단은 성공이었다.

그놈의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는 NPC’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짐작 가는 인물이 하나 있긴 했다.

그 인물에 관해 물어보려고 초설을 바라봤지만, 술잔을 비운 초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깨너머의 그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누구야?”

뒤편에서 들려오는 날 선 목소리.

지금 시후가 있는 곳은 악양루 최상층이었고, 뒤에는 난간밖에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초롱 위에 올라선 한 명의 여인이 보였다.

초롱이 대나무 살과 한지로 만든 걸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광경이다.

하지만, 눈앞의 인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아, 이분은······.”

“처음 뵙겠습니다. 차시후라고 합니다.”

초설이 자신을 대신해 소개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괄괄한 그녀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남에게 미뤄선 곤란했다.

시후는 말을 끊고 당당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놈 봐라?”

그녀의 얼굴이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변했다.

초롱에서 훌쩍 뛰어내린 그녀가 눈앞에 내려섰다.

어린 외모에도 불구하고 경지를 짐작하기 힘든 여 고수는 ‘천무’를 통틀어 딱 두 명만 있었다.

그중 초설과 관계가 있다면 단 한 명.

“전여린 선배님을 뵙습니다.”

포권을 취하며 인사하자, 전여린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날 알아? 하긴, 그러니깐 별호를 생략했겠지?”

불노괴(不老怪) 전여린.

서후쌍괴와 더불어 칠괴의 일원인 그녀가 시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후쌍괴와 마찬가지로 괴(怪)가 들어간 이상, 성격에 문제가 있을지언정 악인은 아니었다.

게다가 전여린의 경우에는 정파 쪽에 조금 더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단, 그녀의 별호를 부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쉬이 늙지 않는 건 축복이지만, 전혀 늙지 않는 건 저주였다.

자신의 별호를 부르는 걸 극대로 싫어하는 전여린의 별호를 부른다는 건, 생살여탈권을 쥐여 주는 것과 진배없었다.

전여린은 십 대 후반에서 성장이 멈췄기에 초설보다는 키가 컸지만, 당연히 시후보다 머리 한 개 이상으로 자그마한 몸집이었다.

눈앞에 선 여린은 시후의 내려다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호기심이 가득했던 눈빛에 미약한 짜증이 어렸다.

“앉아.”

명령조.

그러나 시후는 발끈하기는커녕 바로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마치 기르는 개가 된 기분이었지만, 까딱 잘못해서 심기를 건드렸다가 주먹이라도 맞는다면?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죽는 법이다.

두 번 다신 죽기 싫었던 시후였다.

전여린은 고분고분 말을 듣는 시후를 한 번 흘겨보곤, 뒤편에 난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소협! 일 각하고도 반 각을 기다려 드렸는데, 이건 너무······.”

장 총관이 문을 벌컥 열며 당차게 들어왔지만,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마치, 뱀 앞의 개구리처럼.

그 모습을 본 여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지만, 딱히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는 아니었다.

“장 총관, 오랜만이네?”

“어, 언제 오셨습니까?”

“조금 전. 그보다······ 우리 장 총관 얼굴 핀 걸 보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봐? 아, 설마 나 없는 사이에 우리 설이를 괴롭힌 건 아니겠지?”

여린의 말에 장 총관이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무공이라곤 익힌 적도 없어 보이는 그였는데, 얼마나 놀랐으면 제자리에서 반 장을 뛰었을까.

“제, 제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하긴······ 그보다, 왜 들어왔어?”

“아, 저기······ 저자의 약속된 시간도 다 되었고······ 기, 기다리는 사람도 있기에······.”

말을 더듬더듬하면서도 끝까지 내뱉는 걸 보니, 돈을 향한 그의 집착을 알 만했다.

“아, 그거? 필요 없어.”

“네?”

“필요 없으니 돌려보내라고.”

여린의 단호한 대답에 장 총관은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지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입술을 꽉 깨물곤 전여린의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럴 순 없습니다. 이건······ 이건 월권입니다!”

무림의 문파는 어떻게 돈을 벌어들일까?

속가 제자를 받아들이는 문파는 기부금이 있을 테고, 표국이나 상단에 제자를 보내어 이름을 빌려주는 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오문에서 주로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은 하나였다.

무언가를 직접 운영하는 것.

그중 악양루는 하오문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사업장이었다.

장 총관은 그런 악양루를 지난 오 년 동안 맡아 오며 하오문에서 제법 입지가 있는 인물이었다.

다만, 초설이라는 최고의 패를 얻음과 동시에 전여린이라는 최악의 패도 같이 왔다는 점이 골치 아픈 점이었다.

지금, 그 최악의 패가 장 총관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월권?”

“네! 월권입니다. 이 악양루의 총관은 저! 초설은 악양루에 속한 기녀일 뿐입니다! 아무리······ 으헉!”

악을 쓰는 장 총관은 자신의 발치에 뭔가가 떨어지자 기겁하고 뒤로 물러났다.

전여린은 그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주머니를 던진 것에 불과했지만.

기겁하는 장 총관의 모습을 지켜보던 여린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며 열어 보라고 손짓했다.

모든 걸 뒤에서 지켜보던 시후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마터면 늦을뻔했다.

저 패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패가 맞을 것이다.

다만, 저 안에 든 물건을 알 리 없는 장 총관은 의심스러운 눈빛이 가득했다.

그는 허리를 숙여 주머니를 들었고, 주머니를 열어 보자 둥그스름한 패가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장 총관은 멍하니 그 패를 바라보았고,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다가간 전여린은 그의 손에 들린 패를 낚아챘다.

“오늘부로 초설은 하오문의 호법 장로인 전여린의 제자로 발탁한다. 하오문 문규에 따라 당사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물어보되, 어떠한 강압적인 행동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이를 어길 시, 나 전여린은 문규에 따를 것을 맹세한다. 하오문도인 초설은 호법 장로의 제자가 되겠는가?”

“······ 네?”

아직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힌 초설이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호법 장로의 제자가 된다면, 하오문의 규정 대부분을 벗어던질 수 있지. 예를 들면, 지금 네가 악양루 기녀 신분에 얽매여 있는 것조차도. 어때?”

초설은 놀라며 입을 가렸다.

다채로운 표정 변화를 지켜보는 시후의 입꼬리도 올라갔고, 그건 눈앞의 전여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 총관만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겨 있던 초설은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받아, 받아들이겠습니다.”

[‘1,500리를 뛰어넘어’가 특수 NPC ‘불노괴 전여린’의 개입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전여린을 통하여 보상을 획득하십시오. 호감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 20화에 계속 -

< 개발자의 클리어 공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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